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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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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선생의 재산(?)으로 검색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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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9:37:21

아까 낮에 어떤 글에서 퇴계 이황과 관련한 모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나서
'퇴계 이황 재산'으로 구글링 해 보니 2곳의 재밌는 볼거리가 나와서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대사도 아닌 그 이전 사회시스템의 인물들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재단하는 일은 지극히 조심성 있게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첫번째는 퇴계의 직계후손으로 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치억 교수 글을 소개한 블로그입니다.


"...퇴계의 주 수입원은 약 3000두락에 달하는 전답이었습니다.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약 60만평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그것도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자경(自耕)을 했을 리는 없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 전답을 경작했을까요? 그것은 300여명에 달하는 노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노비라고 하니, 독자 여러분 중에는 퇴계가 300여명의 몸종을 거느리고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오해해서 상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노비는 집안일을 담당하는 솔거노비가 아닌 외거노비, 즉 소작농을 가리킵니다. 각각 독립된 영역의 전답을 경작하고 해마다 소작료를 납부하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해당합니다. 즉, 퇴계는 300여명의 직원을 둔 농업회사의 최고경영자였던 셈입니다....

2) 두번째는 곁다리이기도 하고 정확한 근거는 없은 기사입니다만 그냥 퇴계가 그 자산을 가질 수 있게 된 시대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은 철두철미하게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 적어도 재산상속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말이다. 증거가 있다. '분재기'(分財記)라는 조선시대 상속문서다....

...분재기를 꼼꼼히 살피다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황, 이언적, 김종직 같은 조선시대의 대유학자들이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장가를 잘 갔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두 번 결혼한 퇴계 이황은 그 중에서도 처가 덕을 특히 많이 본 사람이었다. 그의 외가와 전처, 후처의 처가 및 자부(子婦) 쪽 가문들이 모두 조선시대 안동권을 대표하던 명문사족이었던 것.
퇴계의 어머니와 두 아내, 며느리는 혼인할 때 자신의 가문으로 평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고, 이 재산은 퇴계가 학문을 닦는 데 경제적 밑거름이 됐다. 퇴계는 이러한 안정적 재산 위에서 '이기이원론'이라는 위대한 성리학의 업적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위대한 학문적 업적과 유유자적한 생활의 밑바탕에는 여성들의 평등한 재산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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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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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9:21:32

역사적 검증.... 솔직히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검증하는 것은 모순이 되기 쉽다는 거죠.

과거에 왜 그런 성향을 보이는 지 그 시대의 모든 시사점부터 점검해가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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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9:29:36

조선 전반기와 후반기는 완전히 다른 나라더군요.

2021-05-16 19:56:48

후반기에는 출가외인으로 장자에 몰아주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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