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5.18을 다룬 가장 무거운 소설- 임철우의 『봄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보니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개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이 소설이 5.18을 다룬 소설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한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이 사건을 다룬 가장 세밀하고 방대한 소설은 아마 임철우의 『봄날』일 것입니다. 임철우는 이미 이 소설을 쓰기 전에 군사정권의 정치 탄압과 고문을 다룬 「붉은방」을 통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사회적 책임과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룬 작가로 평가되고 있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민주화가 완결된 상황이 아니고, 노태우의 6공이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들의 운신도 폭이 그렇게 넓지는 못했을 겁니다. 임철우는 칼을 갈고 있었죠.
광주 출신으로 80년 당시 전남 대학교 영문과에 재학중이던 그였기에, 필생의 역작으로 5월의 광주를 다룬 소설을 기획하고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임철우는 『붉은 산, 흰새』같은 5.18의 원인이 된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가는 깊이있는 작품이나 소소하게 베스트셀러가 된 『그 섬에 가고 싶다』, 「사평역」같은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대작을 준비하고 있었죠. 드디어 임철우는 1997년, 5.18이 벌어진지 17년만에 그해 오월의 광주를 다룬 장편소설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말이 장편이지 거의 대하소설을 방불케하는 구성의 방대함과 분량을 가진 소설이었습니다. 권수로는 5권 총 2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었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하는 『봄날』입니다. 이 소설의 장편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형식이 어떤 정해진 양식으로 지칭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전형성을 띈 등장인물의 등장과 그들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주요 플롯은 리얼리즘 장편소설의 그것이지만, 그 밖에도 서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서술과 묘사, 역사적 사실과 문서 기록이 다양하게 섞여들어가면서, 이 작품은 기어이 장편소설이라는 양식적 한계를 초월해버리고 맙니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이, 소설은 어떤 문예적/비문예적 양식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예술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런 정의에 꼭 맞는 소설일 겁니다.
이 소설은 그날의 광주에서 다양한 사건을 겪었던 사회 하층 노동자, 학생, 룸펜, 기자, 진압군 사병과 장교 , 천주교 사제 등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고, 당시 역사적 문서들을 샅샅이 훑어서, 당시 광주의 모습을 복원하고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그날의 광주란, 단순히 "민주화운동"이라는 타협적인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자국민에 대한 독재정권의 학살이자, 독재에 항거한 정치투쟁이었으며, 사회불평등과 외세에 의한 세계전략에 대한 항의(광주 미문화원 사건)이기도 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이었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형식도 그러한 복잡함을 담기 위해 그렇게 다각적인 양식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전까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임철우는 이 작품에 혼신의 노력을 모두 쏟아부었던지, 이후에는 작품활동이 뜸해지고, 소소한 작품들만을 발표하게 됩니다. 사실 사회가 더 이상 그런 작품들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로 넘어가 버렸죠.
저는 안타깝게도 이 소설을 발표된지 거의 십 년이 넘은 어느 날에야 접하게 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광주에 대해 알긴 했습니다. 중학생 때, 독서실에서 돌아와 습관적으로 티비를 켠 어느 날, MBC 마감뉴스(그 때 마감뉴스 앵커가 전 박영선 장관이었습니다.)가 끝나고 기습적으로 5.18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해준 적이 있었죠. 아마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그 시절을 겪은세대가 아니기에, 그리고 부끄럽게도 지금도 정치나 현실에 큰 관심이 없는 소시민이기에,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어느정도는 관념적이고, 어느정도는 역사적 사건 정도로 받아들이는 수준이었습니다. 6.25와 마찬가지로요.
그러다가 소설 『봄날』이 발표되고 9년이 지난 어느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소설을 읽기로 했습니다. 아마 학생시절 늘 대학 정문 서점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혀 있었으나 무관심했던 생각이 나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 단숨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을 매우 좋아합니다. 지금 집에도 6천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더이상 책을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 늘 지키지 못할 맹세를 합니다. 공간의 압박이 너무 심해서 대하소설은 거의 집에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황석영의 장길산과 더불어 제 서재에서 살아남은 유이한 작품입니다. 사실 장길산도 그 작품 뿐이었다면 아마 계속 두진 않았을 겁니다. 황석영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그의 전 작품을 소장하고 있기에 이가 빠지게 두기 싫어서 소장하고 있는거죠.(물론 장길산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황석영 소설들은 어쩔...)
이 소설이 살아남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제건 또 읽어야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죠. 저는 읽은 작품을 한 번만 읽는 경우는 드뭅니다. 선택에 실패했을때는 한 번 읽고 버리지만, 좋은 작품들은 최소한 두 번을 읽고 정말 좋고 심오한 작품들은 5~6번 읽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르한 파묵이나 밀란 쿤데라 같은 경우가 그렇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묵직함에도 도저히 연속해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읽으면서 감정적 소모가 매우 심했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를 닫은 채, 안락하게 살아가던 제가, 나 자신과 이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새삼 다시 느끼고, 우리 발밑에는 아직 스며든 피가 다 마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제 서재가 유지되는 한 아마도 끝까지 같이갈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년 내에 한 번 더 읽겠지만 그 이후에도 또 한 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니까요.
임철우는 황석영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우리의 역사와 어떻게 밀접한 연결을 가지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소설 『봄날』, 임철우가 평생 작업해온 한국 근대사에 대한 리얼리즘 문학적 접근에 대해 ,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그 모순이 폭발했던 80년 5월 광주를 보여주면서 폭발시켰던 걸작입니다. 이 소설을 교두보로 임철우 문학 전체에 접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부끄럽게도 소개를 하는 저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소한 임철우가 조정래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깊은 문학세계를 가진 소설가라고 생각합니다.
5.18이 다 끝나가는 시각에, 작가 임철우와 소설 『봄날』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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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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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드를 본가에서 득템 했는데 서점 갈때 구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