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급식의 추억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급식 시범학교 였습니다. 그 당시는 국민학교 였지요.
참고로 75년생이고, 초등학교는 동대문구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4,5,6학년 대상으로 급식을 했는데, 당연히 신청하는 학생들만 먹는 거였고 매월 다음 달 급식신청서를 받아서 처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식당에서 일괄 배식 하는게 아니었고, 급식 당번들이 식당에 가서 밥, 국, 반찬, 식판 등을 받아와서 교실 뒤에 정렬해 놓고 급식 신청한 학생들이 줄을 서서 식사 당번들에게 받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맛있는 반찬을 배식하던 친구가 자기랑 친하면 더 많이 받을 수가 있었지요.
급식먹는 학생들과 도시락 싸온 학생들이 교식에 뒤섞여서 먹는건데, 급식 먹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었습니다. 따듯한 밥, 따듯한 국, 매일 바뀌는 반찬까지, 신세계로 보이더군요. 그리고, 가끔 빵과 스프도 나왔는데 친구가 인심쓰듯 한번 먹어 보라고 해서 먹어 봤던 스프는 너무 신기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전 아직도 경양식집 스타일의 스프를 너무 좋아합니다. 오래 끓여서 끈적끈적해진 스프요...
처음 4학년 때는 급식 신청하던 친구들이 한반에 반 이하였던 것 같았는데 점점 많아지더니 졸업하기 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전 학번도 급식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방한칸짜리 집...
방 문만 열면 바로 골목이었던 가난했던 집에서 어머님은 당연히 급식비를 줄 수가 없으셨겠지요.. 철모르는 전 급기가 급식 신청서를 제출하는 기간에 "급식을 먹여 주지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 딱 한달만 먹게 해달라"고 파업을 선언 했었습니다. 그 날은 결국 땡강을 부리다가 지쳐 결국에는 울면서 늦게서야 학교를 갔어야 했지요.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는 제 손에 급식 신청서와 함께 급식비를 쥐어주셨습니다...
솔직히 전 그 때 급식을 먹는 것 보다 급식 당번이 하고 싶었습니다. 급식 당번은 급식 신청한 학생들만 할 수 있었거든요.
급식 당번들은 점심시간 전 수업시간 종료 20분쯤 전에 음식을 받으러 식당으로 갔었습니다. 수업을 땡땡이 치는 것 같아 그게 부러웠었습니다. 그리고, 생색 내듯이 나랑 친한 친구들에게 반찬을 듬뿍 담아주는게 너무 하고 싶었었습니다. 결국 급식을 신청하고 첫 급식을 먹게되는 달에 급식 당번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바를 이뤘던 행복했던 한달이 지나고, 당연하게 더 이상 급식을 못 먹을꺼라 생각했던 저에게 어머니는 다시 급식신청서와, 급식비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조르지도 않았는데요... 그렇게 졸업하기 전까지 계속 급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웬 횡재냐 했죠... 그리고, 좀 지나서는 제가 급식을 먹으니 도시락 싸지 않아서 어머니가 편하셨나 보다 그래서 급식비를 주셨던거다 하고 우습게 생각했었습니다.
부모가 된 지금 어머니가 편하려고 급식비을 주셨을 꺼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서 힘들게 제 손에 쥐어 주셨었겠지요..
그 기간이 제 인생에서 군대를 제외한 급식 먹은 마지막 몇 달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하던 그 시기 입에 거품 물고 당연히 욕할 수 밖에는 없었던 저였지요..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시기에도 오후에 수업이 없어도 급식은 먹고 집으로 온다는 이야기에 감사할뿐입니다. 그리고, 직장인에게도 행복한 점심시간이 어린 친구들에게도 분명히 행복한 시간일꺼라는 생각에 잘살게된 우리나라를 지탱하신 우리 부모님들께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전 오늘 저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 바꿔드릴 핸드폰 계약하러 갑니다.. ^^
이상 개인썰이었습니다.
| 글쓰기 |





무상 교육 무상 급식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