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잡담] 방송에서 듣기 싫은 말 - 텐션
언제부터인가 예능방송의 멘트와 자막에서 "텐션", "하이텐션" 이라는 말이 아주 빈번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 자막이 쓰이는 상황이 아주 생뚱맞아서 처음 봤을 때 이질감이 아주 크더군요.
텐션(tension)은 긴장, 장력 등 팽팽한 상태를 뜻하고 감정적으로는 불안, 초조함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엉뚱하게도 누군가가 많이 흥분한 상태를 두고 "텐션이 올라갔다"느니 "하이텐션"이라느니 하는 말을 쓰더군요.
하이텐션이라 하면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간에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간 상태나, 음악에서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구절 등이 떠오르는데 말이죠.
실생활에서는 텐션이란 말을 그렇게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방송에서 자꾸 반복적으로 사용하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힙 한" 단어가 된 것인지 점점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이 "텐션"이라는 말이 어떻게 흥분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나...
이런 건 역시 나무위키 밖에 답이 없더군요.
"텐션"을 흥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더군요.
"텐션"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tension을 기백(spirit), 기세(force), 흥분도(excitement)와 같은 의미로 바꾸어 재플리시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모르는 단어였으나, 주로 인터넷 방송에서 재플리시계 콩글리시로 많이 사용한 영향으로 현재는 일부 젊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사용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2019년 시점에서는 사실상 한국 젊은 층 일상 회화에 완전히 정착한 상태.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 중 프라이머리의 '자니'가사에도 등장한다.
일본식 쓰임과 실제 영어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해당 맥락의 단어의 쓰임과 파생어에 대한 내용은 하이텐션 항목을 참조."
마지막에 하이텐션 참조 하라고 해서 또 눌러 봤습니다. 훨씬 더 길고 자세한 설명이 있더군요.
"영어 같지만 실은 대표적인 재플리시(japlish)이다.
영어권에서 이 표현을 쓰면 수능 직전인 고3 수준의 압박을 겪고 있는 상태 정도의 뉘앙스를 뜻한다. 본래 텐션은 긴장, 장력이라는 뜻이니 하이텐션은 그대로 해석하면 긴장이 아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라는 뜻이다. 북한 문제에서 외신을 보면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다(tension running high). 차라리 텐션을 빼고 'High' 만 있었더라면 (약빨고) 극도의 쾌감상태라는 뜻이라 어느 정도는 말이 될텐데, 텐션이 들어가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높은 갈등관계/긴장상황이 되어버렸다.
다만 일본에서는 그런 것 없이 거꾸로 마냥 들뜬 상태를 뜻한다. 비유하자면 수능 끝난 고3 같은 상태.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뜻이 정반대로 변한 셈이다. 일본에서는 텐션이란 단어 자체가 일본의 만화와 공중파 방송 등에서 많이 사용된 덕분에 일반적으로 컨디션+기분 상태 정도의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영어 교육 서적이나 영미권 문화 관련 서적에서도 원뜻과의 괴리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이를 의식한건지 동명의 AKB48의 노래 ハイテンション의 가사중에는 '잘못된 영어, 상관 없어'라는 구절이 있다. 일본인들도 일본에서만 통하는 일본식 영어표현임을 알고 있다.
한국어 표현으로는 '(기분이) 업 되다', '흥이 오르다', '불타오르다' 등이 하이텐션과 의미가 유사하다 . 다소 의미가 넓으나 '감정이 고조되다'도 유사한 면이 있다. 영어에서 '극도로 활동적이다'라는 의미를 표현할 때에는 hyperactive, hyper, hyped 등을 사용한다. hyperactive는 약간 문어적인 느낌이며 그냥 일상 생활에서는 비슷한 의미를 주자면 he's so hyped 정도로 사용한다. 그나마도 집중을 못한다는 약간 부정적인 느낌이 있으니까 사용에 주의하자. 긍정적인 의미론 그냥 excited(highly excited)나 upbeat, happy, joyful이라고 많이들 쓴다.
한국에서는 재플리시답게 오덕계에서는 꽤 유명하게 알려져 있었지만, 원래 영어의 뜻과 전혀 다른 의미로 일본에서 쓰이는 재플리시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거의 입에 담는 경우가 없었다. 일반인들이 언급하는 텐션은 거의 다 기계, 음악 용어이며 당연히 본 문서의 '하이텐션'이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벨트 텐션, 경운기 텐션, 화성학 텐션 등등. 이 경우에는 비교적 영어의 tension과 유사한 의미이다.
2018년 경에는 트위치의 밈으로 억텐이라는 용어가 자리잡았다. 억텐은 억지로 텐션을 높인다는 뜻으로, 억지로 격한 반응을 보이거나 흥분하는 것 같은 스트리머의 행동에 오덕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여 점차 트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덕분에 지금은 인터넷 사방팔방으로 퍼져 여기저기서 '억텐'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사용되는 중. 유사용례로는 찐텐, 혹은 진텐이 있는데 이쪽은 텐션이 억지가 아니라 진짜로 높아져서 하이텐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2019년부터는 일본의 용례와 일치하는 "텐션이 높다"는 표현이 정착된 상황이며, 특히10~20대 사이에서 비교적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 재플리시를 평생 입에 담아 보지 않았던 김태균, 송은이 같은 인물들이 생방중에 자연스레 쓸 정도로 40대까지 보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에서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쓰고 있는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인터넷을 시작으로 방송까지 무분별하게 쓰이는 말이라는 것이죠.
인터넷이야 워낙 하위 문화가 성행하는 곳이니 그렇다 쳐도, 지상파 방송에서까지 그 일본의 "틀린" 단어 사용을 확산시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굳이 많이 흥분했을 때 "하이텐션"이라는 말을 써야 소위 "인싸"가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게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익숙해져 버리면 영어로 말해야 할 때도 그렇게 잘못된 뜻으로 사용하지 않을까요?
마치 "스킨십"이나 "미팅", "컨디션"처럼 말이죠.
적어도 방송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잘못 쓰는 말을 알려주고 사용을 지양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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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탠스'라는 말이 참 그렇더라구요 꼭 그렇게 영어를 써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