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2)
정지아 작가의 신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단번에 읽었습니다. 사전 지식도 없이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말만 믿고 몇 페이지 읽어본다는 것이 손을 놓을 수 없이 빠져버렸습니다.
원래 읽지 않은 책의 정보를 올려놓는 저의 '애독가의 판도라 상자'에 글을 올릴 때조차도 이미 1/3 정도 읽은 상태였고 소개도 독후감도 아닌 글을 써버렸고 댓글을 쓰는 즈음엔 절반을 읽어버렸죠.
글이 유려하다거나 장대한 스케일이거나 한 것이 아닌 작가의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기간 동안에 아버지의 삶과 작가의 삶이 교차했던 기간을 되새김하고 몰랐던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조문객을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인데요, 십 수년 전에 아버지 장례를 치른 제겐 익숙한 의식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작가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고 4년의 빨치산 생활이 일생을 사회주의자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만들고 연좌제 때문에 가족도 친척도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던 과거에는 당연했고 지금은 미개해 보이는 배경이 작가에게는 특별한 장례기간이, 그 기록으로서의 이 책이 나오게 된 커다란 배경입니다.
작가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품으로 이미 부모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었고 저는 읽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목적이 강한 글은 거부감이 납니다. 그 내용이 주지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십이 넘은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에 부쳐 아버지의 일생을 재조명하고 자신의 평생을 얽매고 있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인간의 딸'로 해방됩니다.
아버지와 딸에 어떤 수식어가 따라다닐 때 그것은 '남이 지칭할 때'의 표현입니다. 작가는 그 수식어를 떼어내는데 수십 년이 걸렸네요. 그만큼 '빨치산'이라는 국가적 사회적 멍에의 폭력이 강력했다는 이야기겠죠.
이 책을 읽는데는 선결조건이 있는데요. 다스뵈이다 추석특집 방송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소개 장면을 시청하시고 그 장면이 납득되시는 분은 정말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다스뵈이다를 시청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유시민 작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유시민 작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진의를 이해해야 하며 유시민 작가가 왜 재미있어야 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현대사를 빨치산 한 사람의 장례기간을 통해 정리하여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말에는 칼이 숨어 있다. 그런 말을 나는 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 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되도록이면 책 내용 자체는 가져오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제가 소설 초반부터 눈치챈 정지아 작가의 자학적 글체, 상처받은 방어심리가 가득한 것 같은 글체를 중후반부에 작가 스스로 거론한 부분은 가져왔습니다.
부모의 사회주의자, 유물론자, 소시민 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름 먹물인 작가가 비웃는 듯한 시각으로 구술하다가(독자 또는 사회의 시각이기도) 차츰 장례기간을 통해 밝혀지는 인간적 면모를 통해 구례에 사는 '홍반장'으로서의 아버지, 딸이 가장 무서운 딸바보 아버지를 자각하고(이때쯤이면 독자도 공감)
작가는 비로소 그냥 자연 '딸'로 돌아가는데 이미 아버지는 망인이며 자신은 오십 줄에 있다는 것(이미 독자도 한국 현대사를 장례기간 동안 몸소 간접 체험)인데
정지아 작가가 여기까지 온 것과 우리 사회의 인식의 궤적 또한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국가적 단위에서는 빨갱이 알레르기가 치유되기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가능함을
그리고 긁고 긁어 부스럼이 끊이지 않았던 빨갱이라는 알레르기가 겨우 이제야 딱정이가 앉기 시작했음을 느꼈습니다.
촛불혁명을 해낸 우리 국민들이 현 정권을 옹립시켰다는 아이러니도 그런 과정 속에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같은 말로 이제 빨치산의 딸인 것이 죄가 될 수 없는 시대, 빨치산도 그냥 아버지일 수 있는 시대 그것을 '말 속에 숨어있는 칼'을 찾아내고 거세하는 반성의 글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죠.
홍반장과 빨치산이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재미없으실 것이고 마치 시게와 프차를 칼 자르듯 나눠 신고가 남발하는 이 게시판 제도의 불편하고 어색한 부분은 이 게시판에 상주하는 모든 분들이 자초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기 전까지는 계속되겠죠.
이 책을 읽으며 웃다 울다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 그 공감대가 사회전역에 퍼졌을 때 게시판 담벼락도 필요없어질 것입니다. 앞 문장이 어폐가 있는데 '게시판 담벼락이 없어질 때에야 그 공감대가 사회전역에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통찰한 명문구는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 글귀들을 읽는데는 공감대에 다다른 분만이 논쟁없이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보통 소설의 글귀같은 부분만 몇 줄 가져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산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저 세상이라고.
(이상 작품 본문 중)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이상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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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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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님의 추천이라면 일단 구입리스트로 ㅈㅃㄱ
다만 지금까지 쌓여만있는 보물들을 언제 다 털어버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