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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엄마 된장

사자아빠
11
  785
2019-03-22 09:58:29

지난 주부터 아내가 약간의 다이어트를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 내일 아침부터 죽을 먹을 거라며 
제게 아침에 죽과 묽게 끓인 된장찌게를 요청.. 아니 명령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사 놓은지 한참 된 누릉지를 꺼내서 물을 약간 적게 넣어 되직하게 끓이고


말린 청어와 건표고버섯, 건 새우에 냉동실에 있던 청양홍고추 1개(자르지 않고 통채로 넣어 매운 향만 살짝 나도록)를 넣고 육수를 뽑고 임무를 다한 말린 청어와 건새우는 건져낸 후,


냉동실에 보관 중이던 바지락 7개와 감자 1개, 소량의 당근, 양파 반개를 깍뚝썰기하여 끓고 있는 육수에 투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지락 껍데기는 건져낸 후, 비장의 카드 '엄마 된장'을 살짝 풀었습니다.

 

파1개와 어제 저녁 마트할인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우리콩두부 한 모를 한 입 크기로 자른 후 국물에 넣고

확신에 찬 마음으로 한 수저 간을 봤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나도 모르게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내가 한 거지만 정말 맛있군!!' 합니다.

 

집사람이 냄새를 참지 못하고 나와서 수저를 들고 끓고 있는 된장찌게의 두부를 뜬 후 

급한 마음에 호호호 불지 않고 호호 불고 츄릅한 후 감동의 눈길로 저를 쳐다봅니다.


"오르가즘이 느껴지냐?" "누군가 TV의 먹방이 사실상의 포르노라더니 며칠 다이어트 하고 먹으니 쥑이지?"

말없이 수긍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죠.

"예전 우리는 형편이 많이 어렵지 않으면 집에 쉐프 한 명씩은 있었던 셈이야? 이것 먹고 싶다하며 뚝딱 해주고 뭐 먹고싶다하며 비슷하게라도 해주는 엄마말이야"

 

"맞아"

 

"너는 지금도 훌륭한 쉐프가 있는 셈이잖아?"

"또 지 자랑하기는"

 

이런 훈훈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공익근무하는 아들 놈이 현관 번호키를 다급하게 누르고 들어옵니다.

(어제 저녁 나가서 밤새 달린 모양입니다.)

 

"어! 된장찌게 끓였어? 냄새 죽이는데, 이따 와서 먹어야겠다"하고는 

옷 챙겨서 출근하러 뛰어 나갑니다.

 

아내는 "된장찌게 덜어 놔. 냉장고에 넣어 둬" "저 놈이 다 먹을지 모르니"

"엄마 맞냐? 아들이 먹는다는데"

"맛있잖아? 쟤는 양이 커서 다 먹어버릴 거라고"

저는 씽크대에 있는 유리밀폐용기를 꺼내 조용히 된장찌게를 덜어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작년 9월 엄마를 떠나 보내고 고향집에서 담아 온 마지막 엄마 된장이 조금씩 줄어드는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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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광기미학
1
Updated at 2019-03-22 01:04:43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곁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나이들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제 아이에게 볼때마다 저를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WR
사자아빠
Updated at 2019-03-22 01:16:30

맞아요. 하나 둘 씩 없어 지는게 너무 아쉽고 안타깝네요. 광기미학님의 좋은 모습을 자제분에게서 듬뿍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리까리
1
2019-03-22 02:24:25

마지막에 감정이입 되었습니다. 잘봤습니다.

WR
사자아빠
2019-03-22 02:27:04
시간이 약이겠지만 아직도 엄마생각이 많이 납니다.
미려노
1
Updated at 2019-03-22 03:33:15

지난주, 팔순 어머니께서 집을 사시겠다고 해서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사자아빠님 글보고나니..

어머니께 전화드려야 겠어요.....

WR
사자아빠
2019-03-22 04:28:18

전화 드리고 이야기 많이 나누세요.

 

저희 엄마는 평생 안 입고 안 쓰고 모은 돈으로 대출금 다 갚고 갖고 계시던 지방 아파트를 췌장암 발병 확인한 후 바로 팔아서 자식들에게 똑 같이 나눠 주시고 2달 후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 돈으로 몇 년 만에 중고차지만 아내에게 차를 사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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