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축구]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신이 된 이유
"나폴리인들은 항상 부당하게 대접을 받아왔단 말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순도 100%의 천재 '마라도나'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그에 대해서만 따로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의 커리어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마라도나가 생각난 김에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하나 하고 싶어졌어요. 오늘 살펴볼 것은 '그가 왜 나폴리의 신으로 추앙을 받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입니다.
우선 이탈리아의 경제 구조를 보겠습니다. 사회적 문제로도 확대되는 것이니 아시는 분도 많으리라 여깁니다.
북부와 남부의 경제 격차가 심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패전국 이탈리아는 경제 재건에 박차를 가합니다. 북부에 공장지대를 설립합니다. 그렇다면 남부에는? 예나 지금이나 농업과 같은 전통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남부지역의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북부지역으로 이동했고 그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자가 됐죠.
이제 대한민국의 서울과 여타 지역의 경제 격차가 초래한 문제점들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경제적 격차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말예요. 일례로 실업률입니다. 현재 남부의 실업률은 북부와 비교해 3배 정도 높은 상태입니다. 소득격차는 무려 5배에 달할 정도입니다.(*. 니니 님께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남부와 북부의 소득격차는 2배입니다)
그 결과, 몇 년 전엔 이탈리아 북부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남부지역과의 분리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우리 북부 이탈리아인들이 왜 남부 이탈리아인들을 위해 세금을 내야만 하는가'와 같은, 한반도에서도 쉽사리 들을 수 있는 문제제기가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나라의 경우엔 문제가 보다 복잡합니다. 북부는 게르만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주류이고, 남부는 라틴계의 피가 흐르는 이들이 주류이니까요. 게다가 역사적으로 통일 국가가 아닌 상태가 너무도 오래 지속이 됐다는 점도 고려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지역별 특색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 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처에 산재해있는 셈입니다.
이제 80년대의 축구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럽의 많은 구단이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축구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었습니다. 축구계가 경제논리에 의해 지배되면서 유럽의 자본력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미의 스타들은 남미에서 유럽의 스타들은 유럽에서 뛰는 상황(6-70년대 펠레가 뛰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일 뿐이었습니다.
세리에A 팀별 우승 횟수 from DP人 '석이' 님
그렇다면 자본력이 부족한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클럽들이 과연 북부지역의 클럽들과 자웅을 겨룰 수가 있었을까요? 가능하지만 힘듭니다. 흔히 말을 합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전통적인 빅4는 AC 밀란과 인터 밀란, 유벤투스, AS 로마라고 말예요. 맞습니다. 재미난 점은 앞서 언급한 클럽의 연고지 중 가장 남단에 위치한 지역이 로마, 즉 이탈리아 중부란 사실입니다. 시야를 넓히겠습니다.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팀들이 우승을 위해 대결을 펼쳤다던 '7공주 시절'을 볼까요? 앞선 4팀 + 라치오, 피오렌티나, 파르마입니다. 여기에서 라치오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북부에 연고지를 두고 있습니다. 라치오는 어디에 적을 두고 있냐고요? 라치오의 홈구장이 곧 AS 로마의 홈구장입니다. :-)
드디어 나폴리와 마라도나입니다.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당연히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클럽으로서 나폴리가 강팀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예요. 실제로 남부 지역에 위치한 나폴리는 세리에 1부 리그(대부분을 보내긴 했습니다)와 2부 리그, 심지어 3부 리그까지 다양하게 오가는 팀이었습니다. 84년이란 클럽의 긴 역사를 살펴봤을 때, 물론 67/68시즌과 74/75시즌에는 세리에A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소위 말하는 전통의 강호와는 상관이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나폴리는 80/81시즌 세리에A 리그 3위를 기점으로 83/84시즌에는 강등권의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클럽의 입장에서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반전시켜야만 했습니다. 84/85시즌을 앞두고 자신들의 에이스가 될 수 있는 선수를 찾기로 합니다. 당시 최대 규모의 이적료를 지불하며 한 선수를 영입합니다. 이어 바르셀로나의 악동 한 명이 나폴리 땅을 밟게 됩니다. 그의 이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나폴리는 마라도나와 함께한 7년 동안 클럽의 전성기를 달리게 됩니다. 86/87, 89/90시즌엔 스쿠데토를 안습니다. 88/89시즌엔 유에파컵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모두 마라도나와 함께 한 시절에 쌓을 수 있었던 기록물입니다. 그 이전과 이후엔 모두 얻지 못했고 얻지 못하고 있는 기록물이기도 하고요. 앞선 시기동안 나폴리인들은 자신들에게 끊임없는 좌절감을 심어주던 북부지역 사람들에게 축구를 통해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축구가 해당 집단 간의 갈등에 있어서 대리전의 양상을 강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PL만 봐도 알 수 있는 점이죠)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의 절정은 역시나 89/90시즌입니다. 역대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인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무적의 AC밀란{그 유명한 오렌지 삼총사('판 바스턴',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 및 환상의 수비라인('마우로 타소티',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파올로 말디니')이 버티고 있었죠}을 물리치고 스쿠데토를 차지했으니 말입니다. 훗날 아리고 사키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내게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 9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배한 것이냐고? 사실 브라질은 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이겼어야만 했다. 경기력에서 우리가 압도를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악의 순간은 그때가 아니다. 지금도 89/90시즌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당시 우리는 우승을 했어야만 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승리의 쾌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폴리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나폴리가 어느덧 남부 지역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으니까요. 21세기, 세리에B에 머물러 있을 때도 서포터들의 숫자가 전체 클럽 중 4위에 해당했습니다. 인기가 많은 절대 다수의 클럽들이 북부 및 중부에 위치해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팀이 남부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탈리아 북부(남부의 입장에서 다른 인종과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부르주아지의 지역)의 클럽 VS 남부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마라도나의 나폴리'와 같은 대립구도가 형성됐을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예전에 번역 기사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에서 3,300만 유로 상당의 탈세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귀금속을 하나씩 빼앗기고 있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몇몇 분들이 다음과 같이 의아해하시긴 했습니다. 왜 그를 강압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단순 물품을 압수하는데 그치고 있냐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을 했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과장하면 남부지역 전체) 단순히 과거의 축구 영웅에만 머무를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들의 대리자로서 북부지역 전체와 대결해 승리를 가져다준 신화적 인물이니까요.
2005년 9월, 나폴리를 방문한 마라도나//
'나폴리의 3대 보물이 무엇인가. 하나는 나폴리 항구, 다른 하나는 베수비오 화산, 마지막은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마라도나, 나폴리에서의 활약상//
덧글// 일종의 지역감정 및 인종갈등은 대표팀과 관련해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표팀 선수 중 북부와 남부의 선수 비율이 어떻게 되는가'가 항상 문제가 되니까요. 최근엔 "'리피' 감독이 왜 '카사노'를 뽑고 있지 않는가"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카사노가 이탈리아 남부 지역인 Bari출신이며 동시에 남부 클럽인 삼프도리아에서 뛰고 있기에(*. phodue 님께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남부가 아닌 북부 제노아를 연고로 하는 팀입니다), 북부 지역에 위치한 Viareggio 출신의 리피 감독이 자신의 스쿼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란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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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폴리 천주교회들에서 성모마리아 대신 마라도나 사진을 넣기까지 했었죠..
지금도 그런 곳이 있다고 하니
심지어 동상까지 만들려고 하다가, 마라도나가 저는 살아있습니다...;;이 말로 말렸죠
(문득 포항에서 시궁쥐 이씨 청와대 왕쥐 동상을 만든다고 하다가 욕먹던 거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