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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오케이 마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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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9-07 16:08:00

 

 

과연 우리는 언제쯤 하와이에


[스포일러 있음] <오케이 마담>은 엄정화라는 배우와 제작사인 사나이 픽처스에게 나름 의미있을 작품이다. 사나이 픽쳐스가 전도연 배우를 내세운 <무뢰한>을 제작한 후로 꾸준히 받아온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영화사에서 여자가 활약하는 영화가 언제 또 만들어질 것인가?' 였다. 영화사 이름부터 남자 냄새 풀풀 풍기고 창립작은 <신세계> 아니었나. 남자 배우들이 케미스트리를 형성하는 작품들 위주로 제작하며 꾸준히 재미를 봐 왔던 곳이었다. 위 질문에 대한 사나이 픽처스 측 답변은 좋은 시나리오만 있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사는 일단 (여성인) 박누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돈>을 제작하며 그 문제에 관해 전혀 배타적이지 않음을 어필한 후, 마침내 <오케이 마담>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내세운 두번째 사례를 만들었다. 엄정화 배우 입장에서도 코미디는 익숙하지만 본격적인 액션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의의가 있는 셈이다. 물론 나는 엄 여사 신작이 나왔으니 관람해야 맞지 않겠냐는 단순한 이유로 보러 갔다.

 


우연한 계기로 한 가족이 하와이 여행에 당첨되어 여객기에 탑승하는데, 신분을 위장한 북한공작원들이 공중납치를 시도한다. 이 문제를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 <오케이 마담> 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양자경과 양리징으로 대표되는 <예스 마담> 류의 '마담 액션 시리즈' 를 오마주하고 있다. <예스 마담> 은 형사반장인 주인공을 향한 상급자 호칭, 혹은 존경하는 의미를 담아 Yes, madam 이라 부르는 작품 속 표현이 영어 제목으로 정해진 경우다. <오케이 마담>은 잘 나가는 재래시장 꽈배기집 사장님 미영 (엄정화) 이 버릇처럼 "오케이!" 를 외치는 '부인' 이라서 오케이 마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사실 <예스 마담> 도 한국 개봉 당시 양자경이 맡은 배역이 '예스 마담' 이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오케이 마담> 같은 경우에는 대활약하는 미영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니 꼭 잘못된 제목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오마주를 바친다는 작품이 '마담' 를 이런 의미로 쓰는 걸 봐서 대충 짐작은 하게 된다. 아.. 성실한 오마주는 아니겠구나.

 


* 애초에 '예스 마담' 이란 캐릭터가 없는데 예스 마담이 세번 죽는다고 구라를 쳤던 신문광고 


여배우가 액션을 소화한다는 개념은 이미 홍콩영화계의 전유물로부터 벗어난지 오래다. <오케이 마담> 에서는 발레를 배우던 미영의 딸 나리 (정수빈) 가 자길 놀렸던 남자애들을 두들겨 팼음이 밝혀지는 초반부 대목에서 홍콩영화와의 연관성을 느낄 수 있는 정도다. <예스마담> 시리즈 주인공이었던 양자경이 액션영화로 커리어를 쌓기 전에 발레를 전공했던 이력을 알고 있다면 웃을 수 있어서다. 혹은 비행기 테러를 해결하는 전체 줄거리가 <예스마담 2> 의 초반부를 기억나게 만든다는 점? 이를 제외하면 <오케이 마담>은 <크레용 신짱> 극장판 같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코미디가 지닌 비중이 큰 이유도 있겠지만 <크레용 신짱> 극장판은 평범한 노하라 가족이 매번 국제적 음모와 사건에 얽히고, 예상 외의 능력을 발휘해서 결국 세상을 구한다는 식으로 매번 이야기가 진행되곤 했다. <오케이 마담>은 엄정화나 박성웅이 연기한 남편 캐릭터가 실제로 범상치 않은 과거를 지녔다는 차이만 있고 대부분 유사하다.

 

* <오케이 마담>은 <예스 마담> 보다는 이쪽 감성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작품은 <크레용 신짱> 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랜차이즈물은 팬층을 만족시키는 일이 최우선인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 영화적 기술력의 성취보다 작품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얼만큼 활약하는지가 우선적이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완성도가 기대보다 못하더라도 비교적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프랜차이즈물도 아닌 <오케이 마담>은 게으르다는 인상이 먼저 든다. 나름대로 센스가 돋보이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요컨대 작품 속 조연인 안세라 역의 이선빈이나 특별출연한 김남길을 활용하는 모습이 그렇다. 김남길은 비행공포증이 있는 국정원 요원을 연기하고 있는데 공중납치사건이 벌어질 때부터 마지막까지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상태로 어떤 활약도 없다. 나름대로 설정이 있는데 '특별출연' 에 너무 충실한 탓에 당황스러울 정도다. 웃기려는 의도라고 보기에는 작품에서 여객기가 아수라장이 되고 있을 때 세상 모르고 잠든 모습'만'을 한번씩 클로즈업 해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싶고, 결말에서 깨어난 그의 모습에서는 뭐 왜 저러는 건가 싶다. 이선빈은 더하다. 작품에서 북한공작원들이 공중납치를 벌인 이유는 10년간 사라졌던 또다른 공작원인 목련화를 찾기 위해서인데, 이선빈이 맡은 배역인 안세라에게 목련화일 수 있다는 암시가 생긴다. 그녀는 중반부 반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도 그녀를 1인 2역으로 활용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뻔뻔하게 밀어붙인다. 플롯이 새로운 방향으로 꼬일 정도는 아니고 웃음을 주기 위한 용도다. 문제는 안세라 캐릭터가 반전이 등장하기 전까지 철저히 분위기만 잡고 있는데다 정체가 드러난 후에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녀를 활용하는 방식이 작품에서 가장 기발하고 웃기다. 그러나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플롯 전환을 위해서만 활용하고 있으니 해당 아이디어에서 나온 웃음도 빨리 휘발되고,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지만 기계적으로 활용되는 수준조차 되지 못하고 머릿수만 채우는 작품 속 비행기 승객들과 같은 수준이 된다. 이런 배역들이 <오케이 마담> 에는 아주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구색을 갖추려는 준비 하나만큼은 충실하다. 미국 업체인 에어 할리우드를 통해 부품을 제공받아 실물에 가깝게 보잉 777기를 만들었고, 위에서 언급했던 머릿수만 채우는 연출도 어떻게 보면 <에어포트> 처럼 군상극 이미지를 갖춰야 겠다는 판단 하에 고안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름 영화나 TV 드라마 분야에서 얼굴 좀 익은 배우들을 승객 역으로 데려와 본편에 채웠다. 초반부에서 개개인이 지닌 사연도 보여주고, 항공기에 비즈니스와 이코노미 클래스가 있는 특성을 이용해 계급 문제도 좀 건드려준다. 물론 이중에서 이야기에 도움될 법한 쓸만한 정보나 어울리는 요소들은 하나도 없고 여객기 구성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튜어드인 현민 역의 배정남 배우가 대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사나이 픽처스 작품 단골인 그는 어색한 연기력으로 작품에다 어설픈 이미지만 더 가미할 뿐이다.



<오케이 마담> 은 결국 '엄정화가 액션을 한다' 는 지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액션 연출마저 그닥이다.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엄정화가 썬캡을 쓰고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 공작원들을 상대하는 식으로 꽤 재밌는 액션 시퀀스가 있긴 하다. 어떤 적을 상대하기 위해 주인공이 위장을 하거나, 본 시리즈 참고했는지 공격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잡지를 돌돌 말아서 상대방을 타격하는 등 보는 입장에서도 엄정화를 통해서 뭔가 재밌는 연출을 해보겠다는 노력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아이디어가 고갈됐는지 액션 연출도 단순해진다. 엄정화 혼자 북한 공작원 여럿을 상대하다시피 하는 전개에서 은폐엄폐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보여주려는 정성은 몇 번 없다. 오히려 '엄정화가 ~ 한다' 라는 식의 화제성에 기대려는 형태에 가깝다. 엄정화 배우가 예상보다 분발하고, 함께 액션을 하라고 붙여놓은 철승 역의 이상윤 배우가 있긴 하지만 투톱으로 붙이기에는 존재감이 약하다. 마지막 즈음 이르면 액션이 아니라 그저 소란스러운 해프닝이 된다.

 


홍콩영화처럼 아예 이야기를 액션으로 대체해서 15~20분을 채우는 수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처음 액션연기에 도전하는 엄정화라는 배우에게 그만큼의 경지까지 요구할리 없거니와 그 시절 홍콩영화처럼 사람을 갈아넣으며 완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도 <오케이 마담>이 자신있게 내세웠던 코미디와 액션을 다 잡았는지는 의문이다. 작품은 코미디, 킬링 타임, 혹은 팝콘영화, 상업영화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허술한 만듦새를 대충 넘어가려 든다. 사실 상업영화 제작에 임하는 충무로 자체의 문제겠지만 <오케이 마담>은 최근 개봉작 중 이런 부분에 있어 심각하기로는 가장 눈에 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물도 허용범위 안에서 나름대로 변주를 하며 완성도에 신경 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르가 프랜차이즈인걸로 착각하는 것 같다. 액션에 코미디가 섞이면 원래 다 이렇습니다! 킬링타임 무비가 다 그렇죠! 코미디라는게 다 이렇게 헐거운 거 아니겠습니까? 허술한 만듦새에 관한 변명으로 장르를 내세우는 모습을 바람직 하다고 볼 수 있을까. 언뜻 작품이 욕심 없어 보인다는 식으로 보정될 수 있는데, 대충 만들어서 재미 보려 했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엄 여사에 대한 팬심으로 봐줘도 좀 버겁다.

 


그럼 만족감을 느꼈던 지점은 정녕 없었는가? 사실 있다. 그런데 작품 역량이라기 보다는 그 날 봤던 내 기분 탓이 크다. 미영 가족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채 마침내 하와이에 무사입성한다. 하와이 시퀀스는 쌈마이스럽다. 원경으로 하와이를 찍은 샷은 인위적인 컴퓨터 그래픽이 느껴지고, 세 가족이 바닷가에서 함께 노는 식의 CG 합성이 필요없는 장면은, 짧게 지나가는데도 보고 있으면 한국 바닷가에서 촬영했음이 확연하게 티 난다.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 그딴 거 적고 싶을 정도로 한국적 정서가 물씬 느껴진다는 얘기다. 다른 시기에 개봉했다면 보잉 항공기 재현하는데만 돈을 들여서 이 장면에는 소홀했냐며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오케이 마담> 속 하와이 장면은 최양일 감독의 <카무이 외전> 같은 일본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감성도 주고 있다. 인공적인 컴퓨터 그래픽 덕분에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상향적인 공간으로서 하와이라는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작품이 연출을 잘 했다기 보다는, 개봉 시기가 이들 가족의 여정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본편 시대배경과 큰 연관은 없어 보이지만 영화 바깥 현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시기에 역경을 뚫고 하와이에 도착했다며 들떠있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 최양일 감독의 <카무이 외전>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된 바다. <오케이 마담> 속 하와이도 대략 이런 수준의 인공적 느낌을 준다. 



덕분에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은 너그러워진다. 생각해보면 거의 비중도 없는 <오케이 마담>의 다양한 비행기 승객들은 (김병옥 배우가 연기한 국회의원이나 김남길이 연기한 비행공포증 국정원 요원, 북한공작원들 빼고) 모두 하와이로 가야만 하겠다는 일관된 목표를 갖고 있다. 개중에는 정나미 떨어지는 캐릭터도 있지만, 다들 무사히 하와이에 안착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하게 된다. 작품은 손익분기점 250만짜리 영화지만 킬링타임물로서 기준을 너무 만만하게 잡은 탓인지 제대로 국물맛도 못 보게 생겼다. 

 

 

뭐, 자기 운명이긴 한데 최소한 내겐 코로나 바이러스 덕택인지 약간은 기억에 남게 됐다. 이 작품이 졸지에 상업영화로서 대리만족 시켜준 부분은 코미디도, 액션도, 여성 주연 영화도 아닌 '해외여행 자유화' 였을지도 모른다. 여성 위주 영화라는 의미있는 시도를 했다면서 영화사 내부에서만 회자되리라 생각했던 <오케이 마담>은,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로 묶여서 거론되지 않을까. 하와이가 우리 시대의 샹그릴라처럼 보일 줄이야. 


 

p.s.


 

1) '북극성' 역을 맡은 배우는 맨 처음에 생김새나 복장 보고 디자이너 하용수 선생 환생한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크레용 신짱> 극장판에도 저런 스타일의 배우가 흑막이나 과학자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지.



2) <오케이 마담>의 결말이나 당분간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현실을 생각해보니 한국영화가 다시 90년대 처럼 홍보수단으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어필하는 경향이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화제거리이긴 하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되고 나서 몇 년동안 별 의미나 맥락 없이 시각적인 관광용 마냥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는 한국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물론 지금 다시 그 유행이 분다면 당시에 제작된 작품들 보다는 완성도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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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9-07 16:20:51

애당초 영국 로열 발레 아카데미 출신에 액션배우 수업까지 받은

20대 시절 양자경 출세작 제목을 붙여놓고 50대 초입의 엄정화로 

만든 코믹 액션물이 박진감 날 리가 없죠.

옛 캐콘식 설정 유머에 대놓고 배달의 민족 류승용 캐릭터를 깔고

라떼는 말이야 소개와 함께 이어지는 그냥저냥한 액션의 <극한직업>이 

폰 유튜브 보느라 개콘 자체에 익숙찮은 초등-중학생 가족 관객에게 

신선하게 먹힌 걸 벤치마킹한 탓이라 봅니다.

WR
Updated at 2020-09-08 00:32:13

그렇죠. 사실 액션연기를 놓고 양자경과 엄정화를 결코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었을거라 봅니다. 액션연출 하는 쪽에서도 당연히 그 점을 알고 한계 내에서 액션 장면들을 구상했을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물이 그래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엄정화 배우가 생각보다 잘 해서 여기서 뭔가 더 끌어올렸으면 좋았을텐데 선캡 쓰고 액션하는 장면이 정점이더군요. 음.. 

1
2020-09-07 17:13:28

잘 읽었습니다. 하도 볼께 없어서 그래도 보러 갈까 했는데 덕분에 확실히 접었네요.

아 해외여행 다시 가고 싶다.. ㅠㅜ 

WR
2020-09-08 00:38:49

하와이 가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돈 많이 벌면 언젠가 한 번은 가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 보고 나니 하와이 못 가 본 게 좀 많이 아쉬워졌습니다.

1
2020-09-07 19:06:15

 예스마담때 액션은 정말 쇼킹했죠 

이 영화에서 예스마담 액션 기대하고 보면 콧물 나옴 

WR
2020-09-08 00:31:48

양자경 배우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흡수해서 무술감독들이 신이 나가지고 거의 옆에서 전담해서 가르쳤다고 하더군요. 80년대 중후반은 성가반과 홍가반 모두 거의 액션의 극한을 시험하고 있었을 때라 온갖 미친 짓은 다 하고 있었는데 예스마담도 그 시절 홍가반 작품이니 확실히 앞으로도 그런 액션들은보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부귀열차 찍을 때 신시아 로스록 선생도 홍금보가 진짜 때리고 맞는 걸 요구해서 꽤 당황하셨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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