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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2021년 노벨 물리학상 - 0. 복잡한 물리 시스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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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11-19 14:42:22

 지난번 글이 너무 길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는 말씀들이 많으셔서, 이번에는 가능한한 간단명료하게 가 보고자 합니다만 글을 쓰다보면 자꾸 딴길로 새서 말이죠…  고민 끝에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먼저 리뷰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은 2020년 노벨 화학상에 도전!!!... 물론 상에 도전하는게 아니라 (그러면 좋겠지만) 리뷰에 도전한다는 말씀임다. 

자 개봉 박두! (글의 저작권은 저에게 ^^)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복잡한 물리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한 공로”로 3명의 과학자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그중 절반은 “지구의 기후변화를 모델링하여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슈쿠로 마나베 교수와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클라우스 하셀만 교수가,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원자레벨부터 행성계에 이르는 다양한 스케일의 물리계에서의 무질서와 요동의 상호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이탈리아 사피엔짜 대학의 조르지오 파리시 교수가 수상했습니다.

 

두 업적 중에서 좀더 이해하기가 쉬운 기상모델 관련한 부분을 먼저 말씀드리…기 전에! 

“복잡한 물리시스템을 이해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간단히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은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단어가 그리 생소하지 않은 유행어처럼 되었습니다만, 이 분야의 시작은 아마도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튼… 로렌쯔 (정말로 중간 이름이 노튼입니다.)의 연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사람 아니고,   이 사람입니다. 

 

1961년 어느날, 로렌쯔 박사는 3개의 미분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기상모델을 만들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합니다. 그 당시 그가 사용한 컴퓨터는 사무실 책상만한 크기에 1450개의 다이오드와 113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천공카드를 찍는 타자기와 오실로스코프 디스플레이가 달린, 3개의 레지스터와 16개의 명령어를 갖춘, 그 당시 4만7천불,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5억원짜리(!!) 최첨단 컴퓨터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사용된 언어는 저는 처음 들어보는 ACT-III라는 언어와, 지금은 교과서에서나 언급되는 ALGOL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컴퓨터 환경에서 ALGOL같은 고급언어를 사용하여 계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연구자에게는 축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로렌쯔 박사가 연구에 사용했던  '로얄 맥비'사의 LGP-30 컴퓨터

 

그는 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시간에 따라 풍속, 기온 등 12개 변수의 변화를 예측하는 기상모델을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연구원들이 흔히 연구 초기에 개념 검증을 위해 사용하는 간단한 ‘토이(장난감) 모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을 계산한 후, 그는 이미 계산한 결과를 중간부터 다시 계산하면서 자세히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기 입력값으로 이미 계산되서 출력된 숫자를 입력합니다. “어디 보자… 아까 프린트된 값이… 0.506이네. 이제 이걸 초기값으로 입력하면 여기서부터 계속 계산되겠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중간부터 새로 계산된 값이 처음부터 계산된 값과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산 초기에는 똑같은 것처럼 보였지만 머지않아 계산결과가 조금씩 틀어지더니 나중에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입니다. 원인이 뭔지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범인을 찾았는데, 프린터가 출력한 값은 소수점 3자리까지만 찍히도록 되어 있어서 0.506이 찍혀 있었지만, 실제로 컴퓨터 내부에서 계산된 숫자는 유효숫자가 소수점 6자리였고, 실제 값은 0.506127이었다고 합니다. 즉, 입력값이 정확하게 똑같지가 않고 아주 살짝 달랐던 것입니다. 이 작은 반올림 오차로 인해 모델의 계산 결과는, 처음에는 예전 결과와 비슷하게 가는 듯 싶었는데, 나중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는 거죠. 

 

로렌쯔 모델에서 초기값을 약 1% 다르게 설정한 결과. 처음에는 동일해 보이는 두 결과가 t=5.5 근방에서 조금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더니 나중에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실제로 경험하신 분들도 많을 거고, ‘그게 뭐가 새롭다는 거야? 그냥 반올림 오차가 발생해서 결과값이 달라진 거잖아?’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렌쯔 박사는, '아.. 입력값이 잘못되서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상예측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현상이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초기의 아주 작은 차이도, 나중에는 시스템의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오랜 시간 후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로부터 유명한 ‘나비효과’의 비유가 등장하게 됩니다.

 

참고로 ‘나비효과’라는 말이 탄생된 계기가 재밌습니다. 1972년 미국의 한 학회에서 로렌쯔 박사가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가 발표제목을 제출하지 않자, 주최측에서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매우 선정적인(?) 문장으로 발표제목을 맘대로 정했다고 하네요. 이때부터 나비효과라는 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비효과에 관한 또다른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SF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잘 알고 계실 “화씨451도”의 작가, 브래드버리가 쓴 단편소설 중에,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만 여기에 나비가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라서 공개는 못하겠습니다만 ^^ 아무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비가 - 날개짓을 하지는 않지만 - 상징하는 것이 정확하게 ‘나비효과’에서 말하려는 바와 동일합니다. 더구나 소설은 1952년에 발표되었는데, 로렌쯔 박사의 나비효과 강연보다 20년이나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나비효과’의 원조가 브래드버리의 소설이라고 믿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나비는 우연히 등장한 것이고, 원조는 로렌쯔 박사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소설가의 직감이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서 브래드버리의 소설에도 등장했지만, 이런 ‘초기조건의 민감성’에 대해 로렌쯔가 처음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유명한 "3체 문제(3-body problem)"에 대해 1887년에 스웨덴 국왕이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그 유명한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프앵카레가 - 문제를 풀지는 못했지만 – 관련 연구를 수행한 공로로 현상금을 타가죠. 이 때 그는 ‘주기적이지 않으면서도, 무한히 멀어지거나 한점으로 수렴하지도 않는 궤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런 궤도는 불안정한 지점을 포함하고 있고(homoclinic orbit), 또 이런 궤도들이 계속 엉켜 있어서, 초기값이 약간만 달라져도 장기적으로 전혀 다른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이런 초기값에 대한  시스템의 민감성이 3체문제 뿐만 아니라 ‘기상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그 당시 수행한 연구들이 오늘날 혼돈이론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프앵카레를 혼돈이론의 아버지로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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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물체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 이 시스템의 궤적을 예측하는 문제를 3체 문제라고 합니다.

 

아무튼, 만약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시스템들이 이렇게 혼돈스럽고 장기적인 예측은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혼돈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예측은 불가능하다’일 뿐인 걸까요?

 

역설적으로, 시스템이 아주 무질서하다면 우리는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로 통계학입니다. 열역학이란 학문은 19세기에 수학의 통계학과 결합하여 통계역학이라는 학문을 낳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압력이나 온도와 같은 거시적인 지표가, 미시세계에서 각 분자들의 무질서한 운동과 이로부터 계산되는 확률분포에 의해 나타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어중간한 부분이 문제가 되죠. 로렌쯔는 수많은 분자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라, 서너개의 파라메터로 이루어진 매우 단순한 시스템에서도 혼돈스러운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음을 그의 기상모델을 통해서 보인 바가 있습니다. 여기서 기상현상을 단기적인 현상과 장기적인 현상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쁜 기상 캐스터들이 매일 전하는 날씨(weather) 소식은 단기적인 현상이고, 2~3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면 예측이 가능할 것입니다. 장기적인 현상은 기후(climat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지구의 움직임이 주기적이기 때문에 (공전과 자전) 여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요인이 작용해서 기후가 바뀌고 있다면? 우리가 그걸 예측할 수 있을까요? 그걸 매일, 혹은 매년 달라지는 날씨의 변화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지구가 지금 더워지고 있을까요?

 

아이쿠. 또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 일단 쉬어가겠습니다. 


님의 서명
Busy, busy, busy,

is what we Bokononists whisper whenever we think of how complicated and unpredictable the machinery of life really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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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2021-11-19 14:45:13

와 너무 쉽고 재밌게 쓰시네요

WR
2021-11-19 16:18:36

아이쿠! 감사드립니다.

1
2021-11-19 14:45:38

 좋아! 완벽하게 이해했어. (이해못함)

2021-11-19 14:50:05

WR
2021-11-19 16:20:10

이 짤은 정말 친숙하군요

WR
2021-11-19 16:19:25

설마요 ^^

"완벽"이라고 하시면 저도 제가 쓰고도 완벽하게는...

1
2021-11-19 14:50:26

정말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WR
2021-11-19 16:20:36

감사합니다. 

2021-11-19 15:15:30

 노벨 지구과학상!

WR
2021-11-19 16:21:34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요. 이번 시상은 목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1
2021-11-19 15:20:28

놀랍게도 최근에 안될과학이란 유튜브에서 카오스 이론 영상을 본 상황이라 얼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먹게 되네여;;;;

WR
2021-11-19 16:21:55

오호. 저도 한번 봐야겠네요 ^^

1
2021-11-19 15:47:29

저는 스크롤만 내려서 리플만 대충 읽었습니다
왜냐면 어차피 모르니까요 ㅠ.ㅠ

WR
2021-11-19 16:22:59

어이쿠..

좀더 노력해서 글 써보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1
2021-11-19 15:52:53

노벨상수상자 리뷰상 후보가 되셨습니다

WR
2021-11-19 16:23:44

만약 그런 상이 있다면 함 도전해 보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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