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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봤어요 (스포..가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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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19 14:09:18

하루에 3편씩 끊어서 방금 시청을 마쳤는데요. 많이 실망스럽네요. 기대치가 높아서일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제작비와 판이 깔린 상태에서는 이것보다 잘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접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힌 '라이어 게임'이나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대체 감독은 무엇을 보았던 걸까요? 그동안 꾸준히 이런 이야기가 개발되고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게 된 건 결국 작가와 팬들의 바람이 하나로 이어졌기 때문일텐데요. 그건 장르물, 특히 게임 장르에 대한 욕구이지요. 앞뒤 다 자르고 각자의 서사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오로지 게임판의 말로 존재하는 인물들을 따라가며, 그 대결의 양상을 즐기는 게 이런 형식의 묘미일 테고 '오징어 게임'의 예고편을 보며 다들 그런 기대를 했을 거에요. 


근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게임의 비중이 이상할 정도로 적어요. 얼마 전에 넷플릭스로 공개된 일본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봐도 각 에피소드마다 주가 되는 건 게임 자체이고 그 외의 이야기들은 비교적 짧잖아요? 한 번 게임에서 승리할 때마다 며칠 간의 생존권을 주니까, 실제 주인공들이 보내는 시간은 그 때가 훨씬 길겠지만 작품 내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건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두어 시간 정도죠. 왜냐면 그 사이에 주인공들이 뭐 했는지는 전혀 독자의 관심사가 아니니까요. 


'오징어 게임'은 그 반대에요. 게임 바깥에서의 시간이 무척 길고 게임을 하는 시간이 짧아요. 어떤 에피소드는 거의 한 시간을 통째로 개인 서사에 할애하기도 해서, 마치 막간극이 진짜고 게임은 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이벤트인것만 같아요. 스포츠 경기를 보러 왔는데 선수 소개와 대기실 비하인드만 줄창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그렇다고 군상극으로서 그런 사연들이 흥미로우냐면 썩 그렇지도 않은 게, 대부분이 전형적으로 기능하는 인물들이라,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식으로 처리될지 보이거든요. 


비중이 많지 않더라도 게임 파트가 흥미로웠다면 위안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작중 여섯 개의 게임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이미 얘기가 나왔지만 '신이 말하는대로'의 첫번째 스테이지를 갖고와 스킨만 다르게 씌운 격이고요. 후반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임 하나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거의 비슷한 모양새가 나오니까, 그나마 나머지가 이 작품의 독창적인 요소일텐데 그런 말이 민망할 정도로 '오징어 게임'의 게임들은 창의성이 없어요. 말이 게임이지, 참가자 수를 줄여나가기 위한 학살극의 핑계 정도에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예고편에 나오는 걸 보면서도 흐린눈을 했던 건 그보다 나은 게임이 있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는데 그게 제일 인상적인 순간이면 대체 뭐가 남나요.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보면 사람 여러명이 들어가 한 명밖에 살아나올 수 없는 스테이지가 나와요. 별 재미도 없는 그 에피소드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주인공에게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기 위해서인데요. '오징어 게임'에서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래요.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결승전은 그 중에서도 압권인데, 그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말도 안되는 사고를 일으켜 가며 주인공들을 억지로 그까지 이끌어요. '오징어 게임'의 주최측은 여러가지 변수에 따라 다양한 대결을 준비해두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감독 머릿속의 결승전에는 한 가지 게임 뿐이었을거고 결국 그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동안 이런 유형의 작품들의 대체로 쿨하다고 여겨졌던 건 장르의 본분을 지키며 게임을 보여주는 데 충실했기 때문이에요. '오징어 게임'은 다른 걸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난하게 나열되는 개별 인물들의 개인사나 게임 안에서의 관계성, 스테이지 바깥의 비밀.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들이 게임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데서 감독의 의중을 읽을 수 있기도 하고요. 부당해고된 노동자나 탈북자, 외노자, 학대당한 소녀, 치매 노인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도 그와 연결돼 있겠죠. 


하지만 여기에 비중을 둬서 얻어내는 건 결국 느린 전개와 어둡고 질척질척한 분위기에요. 작중에서 이정재가 '나는 (게임의) 말이 아니다'라고 힘을 주어 말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캐릭터 뿐 아니라 감독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저는 이게 작품의 세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짬뽕을 먹으러 왔는데 국물에서 냉면육수 맛이 나면 주방장이 엔간한 요리실력이 아니고서야 '두 가지 맛이 나는 대단한 음식이구나!'하고 감탄하게 되지는 않잖아요? 


이런 종류의 내용을 원작도 없이 오리지널 스토리로 연출자가 시리즈 전체의 대본을 써서 넷플릭스와 계약했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지만, 결국 이런 퀄리티 차이는 원작이 없는데서 기인한다고 봐요. 오로지 출간을 위해 줄거리만 짜는 작가가 오랜 시간 골몰해 만든 게임 스테이지들과, 영상 연출이 주종목인 감독이 전체 대본까지 쓰며 고안한 게임들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대단한 건 시각적인 완성도였어요. 그 놀라운 세트장 (미술감독님은 백상예술대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ㅠ )과 화사한 색감, 기이한 분위기의 배경들이 그렇게 단순한 대결을 위해 사용된 게 정말 아쉬워요.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하고, 회수되지 않은 떡밥들을 뿌려가며 거창하게 2시즌을 예고하고 끝이 났지만, 부디 2시즌이 제작되지 않기를 바라요. 이런 컨셉들은 웹툰이나 다른 국내 창작물에도 있으니까, 같은 값이면 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재능있는 작가와 감독들이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고 영상화의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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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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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14:38:34

감독의 의중을 알았지만 그 맛이 맘에 안드셨다는건데.그 부분 빼면 다 이 장르에서 수준 아래입니다. 그 의중부분이 있기에 수준이 올라왔다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게임이란게 '카이지'도 보면 돈을 따는 가위바위보 게임도 있지만 그뒤엔 정작 vip들이 구경하는 부분은 단순한 공중 외나무다리 파트입니다. 그이유를 생각하면 게임선택은 좋은거예요. 드라마가 장점인데 그걸 싫다는 분들은 재미없을수 밖에 없는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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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15:10:03

 본문에 말했듯 반대네요 , 다른걸 하려고 했던 

네 그게 바로 이 드라마가 기존 서바이벌 게임과는 다른 차별성이라는거죠

단순 흥미 위주에 스피드한 진행 그런식이라면 그들과 다를게 없죠

 비록 이 부분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감독이 담고 싶은  의도, 주제의식은 훨씬더 잘  표현했고

그 점이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이끈게 아닌가 싶네요

Updated at 2021-09-19 15:45:00

매우 동감합니다.
제가 할 말을 다 적어주신 듯 하군요.
배우들 연기도.. 실망스러웠습니다.

Updated at 2021-09-19 23:05:17

부산행 후반부 신파씬을 한국에선 많이 비판했지만 해외에선 오히려 신선하단 평을 들었던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한국쪽은 처음 만들어지는 데스게임장르고 신파는 지겹게 봤으니 '게임'에 더 관심을 뒀지만

해외는 이런 장르가 한두번 나오는게 아니니 '감정선'이 오히려 감명깊게 받아들여지는거 같습니다 

2021-09-20 11:27:29

재밌게 봤습니다 이런저런 사전 정보를 모르고 보는 관객들이 대부분이라 충분히 시간 가는줄 모르고 몰입해서 봤습니다

WR
Updated at 2024-03-02 09:44:41

오징어 게임이 비평, 흥행 양면에서 역대 최고의 성공작이 되어버린 지금 보면 왠지 낮뜨거워지는 리뷰네요. 그렇지만 저는 이 글을 지우지 않을꺼에요 ㅠ 저는 그 때도, 지금도 이렇게 느끼니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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