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두 얼굴의 조선사, 두 시대 동안 계속 되는 조선사
요즘 《두얼굴의 조선사》라는 책을읽고 있습니다. 조윤민이라는 분이 쓴 책인데, 원래 다큐멘터리방송 작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속도감 있게 읽히더군요.종이가 두꺼운 탓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은 518년동안(1392-1910) 지속된 나라였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전부터 시작해서, 미국이 수퍼파워로 등극하기 직전까지의 시간이군요. 어떻게 그 긴시간 동안 조선에서는 양반이라는 계층을 통한 안정적 지배가 가능했는지 좀 발칙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알 수 있겠지만, 조선사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양반은 모순에 찬 지배집단이었습니다. 나라의 안위를 책임을 나누는위치에 있었지만, 그 518년 동안 한 번도 군역을 진 적이없었습니다. 철저한 부계·장자 상속을 윤리라고 우기고 강요하면서도, 노비만은 모계 핏줄을 따졌습니다. 법적으로는 양천제를 실시해 모든 양민에게 기회를 열어 놓은 것 같지만, 실상은 반상제로 운영되어 권력은 오직 양반끼리만 나눠 먹었습니다. 겉으로는 안빈낙도를 노래했지만, 실상은 계속하여 물질적 부를 추구했습니다. 선물과 뇌물로 얽히고 섥힌 양반 무리에 머무르기 위해서입니다.
저자는 모순에 찬 양반의 이중도덕을 하나 하나 까발리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좋게 봐서, 신념윤리에는 충실했지만, 책임윤리는 외면했다 정도로퉁 칠 수 있겠지만, 그 신념이라는 게 모순 덩어리일 뿐인데요? 저자는 모순을 모순으로 남겨두지 않고,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의 모순적 양태를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하나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국가는 양민의 생산을 양반의 부로 이전한다. 양민은 양반의 지배를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수탈한다. 나눠먹는 입이 많아지지 않게 양반이 될 자격을제한한다.”
양반 지배 계급은 국가재정의 독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를 내지 않았습니다. 조·용·조 측면에서, 양반들은 군역을 피했고, 지세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비틀었으며, 대납업자와 결탁했습니다. 그 외로 노비인구를 증가시켜서 국세를 내는 양민의 수가 줄어들게 했습니다. 노비가 종모법을 따르게 되는 이유가 노비인구의 증가를 위해서입니다. 정부의 재정과 비품을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전합니다. 지방관은 국가자산을 지역 유력 양반가문에 퍼줍니다. 어차피 지방관도 앞으로 얼굴 마주치고 살 양반이니까요.
한편으로는 피지배층의 세뇌에 몰두합니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노비의 신화를 유포하는 한편, 노비에게는 잔혹한 私刑을 집행해서 겁을 줍니다. 물론 양반은 私刑에 대하여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열녀신화의 유포와도 비슷한 트랙이지요. 역설적으로 세종의 한글 창제가 여기에 역할을 합니다. 다른 트랙으로는, 가난을 유지시킵니다. 수탈을 통해서. 가난하면 딴 생각을 품을 겨를이 없고, 현실에 순응시키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전이라는 거짓 허수아비를 세워 양반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과 공격을 회피합니다. 아전에게는 봉록을 주지 않았으면서 말이지요. 정부로부터 봉록을 받을 경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같은 원리로 양반들은 무반을 차별하고, 기술관도 차별하고, 서얼도 차별했습니다. 철저하게 양반만이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차별, 이간질, 선별적아량과 철저한 응징, 세뇌, 지배의 독점, 패거리(붕당)화. 이런 것들이 양반의 지배를 영속화한 지배의 기술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국민국가의 구성 및 운용 원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양반들은 국가의식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럽지요. 한일합방조약은 8월 22일 조인되었지만, 29일발표됩니다. 원래 총독부는 25일 발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신들은 28일 황제 즉위 4주년 연회가 있으므로, 잔치는 잔치대로 하고, 그 다음날 발표하자고 한 것입니다. (이 일화는 책에서 읽은 부분인데, 아마도 양계초가 쓴 책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순종의 즉위는 날짜가 좀 달라서 이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출신만으로 차별하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세뇌하고, 지배자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껍질까지 벗겨먹는, 그런 일들은, 조선이 아닌 곳에서는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일이라고 비난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그런 일들이 윤리와 도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읽기 괴로운 책입니다. 조선 민중의 비참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과 연도만 바뀐 지금·여기이야기라서요.
조선이 멸망하면서 양반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지배원리도 함께 종언을 고했는가 하는 질문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거의 1초 만에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오늘 법원은 130억원은 친구끼리라면 뇌물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하더군요. 양반들은 끊임없이 뇌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조선 말까지, 그런 목적으로 오고 가는 물품을 인정(人情. 예, 알고 있는 바 그대로의 인정입니다.)이라고 불렀습니다. 말 안 듣는 놈은 철저하게 응징하고, 아부하는 놈들에게는 시한부 안락을 인정해 주는 지배 원리가 비단 조폭에서만 작동하나요? 정당이, 군대가, 회사가, 학급이, 아파트 주민회의가, 그런 원리로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청와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은, 철저한 응징이라는지배원리의 효과이지 않습니까? 고위 공직자는 왜 그렇게 군역을 잘 빠져 나가나요? 왜 세법은 고자산 금융소득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합니까? 지방에서 토목공사를 하면 누가 이득을 보나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이것을 그냥 고도성장의 폐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연속적이라서요. 아니면, 조선 이후, 양반 지배원리를 청산한 자리에 새로운 통치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그냥 경제적으로만 부유해진 폐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양반의 지배기술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피지배민을 개·돼지 취급하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대접을 사람에게 하는 것이 비도덕적인 것이고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서 서로 싸움을 붙이고, 절대로 사색이란걸 하도록, 그 사색이 집단지성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놔 두지 않지요.전문직, 공무원, 노조 같은 걸 앞세워, 보통 사람들의 불만이 향하게 할 욕받이가 되게끔 방치하고요. 마치 아전을 방패막이 세웠던 것처럼요. 소위 주류라는 것들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편입되려고하는 자들은 또 어떤 발버둥을 치는지, 전여옥, 하태경, 홍준표, 강용석, 이정현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남경필이나 김세연, 유승민같은 애들은 절대로 그런 독한 말 안 하잖아요.
저 양반의 지배원리인 이중잣대와 위선이 사실은 아직도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책을 읽으면서 정녕 조선이 망한 게 맞긴 맞느냐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또 재미있는 말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양반에 대하여 성리학적 소양을 닦은 선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그런 걸 보면, 양반이라는 자들은 당대를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때가 때인 만큼, 현 시국과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촛불집회 말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촛불집회가 평화적이고 무사히, 질서정연하고 청결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에 자부심과 가지고 있고, 참석하신분들을 존경하고, 또 부럽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촛불의 집단의지를 현실에 투영해 줄 강력한 야당의 존재가 분노의 폭주를 막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분노가 폭주할 것같은 일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오래 모이지 않지요. 세월호는,,, 후, 2년 반이 걸렸네요. 또한 그 동안 양반적 지배기술로 장난질을 칠 지도부가 와해상태였다는 것 또한 상당한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우병 집회는 쌩까기와 프락치라는 양반적 지배기술을 통해 분쇄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합니다.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갑자기 게시판 분탕질이 많아지는 것도, 그들이 양반적 지배기술, 따라서 국민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반역행위를, 재개했다는 신호로 저는 읽습니다.
저는 비폭력이라는 외침의 일종의 족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카드여야 하는데 말이지요. 비폭력이라는 것은, “나의 통치에 대한 반대조차도, 내가 허락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항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 권력의 오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네요. “느그들이 나의 폭력적 보복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ㅎㅎ”사실은 그래서 비폭력은 강요당하는 것 아닌가요? 비폭력이라는 키워드가 한국에서 이렇게 잘 먹히는 것, 양반적 지배원리가 너무나도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폭력은 카드입니다. 그것은 넘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조문이라고 납득하는 순간, 그것은 낙인이 되어 돼지의 등에 1등품 도장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반적 지배원리는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모순덩어리라서 사람이 억압에 맞서 뭔가를 할 수를 없게 만듭니다. 그건 양반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1908년에 있었던 의병의 서울진격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의병의 지휘관은 양반이었는데, 아, 이 양반이 서울 진격 직전에 아버지 상을 당하자, 지휘관 자리를버리고 낙향했고, 의병군은 그냥 와해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은, 백성들에게는 한 없이 가혹했으나, 외세 앞에서는 변변한 무력저항조차 없이 스러진 518년 역사의 왕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족으로, 양반이라는 계급이 얼마나 국가의식이 없었는지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저 비열한 지배원리를 극복하는 명제가 “니가 해도 되는 일은, 나도 해도 된다.”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은 이를 좀더 확장해서 상대가 하는 짓은 우리편도 해도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 놓고 갖은 패악질을 해대는 놈에게는 티끌만한 상처도 주지 못하면서, 그걸 말리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는 온갖 잣대를 들이 대면서 비난하는 꼴은 정말 봐 주고 싶지 않습니다. 좀 많이 나간 것 같지만, 논문을 표절한 저 쪽 당 사람을 공직에서 끌어내릴 수 없으면서, 이 쪽 당 사람에게 논문표절을 문제 삼는 것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좌절시키기 위해 늘 따라 붙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었다고. 그 원형은 니체가 말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선악의이면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Jenseits von Gut und Böse)"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싸우는 괴물이, 저쪽 편 사람들이라서, 그 사람들을 괴물에 치환시켜서 저 문장을 읽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을 괴물에 치환하는 것부터가 좀 수준이 떨어지잖아요. 또한 니체가 씹선비질과 양비론을 말했던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비론이 철학이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플라톤의 철인통치가 구현되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괴물을 익숙해진 익숙해진 두려움, 익숙해진 비겁함이라고 읽고 싶습니다. 현실을 바꾸려는 모든 싸움의 시작은 익숙해진 두려움, 익숙해진 비겁함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말은 그 두려움과 비겁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적당한 타협을 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어린 시절 겪었던, 80년대 서민층 주택가의 어느 여름 저녁이 떠오릅니다. 술 취한 남편이 부인을 신나게 두들겨 패고 있고, 그 집 아이들은 울고 있고, 이웃들은 둘러서서 걱정스런 눈으로, 혹은 재미있다는 눈으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구석으로 몰린 아내가 벽으로 몸을 바치고 있는 힘을 다해 남편을 밀쳐내지요. 그럼 사람들이 수군댑니다. 저 여자 저거 참 못됐네라고.
이건 사족인데, 뉴라이트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그들의 경제사 논문을 몇 개 읽어본 적이 있고, 그들의 주장 역시 대강은 들어서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논의를 보면, 조선의 후진성에 대한 책임을 그냥 뭉뚱그려서 왕조 탓으로만 돌리고 있더군요. 현실 정치에서 그들이 복무하는세력이 누구인지 따져보니, 과연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학자적 양심과 소양을 인정한다고 해도, 과거를 현실의 거울로 삼는 데에는 경제사도 중요한 것이지, 경제사만으로 과거를 현실의 거울로 삼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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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