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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플라워 킬링 문 - 노장의 냉혈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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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10-27 23:46:14

 

 

사전에 정보가 공개됐을때만 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수사극'이었는데, 막상 실제로 나온 작품은 좋은 친구들 생각나는 피카레스크 극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리쉬맨은 만족스럽게 보긴 했지만 마지막 30분을 제외하면 좋은 친구들의 변주 같았죠. 그런데 플라워 킬링 문(이하 플라워...)은 아에 위트조차 없는 '니들의 추악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봐라.' 하고 쏟아붇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니스트(이름부터가 비웃을려고 지은거 같죠)는 삼촌 킹 윌리엄 헤일을 통해 범죄의 수렁에 점점 빠져듭니다. 영화는 오세이지 인디언의 비극과 백인의 수탈은 굉장히 무덤덤하게 그리는 반면, 어니스트와 몰리의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감정적이란게 오히려 어니스트를 역겨운 인물로 만들어요. 어니스트 버크하트는 상황이 엿같은거도 알고 죄책감도 느끼는거 같지만 빠져나오진 '않'습니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황에 그냥 성질만 좀 낼 뿐 결국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진실되지 못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어찌보면 미국을 의인화 했다고도 해야 될까요.

 

릴리 글래드스톤이 맡은 몰리 카일러는 이런 영화에서 기존 스콜세지 인물과 상당히 궤를 달리합니다. 기존 스콜세지의 범죄물에서 아내는 결국 범죄의 동반자가 되는 역활이었죠. 그런데 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 이자 어니스트의 양심을 자극하는 동기로 극의 중심에 섭니다. 피해자였던 그녀는 진실을 접하고 어니스트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윌리엄 킹 헤일은 소름끼치는 인물입니다. '난 인디언의 친구야'라는 굳건한 믿음과 '인디언은 죽어서 돈이나 남기는게 좋은거지' 이 둘을 동시에 생각하는 인물. 그래서인지 사악한 느낌이나 음흉한 미소는 전혀 짓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오히려 그냥 사람 좋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만 등장해요.

인자한 미소로 아내를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 다음으로 아내의 자매를 죽여 재산권을 가져오라고 강요하는 모습은 틀에 박힌 크하하하하 웃는 악역보다 더 소름돋는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번 영화는 위트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좋은 친구들의 지미나 카지노의 에이스처럼 능글맞고 위트있는 신사는 없습니다. 볼 수 있는건 인자한 삼촌의 목소리로 잔인한 명령을 내리는 노인뿐이지

 

이처럼 백인 집단이 가하는 폭력은 무덤덤하고, 굉장히 일상적으로 그려집니다. 당장 앞에선 능청스럽게 이야기 나눴지만 돌아선지 5초도 안되서 총을 꺼내고 쏩니다. '오세이지 족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돈을 번거다.' 스스로들 합리화를 하며 인디언에 동조한 백인이 있다면 그도 처리합니다. 30명이 넘게 죽었는데, 포커스를 받은건 킹이 직접 사주한 사건 2~3개 뿐이죠. 

살인을 덤덤하게 그리는건 스콜세지 영화에서 항상 그랬습니다. 근데 이번은 유독 그 폭력이 더욱 역겹게 느껴집니다. 자기들은 좋은 사람이라 믿는 굳건한 믿음 위에 이뤄지는 일방적 폭력이라? 

영화에서 동시기에 있던 털사 인종 폭동 사건이 몇번 언급됩니다.  미국이 지우고 싶어한 흑역사중 하나죠. 이 사건을 킹 헤일이 관람하게 만든건 어떤 의도였을까요. 이런 끔찍한 사건을 규탄하면서 인디언에겐 무심결하게 잔혹한 사람? 아니면 인디언도 저렇게 쓸어야 된다는 본심?

 

그래서인지 제시 플레먼스가 FBI로 등장할때 마치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습니다. 이 무절제한 폭력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고.  그런데 FBI도 사이다를 제공하진 못합니다. 내내 빙빙 돌기만 하다가 성과는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고 그랬다더라~ 하는 낭독극으로 끝납니다. 

어니스트 취조 씬을 보면 어니스트가 서서 내려다보고 조사원들이 앉아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려지는데 이게 마치 서로의 관계가 역전된거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수사는 결정적 증거를 어니스트의 증언에 의존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질 못하고 내내 맴돌기만 합니다. 

이는 마지막에 모범수로 풀려나는 헤일과 어니스트 이야기를 통해 FBI도 통쾌한 한방을 날리진 못한거로 증명되죠. 결국 원한을 제대로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갑작스런 낭독극 전환은 결국 이 비극조차 여흥으로 소비되는 현실에 대한 기록 같았습니다. '인디언 살해로 유죄받는거보다 개를 발로 찬 거로 유죄 받는게 보다 쉬울거요.' 이 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킹 헤일도 어니스트도 온전한 죗값을 치루지 않고 풀려납니다. 사건의 기록은 J. 에드가 후버 제공이란 이름을 달고 여흥거리로 소비됩니다. 사건 관계자들 중 누구도 반성했다는 언급도 없죠. 

 

아이리쉬맨은 '몰락'을 다뤘다면, 플라워...는 '기록'을 위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항상 미국이 지우고 싶어하는 이면을 다뤘습니다. 베트남전으로 방황하는 세대, 융화되지 못하는 이민자 사회, 시민에게 총을 쏜 군대, 범죄로 쌓은 부와 그 몰락... 이번 플라워 킬링 문은 양심이 있으면 보라고 냉혈하게 째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위트는 이 영화가 걸릴 미국에게 사치입니다. 

 

낭독극 마지막에 몰리의 죽음을 카메오로 출연한 스콜세지 감독이 읊는데 '살인 관련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이 대사는 마치 이 사건을 스콜세지 감독이 대신 사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오일머니 살인사건의 피해자로 대표되는게 아닌, 오세이지족으로 남길 원했을테니까요.

 

 

ps.릴리 글래드스톤은 이걸로 여우주연상 노미 안되면 논란될거 같네요

ps2.카메오 2명 중 브랜든 프레이저는 진짜 의외였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가져가네요

님의 서명
RA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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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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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02:26:56

공감가는 점이 많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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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03:53:40

좋은 리뷰 너무 감사합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스트는 스콜세지가 그간 다뤄왔던 주인공과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죠 그런면에서 영화에 접근하기는 수월했지만 말씀대로 아무런 위트없이 너무나 너무나 무거워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네요 FBI가 등장하는 후반부 지점을 보며 스콜세지는 장르적 장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원작을 보면 오세이지족의 말살을 꾀한 이들이 윌리엄 헤일의 일당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의 모든 백인들이다라는 암시가 있는데 그 부분을 염두한 의도가 아닐까 싶었고요 예상을 뒤엎는 라디오극 형식의 마무리는 수정주의 서부극에서 한발 더 나아간 거장의 풍모로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글래드스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주요부문을 석권했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네요 그래도 기생충 이후로 점점 더 바뀌어가고 있으니 기대해 봅니다

1
2023-10-27 09:16:45

세시간이 넘어 긴장하고 보았는데 거장의 솜씨인진 몰라도 막 엉덩이가 아플때쯤 그 아픔을 잊게 해주는 뒷심이 아주 강렬한 영화였네요

2
2023-10-27 09:44:10

보는내내 역겹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오의 위선자 연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1
2023-10-27 23:17:18

 정확하고 정성스런 리뷰입니다.

 제목에 한번 놀라고 포스터(어니스트에 기대고 있는 몰리)와 다르게 흘러가는 사사에 놀라고...

 3시간 넘는 노장의 이야기가 또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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