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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급식의 추억

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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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29 14:02:36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급식 시범학교 였습니다. 그 당시는 국민학교 였지요.

참고로 75년생이고, 초등학교는 동대문구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4,5,6학년 대상으로 급식을 했는데, 당연히 신청하는 학생들만 먹는 거였고 매월 다음 달 급식신청서를 받아서 처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식당에서 일괄 배식 하는게 아니었고, 급식 당번들이 식당에 가서 밥, 국, 반찬, 식판 등을 받아와서 교실 뒤에 정렬해 놓고 급식 신청한 학생들이 줄을 서서 식사 당번들에게 받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맛있는 반찬을 배식하던 친구가 자기랑 친하면 더 많이 받을 수가 있었지요.

 

급식먹는 학생들과 도시락 싸온 학생들이 교식에 뒤섞여서 먹는건데, 급식 먹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었습니다. 따듯한 밥, 따듯한 국, 매일 바뀌는 반찬까지, 신세계로 보이더군요. 그리고, 가끔 빵과 스프도 나왔는데 친구가 인심쓰듯 한번 먹어 보라고 해서 먹어 봤던 스프는 너무 신기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전 아직도 경양식집 스타일의 스프를 너무 좋아합니다. 오래 끓여서 끈적끈적해진 스프요...

 

처음 4학년 때는 급식 신청하던 친구들이 한반에 반 이하였던 것 같았는데 점점 많아지더니 졸업하기 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전 학번도 급식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방한칸짜리 집... 

방 문만 열면 바로 골목이었던 가난했던 집에서 어머님은 당연히 급식비를 줄 수가 없으셨겠지요.. 철모르는 전 급기가 급식 신청서를 제출하는 기간에 "급식을 먹여 주지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 딱 한달만 먹게 해달라"고 파업을 선언 했었습니다. 그 날은 결국 땡강을 부리다가 지쳐 결국에는 울면서 늦게서야 학교를 갔어야 했지요.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는 제 손에 급식 신청서와 함께 급식비를 쥐어주셨습니다...

 솔직히 전 그 때 급식을 먹는 것 보다 급식 당번이 하고 싶었습니다. 급식 당번은 급식 신청한 학생들만 할 수 있었거든요. 

급식 당번들은 점심시간 전 수업시간 종료 20분쯤 전에 음식을 받으러 식당으로 갔었습니다. 수업을 땡땡이 치는 것 같아 그게 부러웠었습니다. 그리고, 생색 내듯이 나랑 친한 친구들에게 반찬을 듬뿍 담아주는게 너무 하고 싶었었습니다. 결국 급식을 신청하고 첫 급식을 먹게되는 달에 급식 당번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바를 이뤘던 행복했던 한달이 지나고, 당연하게 더 이상 급식을 못 먹을꺼라 생각했던 저에게  어머니는 다시 급식신청서와, 급식비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조르지도 않았는데요...   그렇게 졸업하기 전까지 계속 급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웬 횡재냐 했죠... 그리고, 좀 지나서는 제가 급식을 먹으니 도시락 싸지 않아서 어머니가 편하셨나 보다 그래서 급식비를 주셨던거다 하고 우습게 생각했었습니다.

부모가 된 지금 어머니가 편하려고 급식비을 주셨을 꺼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서 힘들게 제 손에 쥐어 주셨었겠지요..


그 기간이 제 인생에서 군대를 제외한 급식 먹은 마지막 몇 달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하던 그 시기 입에 거품 물고 당연히 욕할 수 밖에는 없었던 저였지요..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시기에도 오후에 수업이 없어도 급식은 먹고 집으로 온다는 이야기에 감사할뿐입니다. 그리고, 직장인에게도 행복한 점심시간이 어린 친구들에게도 분명히 행복한 시간일꺼라는 생각에 잘살게된 우리나라를 지탱하신 우리 부모님들께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전 오늘 저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 바꿔드릴 핸드폰 계약하러 갑니다.. ^^

이상 개인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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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카이서스
2
2021-09-29 04:57:01

무상 교육 무상 급식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IOT
2021-09-29 04:59:34

올 추석에 어머니와 고향동네 뒷산에

달보러 올라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우리형제 어렸을때 몇십원 안하던 야쿠르트..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끼고 사느라 풍족하게 못 먹인게

가슴에 남아있다고 하시네요.

 

아들은 인제 먹고살만해서 먹고 싶은 거 다 사먹을 수 있는데.. ㅠㅠ

진실봇
2021-09-29 05:00:17

아들에게 급식비를 쥐어주지 못하고 학교를 울리며 보내야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네요.

프렌디
2021-09-29 05:07:57

76년생이고 경남에서 급식시범학교로 선정되어서 

초2학년때부터 전학생이 다 급식했었던걸로 기억나네요.

급식비 못내는 학생은 아마 학교출신 기업들 몇군데서 각종 후원등을 해줬던걸로 기억합니다.

 

이제 국가가 그정도의 역량이 있으니 정말 급식 못먹는 애들 없이 전면 무상급식했으면 좋겠습니다.


거니아빠~
2021-09-29 05:22:51

저도 85년도 국민학교 4학년 부터 급식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급식을 먹었어요.

3학년까지는 오전 수업만 하니 어차피 대상이 아니었고 4, 5, 6학년만 급식을 먹었는데 

희망자만 먹는게 아니라 전체 학생들 모두 먹었어요.

급식비는 얼마 안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금액은 생각이 안나네요. 

 

하루씩 번갈아가며 한식과 빵, 스프 메뉴가 번갈아 나왔었어요.

그 때 커다란 네모 모양의 소보로 빵과 야채 스프를 처음으로 먹어보고 얼마나 맛있던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 같아요.

 

 

오케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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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29 05:31:48

급식은 군대에서 받아 본게 처음이자 마지막었고, 국민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 싸가는 세대였지만 그때는 오전반 오후반이 있어서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일은 없었지만, 고학년들이 점심 때 먹었던건지 그냥 학교 매점이 있듯이 학교에 식당이 있어서 그랬던건지 아무튼 학교식당에서 양은 냄비에 라면을 팔았어요! 하나 하나 끓여주는게 아니라 국수 삶듯이 라면의 면만 가득 삶아서 양은냄비에 1인분 씩 담아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펄펄 끓는 라면 국물만 퍼서 미리 삶은 라면 위에다가 퍼주는 방식인데 그때는 5원 가지고 가게 가서 은색의 2원 3원을 거슬러 봤던 시절이었음에도 한 그릇에 50원을 했었어요! 꽤 비싸게 느껴졌던;;; 저 양은 냄비 불어터진 라면을 한번도 못 먹어 보고 식당을 지나치다가 라면 국물 냄새만 맡아도 그렇게 기가 막힌 향기가 났었죠! 결국 작은 누나인가? 가 한그릇 사서 반씩 나눠 먹었나 그랬었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멀건 라면 국물이었지만 기가 막힌,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으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제가 어른이 되고 아들을 낳고 그 애가 내가 저 라면을 먹던 어린시절의 아이 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3학년(?)쯤 무슨 조립하는 레고 시리즈인가? 중에 스타워즈 시리즈가 있었는데 뭐가 갖고 싶다 그러면 온 시내 모든 장난감 가게를 다 뒤져서라도 다 사줬어요! 저 시리즈 중에ᆢ무슨 몇 탄인가(?)가 있었는데 그건 전국적으로 너무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난 슈퍼맨 아빠야의 심정으로 온 충청도의 도시를 다 뒤져서 대전 천안 뭐ᆢ인접한 도시까지 원정을 가서라도 구해다 줬었는데 저 아들이 커서 군대 갈 나이쯤 되었을 때 그러더라구요! "난 어렸을 때 우리집이 어~엄청 부자인 줄 알았어" 라고ᆢ ㅋㅋㅋㅋㅋ ᆢ 지금도 아들의 저 말을 생각하면 참 뿌듯해요! 한 아빠로서ᆢ,

Charming
2021-09-29 05:28:29

 참 옛날에는 왜 그리 먹고 사는게 힘들었던지... 지금 세대가 생각하면 이해가 안될 거 같습니다. 어느집 할거 없이 아끼고 살던 시대인데 지나고 나니 그 때가 그리워지는 것이 아이러니 하네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것 같은 골목길에서 콧물 찔찔 흘리면서 구슬치기하고 공차기 하던 때가 생각 납니다...

오케바리
Updated at 2021-09-29 05:41:44

저는 지금도 기억나는게 엄마가 새운동화를 사줬는데 그렇게 하라고 시킨것도 아닌데 새운동화가 신기 아까워서 손에 들고 맨발로 부산 보수동 부평동의 아스팔트를 깐지 얼마 안 되는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지금의 내가 쇼파에 앉아서 그 때의 저 여섯살 꼬마를 가만히 투영해 보고 있으면 없어서 그랬나 그냥 다들 힘들게 살아서 그랬나 뭔가 묘하고 짠한 생각이 들어요! 그냥 신발이라고 막 신어도 되는데;;; 왜 그랬는지, 천성인건지 지금도 남들은 6개월이면 바꿔 입는다는 수영복을 늘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5년 된 수영복을 아직도 이상없이 입고 수영 다니고 수경 새로 산지 5년도 넘었는데 아까워서 아직도 가방에 넣고만 다니고 우리 딸이 쓰던 오래된 구형 수경을 쓰면서도 수영 잘하고 다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생긴 천성인건가 봐요! 이젠 그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가끔 축구 양말이 크게 구멍나서 남들은 다 버리고 몇 천원 하는 양말 하나 사서 신는데 저게 아까워서 그냥 바늘로 기워서 신고 있어요! 뜨게질은 우리집 마눌이 달인만큼이나 잘하지만 바느질은 제가 훠~얼씬 잘 한다는;;;

RIOT
Updated at 2021-09-29 06:24:55

플라스틱 빨래바구니 손잡이가 떨어져서

 

달군 철사로 구멍뚫고 바느질로 기워서 다시 연결했는데

오케바리님 글 보고 안도감을 느낍니다.

 

와이프에게 궁상떤다고 갈굼받았지만

바느질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뭔가 고쳐서 제2의 생명을 부여해주는 행위에 

카타르시스가 있단 말이죠^^

오케바리
2021-09-29 06:28:50

그래봤자 변명이지만 나도 마눌에게 써 먹어야겠네요! "무엇인가 고쳐서 제2의 생명을 불어 넣고 거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당신은 아는가?" ㅋㅋㅋㅋㅋᆢ

Charming
2021-10-07 02:09:13

아, 저도 수영 15년 정도 했는데 이 놈의 코로나 때문에 물에 못 들어간지 2년째네요. 언제 다시 물질(?)할 날이 올런지 암담 합니다. (도시는 일부 수영장이 오픈 되었던데 제가 있는 이천시에는 아직 수영장 운영이 중단 되어 있습니다. ㅡㅡ;;)

하버드 치킨학과
2021-09-29 06:37:08

 저는 80년생인데 학창시절 급식을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고딩때 급식비를 받아서 게임기를 산적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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