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드라마 [마의, 2012]를 보고
9년전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이 요즘 어디있겠느냐마는, 저는 이병훈 PD의 팬이기 때문에 결국은 보고 있습니다.
이병훈의 장편 드라마 세 편을 완주했습니다. 대장금, 허준, 이산을 보았는데 셋 다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물론 이 작품들 모두가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다릅니다만 대체 역사 환타지물로 생각하고 보면 드라마의 완성도가 상당한 편입니다. 대장금은 요즘도 가끔 돌려보는데 중간에 아무거나 한 편만 봐도 빠져드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장금이의 수랏간 시절 이야기는 너무나 짜임새가 좋고 연기도 훌륭하고 대사가 흡입력이 있어서 잠깐만 보아도 죽치고 앉아서 계속 보게 됩니다.
<마의>는 안타깝게도 많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한국 사극 최초로 수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새로운 시도이고, 이병훈 특유의 연출력은 여전한 편이지만 여러모로 많이 아쉽네요. 마치 드래곤볼 Z를 보고 대만족을 한 후 드래곤볼 슈퍼를 볼 때의 느낌이더군요.
일단 어린시절 이야기가 재미가 덜합니다. 관군에게 쫓기던 (양)아버지의 죽음 부분은 대장금과 비슷하지만 대장금에서 느꼈던 비통한 느낌이 덜합니다. 백광현이 성장하며 서서히 재능을 보이는 부분도 장금이와 비슷한데, 어린 장금이의 귀여움과 깜찍함이 어린 광현에게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배우의 문제, 혹은 배우의 성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 스토리가 단조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성인이 되고난 후에는 약간 더 재미있어집니다. 조승우가 연기하는 백광현이 꽤 괜찮게 그려집니다. 조승우의 비주얼과 연기력이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스토리의 설득력과 긴박감이 떨어집니다. 허준과 대장금에서 다음 편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이 여기선 보이지 않는데,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드라마 자체의 이유도 있지만 시대적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한의학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허준이 방영된 1999년과 비교해서 한의학의 아우라가 많이 떨여졌습니다. 1999년에는 드라마 허준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경희대 한의대에 최고 수준의 인재가 몰리던 시절이기도했고 한의학의 재평가가 일어나서 의협과 마찰음을 크게 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의 시대이고, mRNA 백신을 만드는 첨단 서양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진맥 한 번으로 모든 병을 진료하고 침 몇 번, 탕약 몇 첩으로 모든 병을 치료한다는 게 더 이상 적어도 저에게는 설득이 되지 못하더군요. 중간에 백광현의 약간 덜 떨어진 친구가 역병이 도는 걸로 의심되는 지역에서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백광현이 비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즘 이런 장면이 나왔다면 백광현, 혹은 조승우 배우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드라마가 중단되는 사태가 왔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대체역사 판타지물이라도 이게 설득이 못하니 보기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대장금에 대해서도 회상을 해보니 수랏간 시절 이야기가 의녀 시절 이야기 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음식을 요리하는 것은 딱히 과학적이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데 의녀가 된 이후의 이야기는 진료 행위 자체가 믿음이 가질 않아서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둘째로, 러브라인이 너무 많습니다. 백광현을 중심으로 한 4각 관계가 그려지는데, 제가 본 이병훈의 전작들은 멜로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았죠. 장금이와 민정호, 허준과 예진아씨, 이산과 성송연의 러브라인이 있었는데 이게 결코 드라마에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장금이와 민정호의 관계보다는 사실 장금이와 한상궁의 레즈비언스러운 관계가 더 중요했고, 허준과 예진아씨의 관계보다는 허준이 겪는 고난과 마술과도 같은 그의 치료가 더 빛을 발했고 이산과 성송연의 관계보다는 이산이 궁중에서 겪는 암투가 더 심각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죠. 반면 마의에서는 멜로드라마적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시간이 깁니다.
셋째로는 아마도 제가 이병훈 작품들을 꽤 보아서 줄거리의 흐름을 이미 예측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의는 아마 자기 복제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은 계속 성장하고, 나쁜 놈들은 계속 음모를 꾸미고, 그래서 주인공이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다시 나와서 또 성장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가막힌 방법을 찾아내고, 그 와중에 여친(남친)과 썸을 타고....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거 아닐까요. 여기에 장르의 퓨전이라는 요소가 있을 겁니다. 대장금이 가장 성공적인 작품인데, 이건 요리드라마+메디컬 드라마라는 틀에 추리물과 복수물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반복되다보면 더 큰 전환이 없는 한 결국은 예측가능한 틀에 머물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참고 <마의>의 마지막 회까지 볼지도 모르겠는데요 앞으로 <대장금>같은 작품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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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의> 관련해서는
두 가지만 기억납니다
하나는 조보아, 김소은
다른 하나는 그해 MBC 연기대상 논란
<빛과 그림자> 안재욱이나<골든타임> 이성민
둘 중 하나가 탔어여 했다는...
조승우 역시도
수상자의 기쁨보다
당혹감이 역력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