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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극장] 대기업들의 극장사업 흥망성쇠(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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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7 09:25:00

제가 삼성 있을 당시 일입니다.

전화를 받자, 잔뜩 화난 노인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야, 이자식들아, 동판을 이따위로 내? 딴데도 아니고 니네가 이럴수 있어?"

대뜸 반말...황당하지만 일단 숨을 고르고 답했습니다.

"저, 누구신지요?"

"나, 곽사장이야, 자네 누구야? 최부장 대!"

곽사장은 당시 한국영화계 파워링킹 1위를 달리던 서울극장 곽정환 사장입니다.

최부장은 지금 강제규 필림 사장으로 있는 저희회사 최진화 부장이었죠.


세 가지가 궁금해 지시죠?

1, 동판은 뭔가?

2. 왜, 동판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가?

3. 왜 곽사장은 삼성에게 이렇게 당당, 혹은 거만한가?

차례로 답해 드리지요.

1. 동판은 신문 영화광고 아래 붙는 극장소개를 말합니다. 영화광고 아래 보시면 그 영화를 하는

극장들이 쭉 나열되어 있죠? 근데, 이 동판은 단순한 극장소개가 아닙니다. 일종의 극장 서열표

입니다. 보통 4-5단으로 배치되는데, 윗줄일수록 관객이 많이 드는 극장이란 이야기죠.

그리고 특별히 줄에 속하지 않고 줄 위의 좌, 우 한칸씩을 차지하고 있는 극장들이 있습니다.

이 극장들이 흔히 말하는 메인 개봉관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른쪽 위가 서열 1위이죠.

(지금은 좌측에 별도의 큰 칸을 CGV와 메가박스가 차지하며, 롯데가 보통 오른쪽 두번째

큰 칸을 차지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서울극장이 오른쪽 위입니다. 요즘은 아예 동판이 안나오는

영화광고도 많습니다. 극장이 너무 많아져서 모두 싣기 힘든데다, 멀티플렉스가 많아져 왠만한

영화는 다 하니까요. 소규모 개봉영화만 동판을 싣지요)


2. 곽사장은 왜 화를 냈는가? 짐작 가시죠?

당시 삼성에서 개봉했던 영화가 오른쪽 위로 명보를 올렸거든요. 당시 서울극장은 자기네 극장서

개봉하는 영화는 무조건 오른쪽 위를 고집했습니다.

그럴만 했던 것이, 서울극장은 당시 10년넘게 극장 흥행랭킹 넘버1이었데다, 대구와 부산등에

극장 체인을 소유한 유일한 업체였습니다. 개봉 당일 서울극장 앞에 가면 영화관계자의 절반은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곳의 매진속도로 흥행을 알 수 있었죠. (지금도 뉴스에

가끔 ''무슨 영화 매진행렬''하면서 나오는 곳은 거의 서울극장 앞입니다. 가끔 메가박스도 나오

더군요)

당시 비디오업계에서 ''서울극장 개봉작''이라는 스티커가 붙으면 ''극장개봉작''보다 1만장이 더

팔린다는 것이 정설일 만큼 서울극장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서울극장의 위력, 그리고 제작자도, 감독도 아닌 곽사장이 수년간 한국영화

파워 랭킹 1위(씨네21)를 차지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배급''의 문제

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곽사장은 왜 이렇게 당시 거의 유일한 메이저 제작사였던 삼성에게 고자세였을까?

그것은 그가 영화들의 배급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시에 전국 배급을 위탁받은 회사

만 해도 폭스, 워너, 디즈니의 모든 영화들, 그리고 당시 휘하에 두었던 시네마서비스의 영화

전부였습니다. 그외 소규모 제작사들도 그에게 배급을 많이 위탁했습니다.

이 위력은 절대적입니다. 좋은 영화를 수급할 수 있느냐에 목숨이 달린 극장들에게 그는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였고, 영화를 수입하거나 제작하는 많은 업체들도 그의 처분에 따라 영화의 운명

이 바뀌는 처지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신촌에 극장 세 개가 있는데, 디즈니의 여름 만화영화가 나왔습니다. 곽사장이

이걸 어디 주느냐에 따라 다른 두 극장은 일년중 절반이라는 여름장사를 날릴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제작사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같은 날 폭스의 블럭버스터가 개봉한다면? 군소

배급업체로서는 극장도 잡지 못합니다.

불가피하게 비시즌으로 개봉을 미룬다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극장들은 이때는

워너의 3류 영화들을 어쩔 수 없이 개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개봉하는 워너의 대작영화

로 겨울을 나야 하는 극장들의 선택 여지는 없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영화를 많이 만들고 수입해도 일년에 서너 편, 직배영화사처럼 꾸준하게 대작을 제

공할 수 없다면, 극장들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자, 이런 상황(1,2,3) 들이 얽혀 위에서 본 헤프닝이 일어난 겁니다.


당시, 이런 폐혜가 극단까지 갔던 것이 동대문 MMC 파행개관 사건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CGV 개관당시 서울극장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 장사가 별로 되지 않을

곳이라고 예상한 데다가, 설사 성공해도 자신들과는 별로 관객이 겹치지 않는다고 봤거든요.

여기에 대기업과 날을 세워서 별로 좋을게 없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CGV가 개관 1년만에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며 서울극장의 자존심을 무너트린 데다가, 이

업체의 성공으로 멀티플렉스가 확장될 기미가 보이자 곽사장은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이 즈음에 바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동대문에 충무로 토착업자가 MMC라는 멀티플렉스를

개관합니다. 여긴 대기업도 아니니 만만하겠다, 서울극장은 바로 견제에 나섭니다.

자신들이 배급하던 영화는 전부 여기에 안줍니다. 앞에서 봤듯이 개봉작의 절반 이상이죠. 그 외

의 소규모 제작사들에게도 충분히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MMC는 개관당시 10개관 중 불과

3개관(확실치는 않지만)에서만 영화를 개봉하는 상황을 맞습니다.


이 사건에 앞서 98년 개관했던 씨네코아(서울극장과 1블럭 사이이죠) 역시 디즈니 영화를 받지

못하는 견제를 당했던 바 있지만, MMC는 그 압력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씨네코아는 위치나,

구조(복합상영관)상 큰 위협이 안되지만 MMC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사람이 들끓는 동대문에

있는데다 분명히 멀티플렉스 구조였으니까요. 여기를 ''확실히''조짐으로써 다른 멀티플렉스

진출을 고려하는 업체들에게 분명히 경고를 하려던 ''시범케이스''차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CGV에 이어 메가박스가 대성공을 거두고,

롯데가 가세하면서 이들은 파죽지세로 전국 체인망을 만들어 나갑니다.

결국 이들의 파워는 기존의 배급망을 무력화시킵니다. 어느 지역이건 멀티플렉스가 장사가

가장 잘 되는데 제작사나 해외직배사들이 배급업자를 통할 이유가 없죠. 이 전국체인망들은 독자

적으로 영화를 수급하게 됩니다.


배급망의 붕괴는 두 가지로 인해 더 가속화 됩니다.

첫번째, 아시다시피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일년에 4-5편을 만드는 대형

제작사가 생겨나고, 외국 메이저 직배사들의 파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더 이상 여름, 겨울대작을 미끼로 일년내내 외국영화를 상영케 하는 수법이 안통한다는 말이죠.

두번째, CJ와 동양이 한국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으면서 극장과 배급을 겸하는 큰손으로 올라섭

니다. 예전의 서울극장이 가졌던 위치를 차지한 거죠.

결국 곽사장은 지금 한국영화 파워랭킹에서 한참 뒤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보려 했던 당대 최고의 거물은 이렇게 몰락한 거죠.


자,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냐? 그런건 아닙니다. 새로운 강자간의 파워게임이 여전히

진행중이거든요.

작년 말 반지의 제왕이 메가박스에서 개봉되지 못할 뻔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이 영화의 배급을

대행했던 CJ와 동양간의 알력때문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즉, CJ가 반지의 제왕 개봉시 CGV에

편향된 프로모션에다 메가박스에는 영화프린트 수를 제한했다면서 동양측에서 메가박스에서 이후

모든 CJ 배급영화들을 거부하겠다고 했었죠. 파워게임입니다. CJ가 영화수급력에서는 우위에

있지만 (드림웍스+시네마서비스) 메가박스 관객을 모두 잃는다면 CJ도 큰 타격이긴 하죠.

다행히 화해했지만 불씨는 잠복중입니다. 만일 이것이 계속되었다면 보복조치로 전국의 CGV

에서 동양이 배급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배급체계는 여전히 개선이 요구됩니다. 극장의 일부체인 독점이 없어져야 배급이

극장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될 겁니다. 극장은 제작자와 관객 입장에서는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이지만, 배급업자와 극장 운영업자에게는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은 90년대까지의 터무니없는 영화배급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이라고

자평해 봅니다. 앞으로 더욱 나아지겠지요.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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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4-04-27 10:27:00

반지의 제왕 배급 문제는 저도 잘 알고 있는데요. 작년에 메가에서 개봉 못할뻔 했었죠. 이유는 표면적으론 CJ 에서 배급하는 코메디 무협물인 "낭만자객" 때문이었죠. CJ 가 메가측에 "낭만자객"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줄테니 메가박스 몇관 이상 상영해 줄것과 상영일수를 일정일 이상 상영해 줄 것을 요구했고 메가측에선 영화가 참패할것을 예견하고 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04-27 10:27:00

그래서 작년말에 반지의 제왕을 메가 1관에서 보기 위해 보통은 그런 대작 영화의 경우 한달전 예매인데도 불구하고 CJ 측에서 주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불과 일주일 전인가 겨우 예매가 되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CJ 와 메가의 알력 다툼,텃세가 극에 다란 경우라 볼수 있죠. 어째건 필립님도 말씀하셨듯 CJ와 메가 그리고 롯데 시네마가 3파전을 벌리고 있는 가운데 언제 다시 이런 사건이 불거질지 모르겠네요. 애꿋은 관객들만 피해 보는건 아닌지..

2004-04-27 10:28:00

아무튼 필립님 글 재미 있게 잘 보았습니다. 특히나 야사가 곁들어져서 더 재미 있었습니다. 그 원래 정통 사기 보단 야사가 더 재미 나잖아요..ㅋㅋ

2004-04-27 13:18:00

서울극장하고 MMC건은 서울시극장협회 회장과 전국극장협회 회장의 알력다툼이기도 했지요. MMC는 당시 전국극장협회 회장이었던 대구 만경관 사장이 한걸로 알고있는데...

2004-04-27 13:19:00

국내 영화배급문제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미개국가 수준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상황을 보면 선진국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들끼리도 알력싸움이 존재하는군요. 미국이나 일본같은경우는 어떤지 궁굼하네요. 일본은 아직까지 직배급조차도 매우 어려움이 있는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2004-04-27 18:27:00

장기적으로 봤을떄 미국처럼 배급과 극장업은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봅니다..지금 같은 체제라면 언제든지 유사한 문제가 터지겠지요

2004-04-28 10:29:00

메가박스와 CGV의 힘겨루기는 계속되어 왔지만 "반지의 제왕" 개봉시문제는 "두사부일체"로 시작한 두사부필름에서 "색즉시고"까지 계속 쇼박스에 배급대행을 의례하다가 "낭만자객"은 CJ에게 대급대행을 으례했죠. 아무래도 "낭만자객"이 그리 좋은평이 아니어서 초반에 관객놀이가 필요해 많은 스크린확보를 위해 CJ와 손을잡았죠.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 메가박스에서 상영을 안하겠다고 하니까 CGV에서도 반지의 제왕을 걸고 들어간거죠

2004-04-28 10:35:00

또 MMC와 서울극장의 문제는 두 극장의 사장은 서로 영화계 선후배 사이죠(대구 만경관 회장이 선배) 대구에는 서울극장체인을 만들지 않기로 서로 약속하기로 했었는데 머 대구 사장이 대구에는 들어오지말라구 했다고 하죠. 그런데 서울극장 사장이 대구에 은하극장인가를 서울극장 체인으로 만들었죠. 이때부터 둘 사이가 않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MMC를 만들게 되죠. 이렇게해서 그런 문제가 시작된거죠

2004-05-02 15:20:00

역시 영화판 극장판도 숨겨진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네요...글 잘 읽었습니다

2004-05-03 19:58:00

멋진 글입니다. 이걸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영화라도!! 저도 예전에 MMC 처음 생겼을 대 갔었는데, 전관에서 '춘향뎐'을 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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