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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잡담] 영국인들이 프랑스어를 쓰던 시절 (스크롤 압박)

賣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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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6-26 01:41:50

며칠전 아더왕 이야기에 대한 댓글을 썼었습니다. 

원래 켈트족들이 살던 영국에 5세기 앵글로 색슨족이 침략해 들어와 점령했고,

이후 8-10세기 덴마크 바이킹족이 영국을 침략해 지배하는 데 성공합니다.

 

앵글로 색슨족들은 피지배민족이 된 열패감에서 벗어나기위해 민족 영웅을 창작하는 데,

자신들에게 저항해 싸우던 켈트족 전설을 짜깁기해서 영웅 아더왕 이야기를 창작해냈습니다.

 

그래서 역사나 전설로서 아더왕 이야기는 엉터리이지만, 영문학으로서 아더왕 이야기는 나름 대우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는 데, 아더왕 이야기(1138년 쓰여짐)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1380) 등의 중세 영문학들이 높이 평가받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8-10세기 덴마크의 바이킹족들에게 점령당했다가 풀려난 후,

11세기 영국은 프랑스의 노르망디공에게 패배해 점령당하면서(1066년), 이후 3백년정도 식민지 생활을 합니다. 그 결과 상류층은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게 되어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평민들은 영어를 사용하던 시절이 수백년간 이어졌습니다. 후에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세계 대제국이 되자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영국 우월의식으로 급변환하게 된다고 전에 브렉시트의 배경을 설명드리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영국은 언어로서 프랑스어를 동경하던 시절에 대한 반동으로, 이제는 의식적으로 영어를 띄우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더왕 이야기는 덴마크 노르만족의 침략(스벤왕)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노르만족(노르망디 공)의 침략 (1066년)에 대한 반발로 앵글로색슨족 영웅을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르망디 공의 영국 정복은, 따지고 들면 바이킹에게 영국이 두번째 점령을 당한 것이기도 한 데, 바이킹족 (노르만족)이 프랑스를 약탈하러 왔다가 프랑스에 정착하여 911년 봉토를 받고 프랑스왕의 신하가 됩니다. 이게 노르망디공인데, 백년 뒤 (1066년) 노르망디 공 기욤이 영국을 정복하여 노르망 왕조를 엽니다. 영국명으로는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Guillaume le Conquérant)이라고 불리웁니다

 

"영어는 서기 450년경에 영국으로 이주한 게르만 계통인 앵글족, 주트족, 색슨족 등 3개 종족의 방언에서 시작됐다. 앵글로색슨어라고 불리는 이 언어가 바로 고대영어의 효시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에 지각 변동을 불러온 것이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인에 의한 영국의 정복이었다.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던 바이킹 세력인 노르만인들은 그 후 300년간 영국을 지배해는데, 그 과정에서 프랑스어는 자연스럽게 영국의 행정, 사법, 문화 등 각 분야의 공식 언어로 자리잡게 됐다. from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aithbelief&logNo=80018082306&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13세기 전까지의 영국에서는 일반 평민과 하층 계급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고, 왕족과 귀족 계급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중적 언어 사용의 관습이 남아 있었다. 영국의 언어사용에 대해 14세기 중반 (1344년) Ranulph Higden이 쓴 Polychronicon이라는 책에는 영국인이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하는 억울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노르망이 영국에 온 이래, 모국어를 버리고 수업과 다른 과제들을 프랑스어로 배우도록 요구받고 있다. 또한, 신사의 아이들은 요람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도록 가르침받고 있다. 시골 사람들도 자신들이 신사처럼 보일 수 있도록, 프랑스어를 쓸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hildren in school, contrary to the usage and custom of other nations, are compelled to drop their own language and to construe their lessons and other tasks in French, and have done so since the Normans first came to England. Also, gentlemen's children are taught to speak French from the time that they are rocked in their cradles and can talk and play with a child's toy; and provincial men want to liken themselves to gentlemen, and try with great effort to speak French, so as to be more thought of."

 

 

1271년 당시에 Robert of Gloucester에 의해 쓰여진 시에서는 이런 영국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English Language in the Fourteenth Century

http://sites.fas.harvard.edu/~chaucer/language.htm


영국에는 슬픔이 많아왔다.

당신도 듣고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땅에는 많은 전투가 있었고 사람들은 정복당해왔다.

처음엔, 로마가 왕었고,

그리고 앵글족과 색슨족이 와서 전투를 치렀고,

그 다음, 덴마크가 와서 권력을 잡았으며,

마지막엔 노르망이 와서 아직 지배하고 있다. 

...

그렇게 영국은 노르망의 손에 떨어졌고,

노르망은 자기들 언어밖에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 집에서 그러했듯이 프랑스어를 말하고 자식들에게도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그래서 이 땅의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만약 프랑스어를 쓸 줄 모르면 깔본다.

그러나 하류층들은 아직도 영어를 쓰고 지키고 있다.

나는 잉글랜드를 빼고는, 자신의 언어를 버린 나라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Much sorrow has been often in England,

As you may hear and understand,

Of many battles that have been and men have conquered this land.

First, as you have heard, the emperors of Rome.

Then the Saxons and Angles with battles strong,

And then those of Denmark that held it so long,

At last those of Normandy that be yet here

Won it and hold it yet; I will you tell in what manner.


....

Thus came -- lo! -- England into Norman's hands,

And the Normans could not speak anything except their own speech,

And spoke French as they did at home, and their children did also teach,

So that high men of this land that of their blood come

Hold to all that speech that they took of them;

For unless a man knows French, men think little of him.

But low men hold to English and to their own speech yet.

I suppose there be none in all the countries of the world 

That do not hold to their own speech, save for England alone,"

 

 

 

그러니까 1066년부터 최소한 1344년까지는, 영국에서 공식언어가 프랑스이고, 학교에서도 프랑스어로 배웠던 거지요. (사실 영국 상류층에서의 프랑스어 선호는 19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심지어 현재에도 아직 그런 경향이 남아있습니다).

 

13, 14세기로 되돌아가서 보면 이게 꽤 기묘한 상황이었는 데, 단순히 프랑스어 vs 영어의 다툼이 아니라,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쓰고, 평민들은 영어를 쓰는 데, 그 안에서도 허드렛일하던 켈트 족 혈통들은 게일어(켈트어)를 영어에 섞어쓰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로마 문화의 잔재인 라틴어를 동경하며 쓰고 있었죠 (성경을 라틴어로 통채로 외어서 암송하는 것은 유럽 지식인들의 로망이자 지적 과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콜린 매컬로우의 '가시나무 새'에서 이 장면이 나오던가 할 겁니다).

 

어느 나라든 상류층은 자신을 차별화할려고 하지만, 특히 영국이 계급과 그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은, 영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거지요. 

원주민이었던 켈트, 뒤에 차례로 침략해온 로마, 앵글로색슨, 바이킹, 프랑스.. 계속 상류층의 언어가 덧씌워지고 기존 언어는 하류층 언어로 밀려나는 현상끝에 벌어진 모습입니다. 이런 영향때문인지, 오늘날의 영어는 'English'라는 단일 언어인데도, 아직도 영국 상류층들은 중산층과 다른 어휘와 문법을 구사하여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영국인들이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게 된 데에는 단순히 무력으로 정복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치? 그런 것의 마이너 버전이었습니다.

영토가 크고 땅이 비옥한 프랑스는 인구대국이었고 풍부한 식량과 화려한 문화를 자랑했습니다. 

14세기 백년전쟁이 시작될 당시 프랑스의 인구는 천칠백만명이었고 파리는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습니다. 같은 시기 영국의 인구는 375만명이었습니다. 

인구가 5배 차이나고, 국력 차이도 컸습니다.

 

 

문화 수준의 차이, 300년간의 식민지 지배로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열등의식은 뿌리깊게 박혔는 데, 

이렇던 프랑스의 문화지배도 예기치 않게 끝나게 됩니다. 

프랑스 신하인 노르망디 공이 곧 영국 국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프랑스 내에서 정치다툼이 일어나서 노르망디 공은 프랑스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으라는 프랑스 왕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aithbelief&logNo=80018082306&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영원히 변화할 것 같지 않았던 프랑스어의 우월성도 13세기가 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 흔들리게 됩니다. 먼저 1204년 존 왕 (John the Lackland)의 노르만디 상실이라는 사건으로 깨어진 것입니다.

동기는 존 왕이 왕비로 맞은 Isabel이 프랑스 귀족과 약혼 중에 있었다는 사실과, 존 왕이 왕위에 오를 때 유력한 유력한 후보인 조가 Arthur공을 살해하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자, 당시의 프랑스 왕 필립 2세는 존에게 프랑스 법정에 나와 심의에 응하도록 명합니다. 존은 자기가 노르만디 공이기 전에 영국 왕임을 상기시키고 재판에 응할 수 없다면서 소환에 불응합니다. 

 

프랑스 왕 필립이 궐석재판에 의해 노르만디 영토를 몰수하자, 이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귀족들도 존 왕을 등지게 됩니다. 이로서 영국은 영국이 소유하고 있었던 노르만디와 앙쥬 등지의 땅을 모두 프랑스 왕에게 뺴앗기게 됩니다.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 존 왕은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신민의 기득권을 존중한다는 대헌장(Magna Carta)에 서명을 하게 됩니다. 


지리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노르만디를 빼앗겼다는 것은 영국의 상류층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어의 측면에서 볼 때는 전화위복이었습니다. 영국 왕은 더 이상 노르만디 공작이 아니라 영국 왕일 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국의 지배계급은 자기들이 영국인이라는 자각을 더욱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와 다르다는 국민적 감정이 팽배해짐에 따라 영어는 상류계급 속으로 급속도로 침투되어 갔습니다. 1300년경에 프랑스어 학습서가 나온 것은 영어는 모국어로 자리 잡히고 프랑스어는 교양어로 학습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어가 명실공히 프랑스어를 몰아내고 국민의 언어가 되기에는 아직도 한세기가 넘는 시일을 요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국을 지배하던 프랑스 귀족들이 프랑스에 있던 영지를 몰수당해 영국땅에 잔류하게 되면서, 영어를 쓰게 되고, 프랑스 문화의 영국 지배는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13, 14세기부터 공식언어로 영어가 서서히 쓰이기 시작하는 데, 앞서 1344년에 쓰여진 영국 글에서 아직도 학교에서 프랑스어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14세기 중후반까지도 프랑스어의 위세는 어느정도 남아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의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어를 동경하던 시기(1066-1400)에 쓰여진 영문학들을 희소하다며 애지중지 하는 것입니다. 아더왕 이야기 (1138). 캔터베리 이야기 (1380) 등에 대한 칭송이 드높은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이제 프랑스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어 문학을 키우기 시작했는 데, 이백년쯤 지나 셰익스피어(1564-1616) 등장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신조어를 많이 썼다고 하는 데요, 이를 두고 그의 천재적인 언어감각을 칭송하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뒤집어보면 당시 영어에는 어휘가 많이 부족하였었습니다.  프랑스어를 3백년간 쓰다가 영어 부활시킨지 200년 정도밖에 안지났었으니까요. 아직도 공문서는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쓰이고 있었고, 빈약한 언어였던 영어에서, 수천개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문법마저도 일부 도출해내던 천재 극작가의 공헌은 그래서 컸던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400주기]'셰익스피-어(語)' 2000어휘 아세요-아시아경제(2016. 8. 8)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42211092229371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특징짓는 말 중 하나는 ‘언어 창조자’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지금은 널리 쓰이는 관용 표현들을 문법적으로 정착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는 약 2만개의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 중 약 2천개의 단어가 셰익스피어의 신조어라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인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공문서나 학술서가 라틴어로 작성됐다. 심지어 최초의 영어 문법책조차 라틴어로 저술돼 있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저술 활동으로 영단어가 풍부해지고 영문법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

힙합 음악이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진 ‘swagger’라는 단어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다. ‘으스대며 걷다’ ‘으스대는 모습’을 뜻하는 이 단어는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한다.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는 “What hempen homespuns have we swaggering here?”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현대어로 해석하면 “시골뜨기들이 왜 이리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야?”라는 뜻이다. 이 말은 흔들거리다라는 뜻의 ‘sway’에서 왔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배우자!' 라고 한들 안 와닿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익스피어 전집이 인기없는 이유죠.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그 이전에는 영국은 프랑스어를 썼었고, 그래서 언어로서 영어가 매우 빈약했었다'는 배경을 알고 상대적인 보정을 해주어야 비로서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영국이 식민지였다는 것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대뜸 셰익스피어는 위대하다 부터 가르치고 있으니 사람들로서는 뜬금없이 느껴지는 것이고, 그리고 설사 알게 된 뒤에도, 그거야 영국인들이 애국심 차원에서 일부러 띄워주는 것이지 우리가 공감해줄 필요는 없거든요. ^^;;

 

셰익스피어 외에도 그 즈음부터 영국은 계관시인이라고 해서, 영어로 시를 쓰는 시인들 중에서 잘 쓰는 이를 선정하여 왕실이 연금을 주고 왕실행사에도 초대하여 영어 시를 낭독하게 합니다. 의도적인 영어 사용하기 캠페인의 일환이었지요. 

 

그런데, 자국의 언어를 되살린 위대함을 칭송하고, 영국이 영문학을 융성케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조롱도 일어납니다. 아래 글은 18세기 영국 화가가 그린 '칼레 대문'을 놓고, 거기에 드러난 영국의 프랑스에 대한 감정을 해설한 블로그 글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그 애증의 역사를 그림에서 찾아보다 - 호가스의 '칼레 대문'

https://brunch.co.kr/@ukukuk/12

 

"...미술에서도 이런 라이벌 의식과 동시에 열등의식도 작용했었는데 보통 프랑스 미술에 비해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진 영국에서 종종 일어났다. 영국의 18세기 화가 윌리엄 호가스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는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목판화가였으며, 또 요즘으로 치면 신문 만평가이자 사회비평가였다.


그러나 그는 대륙, 특히 프랑스를 싫어하였다. 그의 그림 '칼레 대문 (The Gate of Calais)은 그의 프랑스에 대한 민족적, 모욕적, 인종적, 종교적 편견이 잘 드러난 그림이다. 그렇지만 사회 풍자가답게 익살스러움도 이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아주 큰 사이즈의 영국 쇠고기를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시켜놓았다. 몸이 비쩍 마른 한 프랑스 인부가 이 무거워 보이는 쇠고기를 당시 칼레에 있던 영국 주막으로 운송중이다. 이 그림 한복판의 쇠고기로 영국이 얼마나 번영하는지 호가스는 의도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이 쇠고기와 똑같은 선상에 피골이 상접한 프랑스 군인이 칼레 대문앞 바로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그림이 풍자적인 걸 쉽게 읽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큰 쇠고기 덩어리와 바로 대비되도록, 중앙의 뚱뚱한 카톨릭 프란치스코 회 수도사의 모습이다. 이 배가 퉁실하게 나온 수도사는 그림속 프랑스 사람들중 오직 뚱뚱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피골이 상접한 프랑스인들이고, 그 중 한 명은 스코틀랜드인이다.

 

그리고 그 뒤로 두 명의 바빡 마른 프랑스인이 돼지죽같은 수프를 바스켓에 담아 힘겹게 들고 가고 있다. 오른쪽 앞에는 굶어가는 스코틀랜드 자코바이트(스코틀랜드 반란자들을 지칭)가 주저 않아 기도하느냥 두 손을 모으고 있고, 양파 한 개와 마른 빵밖에 먹을 게 없는 지 그의 옆에 놓여있다." 

 

 

이어서 제가 저번 브렉시트 글에서 인용했었던 영문학 서지문 교수의 칼럼입니다.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 영국 고립주의의 뿌리 (2016. 6. 2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0/2016062002557.html

 

"영국에서 19세기까지, 양갓집 딸들의 가정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프랑스어 실력이 좋아야 했다. 우아하고 매력 있는 신붓감 조건에 프랑스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부잣집에서는 아예 프랑스 여성을 가정교사로 고용하는 일도 많았다. 또 프랑스 요리 인기가 높아서 프랑스인 하녀를 두는 가정도 많았다.


반면 영어 구사는 프랑스 상류층 영양(令孃)들의 매력 포인트가 전혀 아니었다. 따라서 프랑스 부잣집에서 영국 여성을 가정교사로 채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더구나 영국 요리를 '골판지 쪼가리'라고 비웃는 프랑스인들이 영국인 요리사를 채용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늘날은 해저 터널 고속열차로 20분이면 영·불 해협을 건널 수 있지만 유럽 대륙에서 발아한 르네상스가 불과 40㎞ 너비의 이 해협을 건너는 데는 200년 걸렸다. 그만큼 영국은 유럽의 변방이고 '한데'였다. 그래서 유럽 '대륙' 사람들은 영국인을 투박한 촌뜨기 정도로 생각했다. 사실 17세기 이후 영국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인권과 자유 부문에서 단연 세계 1위였음에도 영국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프랑스의 세련됨과 화려함에 열등감을 느끼기 일쑤였다. 동시에 라틴 민족이며 가톨릭교도인 프랑스인을 뼛속까지 불신하고 혐오했다. 샬럿 브론테는 그의 자전적 소설 '빌레트(Villette)'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프랑스인 여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사치와 환락과 연애만을 탐하며 '진실'을 존중하는 마음이란 털끝만큼도 없다고 치를 떨고 있다."

 

19세기까지도 영국 양가짓 딸들은 프랑스어를 동경하여 배웠지만,

그런 양가집 딸로 자라난 샬롯 브론테는 프랑스인들을 경멸하며 영문학 소설에 매진하였죠. 

 

 

 

이런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여 영국인들의 프랑스 문화에 대한 기묘한 이중성이 탄생합니다.

현재까지도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고,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뭔가 고급스럽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프랑스를 깔보고 영미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이 태도는 미국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영국식 악센트와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이란....  영국 악센트에 대한 동경은 미국이 식민지였었으니까 그렇다치고, 미국인이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을 왜 가지는지? )

 

영화 그린 카드 (Green Card) 를 보시면, 프랑스 하층민 출신 무식한 이민자 제라르 드 파르디외가 프랑스어로 시 읊으면서 있는 척 하니까, 오오! 하고 동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미국 상류층 가정이 나옵니다. 미국의 상류층 사회의 프랑스어 동경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거지요. 

 

 

영미문화는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열등의식과 그에 반동으로 일어나는 우월의식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아주 흥미진진한 소재입니다. 

 

영국이 프랑스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면, 미국은 짧은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DP분들은 영화를 좋아하니까 많이들 느끼시겠지만, 미국 영화에서 재즈와 록큰롤이 많이 나오고 이 두 장르를 소재로 주로 사용하는 주된 이유중 하나는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짧고 문화 뿌리가 얕아도, 가진 것을 최대한 반복해서 선전하는 것으로 보충하는 것이지요. 

 

 

 

P.S. 여담입니다만, 프랑스 문화의 식민지배를 3백년이나 받았는 데, 왜 영국 요리는 그 모양인가.

운때를 잘 못 맞춰서 그렇습니다. ㅋㅋ

 

영국이 이탈해나가고 난 뒤 이백년 후, 16세기 (1553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드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시집오면서 궁중요리사들을 데리고 와서 이탈리아 식문화를 전파합니다. 이후 프랑스 요리도 세계 탑 급이 된 거지요. (그래서 프랑스 요리 상당수는 이탈리아 요리와 겹칩니다. 베낀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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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WR
賣香人
4
Updated at 2017-06-24 21:19:24

본문에는 뺐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바버렛츠는 정말 저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바버렛츠를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찾아듣다가, 미국인들이 댓글로 써놓은 것들을 보게 되곤 하는 데,

개네들은 왜 동아시아의 한국인들이 1940년대 미국 유행을 따라하는지 궁금해하거든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키치라고 치부해버리면 편하겠지만,

미국 문화의 세례를 받고 만들어진 현대 한국 대중문화가 그 배경인 것은 확실하고,

하지만 우리가 미국 팝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1960-70년대 이후일진데,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1940년대의 미국 문화를 동경하고 오마쥬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삼백년 뒤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볼까요.

 

 

이런 고민들과는 별개로 

바버렛츠 자체는 매우 좋아하고 여전히 듣습니다. : )

 

시나몬롤
2
Updated at 2017-06-25 05:38:56

한국인들이 1940년대의 미국 유행을 따라한다고요? 그럴리가 없을 텐데요? 1940년대의 미국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어찌 보면 한국에는 잊혀진 시대인데요. 미국에서 보아도 1940년대의 미국은 현재의 미국과는 너무 다른, 골수 공화당 부류들이 아련한 환상을 가질만한 시대이죠. 현재의 미국이 1940년대의 미국 유행을 쫒는다라... 바버렛츠라는 그룹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만 일개 그룹의 퍼포먼스로 지나친 일반화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군요.

시나몬롤
2
Updated at 2017-06-24 21:34:52
지금은 위세가 다릅니다만 중세 전, 아니 중세 이후에도 유럽의 중심은 프랑스였습니다. 국력, 문화 모든 면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했고, 이것이 뒤집어진 것은 산업혁명이 지나고서였죠. 말씀하시는 것이 단지 영국과 프랑스만의 관계는 아니고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됩니다. 비슷하게 독일 귀족들은 독일어를 상놈들이나 사용하는 저급한 언어라고 여겼고, 당시 세계 공용어 취급을 받던 프랑스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죠. 영어와 마찬가지로 독일어에도 프랑스어 계통의 어휘를 꽤 볼 수 있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언어도 문화의 한 부분이기에 앞선 문화에서 뒤쳐진 문화로 전파가 되기 마련이죠.

비슷한 현상은 한국과 중국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어느 정도 국가의 틀이 잡힌 이후, 유럽과는 달리 귀족들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 언어를 유지했지만 독자 문자를 가지진 못했죠.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중국문자에 대한 의존성이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귀족들은 중국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을 차별화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문화는 아직도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어려가지가 있는데 영어를 최초로 문학적으로 사용한 작가...라는 이유도 분명히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세익스피어의 창작실력은 놀랍지 않습니까? 세익스피어가 유명한 이유를 단지 영어권에서 영어를 띄우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그의 문학성을 폄훼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독일어 권에도 비슷한 예가 있죠. 바로 괴테입니다. 그 전까지 상놈들이나 사용하는 언어라고 알려졌던 독일어를 문학적인 언어로 승화시켰죠. 영어나 독일어나 어차피 문화가 앞섰던 프랑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문호를 배출했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그러고 보니 과연 한국문학에서 중국문자, 혹은 중국문학에서 벗어나 순수 한국어로 창작해서 한국어의 문학성을 높인 작가라면 누구를 꼽아야 할까요?

참,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은 사실 미국에서 살다보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솔직히 영국-미국의 앵글로 색슨 족은 세련됨하고는 거리가 멀죠. 이 족속들은 세련됨보다는 실용성을 발전 시켜온 민족들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신이 실용성을 신봉한다고 해도 세련된 문화를 보고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죠. 그런 면에서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과 반발심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지요.

그러고 보니 한국은 중국 문화에 대해서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한국은 일말의 반발 심리가 있기는 할까요?
주먹들어가는입
1
2017-06-24 21:31:20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백년전쟁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네요.. 바버렛츠의 경우는 그럴 수 있다라고 보여지네요.. 미국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시기 미국과 한국이 동시에 같은 유행이 유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구요.. 오히려 미국 4~50년대 음악들 문화들도 같이 인기를 앋었던것 같아요..빙 크로스비나 이런 사람들도 인기있었지요.. 그래서 바버렛츠 같은 이미지가 복고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가 싶어요.. 우리나라의 예전에 무슨무슨 자매 이런 가수들하고 통하는 부분도 있구요..

WR
賣香人
3
Updated at 2017-06-25 04:01:30

바버렛츠 부른 세대가 그 Doo Wop 문화를 실제로 접해보지는 않았을 테고

(1970년대생인 저희들도 AFKN의 아폴로와 소울 트레인부터 시작하는 데요. Doo Wop문화는 우리 뒷 세대가 실물로 접하기에는 한 세대 이상의 격차가 있지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사회에서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한국 일상생활에서 영어 사용이 심해지면서,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도 심화되었고,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책이나 영화, 사진으로만 접한 미국 1940년대를 오마쥬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게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신기한 행동인 거에요.

제가 미국에 유학와서 경험했던 건 데, 제가 좋아하는 음악 (라이오넬 리치의 달달한 노래라든가, 찰리 파커의 재즈)를 이어폰으로 듣던 것을 급우들에게 들려줬더니 진짜 뜨억해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 음악들을 왜 듣느냐고.

얘네들에게는 우리로 치자면 '동남아에서 유학온 애가 아아~신라의 달밤이여 (1947년 히트곡) 를 즐겨듣고 부르는 걸 본 느낌'일 겁니다. 얘가 어쩌다 거기까지 가게 되었나 가 신기한 현상인 거죠. =_=

Listener
3
Updated at 2017-06-25 04:00:36

언급하신 한국의 Doo Wop문화에 대한 정서에 대하여... 

 

1930 ~ 50년대의 미국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향수를 일으키는 복고풍으로 자주 재현되는 현상은 일제시대와 연관되었다는게 일반론인듯 합니다. 

바버렛츠나, 원더걸스(노바디 비디오), 가수 아이유의 분홍신 MV에 나오는 빅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탭댄스, 남녀들이 서로 얼싸안고 춤추는 댄스홀 모습, 번쩍이는 화려한 아르데코 양식의 인테리어와 건축물, 등등을 제대로 경험한 적도 없는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그들이 이런 문화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면서 21세기인 현재에 소위 복고풍이라면서 다시 재현하는 근원은... 

바로 이런 근대문화가 일제시대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일부 상류층과 문화선구자인 예술인들에게 향유된게 시작이고 그후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진주한 미군이 가져온 소위 헐리웃 문화의 영향으로 당시의 대중들에게 뭔가 신선하고 세련되면서도 동경이 가는 원조 서양문화로 각인된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원조 미국문화는 현재의 한류문화의 뿌리이므로, 누군가가 어디 이번에는 우리의 과거를 재해석한 복고풍으로 한번 해볼까? 하면 자연스레 30~50년대 미국문화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는...

영화 모던보이나 암살, 밀정, 등에서 이런 모습이 잘 표현되었더군요. 대다수 국민들은 암울한 일제식민치하에서 억압과 고통을 받는 가운데, 일부 상류층과 기생, 유학파 등 소위 유행의 선구자(날날이?)들은 외국에서 수입된 사교클럽, 재즈, 카페, 자유연애, 백화점, 사교댄스 등의 신문화를 즐기며 대중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현상 말입니다. 

 

PS: 그러고보니, 지배와 피지배, 문화적 우월성과 질투가 겹치는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관계는... 일본과 한국 두나라 역사적 관계의 데컬코마니네요 ^^...

시나몬롤
2017-06-25 05:47:36

Listener 님 의견이 맞다고 봅니다. 일반 한국인들이 1940년대의 미국 문화를 동경할 이유가 없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요.

당연히 일본을 통해서 들여온 서구 문물에 대한 향수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사실 그나마도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나몬롤
2017-06-25 05:44:03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분 이후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은 오히려 90년대 전이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실 90년대 이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대중 문화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건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80-90년도의 가요를 좋아하는데 이와 비할 팝이 60-70년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라이오넬 리치의 음악을 신라의 달밤까지 가는 건 너무 간거고 변진섭이나 이문세의 가요 정도면 적당해 보이는 군요. 신라의 달밤이라면 컨트리 뮤직이 제격이겠네요.

주먹들어가는입
2
2017-06-25 00:05:02

두 분 글 읽어보니 그런 복고풍의 모습이 이해가 가네요.. 이런 주제 너무 좋아요..

S케이
2017-06-24 21:37:57

언듯언듯 보이는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이 조금 더 이해가 되는군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oz9
1
2017-06-24 22:35:11

매트릭스 리로디드 에서 메로빈지언 이었던가, 정보거래상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프랑스어로 욕을 시전하면 비단 수건으로 응꼬를 닦는 느낌이라고, ^^

몆년을 배웠지만 에트르동사 아부아르동사 그런건 다 잊고

마드모아젤 메르치복구 만 생각 나는,

듣기만 해도 코에 힘이 들어가는 프랑스어가

영국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의미가 있군요

오늘도 드론으로 살피는듯 한 색다르고 넓은 시선 감사합니다. 

니힐중년
2017-06-24 23:01:51

유럽짱깨 프랑스 ㅋㅋㅋ

Dortmann
2017-06-24 23:08:22

비 온 후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탁월한 식견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jin3
2017-06-25 00:08:06

저도 아주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자에 대한 동경을 떨친 게 겨우 30여년 전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잘 살게 되고, 예전에 지식인의 상징이 한자였다가 영어 줄줄 하는 사람이 지식인의 상징으로 된 시점이 그때 즈음인 것 같아요.

WR
賣香人
2
Updated at 2017-06-25 03:13:04

그게 재미있는 게요, 

일반인들보다도 지식인, 전문인 분야일수록 아직도 한자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의 법률 분야와 의학 분야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법전과 판결문은 한문이 대다수이고, 의학에서도 뼈나 근육, 병명 등을 이야기할 때 한자명칭이 많습니다. 그런데 처방전을 보면 영어와 라틴어로 쓰고, 설명은 한자어로 하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법전은 일본을 따라서 대륙법계라고 하는 데, 그런데 독일어를 많이 쓰기보다는 한자어를 많이 씁니다. 이게 꽤 기묘하더라구요. 

 

환자가 와서 물어볼때 의사의 설명에서 이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데,

의사분이 진단서는 영어/라틴어로 써놓고, 병명이나 부위 설명을 한자어를 섞어서 하는 데,

환자들이 못알아 들으니 다시 일반 한국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모습 말입니다.

 

어차피 의사 본인도 한국인이고 한국어로 말하면 될 것인데, 지식을 한자어 라는 2번째 단계와, 영어/라틴어라는 3번째 단계로 첩첩이 쌓아올린 것이죠.

 

저는 이것이 지식축적이 많이 필요한 전문인 분야일수록 새로운 지배문화/지식문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개화기 시대 지식인들은 당시 사회에서 기득권들이었고, 이미 한학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투자한 상태에서 신식 서구 문물을 접하자, 자신을 밑바닥에서부터 갈아엎어 영어(라틴어)로 기본부터 시작하기보다는, 한학에다가 윗부분만  영어(라틴어)를 접합시킨 거죠. 

그 문화가 사승관계, 도제관계를 통해 계속 이어지니까, 

한자와 라틴어가 뒤섞인 처방전을 쓰는 데, 정작 그 글을 쓰고 있는 당사자는 한자도, 라틴어도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현대 한국어로 생활하고 있는 의사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유학을 시키고 한문을 아예 배운적 없는 현재 0세~20대 중반의 한국인 세대는, 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영어로 채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가 과연 계속 이어질지는 좀 의문이에요.

미국의 쇠퇴와 고립주의,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되고 있어서, 어쩌면 영어로 바닥부터 머리까지 채워진 세대는 이 세대, 또는 그 다음 세대가 마지막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비행
1
Updated at 2017-06-25 04:50:51

 우리 법률이 대륙법계통인데 독일어가 아닌 한자를 많이 쓰는 건 한자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 우리나라의 법률에 대한 모든 것이 일본을 통해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이예요.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부터 그게 대륙법인지 영미법인지에 대한 인식을 하거나 구별을 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냥 사회를 조율한 법률이 일본 법이었구요, 법률가라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일본을 통해 법을 배운 사람들뿐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대로 해방이 되면서 우리 법률을 일본법을 그대로 배껴서 만들었고, 학교에서 교수를 하였고, 법원을 이루고 검찰을 이루었던 겁니다. 독일법이 일본으로 가면서 일본식 신조어들의 탈을 쓰고 일본식 한자어로 바뀌었는데 그게 그대로 우리나라로 다시 들어온거죠.

 법률용어로 쓰이는 한자는 우리는 전혀 쓰지않는 '궁박' 따위의 일본식 한자가 많습니다. 민법전을 열어보면 아주 가관이죠. 판결문 한글화도 이전에 이루어 졌지만 그저 한자를 한글로 표기할 뿐 일본식 한자는 법률용어로 그대로 쓰이고 있구요.

지금도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때 일본법을 그대로 가져와서 우리 형편에 맞게 수정울 하는 정도가 많습니다.

시나몬롤
2017-06-25 05:50:12

이것도 비행님 의견이 맞다고 봅니다. 한국의 법률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지식 체계가 일본을 통해서 수입되었고 용어도 마찬가지겠죠. 사실 몇 세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본식 한자 용어가 바뀔 시간도 없었고 이 분야가 좀 보수적이기도 하죠.

WR
賣香人
Updated at 2017-06-25 17:01:14

비행님이 말씀하신 부분-일본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한자어가 많다-라는 것을 쓸까 할다가 말았는 데, 지적을 하셨네요. 분명 그것이 통설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리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글을 썼는 데 너무 길어서 따로 본문글로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7218774&first_view=yes&page=0&sca=&sfl=&stx=&sst=&sod=&spt=0&page=0

시나몬롤
Updated at 2017-06-25 05:52:45

미국이 쇠퇴하기 전에 중국이 먼저 쇠퇴할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시는 것 같은데 아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현 세대가 영어로 바닥부터 머리까지 채워져 있다는 서술도 맞지 않다고 보지만 (한자로 이루어진 한국어를 쓰는데 어떻게 영어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할 수가...?) 어느 세대보다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겠죠. 그런데 이 세대가 마지막이 될 리는 없습니다.

춤추는대카피선
2017-06-25 01:21:29

경제도 재밌지만, 문화도 재밌네여. 추천~

별똥별집사
2017-06-25 04:54:21

재미있군요. 한국인들이 미국식 발언에 대한 동경으로 버터발음을 흉내내려고 별짓을 다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인들은 영국 발음에 대한 동경심이 있고, 영국인들은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이 있는거네요. 헐리우드 영화에서 러시아, 남미 악센트 영어 쓰는 사람은 마약다루는 사람은 갱단이고 프랑스 악센트 영어를 쓰는 사람은 매너있는 신사로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와국인 악센트 영어가 대접받지 못하지만 프랑스 악센트 영어는 인정해준다는 이야기도 있고. 문화적 열등감이란게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WR
賣香人
1
Updated at 2017-06-25 15:19:43

>한국인들이 미국식 발언에 대한 동경으로 버터발음을 흉내내려고 별짓을 다하잖아요. 

 

네. 이게 또 재미있는 부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버터냄새 나는 발음 (R을 발음하기 위해 혀를 Rrrr하고 굴리는) 은, 미국에 와보니 서부식 발음에 가깝더라구요. 그런데 보통 미국에서는 보스톤 발음을 고급스럽게 쳐줍니다. 서부식 발음은 안쳐줍니다. ^^;;

 

일단 미리 깔고 들어갈 게, 미국 영어에는 표준어라는 게 없습니다. 

동부 발음, 서부 발음, 남부 발음.. 어느 것도 표준어는 아닙니다. 다만 그런 와중에서도 좀 더 배운 사람 느낌나는, 상류층 언어같은, 지식인 느낌 나는 것으로 북동부 발음(보스톤)을 쳐주는 데요, 식민지 시대 동부에서부터 정착해와서 > 중부, 남부 > 서부 로 정착해온 탓도 있고, 북동부지역이 미국내에서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인 탓도 있고, 무엇보다도 하버드, MIT, 프린스턴, 아이비리그 대학 등이 전부 북동부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보스톤에서는 거지도 철학책을 본다 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보스톤 발음의 특징은 미국 영어중에서 가장 영국식 발음에 가깝구요, R발음이 약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버터 냄새나는 r 발음이 적습니다. 예를 들어 'car' 를 발음할 때, 보스톤에서는 "cah" 라고 발음합니다.  star 는 'stah'로, far 는 'fah'로 발음합니다. 단어끝날때 혀끝을 굴리는 r 발음이 없습니다.  단어 중간에서도 r 발음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보스톤에서는 weird를 'wee-id'로 발음합니다. r 발음이 날라갔죠. 

 

http://www.wikihow.com/Speak-With-a-Bostonian-Accent

  

그러니까 미국 본토에서는 영국풍의 보스톤 액센트를 고급영어로 쳐주는 데,

우리나라는 영국 액센트나 보스톤 액센트가 아닌, 미국 지방 애들이 말하는 혀끝을 마구 굴리는 R 발음을 '이게 빠다 냄새 난다'며 본토 영어라고 쳐주는 거죠. 

 

이것 또한 미국인들이 보고 꽤 재미있게 느끼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 TV에 나와서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는 외국인 보면 재미있잖아요. 근데 그게 표준어인양 알고 그 외국나라 사람들이 전부 그 사투리를 애써 배우는 거에요. 서울말을 놔두고.

미 본토인이 지켜보고 있노라면 꽤 재미있는 현상일 겁니다. =_=;; )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한국어에 없는 영어의 R발음에 집착한 나머지, R발음을 최대한 굴리는 것이 본토 영어 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착한익명 3E8Z
2017-06-25 15:12:55

덕분에 R 발음에 대한 부담을 덜었습니다. ㅋㅋ

R로 시작하는 단어에 대해서도 덜 굴리는 편인가요?

F와 V 발음은 지역별 차이가 없나요?

WR
賣香人
2017-06-25 15:20:48

아.. F와 V발음이 지역별로 어떻게 다를지..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 

엘사이드
1
2017-06-27 06:33:51

영국에서 어학연수 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뒤에오는 R발음을 하지 않고 장음으로 발음합니다. Park면 미국식으로는 파아ㄹ크 비슷하게 되는데 영국식로는 파아-크랑 비슷하게 됩니다. R의 정확한 발음은 네가 여자친구 사진에 키스하려고 입술을 내밀었을 때의 모양이라고 가르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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