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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2020년 노벨 물리학상 - 1) 블랙홀 생성 원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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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Updated at 2021-02-20 09:48:51

펜로즈 경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블랙홀의 이론적 정립, 더 정확히는 "블랙홀이 일반상대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밝힌 공로"로 설명됩니다.


별 볼일(!)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여러 이론가들이 블랙홀의 생성 가능성을 두고 여러 논쟁을 벌인 것을 기억합니다. 예를 들면, 블랙홀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모든 질량이 완벽한 구대칭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다시 되팅겨 나와서 형성이 안된다던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질량이 한점으로 모이는 특이점은 생길 수 없다던지…


 슈미트가 퀘이서의 적색편이를 분석해낸 이후, 휠러는 현실세계에서 중력붕괴는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펜로즈와 토론하면서 그를 블랙홀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죠. 


완벽하게 대칭인 경우(슈바르쯔쉴트 블랙홀)와, 대칭이지만 회전하는 경우(커 블랙홀)에 대한 일반상대론의 해는 모두 특이점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은 수학적으로 이상화된 (idealized) 경우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이런 대칭구조가 블랙홀 생성에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는데…. 펜로즈 경이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 설명에 의하면, 그는 Rs (슈바르쯔쉴트 반지름, 즉 이벤트 호라이즌이 있는 위치) 안쪽에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위상수학에 기반한 새로운 수학적 방법을 만들어 냅니다. 그가 만든 방법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trapped surface로서, 이 구조의 특징은, 표면에서 수직으로 출발한 모든 광선이 시간이 가면서 수렴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구 표면을 생각해 보면, 구 표면 안쪽에서 출발한 빛은 중심부로 수렴하겠지만, 구 표면 바깥에서 출발한 빛은 무한히 발산해 나가겠죠. 그런데 펜로즈가 밝혀낸 사실은, Rs 안쪽에서 어떤 폐곡면을 잡던간에, 그 곡면은 trapped surface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냥 구면을 그리고 그 표면에서 출발한 빛은 당연히 발산해야 하잖아?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Rs 안쪽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하는 순간, 그 안쪽에서는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 더이상 자유로운 공간의 방향이 아니라… 시간처럼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방향이 됩니다. (???) 즉, 블랙홀을 빠져나오는 방향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방향이 되기 때문에, 블랙홀 바깥으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계속 블랙홀 중심으로만,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앞에서 이벤트 호라이즌은 특이점(singularity)이 아니고 좌표상에서 마치 특이점처럼 보인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지구에서 북극을 들 수 있습니다. 북극은 사실 지구의 어느 위치와 다를 것이 없지만, 위도/경도 좌표계를 도입하면 북극은 북쪽 방향이 존재하지 않고 어디로 가든 남쪽방향이 되며 경도는 모든 값이 가능한 특이점이 됩니다. (좌표계상의 특이점을 설명하기 위한 예이고, 블랙홀과 북극은 물론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에서의 특이점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좌표가 다름 아닌 시간과 공간이라면 물리적으로 대단히 ‘특이한’ 분기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기준으로 시간과 공간은 그 역할을 바꿉니다... (이게 뭔 소리일까요.) 공간 개념이었던 블랙홀 중심으로의 방향은 시간처럼 일방적인 좌표가 되고, 반대로 시간이라는 좌표는 공간처럼 자유로와집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이 얼마나 특이하냐면 말이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하는 우주선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우주선이 이벤트 호라이즌에 가까와질 수록 중력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우주선의 시간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점점 느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벤트 호라이즌에 다다르면….. 시간이 멈춥니다! 


시간이 멈춘다고?


이건 관점의 문제인데…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주선의 시간은 멈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결코 우주선이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주선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시간이 정상으로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간이 멈추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합니다. 


자, 그러면 중심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Rs 내부에서 모든 물체는 하염없이 중심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그 중심으로 향하는 방향이 뭐라고요? 시간이라고요. 그럼 마침내 중심에 다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네…. 시간도 종말을 맞이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고백컨데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시겠다면, 그건 여러분 탓이 아니라.... 이해 못하면서 설명하려 애쓰는 저의 탓입니다.


아무튼 펜로즈는 대칭성에 상관 없이 일단 질량이 수축하여 trapped surface가 형성이 되면, 일반상대론이 맞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음의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심점을 향해 끊임 없이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한마디로, 블랙홀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완벽한 대칭 같은 가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죠.


펜로즈는 블랙홀의 상황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또다른 수학적 도구를 만들어냅니다.  ‘펜로즈 다이어그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conformal mapping이라는 변환방법을 이용한 것인데, 물리 전공하신 분들은 대학교 2학년 수리물리의 악명높은 교재, Arfken에서 공부해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도대체 이런 건 왜 배우나 했는데…)


펜로즈 다이어그램도 아무 것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그 전에 블랙홀을 수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Kruskal-Szekeres 좌표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쓸데 없는 문제! 이 Kruskal이 컴퓨터 하시는 분들은 들어봤을 tree-search algorithm인 Kruskal algorithm의 개발자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아쉽…) 하지만 친형제랍니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는 마틴, 수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는 조셉, 삼형제 중 또다른 한사람인 윌리엄은 수학자이자 통계학자로 아마 minitab 같은 분석툴에 있을 것 같은데… kruskal-wallis test라고… 그 방법을 만든 사람입니다. 보통은 쓸 일이 없지만... ^^ 삼형제가 분야는 다 다르지만 다들 엄청난 수학자들이었네요.


말이 좀 샜는데 (셀프 경고!), 펜로즈의 특이점 정리와 관련, 이것을 블랙홀 뿐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스티븐 호킹입니다. 살아만 있었다면 펜로즈와 같이 노벨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그가 아직 대학원생이던 (그리고 아직 걸어다니던) 1965년, 그는 펜로즈의 이론이 우주 전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입니다. 즉 빅뱅 초기에, 우주가 매우 작은 부피에 매우 높은 밀도로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펜로즈의 정리에 의해 특이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빅뱅 이전에는 시간도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빅뱅과 함께 시간도 시작된 거죠. (그래서 그가 쓴 베스트 셀러 제목이 ‘시간의 역사’인가 봅니다. 어쩌면 이 우주 전체가 어느 이름없는 블랙홀에서 시작된 걸까요?) 이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호킹은 그해에 여러 논문상을 받으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이후 펜로즈와 연구를 계속해서 펜로즈-호킹의 특이점 정리를 완성합니다. 다들 박사쯤 되면 학위 논문은 이정도 쓰는 거 아닌가요? (...개뿔)


아뭏든 펜로즈의 블랙홀 연구성과는 아인시타인의 일반상대론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최초의 의미 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졌고, 천문학과 물리학에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블랙홀’이란 용어는 디케(Dicke) 박사가 1960년에 처음 사용했다고 하네요. 기억하시나요?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피블스 교수의 지도교수죠.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려고 준비하다가 왠 안테나 수리하던 사람들에게 선수를 뺴았겼던...  이후 말씀 드린 것처럼 휠러 박사가 이 용어를 널리 퍼트렸다고 합니다.


블랙홀의 존재가 점차 명확해 지면서, 퀘이사의 정체가 블랙홀일 것이라는 가설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 갑니다. 1965년에, 초거대질량(supermassive) 블랙홀 주변의 물질들이 빨려 들어가며 형성되는 ‘accretion disk’로부터 나오는 어마어마한 광도의 에너지가 바로 퀘이사의 정체라는 이론이 발표됩니다. 여기서 accretion이라는 단어가 참 생소한데요, 우리 말로 ‘강착 원반’ 혹은 ‘응축 원반’ 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 ‘accretion disk’가 뭔지는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한번 찾아 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아! 유명한 이미지가 하나 떠오르네요! 제가 찾아서 복붙을... 잠시만요.

알아보시겠나요?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가르강튀아 블랙홀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의 밝게 빛나는 복잡한 모양의 띠가 accretion disk이며, 중심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형상입니다. 사실 형상 자체는 토성 고리처럼 평평한데, 블랙홀의 중력때문에 빛이 어마어마하게 휘기 때문에,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블랙홀 뒤의 disk 부분은 위아래로 갈라져서 보이는 것입니다. 

이 이미지를 찾으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또 알아냈는데요, 인터스텔라 팀이 기존의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이 이미지를 만들어서 영화에 쓰려고 했는데, 플리커가 너무 심해서 IMAX 영상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보다 매끄러운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방법을 새로 개발했고, 이 시뮬레이션 방법은 과학 저널에도 실렸다는군요. 기존의 블랙홀 시뮬레이션 방법을 개선한 것으로 해서요.. 

(갑자기 표정들이 왜 그러세요? 영화 찍으면 보통 논문 서너편은 나오는거 아닌가요? . )

 

다시 진지모드로 돌아가서... 이렇게 학계에 소개된 시뮬레이션 방법은 한번 더 업그레이드 되어서 현재 가장 리얼한 가르강튀아 블랙홀 이미지 시뮬레이션은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같은 논문에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Classical and quantum gravity라는 저널이라네요. 색깔이 바뀐 것도 도플러 효과를 고려해서 계산된 것입니다. 회전하는 디스크의 멀어지는 방향은 붉게, 가까와지는 방향은 푸르게... 앞으로 논문 쓰려면 영화업계에 취직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앞서 소개해 드린 퀘이사 3C273의 광도는 약 10^40 watt인데, 이 정도 에너지를 방사하면서도 천체가 자기 형태를 유지하려면 질량이 태양의 약 10억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소위 ‘에딩턴 한계’라는 이론인데요, 이 한계광도보다 큰 에너지가 방사하면 (혹은 천체의 질량이 더 작으면) 방사광의 압력이 너무 커서 천체가 자기 중력으로 질량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흩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이 accretion disk의 방사 메커니즘도 연구되었는데,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처럼 질량이 큰 천체에는 Rs 바깥에 (슈바르쯔쉴트 블랙홀의 경우 3Rs에) ISCO라는 지점이 있습니다. innermost stable circular orbit의 약자로 이보다 가까운 물체는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블랙홀 안으로 끌려들어가고 맙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바깥에서는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거고, 이 지점이 accretion disk의 안쪽 경계를 결정하게 됩니다. 물질들이 블랙홀 주변을 돌면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동안, 자기 질량 에너지의 약 40%까지도 방출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블랙홀이 그렇게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는지 설명하게 된 것이죠.


69년에 펜로즈는 추가적인 에너지 추출 메커니즘을 제안합니다. 회전하는 블랙홀(커 블랙홀)의 경우, 블랙홀 바깥의 시공간도 블랙홀과 함께 회전하게 됩니다. (또 이상한 소리…) 마치 유체 안에서 물체가 움직이면 그 주변의 유체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합니다만, 물질이 아니라 시공간 자체가 끌려가는 효과이고, 미미하나마 지구 주변에서도 존재한다고 하네요. 이를 Lense-Thirring effect라고 한다고 합니다. 블랙홀 같이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크면 그 주변으로 ergosphere라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sphere 안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멈춰 있는게 불가능하고 블랙홀과 같이 회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Resistance is futile!) 그런데 이 영역 안으로 들어온 물체가 둘로 쪼개져서 하나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블랙홀을 벗어날 경우, 블랙홀을 벗어난 물체의 에너지가 처음 블랙홀에 들어갈 때의 쪼개지기 전 물체의 에너지보다도 커질 수 있다는 걸 밝혔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77년에 재밌는 논문이 나오는데, 회전하는 블랙홀을 거대한 발전기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죠.


와… 이번 글은 너무 오래 걸렸고 분량도 너무 많아졌는데, 끝으로 펜로즈경의 다른 연구들을 간단히 언급하고 ‘급하게’ 마무리짓겠습니다.


우선 펜로즈 하면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들어봤을 것이 ‘펜로즈 삼각형’, ‘펜로즈 계단’ 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물체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펜로즈가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니지만 펜로즈로 인해 유명해 졌고, 이후 화가인 에셔가 펜로즈의 도안을 자신의 작품에 응용하면서 널리 퍼졌죠. 영화 ‘인셉션’에도 펜로즈 계단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아마 ‘펜로즈 타일’일 것입니다. 몇가지 기본 타일을 가지고 평면을 채워나가는 데, 절대 반복되지 않습니다. 1974년에 6개의 서로다른 타일을 가지고 평면을 반복하지 않고 채워나가는 데에 성공하고, 나중에 이 수를 2개까지 줄입니다. 이 발견은 물리학적으로 준결정체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펜로즈는 콘웨이 박사와 함께 펜로즈 타일의 속성을 연구하고 이를 마틴 가드너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연재하는 ‘수학 게임’ 코너에 소개합니다. 마틴 가드너, 존 콘웨이,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이죠. 특히 존 콘웨이는 인생 게임… game of Life의 개발자 맞습니다. 이번에 조사하면서 콘웨이 박사가 작년에 COVID-19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걸 알게 되었네요…. R.I.P….


다음은 관심 있는 분들만 알 내용인데, 펜로즈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황제의 새 마음’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기서 인간의 ‘의식’이나 ‘자유의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합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알고리즘으로 구현될 수 없다고 믿고 있으며, 의식을 발현하는 메커니즘에 양자역학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주장합니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관계로 오류도 많고 학계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고 하나, 일반인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주장을 전달하였습니다.


마지막은 다시 물리우주론 관련 내용인데, 소위 ‘conformal cyclic cosmology’ CCC라는 이론입니다. 천체물리학은 그가 명성을 얻게된 전문분야이지만, 이 이론에서의 그의 주장은 위의 인간의식에 대한 주장보다도 더 파격적입니다. 무슨 주장이냐면....


먼 먼 먼 미래에 우주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떄, 모든 천체는 물론 모든 양성자 전자 중성자까지도 모두 decay해서 사라지고 모든 블랙홀들도 다 증발해서 사라질 즈음….  (참고로 전자나 양성자가 decay해서 사라진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우주에는 오직 boson (photon)만 남게 되는데, 이 때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개념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conformal transformation에 의해서 (again?) 오직 빛만 존재하는 텅빈 현재의 우주는, 다음 우주의 빅뱅 직전과 동일해진다는 것입니다… 흐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시겠다면 그건 결코 읽으시는 분의 책임이 아닙니다.


블랙홀 이야기를 할 때, 이벤트 호라이즌을 넘어가는 순간이 특이점이지만 이건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계에서의 문제라고 했죠? 그리고 블랙홀 중심의 특이점은 피할 수 없다는 펜로즈의 이론을 호킹이 우리 우주에 적용해서 빅뱅 초기를 설명했다고 했죠? 펜로즈의 CCC는… 말하자면 빅뱅에 이벤트 호라이즌에서의 좌표변환 같은 걸 적용한 걸 겁니다. 블랙홀 외부에서는 블랙홀로 들어가는 자의 시간이 무한히 느려지면서 결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했지만, 당사자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주가 텅 비고 오직 빛만 존재하는 경우, 거리나 시간의 개념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다음, boson은 이 우주의 종말에서 다음 우주의 시작으로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전자나 양성자는 Fermion이라서 conformal boundary를 통과할 수 없다고 합니다. ) 제가 이해한게 맞으면, 이 엄청난 크기의 우주가, 다음 우주에서는 그냥 하나의 점이라는 거죠. (우주가 수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요.) 이렇게 우주는 무한히 빅뱅을 반복한다는 것이 CCC이론입니다.


펜로즈는 한 우주가 지속되는 기간도 예측했는데, 대략 10^100년이라고 하고, 이를 1 이온(aeo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숫자가 왠지 대강 찍은 것 같은 느낌이죠? 상상도 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입니다. 


놀랍게도 펜로즈는 이 이론의 증거를 관측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우주배경복사로부터 기초적인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했습니다만, 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CC 이론은 앞서 인간의식의 양자역학 메커니즘과 마찬가지로 별 인기가 없는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요즘 물리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은 하두 SF같은 이야기가 많아서 (multiverse, holographic universe, simulation universe 등등) CCC라고 안될거 있나 싶기도 합니다. 이제 펜로즈경이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그의 주장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릴 수도 있겠습니다. 역시 사람은 일단 출세를 해야… ^^


이번 글은 좀 무리를 했네요. 많은 시간을 들여 너무 길게 썼나 싶습니다. 아직 물리학상의 절반의 성과 (겐첼과 게즈 박사의 발견)는 이야기 못했습니다만, 다음 글은 좀 여유를 두고 간략하게 써볼랍니다.


아무튼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은, 블랙홀 생성이 일반상대론에서 자연스럽게 예측된다는 것을 처음 밝힌 공로로 로저 펜로즈 경이 수상하였습니다. 수학자로서 더 유명한 그는 수상공로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님의 서명
Busy, busy, busy,

is what we Bokononists whisper whenever we think of how complicated and unpredictable the machinery of life really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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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2-20 09:39:12

요새 물리학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 사람들이 학자인지 sf작가인지 헷갈린단 말입니다...
그러다 보나 sf 읽는 것도 시들해지는 거 같구요.
말도 안되는 sf 보다 더 말도 안되는 거 같은 소리를
저 같은 수포자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물리학 박사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말로 천연덕스럽게 잘하네 싶으니 말이죠. ^^;

WR
2021-02-20 09:51:58

그러게 말입니다. 어쩔 땐 이사람들이 너무 막 나가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요... 새로운 과학 발전에 가장 방해가 되는게 '상식'이라던가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2-20 09:51:07

이런 멋진 글 감사합니다.
밥안먹어도 기분좋게 배부른 느낌입니다.

WR
2021-02-20 11:33:05

오호...

다이어트를 위한 글쓰기.. 를 시도해 볼까요? 

감사합니다.  

2021-02-20 09:56:12

 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WR
2021-02-20 11:37:16

왠지 죄송한 느낌..

걱정 마십시요. 저도 제대로 알고 쓴 글이 아닌지라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2-20 10:35:49

음 대충
아 완벽히 이해했어(하나도이해뭇함) 짤.jpg

2021-02-20 11:29:14

대신 요거라두~

WR
2021-02-20 11:38:29

난해하지만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긴 합니다.

글 쓴 저도 언제쯤 이해를 하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2-20 10:40:43

1편은 이해 안가는 부분은 대강 넘기면서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편은 대략 정신이 아득해 지면서 멍 하네요..ㅠㅠ 아침이라 그런가.. 

나중에 시간 들여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21-02-20 11:39:41

저도 블랙홀 내부의 상황이 어떨지 아무리 상상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21-02-20 11:06:56

Ccc이론은 종교에서도 보던 거라...
한편으론 블랙홀이 각기의 새로운 우주 창조의 씨앗이 되는 지점이고 우주 대부분의 질량을 차지한다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WR
2021-02-20 11:41:45

혹시 campus crusade for christ?

블랙홀의 질량은 사실 측정 가능합니다. 따라서 암흑물질이나 암흑 에너지는 아닙니다.

새로운 우주 창조의 씨앗은.. 저도 비슷한 상상을 하게 되네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2-20 11:11:24

이 글을 읽는 동안 제 시간도 소멸되었...
블랙홀 같은 (매력의?) 글이라는 얘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WR
2021-02-20 11:43:58

어이쿠~ 감사합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르는군요! 몸소 증명을.. 

2022-06-22 14:34:3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단 킵하고 나중에 읽는걸로. ㅎㅎ

WR
2022-06-22 16:38:42

뒤늦게 왠 댓글이 달렸나 봤더니 '그랬군요' 님이 이 글을 링크해 주셨군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6-22 20:11:20

엄청난 분이셨네요.
펜로즈도 흠냘냘님도요.
끝까지 읽었어요. 자축하고 감사드려요.

펜로즈의 논문이나 주장이 추상적인 것이 아님에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힘들텐데 그런 것을 설명하는 게 평생의 업이라서 그의 문장이 그렇게 간결하고 우아했던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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