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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닥다리 소설에서 몸서리 처지게 느낀 현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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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10-06 05:19:01

내가 훔친 여름 - 김승옥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1130

 

박완서님의 이북을 3권씩 3번에 걸쳐 9권이나 사버렸는데 3권을 내리 읽어서인지 같은 내용을 픽션과 논픽션으로 반복해서 받아들이면서 피로감이 들어선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엄마의 말뚝'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말뚝' 시작 부분을 보고 먼저 읽은 논픽션 소설(그 많던~, 그 산이 ~)과 같은 줄거리의 반복임을 알고 '나목'으로 바꿔타긴 했지만 '나목'에 몰입하기까지 꽤 많은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경고조의 글을 썼던 것이지요(지난 글 참조)

 

다른 작가를 만나고 와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어든 것이 '내가 훔친 여름 - 김승옥'입니다. 1967년에 발표한 작품이라 시대적 배경 등이 지금 세대가 읽기에는 고루하고 퀴퀴한 내가 진동합니다만, 80년대 중반에 읽었던 '광장- 최인훈'이 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었다면 '내가 훔친 여름'은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 지금에야 보이는 것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스포인 듯 아닌 듯 - 아래 몇 줄이 미나리 내용이니 건너 뛰세요~)

읽으려면 드래그 하세요.

 

 

 

 

 

지난 주에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미나리'를 시청했었습니다. 이국 땅, 황무지, 물을 구하는 방법, 화마가 오히려 가족간의 마음 속 앙금을 녹여 한마음으로 새 출발하게 되리라는 강력한 암시, 비틀거려 불을 냈지만 절망 보다는 결연히 서 있으려는 배우의 표정.

 

 

 

 

 

 

(영화 개략 끝, 여기서 부터 다시 읽으셔도 됩니다) 

 

미나리 영화에는 울고 짜는 신파는 없습니다. 초로의 감독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할머니와의 추억과 성인이 되어 유추한 이민자의 삶을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그려내지 않고 초연히 관조하는 누구나의 지난 '삶'을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누구나의 과거에 현재에 미래에 있는 그러한 삶의 모습이고 누구나 느끼고 있을 법한 그런 살아감의 이야기입니다.

 

박경리님의 소설들도 그러했습니다. 치열한 비판적 시선이 일관됐어도 '사상투쟁' 따위는 얘깃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극한 상황에 처했어도 먹고 자는 게 제일 중요하고 식구간의 신경질이 더 화둣거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줄거리를 통해 일제도 6.25도 개인의 삶이 처한 현장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은 아니란 느낌으로 읽혔습니다. 단지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삶의 모습이 '시대'가 다름이 주는 비극적 가중치 때문에 유치하거나 시덥잖을 이야기를 극대비로 보여주는 효과를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내가 훔친 여름을 읽다가 여러 번 던져버릴 뻔했습니다. 소설 도입부를 읽으면서 70년대 말엽에 '고교 얄개'등의 영화 원작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 60년대 후반이라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몰입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추천 아니고 참고) 얄개전-조흔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5026477

 

방금 다 읽고 나서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 '만감' 중에 미나리와 박경리님을 위에 언급했습니다. 가려운 곳이 있는데 긁지 못하는 심정으로 읽던 도중에 정신을 확 들게 만드는 부분은 거의 후반부에 도달해서 만났습니다.

 

인용하자면,

 

오동도에서 남해까지 다리를 놓는다느니, 남해안의 그 많은 섬과 섬을 방파제로 연결해서 그 내해를 양어장으로 한다느니, 여수에서 일본까지 그리고 제주도까지 해저 철도를 놓는다느니....그따위 어린애들 만화에 나오는 얘기를 해답으로 하고 그 해답을 내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현재의 문제로 삼자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앞서 말했듯이 1967년 발표작입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 잡고 1965년 한일수교를 했으니 당시의 김승옥 작가의 눈에 비친 시대상이 그대로 작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게시판 같은 위 글은 미나리에서의 이국 땅이고 박경리의 6.25입니다. 저 보다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려는 극대비를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요즘 드라마의 'PPL'입니다. 작가가 배경에 무엇을 넣든 그것은 오롯이 작가의 마음입니다.

 

디피 같은 매체는 없고 군사정권 시절에 최대한의 '자기검열'을 했었을 이 내용은 제게 김승옥 작가의 외침으로 들리고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2021년 지금도 그 메아리가 양쪽 산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요?^^ 

 

위에 언급한 미나리나 박경리님의 작품이 들려주는 대략의 그것 - 작가가 배경을 깔고 전경에 표현할 내용- 은  '내가 훔친 여름'에도 하찮고 시덥잖고 일상적이며 꾀죄죄하고 부끄럽지만 그대로 표현합니다. 

 

이 소설의 말미는 한편의 독립적인 '시'입니다. 땀내 퀴퀴하고 끈적거리고 밤새 피운 담배 찐내 나는 듯한 텁텁한... 이런 클라이막스도 있구나. 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듯한 데자뷰 혹은 내 자신의 기억? 같은 멍하게 헷갈리는 마음의 '공진'이 일어났습니다.

 

위 인용문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헤맸던 소설 초, 중반의 답답함은 의도적인 장치이고 부조리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모두가 작가의 외침에 대한 갈망을 신문연재 소설을 통해 풀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소설적 시적 감수성을 쏟아냈습니다.  

 

'촌충의 마디 같은'이라는 표현을 하다니 읽으면서 식은 땀이 납니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무진기행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참고: 67년 2월 23일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1107777)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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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3-04 07:14:21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작가가 내가 훔친 여름이라는 소설도 썼군요. 궁금해집니다.

WR
2021-03-04 11:08:40

516, 한일수교 이후 신문 연재하면서 가짜 서울대생 사기행각, 이대생과 빨갱이 후손의 사랑의 도피, 그 와중에 한일 해저터널 여론몰이에 나선 지역 유지?를 돌려까는 형편없는 위선쟁이.. 검열의 눈을 피하려니 풍자인지 고발인지 모르게 중첩으로 써놨다는 느낌입니다. 4.19의 주역들을 참담하게 표현하는 척. 아슬아슬 검열의 잣대를 벗어났을지 아니면 ㅎㅎ

 알릴레오북스 나의 한국현대사 편에서 유시민 작가는 386들에게 '괜찮다'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김승옥 작가 때는 419세대에게 내놓고 '괜찮다'할 수 없던 그런 답답함을 교묘하게 섞어놓았습니다.

2021-03-04 10:59:18

어이쿠. 스포 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보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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