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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Summerland 하이킹 /Glacier basin 백패킹, 업사이드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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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9-16 13:41:48

[기묘한 이야기에 나오는 아래쪽 세상, 부정적이고 난감한 것들 투성이]

 

넷플릭스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에 나오는 뒤집힌 세상(업사이드 다운)은 일상에서도 가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의 지난 글 중에 등산가서 길 잃고 죽을 뻔했던 일이 어떤 문명의 이기에 대한 맹신으로 말미암았고 주어진 현실보다 체제나 관념에 경도되면 스스로 죽을 길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는 교훈을 죽지만 않았지 몸 아프고 마음 놀라며 얻게된 아주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글을 썼었죠.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3742655

 

그러고도 지난 주말에 또 등산을 갔습니다. 이번에는 레이니어산 국립공원의 섬머랜드 트레일과 글래시어베이신 트레일인데요. 하루는 입구에서 캠핑하고 다음 날은 백패킹해서 빙하가 보이는 곳까지 들어가서 자고 나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그 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직접 트레일을 간다면 그 속의 변화무쌍을 느낄 수 있지만 구글에는 대표적인 위치의 사진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섬머랜드 트레일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m/search?q=summerland+trail&sxsrf=ALiCzsZxhDcXY7INim7XZccnGdJiX1g1ZA:1659969480920&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iK3P2ZvLf5AhX2AjQIHR4dCTsQ_AUoAXoECAIQAw&biw=1280&bih=1284&dpr=1.5

 

글래시어 베이신 트레일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m/search?q=glacier+basin+trail&tbm=isch&ved=2ahUKEwigtPmwvLf5AhUNKjQIHbwGB7cQ2-cCegQIABAA&oq=glacier+basin+trail&gs_lcp=CgNpbWcQAzIECCMQJzIFCAAQgAQyBQgAEIAEMgUIABCABDIFCAAQgAQyBggAEB4QCDIECAAQGDIECAAQGDIECAAQGDIECAAQGDoECAAQHlC_BVivDWDNE2gAcAB4AIABe4gB8QOSAQM2LjGYAQCgAQGqAQtnd3Mtd2l6LWltZ8ABAQ&sclient=img&ei=-R_xYuDTBI3U0PEPvI2cuAs&bih=1284&biw=1280 

 

지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중독된 듯 짐을 꾸려 떠났습니다. 전날부터 마음은 이미 서두르고 있었는데 아내가 무슨 바람인지 김밥을 싸가겠다고 하여 아침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상황은 피크닉이지만 분위기는 하모닉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언제나 좋았던 주차운이 이번에도 따라줘서 바로 하이킹을 시작했고 섬머랜드 캠프그라운드까지 올라갔다 왔습니다. 레이니어 산 정상 쪽 비지터센터만 10년 내내 달려 올라가기 바빴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화이트리버나 섬머랜드 트레일을 이번에 다시 보게 됐습니다. 거대한 레이니어산을 둘러싼 구석구석이 이렇게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전쟁 치르듯 올라가는 저 위쪽만 목표가 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 그래서 언제라도 호젓하고 아름다운 등산을 원하면 이곳으로 또 오게 되리라는 것등을 생각하며 올라갔었습니다.

 

[섬머랜드 캠핑장 화장실 뷰]

 

내려와서 화이트리버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백패킹퍼밋을 받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오토캠핑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 산행에 이어서 또다시 주어진 정보와 눈에 비친 광경의 괴리를 또 겪었고 작은 다툼이 아내와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금방 제 오판이 드러나서 몹시 미안했지요. 모닥불 피워놓고 마시는 와인은 여전히 좋았습니다. 집에서 취급도 못 받아 맨날 선택에서 제외됐던 아르헨티나 말벡을 들고왔는데 캠핑장에서 이렇게 귀한 맛을 보여줄 줄이야 몰랐습니다.

 

화이트리버는 유속이 빨라 항상 거품이 하얗게 일고 있어 강줄기가 내내 하얗습니다. 척 보면 아 그래서 화이트리버구나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텐트에서 자는 내내 강물이 내는 드럼 솔로같은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의식이 끊어져 순간 잠이 들었던 것도 같겠지만 기분은 계속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느낌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사진은 개울임. 수심이 얕고 가파른 개울물과 강물이 규모 말고는 다르지 않고 그래서 모두 하얗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문명의 혜택인 수세식화장실을 사용한 후 백패킹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올라갈 곳도 유명한 곳이기에 예약은 빈 자리가 없이 다 찼습니다. 하지만 지난 번 펠톤베이신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약은 매진이었지만 많은 자리 중 겨우 2자리만 밤을 지냈었죠.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두려웠었고 -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가는 백패커의 심정이 아직 자리잡지 않은 탓입니다. - 예약이 매진됐으니 캠프에 도착하면 낯설지만 같은 심정인 사람들과 나무 위의 새들처럼 반갑게 지저귈 상상만 했었으니 적막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지부조화에 빠졌던 것입니다.

 

제목에 쓴 업사이드 다운 중에 지난 산행은 다운에 해당되고 이번 산행은 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흰 눈을 머리에 인 산꼭대기가 멀리 보이는 오솔길이 죽죽 뻗은 삼나무를 양 쪽에 거느리고 있고 바로 옆에는 때로는 눈인지 얼음인지 분간 안되는 화이트리버가 드럼솔로를 연주하며 내려가고 있으며 오른 쪽 비탈에서는 굽이마다 개울물이 투명하게 바닥을 보이며 때론 꽃그늘을 반사하며 강으로 달려가고 있는 곳을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달려드는 산모기떼를 쫓으면서도 한발 한발 즐겁게 고생하는 등산길, 바로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구름이 있어서 더 멋있었던 오솔길]

 

[글래시어베이신 캠핑장 2번 자리 텐트 창문 뷰]

 

 [터줏대감처럼 캠핑장마다 나타나는 사슴, 사슴 있으면 곰 없다- 내 맘대로 속담]

 

사람들도 많아서 중간중간 인사하고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기도 하고 뒤따라오다가 추월하는 등산객이 너네 곰 봤니 하며 경험을 전달해주기도 하고 - 우리는 못 보고 지나쳤네요 -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안정적인 상황들만 이어졌습니다.

 

캠프에 도착해서도 멋진 풍경과 왁자지껄 암벽등반팀들, 아들과 함께 온 은퇴한 노인, 그리고 동양계 젊은이 그룹등 다채로운 여러 캠퍼들이 각기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고향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난 주에 기대했던 모든 것이었었죠. 업사이드와 다운사이드의 대비가 선명했습니다. 삶이 다 그렇겠죠? 언제나 예상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인생이 너무 만만해지겠죠.

 

등산을 갈 때마다 킨들(이북 리더기)을 싸갑니다. 매번 들고 다녔어도 망중한 중 '한'의 순간을 독서가 비집질 못했습니다. 이번에 글래시어베이신에서 잘 때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잤습니다. 전날과 달리 정말 푹 잤습니다. 코까지 골았다고 아내가 삐죽입니다. 덕분에 4시부터 깨서 책도 읽고 일출도 보고 호수에 비친 산의 거울상도 찍었습니다.

 

아내에게 1시간 더 자라고 하고 저는 바깥에서 오솔길을 복도 삼아 왕복으로 거닐며 책을 읽었습니다. 제법 선선한 아침 공기에도 제 체온을 느낀 모기들이 달겨들어서 앉은 자세로는 잠시도 편치 않았거든요.

 

황현산님의 비평집 '말과 시간의 깊이'의 맨 끝부분은 김수영, 서정주에 대한 비평이었고 맑은 정신을 기다려 읽으려고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다 읽고 맨 앞의 김현에 대한 비평을 보니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오랜 기간 걸쳐 읽으면 책을 시작할 때의 저와 마칠 때의 제가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김수영에 대한 글도 좋았지만, 제가 느끼는 서정주에 대한 일말의 형언키 어려운 불쾌함이 일제 치하에서 그의 평탄한 삶이라는 사실 때문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의 시의 궤적을 통해 서정주 시어의 민낯을 이렇게 정연하게 풀어주다니 산중의 아침에 이국의 별천지에서 서정주의 별스런 인생을 그의 시어를 통해 일깨워준 황현산님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두 산행의 대비를 곰곰히 되씹었고 황현산님의 다른 책을 더 읽었습니다. '말과 시간의 깊이'는 문학비평서이지만 '사소한 부탁'은 신문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우리가 같이 겪어온 세상사를 황현산님이 보고 느끼고 쓴 글들이라 비평서 보다는 더 살갑습니다.

 

신문칼럼을 멀리하는 이유와 디피의 잡다한 시사불편글들을 기피하는 이유는 같습니다. 대부분 어불성설이나 노이즈가 될 성싶어서입니다.

 

황현산님의 '사소한 부탁'은 분명 세상의 좋고 나쁘고 슬프고 화나는 일들에 대한 짤막한 글들이지만 마음을 격장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등산길의 개울물처럼 투명하여 바닥이 들여다보이고 꽃그늘을 반사하듯 올바름은 바위처럼 굳건하고 이치는 준엄합니다.

 

글이 아름답게 읽히려면 필자의 세계관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촉진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통 바른 소리하면 꼰대라고 대드는 것은 그 사람의 소리와 행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반발심이 들게 될 때입니다.

 

이고지고 등산길 꼭대기에서 만나는 맑은 호수처럼 그렇게 님의 글은 책 속에 남아있겠죠.

 

 [아름다운 베르네는 아니지만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리죠]

 

 [이거 직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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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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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2-08-09 02:08:13

멋지십니다!

2022-08-09 05:53:17

지난글에서 저 역시 조마조마 해졌던것과는 달리 이번글은 푸근한 분위기에 빠질수 있었습니다

화이트리버의 드럼솔로와 같은 소리.. 오래전 불영계곡의 한 여관에서 폭포같은 계곡물소리 들으며 잠이 어찌들었나싶었던 그런 느낌과 비슷할까 싶네요

WR
2022-08-09 06:08:39

밤새 물싸다구 맞는 기분이죠^^
자연 속에 들어가 그것의 소리를 캔슬해야 하는 아이러니지만 비행기와 호텔에 이어 캠핑에서 소음을 차단하는데 필수템이 됐습니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이제 캠핑도구입니다.

2022-08-09 07:33:38

직찍의 반영사진 역시 예술입니다

제가 꿈꾸던 캠핑의 풍광에 한 70%는 근접한거 같아요

1
2022-08-10 10:43:23

국문과 교수셨던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부께서 서정주 시인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당시 이 거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답니다. 책이나 제3자들에게선 절대 들을 수 없던 뭐 그런 얘기들. 당대 진보적 포지션의 작가들이나 국문과 인사들이 서정주란 인물에게 애증어린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별 이해관계 안 엮인 제3자들처럼 비난하기 힘들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 기억이 살짝 나네요.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8644143&sca=&sfl=wr_name%2C1&stx=axl18&sop=and&spt=-750971&scrap_mode=

황현산 선생 글 굉장히 잘 쓰시죠. 황 선생의 수필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네요. 생각의 깊이에 감탄하면서요. 예전에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희비극이 겹친 은퇴 공연이 끝나고, 황현산 선생의 수필에서 한 꼭지를 따서 써먹은 적이 있답니다. 이렇게 그랬군요 님의 포스팅과 접점이 생기네요. 

 

잡담이 길었는데, 경치 정말이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대륙의 경치는 여기선 경험하기 힘든 장대한 맛이 있단 말이죠. 시간 나실 때 또 좋은 공간 담아주세요! 

 

폭우가 쏟아지다 비구름 전선이 남하하면서 서울엔 해가 뜬 상태입니다. 그래봤자 이틀만에 뜬 햇살인데, 이토록 소중하게 다가올 줄이야. 

WR
2022-08-10 15:45:44
사람을 먼저 '알고'  이해하고 나면 '객관적' 비판이 어려워지죠. 조정래 작가도 서정주 시인 제자라고 하던데요.

황현산님이 문청이었고 투고도 많이 했지만 내내 실패했다고 하죠. 선생님이 너 시 한 편 쓰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 하루 걸리기도 하고 1주일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더니 낭비하는 시간이 많지라는 말씀에 포기하고 공부 쪽으로 돌아섰다고 인터뷰에서 말씀하시더군요. 대학 때 문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황현산님의 문체가 하루 이틀에 생긴 게 아니고 시어를 일주일 묵히면서 고르는 것이나 나중에 문체에 대한 자각과 고민을 많이 하면서 다듬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함부로 글쓰면 안되겠구나 생각들었습니다.
2014년은 제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해였는데 당시에는 dp를 읽는 자세도 지금과 달랐었고 axl18님 독자도 아니었어요.  글 읽고 왔습니다. 늦은 추천이 접니다.^^

서울의 해가 안 보여요.  눈부셔서가 아니라 지구 저편이라 그렇다네요. 눈치없이 물난리 났는데 음풍농월하는 글을 올린 것 같아 계면쩍던 참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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