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3)
해방이라는 말, 그 여운을 '항꾼에' 가지고자 합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때는 그랬었지라는 생각 끝에 나온 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즐기고 지나치는 것들은 그 당시의 토양 위에 씨뿌려지고 자라난 것이라는 생각에 희미한 기억들을 꿰맞춘 어설픈 생각이고 미숙한 발상이지만 항꾼에 나누고 싶어 씁니다.
지금 젊은 디피 회원은 태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는 시절 나온 '무릎과 무릎사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84년 작품이고 이장호 감독, 안성기, 이보희 주연이었죠. 동 시대 사춘기를 보낸 회원이라면 이 영화제목이나 포스터의 자극적인 정도가 보유주식의 떡상 정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볼 수 없던 것이 눈 앞에 펼쳐지던 시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초유의 나잇대였을테니 말입니다.
한일합방, 해방, 동족상쟁과 분단과 혁명과 쿠데타와 국가수반의 피살과 또 한번의 쿠데타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롤러코스터, 아니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퍼펙트 스톰 같았다고 한다면
갑오경장과 일본의 문화정치 기간 동안 싹 틔우고 해방과 4.19 직후에 발아될 뻔 했던 민중의 정신사적 전환은 앞서 말한 퍼펙트 스톰에 수장되었었죠. 바위를 뚫고 나와 자란 소나무처럼 우리 문화도 어찌어찌 지금에 이르렀지만 평탄하고 올곧게 자라지 못했어요.
대중문화의 분출은 아무리 눌러도 혹은 조금만 틈이 있어도 예술적 열망이나 금전적 추구거나 합법이나 불법이나를 가리지 않고 꿋꿋하게 발정과 사정의 과정을 수행합니다. 그래야 번식을 하고 번성을 하며 진화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군홧발에 짓이겨진 정치적 곤난의 세월이 일반인이 합세하기 전인 87년까지 계속됐었어요.
국가 주도의 수출형 경제성장 정책에 따른 변칙적이고 음습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 시대를 구가한 칼리굴라의 몰락과 함께 저물었고 여전히 억압에 찌든 저항의 절규만이 70년대 후반을, 젊은이들의 모습을 규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의 레퍼런스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되겠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1780
무릎과 무릎사이는 국풍 같은 행사와 함께 민심에 대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쿠데타정부의 관제 문화 정책에 힘 입어 나올 수 있는 영화였었습니다.
그렇게 겨우 숨통 틔여서 성 담론이 표면화되고 강간에 의한 PTSD가 에로틱한 섹스씬을 남발하는 영화의 주제가 되는(사회적 가학성 변태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무릎과 무릎사이라는 영화가 대변하고 있는 것은 '억눌리고 할(볼)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서부터 해방되어가고 있었다고 회상이 됩니다. - 남성 주도의 사회였으니 남성의 볼 권리가 먼저 해제된 것이 아닐까요.
안소영, 이대근을 필두로 해서 유교문화가 절멸되어 가는 와중에도 가끔 '유림'들이 어쩌구 하는 뉴스가 나오기도 하는 '어르신'들이 건재했던 시대임에도 큰 네거리에 있는 대빵 큰 극장 간판이 헐벗은 허벅지와 풍만한 가슴이 시야를 가득 채우도록 살색이었습니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김영삼 정권 말기까지 13편이나 제작됐습니다.
룸살롱의 호스테스를 주인공으로 해서 무엇을 비판하고(비판할 게 없죠) 무엇을 감동시키며(감동할 게 없죠 - 사랑의 체험수기 시리즈가 더 잘 팔렸던 경직된 시절임) 무엇을 배울까요(너희는 돈으로 여자를 사고 배신하며 합리화해라. 여자는 약하고 당하며 그럼에도 예쁜 존재이고 예쁘니까 탐해야 할 대상이다, 스크린에서건 밖에서건.)
70년대를 영자라는 벗을 기회가 많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비디오 보급 전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면 80년대는 이제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마케팅으로 삼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됐죠. 누가 풀어줬겠습니까.
지금 돌이키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33인치가 뭐가 대수라고 안소영은 애마부인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됐고 마님의 허벅지를 '계급을 초월해' 주물렀던(을화) 백일섭을 이어 이대근이 '정력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재생산 됐었습니다.
여자는 가슴이 커야 남자는 정력이 세야 한다는 최면술이 80년대 극장 간판을, 집집마다 빨리돌리기가 탑재된 VTR을 통해 집단으로 시술됐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시대 마다 집단 최면의 화두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출끼고라도 아파트를 사야된다.
젊었을 때 배낭 메고 해외로 나가라.
웰빙이 중요하다.
신용카드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중략)
엉덩이가 중요하다. 스쿼트 하루 500개 해라.
코인만 사면 인생 바뀐다.
다시 본 줄기로 돌아가서, 하는 것(네 생각하시는 그 S입니다), 입는 것(나이키, 써지오 바렌테), 먹는 것(맛동산, 부라보콘), 자는 것(아파트)에서부터 우리나라는 문화 변천의 아우토반을 질주했었고 86, 88 국제적 행사가 더욱 촉진시켰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Ybdfj6j40pw
https://youtu.be/ZotYAFsk5e4
https://youtu.be/QfcBZqyTxdw
https://youtu.be/0PtYbQHdgZc
https://youtu.be/ZOKfgtqBQSc
https://www.youtube.com/watch?v=nPZ16kzPaL8
80년대는 미국이나 유럽도 뮤직비디오와 록음악등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여 결국 독일 통일과 소련의 붕괴에 이르는 시대였겠지만 한국의 경우 군사정부가 자신의 정권유지책의 일환으로 물꼬를 터버렸던 시절 - 그럼에도 검열과 금지, 보도통제가 있었죠 -이라 하위문화부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가 진행됐었죠.
80년대는 질펀했고 386은 변혁의 주체였으나 그 질펀한 밤문화의 주 향유 연령층이기도 한 모순적인 낮과 밤의 대비가 있었죠. 사회에 만연한 부패, 즉 권력과 부를 분배하는 어둠의 카르텔이 군부의 공백에 그때 이미 자리잡았으며 이후의 이합집산과 손바뀜이 있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열심히 살아온 일반인 아빠들이 지금 딸들에게 '꼰대' 취급 받고 외면 받는 것은 열심히 살기만 했기 때문인데요. 이것은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이나 집단을 떠나 각기 성찰하고 반성해야할 부분이겠습니다.
핫도그가 70년대 중반 스카이 콩콩, 훌라후프와 함께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었는데 그로부터 10년도 안 지나서 피자와 햄버거가 이태원발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저는 가정경제 사정상 슬로우 어댑터였습니다.
90년대도 집값은 나날이 올랐었어요. 대출 끼고 아파트를 마련하거나 개발지를 탐색해서 알박기를 하는 행태는 70년대 개발경제에 편승한 치부방식이 좀 더 대중화된 방식인 셈이죠. 지금 20대들의 코인몰빵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요. 생산적 방법을 통한 부의 창출이 아닌 인과관계 없는 주사위를 던져 요행을 꾀하는 뱀주사위 놀이의 상방향 고속도로는 누구에게나 달콤한 꿈 아닙니까. 하행하는 뱀 고속도로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죠.
지금 젊은 디피회원들도 기억할 근 과거는 회고하지 않겠습니다. 다 아시죠? 사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해방 후 밀레니엄까지의 역사를 들이대면서 '옛날에는 보리고개가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로 퉁칠수가 없습니다. 영욕은 항상 역사의 일반적 테마 아니겠어요. 지난 20년간의 선명한 기억 때문에라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역사적 중압감에서라도 지금을 살아내고 미래를 주도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함과 격려를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나오는 표면적인 개인적 해방을 좀 범위를 넓혀 생각해 보니 '벌어진 무릎'을 대중적 대화의 화제로 삼을 만큼의 숨통이 겨우 틔였던 과거의 어떤 사회적 정신적 해방들을 생각하게 됐고 그 해방의 역사를 되짚어와 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해방이 정말 장족의 해방, 큰 걸음의 해방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는 사회주의자 빨치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아빠였었죠. 그리고 전편에 그 인간됨을 나열하여 '빨치산'이라는 단어에 걸린 저주의 '주술'이 비로소 걷히게 됩니다.
육체적 수준의 해방, 즐기는 것의 자유, 경제적 추구에 대한 자유에 이어 사상적으로 유연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느꼈습니다.
빨치산이 혁명에 실패해서 위장자수하고 일반인으로 살다가 전봇대에 부딪쳐 죽은 그곳 구례 반내골이 실상은 1인의 신념이 이념에 물든은 맹신주의가 아니라
반내골은 선의에 비롯되고 사람됨에서 출발해 '해방구'를 인생살이를 통해 건설해 간 대하서사의 장소이고
아버지를 외부로부터의 낙인 찍힌 사람으로 인식하고 출발한 정지아 작가의 오랜 고심이 아버지라는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그 딸로서의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요.
이 소설을 알레고리 삼아 집단, 나라를 대입해도 같은 트라우마 치료적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이야기가 단지 이념의 대립에 따른 상흔을 치유하는 것으로 모두 해결되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청산이 불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공감대에서 마주보면서 뭣이 됐든 '항꾼에'가 가능한 현재, 미래를 꿈꿀수 있다고 봅니다.
사건은 비슷하게 반복되지만 역사는 언제나 교훈을 주고
쳇바퀴 돌듯 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정신은 발전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긍정적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관련해서 황현산님의 책에서 알게 된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라는 책을 읽어봐얄지 말지 고민도 되고요.(황현산 저, 우물에서 하늘 보기 중 '이육사의 '광야'를 읽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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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ishnamurti
글쓰기 |
66. 친구 주머니에 손을 대면 뱀 고속도로를 타고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20. 간첩 신고하면 인생 역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꾼에' 살아가야 하는 존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