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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스포) <헌트>의 결말에 담긴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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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60
2022-08-14 01:19:19
※ 영화 <헌트>, <바스터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너무 매끈하게 잘 빠졌다. 약간 칼을 갈았다는 느낌도 든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집요해 보이는 연출이 관객을 흡족하게 한다.


#2
대사 진짜 안 들린다. 넷플릭스로 다시 보고 싶다.


#3
시나리오가 훌륭하다.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 삼으면서도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을 확보했다. 내부의 첩자를 밝혀내야 한다는 시놉시스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전을 예상하게 되는데, 드러나는 반전이 기막히다. 정말 간만에 만난 '예상 못 한 반전'이었다. 게다가 반전이 드러나기까지 흘리는 복선도 깔끔하다. 모티브와 복선과 반전, 이 3가지가 아주 촘촘하게 얽혀 있다. 진심 볼 맛 나는 시나리오였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일본 지부장(정만식)이 깨어나자 김정도(정우성)와 국내팀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병실을 옮긴다. 그런데 그 병실이란 곳이 저격당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점에서 사실성이 떨어진다. 보호 대상자가 저격당했으니 김정도는 책임지고 옷을 벗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징계를 받았어야 했다. 조직에서 크게 비화할 일을 어물쩍 넘어간다는 점에서, 특히 두 차장이 알력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게 전제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즉, 핍진성이 떨어진다. 다만 추후에 드러나는 반전을 고려할 때 김정도가 의도적으로 동림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나마 개연성은 살았다. 영화 전체에서 이와 비슷한 맥락의 갸우뚱이 종종 찾아왔다.

그래도 몰아치는 전개로 이러한 단점을 커버하고, 큰 줄기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탄탄한 개연성, 핍진성,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는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단점은 옥에 티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한산>이 단점이 없으나 장점도 힘이 빠진 느낌의 작품이었다면, <헌트>는 단점이 있어도 장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4
이 영화의 장르는 여러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헌트>는 첩보 영화다.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007>이나 <본> 시리즈 쪽보다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나 <스파이 게임>에 더 가깝다. 둘째, <헌트>는 팩션이다.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두고 있지만, 영화의 내용은 엄연히 허구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추구했던 <공작>과는 확실히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첩보 영화에서 팩션을 다루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연성과 핍진성은 첩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극한의 순간에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만으로도 전개가 휙휙 바뀔 수 있는 장르가 첩보 영화다. 사실 바로 그런 점을 잡아내는 게 첩보 영화의 쾌감이기도 하다. 눈치력 만렙의 두뇌 싸움이 성립하려면, 앞뒤가 맞아야 하고 행동이 그럴듯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황당한 장면이 나오면 산통 다 깨지는 거다. 한편 팩션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허구다. 역사와 다른 전개가 등장하는 순간 역사를 아는 관객이 황당하게 느낄 수 있다. 황당하기 쉬운 팩션에서, 절대 황당하면 안 되는 첩보 영화를 다룬다라.... 이거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헌트>는 이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황당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더라. 마지막 방콕 폭탄 테러가 너무 과한 거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장면의 모티브였던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생각하면 또 납득이 간다. 팩션이라서 도리어 납득이 가는 상황이랄까? 약점일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강점으로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또한 흡족하게 다가왔다.


#6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헌트>는 정치적인 선도 지켜야 한다. 현대사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걸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비상선언>이 받았던 비난은 잽도 안 되는 커다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감독이 위축될 수도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헌트>는 정치적인 선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권의 악랄함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운동권의 한계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북한도 단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전쟁광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동림의 주장처럼 합리적인 의견 역시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여러모로 정치적인 균형 감각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7
팩션 첩보 영화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바스터즈>다. 말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치밀한 눈치 싸움을 끌어내며 첩보 영화의 매력을 최대치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 팩션은 선을 대놓고 넘는다. 솔직히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거 뭐야?'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스터즈>는 이 황당함을 감독의 이름값으로 커버한다. '타란티노라면 그러고도 남지....'라는 생각이 드니 또 그럭저럭 납득이 되더라. 감독의 후광효과가 작품성을 좌지우지한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지만, 인간인 이상 이럴 수밖에 없는 것도 또 사실이더라.

만약 <헌트>의 마지막이 <바스터즈>처럼 선을 대놓고 넘으면 어땠을까? 두 명의 두더지가 힘을 합쳐 학살자 문어를 처형하는 결말이었다면 말이다. 아마 이런 결말에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굉장한 불편함을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정재는 타란티노가 아니고, 학살자 대통령은 히틀러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헌트>의 결말은 지켜야 할 선을 잘 지켰다고 평하고 싶다. 이 영화의 매력은 모티브-복선-반전의 촘촘함에서 나오지만, 그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함정을 요리조리 피하며 줄타기하는 고뇌의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이정재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4년에 걸쳐 뜯어고쳤다고 한다. 그 고뇌의 모든 순간에 박수를 보낸다.


#8
사실과 허구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작>과 <헌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헌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3
Comments
1
2022-08-14 08:15:47

저랑 비슷한 감상이시군요.
특히, 3번에 공감합니다.
'몰아치는 전개로 단점을 커버하고' 딱 크리스토퍼 놀란 스타일아죠.
물론 세련미는 좀 떨어집니다만, 데뷔작인 걸 감안하면 칭찬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결말의 의의라고 되어 있어서 '마지막 장면'을 의미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네요.
같이 본 식구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누구를 놓고 의견이 갈렸는데 이정재 감독이 명확하게 누구라고 언급했더라고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큰 의미를 가지는 영화인 만큼 제대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샹각도 해봅니다.

1
2022-08-14 10:50:50

정성글 잘봤습니다

1
2022-08-14 13:55:52

정만식 저격 장면은 저도 옥의 티라고 봤는데 김차장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납득이 가겠다 싶었네요 역사의 큰 줄기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픽션을 적절히 잘 접목시켰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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