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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게]  토미노 감독의 건담, 코로나, 미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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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0-31 09:24:44

 

본문은 2020년 10월 28일에 발매된 [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트릴로지 ] 4K UltraHD Blu-ray 박스에 동봉된 북클릿 중, '미래론'이란 제하로 기고를 부탁받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작성한 글의 전문 번역입니다. 

(이 북클릿에는 '우주론', '현장론', '인간론', '미래론'이라는 제하로 각 주제의 관계 전문가 인터뷰 혹은 기고를 게재한 페이지가 있는데, 토미노 감독의 기고는 마지막 '미래론'에 실렸습니다. 박스의 오픈 케이스는 아래 링크 참조.)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blu_ray&wr_id=2341577

 

1941년 생으로 1967년부터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한 업계 원로지만 그런 직함을 떠나 자신의 작품이나 그에 대한 발언 등에서 이런저런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던 분이라, 작품이든 이러한 기고든 국적을 떠나 한번 볼 만하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개중 이 기고문은 특히 (일본인 입장에서)현 시국에 대한 언급이 많아, 부족한 솜씨지만 전문 번역해 소개해 봅니다.

 

번역 중 우리말에 익숙한 표현 등으로 다듬은 부분이 있으나,(ex: 토미노 감독 입장에서 '국내'라 쓴 표현을, 한국에서 읽는 분이 이해하기 편하게 '일본내'로 수정한다든지) 대체로 원문의 표현을 중시하였습니다.

 

- 미 래 론 -


시대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미래는 항상 불투명한 것이다.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맞아, [ 기동전사 건담 ]을 다시 읽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그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의 길을 여는 힌트를 말한다.

 

 

[ 전해지지 않은 메시지, 그 후... ]  총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이 원고 의뢰에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폭발적 감염으로 미증유의 시대가 시작된 지금, 고전이 된 [ 건담 ]을 어떤 식으로 읽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허나 40년 전에 지금 같은 심각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은 없었기에, 그런 일은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상에 대해 생각할 때 시대에 따른 의미란 게 있기에 질문의 의도는 알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진지한 게 아니냐는 감각을 씻을 수 없습니다.


저희 세대에는 여름이 되면 늘상 전염병이 발생했고, 강에서 수영하지 말라느니 위생에 신경 쓰라는 둥의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 40년 사이에는, 2002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2012년에 유행한 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는 일본에선 둘 다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나 세계적 감염이 확대되기도 했고, 2014년 여름에는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뎅기열' 환자가 발생하여 약 70년만에 일본내 감염이 발생한지 2개월만에 160명이 발병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조금쯤은 감염증에 대해 학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만, 저 자신이 감염증에 대한 인식을 기를 새가 없었기에 [ 건담 ]에서 독해할 요소 같은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적은대로, 사실이 발생했으나 그것을 경험하고도 뭔가를 배우지 못하는 '우리들'이란 인류가 있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게 [ 건담 ]이기에, 고전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금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선, 감염 폭발을 경험한 중국과 한국의 상황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초동 대응을 게을리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테지요. 예를 들어 요 10년 사이 세계적으로 110건의 크루즈선 집단 감염이 있었건만, 일본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집단 감염에 대한 대응을 보자면 호화 여객선에 대해 경계가 부족했음이 드러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정부는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 실시에 정신이 팔려, 대책을 세우기 이전에 감염증을 없는 일로 덮어버리는 것 같이 보이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일본내 감염증 대책의 중심이 되는 국립 감염증 연구소의 인원이나 예산으로, 요 1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기에 한국에선 실시할 수 있었던 대량의 PCR 검사 등의 대처를 할 수 없었고, 보건소란 조직이 2월 시점에도 일요일이나 국경일은 쉰다는 식으로 감각이 마비되어 있는 정도는, 만화 이하였습니다. 거기다 미디어는 그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의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아베노마스크'라는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에 400억엔 남짓의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둥의 사태나 보여주면서, 여름을 맞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 건담 ]이 그리고 있는 세계관 바로 그것입니다. 억지 소리라고 하신다면 이 이상 읽을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베 정권이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최를 '목숨'처럼 여기고 있기에 대응이 늦어졌고, 그 배경에는 관광입국을 목표로, 더 나아가... 등등의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이에 대해선 말이 길어지니 그만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결심도 국민의 합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정치 목표가 되고, 그 덕에 아베 정권과 도쿄도가 떠들고, 관계기관(이들의 문제도 있지만, 길어지니 쓸 수 없겠습니다)도 정부의 뜬소리에 동참하면서, 코로나 문제 따위는 없는 셈 치는 순간마저 있었습니다.


[ 기동전사 건담 ]을 기획 제작하던 당시는 일본내 자동차 산업과 가전 제품의 기획 개발 풍조가 유행하여 기계 기술 신앙이란 것이 세간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거대 로봇물에 대한 저항감이 엷은 데다, 거기에 하나의 테마로서 기계(병기)의 성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가? 라든가 전쟁이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들곤 했었기에, 거대 로봇물이 아동 대상 작품이 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니메 세대를 길러왔습니다. 이 계보를 보면 존재해야만 할 고전이 될 만했으니, 이 이상 설명은 필요하지 않겠지요.


저는 [ ∀건담 ]까지 20년 정도를 원작자로서 사람의 혁신론 다시 말해 뉴 타입이 될 수 있는 방책을 생각해 왔습니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정치 실무자들이 널리 상황을 살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러는 한편 기술을 진보시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기술자들은 기술 진보 일직선밖엔 생각하지 않다보니, 정신이 들었을 땐 원자폭탄에다 수소폭탄까지 개발되는 상황까지 와 버렸고, 이러한 결과들에 대한 정치 경제 레벨의 심각한 반성이란 게 아직껏 없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핵병기를 보유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국가 지도자가 있고 제조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핵병기의 개발과 감염증에 대한 무대책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보일 수 있지만, 조직이 무엇으로 운영되는가를 생각하면 같은 맥락입니다. 말하자면 사고 방식의 수순이랄지 센스의 문제에 대해, 최근 가르쳐 준 인물이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씨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18세기 말까지 수백년간 인류의 생활 수준은 대체로 일정했고, 산업혁명에 의해 그때까지 농업 경제를 주체로 했던 단순한 시장에 여러 생산 활동이 출현하여 복수의 시장이 생기고, 많은 협업과 조절이 필요해 지면서, 정치가 중요해 졌다고. 그리고 서구의 삼권분립 민주제 아래에서 근대 사회 조직이 만들어져 갔으며, 그 전형이 1776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민주제라고. 그 미국의 발전의 근간에는 과학을 중시한 정신이 있었고, 정부는 과학 기술에 투자하여 제조와 쇄신을 후원하며 중요한 발견과 발명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트럼프 대통령처럼 시장 원리를 편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규제완화/ 복지감소/ 긴축재정 즉 '작은 정부' 시책밖에 없어서, 시장의 규제를 없애고 대기업을 우대하면 경제 규모가 확대되어 모두의 삶이 좋아진다는 논리입니다만, 그 결과는 부유층이 탐욕스런 이기주의를 발휘하여 미국의 최상위 0.1%가 총자산의 20%를 갖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사이 확대된 경제규모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삼십여년 간과 비교하여 2/3밖에 안 되고,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요 40년간 변한 게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위기에 직면하여 과학을 중시하고, 정부를 중시하고, 시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스티글리츠는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질병 대책 센터나 국가 안전 보장 회의에 마련된 역병 대책 부서를 재구축하여, 유급 병가 제도 도입을 확충하고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 선 주정부와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을 추가하며, 여기에 더해 학생들의 부담을 구제하는 조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상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최근 IT 산업의 독점화가 횡행하고 있는데 과거 미국의 이념은 경쟁에 있었으며, 일본에 대한 점령 정책 중 재벌 해체와 함께 경쟁 정책을 적극 권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들어보면, 현재 일본 정치 상황의 작고 약함이 심각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민당 1당 독재만이 아니라 그 정도의 1당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얇은 정치 기반, 에 대한 인식을 길러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본래 정부는 역병, 재해, 기후변동 등의 위기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사회 전체에 봉사해야 하기에, 무수한 이기심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보이지 않는 손'은 강한 정부에 있으며, 시장에는 적절한 규제를 걸고 정부/시장/시민사회가 균형 관계를 이루는 자본주의를 지향해야만 합니다. 스티글리츠의 '진보자본주의' 사상은 이상주의지만, 목표로 삼아야만 할 사고이기에 시야에 넣어야만 한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번에 배운 또 하나의 사례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이해하는 법! 이에 대해서는 영국문학자인 가와이 쇼이치로 씨의 해설로 배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살면서 세 번의 감염증 시기를 맞닥뜨렸는데, 두 번째 유행 시기에는 인구 20만의 런던에서 2만명이 죽었고 세 번째에는 3만명이 죽었기에 인구비로 생각하면 엄청난 위협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연극을 집필했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든가 '햄릿'등이 단지 비극을 성립시키기 위해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사회 그 자체에 걸친 압박을 실감했기에, '아아,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죽느냐 사느냐' 같은, 또는 '아무리 긴 밤이라도 새벽은 오리니' '새벽이 오지 않는 밤은 길지니'(* 역주: 맥베스 4막 3장 중 The night is long that never finds the day.에 대한 두 가지 해석) 같은 대사도 쓸 수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죽이는 연극을 여러 편 썼다'는 건 셰익스피어의 천성이 아니라, 시골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긴장의 시대에 사회의 관찰자로서 사고하고 세태의 편집자로서 말을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괴로운 인생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참지 못하고 끝낼 것인가, 라고 생각을 계속한 끝에 '신은 우리에게 앞뒤를 살필 수 있는 그토록 넓은 판단력을 주시지 않았는가'라는 대사를 쓰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를 알면 [ 건담 ]에 그만한 독해할 거리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분한 일입니다.


2020년 5월 31일

향기를 머금은 금년의 바람에, 올라탈 수 있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님의 서명
無錢生苦 有錢生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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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0-31 09:29:28

 덕분에 찬찬히 정독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0-31 09:48:26

토미노 감독님의 따끔한 현실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것 같습니다.

멋진 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0-31 13:46:57

좋은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밖에 드릴게 없네요~^^

2020-10-31 16:42:58

구입하신 분들은 이대로 출력해서 케이스 안에 같이 보관하면 될듯,
토영감님, 만수무강 하시길.. ㅜㅠ

2020-10-31 22:29:45

토미노 감독님은 뉴타입도 그렇고 80 가까운 연세에도 항상 미래를 보시네요.

그리고 이렇게 친절히 장문의 번역까지 해주시는 조지마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Updated at 2020-11-02 22:01:49

1. “사실이 발생했으나 그것을 경험하고도 뭔가를 배우지 못하는 '우리들'이란 인류가 있다”라는 건담에서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의 코로나 사태나 크루즈의 감염 취약성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도 뭔가를 배우지 못한 일본 정부는 코로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책이 필요하다.

2.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전염병을 여러 번 경험한 작가의 위기의식이 반영되어 있지만, 건담에는 전염병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신이 안 듭니다만^^; 이상의 두 가지 이야기를 두 학자의 이야기를 빌어서 풀어내는 걸 보니, 보통 이야기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건담은 이상하게도 인연이 닿지를 않았는데, 인연을 좀 이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분이네요^^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덕분입니다! 이어서 올려주신 기동전사 건담 리뷰도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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