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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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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9-21 11:26:25

정지아 작가의 신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단번에 읽었습니다. 사전 지식도 없이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말만 믿고 몇 페이지 읽어본다는 것이 손을 놓을 수 없이 빠져버렸습니다.

 

원래 읽지 않은 책의 정보를 올려놓는 저의 '애독가의 판도라 상자'에 글을 올릴 때조차도 이미 1/3 정도 읽은 상태였고 소개도 독후감도 아닌 글을 써버렸고 댓글을 쓰는 즈음엔 절반을 읽어버렸죠.

 

글이 유려하다거나 장대한 스케일이거나 한 것이 아닌 작가의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기간 동안에 아버지의 삶과 작가의 삶이 교차했던 기간을 되새김하고 몰랐던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조문객을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인데요, 십 수년 전에 아버지 장례를 치른 제겐 익숙한 의식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작가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고 4년의 빨치산 생활이 일생을 사회주의자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만들고 연좌제 때문에 가족도 친척도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던 과거에는 당연했고 지금은 미개해 보이는 배경이 작가에게는 특별한 장례기간이, 그 기록으로서의 이 책이 나오게 된 커다란 배경입니다.

 

작가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품으로 이미 부모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었고 저는 읽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목적이 강한 글은 거부감이 납니다. 그 내용이 주지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십이 넘은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에 부쳐 아버지의 일생을 재조명하고 자신의 평생을 얽매고 있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인간의 딸'로 해방됩니다.

 

아버지와 딸에 어떤 수식어가 따라다닐 때 그것은 '남이 지칭할 때'의 표현입니다. 작가는 그 수식어를 떼어내는데 수십 년이 걸렸네요. 그만큼 '빨치산'이라는 국가적 사회적 멍에의 폭력이 강력했다는 이야기겠죠.

 

이 책을 읽는데는 선결조건이 있는데요. 다스뵈이다 추석특집 방송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소개 장면을 시청하시고 그 장면이 납득되시는 분은 정말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다스뵈이다를 시청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유시민 작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유시민 작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진의를 이해해야 하며 유시민 작가가 왜 재미있어야 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현대사를 빨치산 한 사람의 장례기간을 통해 정리하여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말에는 칼이 숨어 있다. 그런 말을 나는 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 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되도록이면 책 내용 자체는 가져오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제가 소설 초반부터 눈치챈 정지아 작가의 자학적 글체, 상처받은 방어심리가 가득한 것 같은 글체를 중후반부에 작가 스스로 거론한 부분은 가져왔습니다.

 

부모의 사회주의자, 유물론자, 소시민 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름 먹물인 작가가 비웃는 듯한 시각으로 구술하다가(독자 또는 사회의 시각이기도) 차츰 장례기간을 통해 밝혀지는 인간적 면모를 통해 구례에 사는 '홍반장'으로서의 아버지, 딸이 가장 무서운 딸바보 아버지를 자각하고(이때쯤이면 독자도 공감)

 

작가는 비로소 그냥 자연 '딸'로 돌아가는데 이미 아버지는 망인이며 자신은 오십 줄에 있다는 것(이미 독자도 한국 현대사를 장례기간 동안 몸소 간접 체험)인데

 

정지아 작가가 여기까지 온 것과 우리 사회의 인식의 궤적 또한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국가적 단위에서는 빨갱이 알레르기가 치유되기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가능함을 

 

그리고 긁고 긁어 부스럼이 끊이지 않았던 빨갱이라는 알레르기가 겨우 이제야 딱정이가 앉기 시작했음을 느꼈습니다.

 

촛불혁명을 해낸 우리 국민들이 현 정권을 옹립시켰다는 아이러니도 그런 과정 속에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같은 말로 이제 빨치산의 딸인 것이 죄가 될 수 없는 시대, 빨치산도 그냥 아버지일 수 있는 시대 그것을 '말 속에 숨어있는 칼'을 찾아내고 거세하는 반성의 글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죠.

 

홍반장과 빨치산이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재미없으실 것이고 마치 시게와 프차를 칼 자르듯 나눠 신고가 남발하는 이 게시판 제도의 불편하고 어색한 부분은 이 게시판에 상주하는 모든 분들이 자초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기 전까지는 계속되겠죠.

 

이 책을 읽으며 웃다 울다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 그 공감대가 사회전역에 퍼졌을 때 게시판 담벼락도 필요없어질 것입니다. 앞 문장이 어폐가 있는데 '게시판 담벼락이 없어질 때에야 그 공감대가 사회전역에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통찰한 명문구는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 글귀들을 읽는데는 공감대에 다다른 분만이 논쟁없이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보통 소설의 글귀같은 부분만 몇 줄 가져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산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저 세상이라고.

(이상 작품 본문 중)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이상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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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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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9-12 05:52:57

그랬군요님의 추천이라면 일단 구입리스트로 ㅈㅃㄱ

다만 지금까지 쌓여만있는 보물들을 언제 다 털어버릴 수 있을지..

WR
Updated at 2022-09-12 06:39:11

이건 바로 질러 읽어야 하는 당대의 이야기입니다. '빨치산의 딸'은 지금 읽기에는 좀 퇴색한 느낌이 드는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금 우리 자신의 해방일지와 다름 없으니 '지금' 읽어야 재미 있습니다. 지식이 한 칸 느는 책이 아니라 가슴 한켠의 응어리를 푸는, 고단했던 민중들 - 죽은 자나 산 자나 - 에 대한 진오귀굿 또는 씻김굿 같은 행사로서의 읽기가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개인적 집단적 가슴의 상처를 인식하고 가슴을 연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2022-09-12 08:33:14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조만간에 꼭 읽어보렵니다.^^

WR
2022-09-12 08:37:04

영화로 나오기 전에 읽으세요. 읽는 동안 이거 영화로 꼭 나왔으면 했습니다. 분명 나올 것 같아요. 나와야 합니다^^

2022-09-12 10:36:32

 다스뵈이다의 유시민씨까지 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님의 추천만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전자책으로도 나와있네요.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22-09-12 10:48:53

유시민 작가는 빨치산 부모와 딸의 이야기를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전공투 아버지)에 비교하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더 재미있다고 했는데요. 둘 다 읽은 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뜻밖의 전개 및 감동은 카톨릭 신부와 공산주의자 읍장의 에피소드를 엮은 '돈까밀로와 빼뽀네'(조반니노 과레스키 저)가 많이 연상되더군요. 청소년기에 시리즈를 모두 봤는데 요즘에도 서점에 있더라구요.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초월한 인간애라는 점에서 정지아 작품과 결이 같다고 봅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추) 김윤석이나 송강호의 70대 빨치산 농부역 상상하면서 실실 웃다가 눈자위 쓰리게 적시다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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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23:28:17

정적가님의 작품이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빠르게 완독을 하셨네요. 그리고 유작가님의 말씀에서

단서를 일부 얻고, 그랬군요 님의 서평을 접하니

제가 출판사 자료 보고 생각한 작품과 매우 다른

유형의 후일담 문학이며, 단단한 역사의식에

풍자와 페이소스를 날렵하게 엮어낸 작품

이러는 걸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거론하신 배우로는 이 소설과

약간의 유사성이 있는 남쪽으로 튀어의

김윤석 배우나..남부군의 안성기님도

문득 연상이 되고... 송강호 배우야 

좋아하는 분들이 많겠죠... 영화화된다면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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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23:59:08

책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인데 우연치 않게 황현산님의 '밤이 선생이다'를 뒤적이다가 [아버지의 삶과 자식의 삶](225p)을 읽게 되었어요. 아니 에르노 '아버지의 자리',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소개하는 내용인데요.

 

말미에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 그런데 우리 세대 작가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그렸던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어떤 기호이거나 험난한 역사의 곡절에 안표가 되는 정도의 추상적 형식을 넘어선 정도가 있던가,~" 

 

이병주의 '낙엽'이었던가요, 노처녀인 딸이 아침에 안방에 갔다가 다 늙은 부모의 표정에서 밤일의 흔적을 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요. 부모의 은밀한 모습을 자못 부감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자식의 모습(독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도 부모의 대화를 묘사하는 곳곳에 나옵니다. 그것이 블랙유머(이데올로기 유머?)와 잘 버무려져서 그렇지 아버지가 딸에게서 해방되는 동시에 딸은 대물림한 굴레를 벗어던지는 때가 되기까지는 이병주 소설에서의 딸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정지아의 해방은 동 세대(유시민, 저, barthes68님)의 해방이기도 합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당대에 해방이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기회이기도 하지 않겠어요.

 

적당히 울고 웃다가 조용히 미소짓게 만들더군요.  


2022-09-13 00:32:22

말씀을 듣고 보니 가까운 미래에 왠지 저도 이 책의

지면을 넘기고 있을 듯 하네요. 가을에 읽으려고 챙겨둔

서적들이 이미 꽤 있는데...

황현산 선생의 담백하고 지성의 힘이 느껴지는 새글을

볼 수 없다는 게 가슴 찡한 일이기도 하지요...

아니 에르노의 글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겐 좀 벅찼고,

자전적인 텍스트로 그에게 영향 받은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추천드려 봅니다. 좀 학술적인 

논의가 군데군데 등장해 그게 호불호가 될 수 있는

저작이긴 합니다.

 

마지막 두 단락은 제가 기대감과 함께 일정한

주저나 아마도 제가 주기적으로 표출하는 의심증

을 떠올리며 곱씹게 됩니다. 아마도 작품을 읽고

난 연후에 소회를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현재로선 공감과 함께 말씀하신

해방에 대한 사유와 감정이입을 그 

작품을 매개로 하게 된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겠지요.

마침 어제와 그제 나의 해방일지를 모아서

방영하기에 꽤 긴 시간을 이 독특한 드라마와 

함께 할 수 있었답니다. 그랬군요님에게도

발견과 발명의 서사였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WR
1
2022-09-13 01:13:03

디디에 에리봉 책 소개 말 중에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이라고 있네요.^^ 

 

추석날 저녁에 아내와 다 큰 아들과 막걸리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눴죠.

"자긴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테야. 한 적 없어?"

"아버지하고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고 그것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 아닐까?"

"말 되는데"

"성공한 아버지는 대물림해주고 싶을 것이고 실패한 아버지를 보는 아들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테니까"

 

긴 세월 아버지의 궤적이 아닌 곳을 탐사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은연 중에 '어떤 안내'를 하고 강요하고 있는 그저 그런 아빠였다는 것을 늦게나마 자각하고 고치려하고 있답니다.

 

WR
1
2022-09-13 01:35:20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나의 해방일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죠. 

 

나의 해방일지는 삼남매의 각기의 해방을 골자로 삼아 부모를 이해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이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체제의 속박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인간적인 생을 영위한 부모와 그에 대한 반작용 같은 생애를 산 작가가 '반작용'을 '작용'으로 융화하는 과정(즉, 해방)이었는데요. 제목만 봐서는 전자는 삼남매, 후자는 아버지잖아요.


같은 시기에  넷플릭스에 있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는 삼남매의 시각과 함께 부모의 진정한 해방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진행의 형식이 나의 해방일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한층 긴장되고 끊기 신공에 매번 이어보기를 하게 됐었죠. 역지사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드라마입니다.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netflix&wr_id=244839&sca=&sfl=mb_id%2C1&stx=aer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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