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자동
ID/PW 찾기 회원가입

[시사정치]  인도인 친일파 - 라다비노드 팔 (Radhabinod Pal)

 
2
  2328
Updated at 2019-08-13 13:01:53


(극동전범재판관 기념사진. 뒷줄 가장 왼쪽 인물이 팔 박사)

 

2차세계대전 종료 후 일본에 대한 패전국에 대한 책임, 전범들에 책임을 묻는 극동전범재판에 최종 14명의 A급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판사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판사들중에서 유일한 동양인 판사인데요, 1명을 제외한 13명의 A급 전범에 대해 홀로 무죄를 선고한 인물입니다.

 

(그의 친일행적을 고마워하는 일본에 의해 헌사된 팔의 기념비입니다. 교토 호국신사 소재. 야스쿠니신사보다 좀 더 일찍 조성된 일본 호국신사의 원형입니다. 직접 촬영한 사진)

 

(토쿄 야스쿠니 신사옆의 전쟁광을 위한 전시관인 유슈칸 - 지금도 국가를 위해서는 전투기를 몰고 적진으로 뛰어들라는 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는 토나오는 장소입니다 - 에 조성된 송덕비입니다. 그에대한 일본인들의 삐뚤어진 애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는 구글)

 

 

팔은 왜 전범재판에서 일본의 A급 전범들을 옹호하고 일본을 비호해줬을까요? 몇가지 추정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 전쟁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팔은 인도를 영국에서 독립시키기를 원했고, 영국을 몰아내기 위해 방법적으로 일본과 손을 잡았습니다. 

* 전범재판 당시 유일한 아시아 국가 출신의 판사였습니다. 서양의 강대국 출신 판사들 틈에서 소외된 아시아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다고 합니다.

* 새로운 법을 만들어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도, 버마는 영국등을 비롯한 열강 연합군들의 지배를 받는 식민 국가였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지배하는 서구 열강들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은 민족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의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는데요, 2차세계대전 종료 후 일본에 대한 패전국에 대한 책임, 전범들에 책임을 묻는 극동전범재판에 최종 14명의 A급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판사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판사들중에서 유일한 동양인 판사인데요, 1명을 제외한 13명의 A급 전범에 대해 홀로 무죄를 선고한 인물입니다.

 

인도, 버마는 영국등을 비롯한 열강 연합군들의 지배를 받는 식민 국가였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지배하는 서구 열강들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은 민족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의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는데요, 일본과 나치의 지원을 받아 영국을 몰아내는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죠. 라다비노드 팔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지배하에서 승승장구했던 인물이 난징대학살, 인도차이나등에서의 대학살...을 모두 부정했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그가 일본의 우익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도움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려고 했던 인물이지만, 영국에 부역했던 인물.

법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의 법리를 주장했던 인물이지만 전후재판 이후 여러차례 일본을 드나들면서 영웅취급과 환대를 즐겼던 사람입니다. 

 

(도쿄 치요다구에는 그의 명복을 비는 신사가 있습니다) 

 

(일본의 영웅이라는... -_-;)

 

(아베신조가 중 팔의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일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하는 장면입니다.)

 

라다비노드 팔을 생각하며... 우리안의 친일은 과연 어떤 것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예전에 작성했던 일본 여행기중 하나입니다. 총 8개의 게시물로 묶여있습니다. 8월은 야스쿠니로 짜증을 내야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요즘 시국에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슬쩍 재소개해봅니다. ^^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7315440&sca=%EC%97%AC%ED%96%89&sfl=wr_name%2C1&stx=tri&sop=and&spt=-940775&scrap_mode=

님의 서명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5
Comments
2019-08-13 13:00:00

무다구찌 렌야가 임팔을 통해 인도로 들어갔으면 인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훈도시매독왜군에게 봉변을 당했을텐데.

2019-08-13 13:14:39

미얀마, 싱가폴 등 동남/남아시아 쪽을 보면 다른 나라 식민지였던 곳들에 일본에 대한 인식은 묘하게 우리와는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걸 봅니다. 여러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합종연횡 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더군요. 우리나라도 러시아 혁명이 아니었으면 러시아, 일본과 영국의 독립군 3개 축이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있었을 것 같아요.

2019-08-13 13:19:14

여행기를 뒤늦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올초에 왜 이런 책을 냈을까 싶었던, 도조 히데키 재판기록 속기록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엉뚱하게 과열되어 다들 엉뚱한 말만 하는 키배를 보는 독특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2019-08-13 13:20:35

인도도 동남아처럼 일본군에게 직접적인 점령을 당하지 않아서 그렇지.

(영토도 동남아 국가들보다 더 넓고 임팔 작전 당시 영국군이 필사적으로 방어해댔고..)

미얀마와 이웃한 인도 북동부 지역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는 등 피해를 적지 않게 입었죠.

2019-08-13 13:31:57

 이렇게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