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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남산의 부장들> 걸작이 나왔습니다.(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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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22 23:24:07

사실 저도 우민호 감독의 전작인 <마약왕>을 재미없게 본 다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마약청정국이었던 시절 한국에 존재했던 마약왕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비하면 너무 길고 평이한 흐름에 지루했죠.

 

저는 이때 <스카페이스>를 아직 못 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스카페이스>를 보니 <마약왕>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대략 이해가 가더군요. <스카페이스>를 보고 <마약왕>을 다시 보니 <마약왕>은 <스카페이스>의 판박이라 할 정도로 그대로 가져다 만든 영화 같았습니다. 스토리 전개, 호흡 등등 모든 요소들이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마약왕>을 일종의 <스카페이스> 팬무비가 아니었나 여기고 있습니다(따라서 <스카페이스>도 지금의 제 눈에는 너무 지루하고 길고 재미없더군요. 미셸 파이퍼가 나오는 씬들만 빼고요).

 

그런데 <남산의 부장들>은 저 <마약왕>보다도 더 어려운 도전이었을 겁니다. <마약왕>은 그나마 잘 안 알려졌던 자극적 이슈를 다시 캐내었기 때문에 흥미도 높고 마약이라는 지금 시대 조류와도 부합되거니와 송강호가 참여하기로 했으니 뭐 이건 기획적으로는 최고였거든요. 그에 비하면 <남산의 부장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결말을 아는 이슈이고 많이 다뤄졌던 소재여서 기획적인 면이나 연출적인 면에서 보면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블랙코미디의 틀을 갖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겠죠. 코미디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때 그 사람들>은 제 취향이 아닌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웠기에 그다지 재미없게 봤습니다. 김재규라는 인물 하나만 파봐도 저렇게 조롱 당하는 것보다는 더 흥미롭게 나올 게 많다고도 생각했고요. 하지만 과잉적인 코미디로서의 <그때 그 사람들>의 접근법은 10.26을 다루는 창작자 입장에서라면 선택할 수도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김재규와 박정희의 이야기는 그만큼 서사적으로 재밌게 다루기 어렵다는 의미를 다시 증명하기도 하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산의 부장들>은 재밌습니다. 이건 대단한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10.26 사건 소재의 소모 정도를 생각하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우민호 감독은 그 난관을 조폭 느와르물과 에스피오나지물의 결합, 그리고 김재규의 재해석으로 돌파합니다.

 

전체적인 영화의 기조는 조폭 느와르의 세계입니다. 2000년대 한국에서 우후죽순 만들어진 양산형 조폭물이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풍의 정통파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인물들은 전부 서사에 달라붙는 듯한 무게감이 있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논리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국가와 대의라는 육중한 단어들이 또한 무게를 더하게 되죠. 그리고 우리가 치른 역사기도 하니까요. 이 조폭들의 세계가 우리나라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해석적인 면에서 낯선 쾌감을 가져오는 부분입니다.

 

에스피오나지물 부분은 곽도원이 맡은 김형욱 전 부장, 즉 곽병규가 속한 세계입니다. 국외자로서 조직의 추적을 어떻게든 따돌려야 하는 그는 협상과 도주와 우회한 협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처지입니다. 이 부분의 긴장감이 꽤 쏠쏠합니다. 여러 모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재밌게 본 사람이면 역시나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장 사람들이 궁금해할 김규평, 즉 김재규의 재해석 부분은, 절충안으로서 이정도면 잘 나왔다고 봅니다. 영화 막바지에 김규평이 대통령의 시신을 내려다 보며 혁명의 대의를 엄숙하게 말한 후 바로 핏물에 미끄러져 볼썽사납게 바닥에 구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의를 쫓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에 의해 미끄러지는 이 롱테이크 씬이야말로 우민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김재규를 다루고자 하는 기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김규평의 의지가 흐트러지고 이것이 나중에 저 운명의 '남산으로 가느냐, 육본으로 가느냐'까지 이어지는 연출도 절묘했습니다.

 

사실 김재규라는 인물을 다루는 것은 이 '다 아는 얘기'를 어떻게 재밌는 얘기로 만드느냐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었죠. 그런 점에서는 그동안 나온 김재규에 관한 책과 기록들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이 절충적으로 반영된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하지만 김재규가 신은 아니었을 테고, 딱 인간 김재규를 보여주는 모습들이 녹아들어 그게 영화적 재미도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일단은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 김재규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책을 보면 되겠죠.

 

배우들의 연기들은 전반적으로 다 훌륭합니다. 정말 숨막힐 정도의 연기의 성찬이 이어집니다. 곽도원은 기존의 곽도원이 나오지만, 조연 정도의 비중이고 그런 캐릭터가 기존 관객들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와서 영화를 덜 낯설게 만들 것이기에 그리된 거라 봅니다. 이병헌은 원래 잘했으나 여기서는 또 잘했고, 이성민이 맡은 박정희 대통령 역할도 대단합니다. 둘 다 눈꺼풀 떨리는 것까지 통제하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리고 차지철 역의 이희준도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이지만(어떤 점에서 보면 곽도원과 비슷하게 관객을 영화 속으로 초대하는 '익숙한 인물'로서의 악역입니다) 그 스테레오 타입 속에서도 섬세한 면을 놓치지 않으며, 데보라 심을 맡은 김소진도 짧게 나오지만 훌륭했습니다. 연기 면에서 <남산의 부장들>을 까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이라면,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 설명 부분입니다. <인랑>에서도 상당히 평이하게 연출된 부분이어서 아쉬웠는데 이 '배경 설명' 부분을 좀 어떻게 하던가 아니면 아예 빼는 게 매끈해 보이리라고 봅니다. 뭐 그 시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자막 나올 때 나오는 타자기 소리는 이제 식상하더군요. 그만 좀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결론. 우민호 감독은 욕망 3부작이라고 이름 붙인 사이클의 마지막 부분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기존에는 우민호 감독에 대하여 연출적인 면에서 의구심들이 있었고 <남산의 부장들>도 소위 '연기빨에 묻어가는 게 아니냐'라는 의심이 있었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연기자들의 훌륭한 열연만큼이나 연출적인 면에서의 절치부심이 곳곳에서 자리하여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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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1-22 17:51:06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약왕과 남산의 부장들 실제 사건의 인지도에 대한 건 많이 수긍이 가네요. 그리고 김규평에 대한 묘사부분도 굳이 관람자에게 판단을 넘기지않는 형태로 그려져서 맘에 들었습니다.

Updated at 2020-01-22 18:20:53

 그때 그 사람들이 처음 개봉했을 때 10.26을 모르는 세대들은 당일만의 행적을 보고 왜 쐈는지를 정확하게 몰라서 아리송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영화는 배경 설명이 어느정도 되어 있어서 이해가 더 잘 가는 영화이긴 합니다만.. 실명을 그냥 써도 될 듯 한데..구지 이름을 바꿔서 쓴게 좀 이해가 안가더군요.. 픽션이 가미 되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긴 한데..  그리고 김재규에 대한 약간은 제평가 식의 이야기인듯 한데, 논란이 좀 있긴 있을 듯 합니다.  유신의 심장을 쏜 이유가 미국이 다음 단계를 준비하라고 해서 진짜 야망을 가지고 한건지.. 아니면 충성에 대한 댓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거사를 준비한건지..   아니면 그냥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인지..

어쨌거나 재밌게 봤습니다. 

2020-01-22 19:41:15

복합적이지 않을까요? 오직 본인만이 알겠죠^^

2020-01-23 00:44:52

야망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야망이 있었다면 마지막에 육군으로 안가고 남산으로 갔을거 같아요.

2020-01-22 19:42:46

저도 원테이크씬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병헌이 갑자기 어디를 갈지 고민할 때의 연기가 소름 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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