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자동
ID/PW 찾기 회원가입

[차한잔]  [역사]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4
  844
Updated at 2020-08-14 11:03:58
내일이면 광복절입니다. 1910년 대한제국은 강압에 의해 일본제국과 합방조약을 체결했고 한반도인들은 무려 35년 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일본이 항복하고 8월 15일 한반도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소련과 미국에 의해 한반도는 양분되었고, 그 분단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간을 더 되돌려서, 한 번 살펴봅시다. 

때는 1896년 - 아관파천 

당시 고종, 또는 애국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조선대신이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그때면 너무 늦은 것이었을까요?

사실 세력균형 측면에서는 청일전쟁 후 이때가 가장 적절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청일전쟁 이전 청국은 조선을 사실상 보호국화하여 위안스카이가 감국정치를 시행하였고, 이는 이토히로부미가 총감으로 재직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국 세력이 조선에서 완전히 구축되었고, 그 자리에 일본이 들어와서 무력으로 한반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도 잠시,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독일은 그 유명한 삼국간섭을 시행하여 일본을 위협하였고, 일본은 대만과 배상금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러시아의 위협에 의해 일본이 완전히 위축되었다는 것은 조선인들도 잘 보았던 것이고, 친러파가 득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명성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조선 주재 외국 외교관들은 일제히 일본을 비난하였고, 조선에서 일본의 지위는 오히려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관파천입니다. 

한편 청국은 러시아가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보자, 러시아와 상호원조동맹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본이 추후 중국이나 러시아영토를 침범한다면 상호원조를 시행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로써 청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는 묘한 균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와중 조선 정부는 민영환과 윤치호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하여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 그리고 비밀협상을 추진합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선 군대가 신뢰할 만한 병력으로 훈련될 때까지 국왕의 보호를 위한 경비병 제공
2. 군사교관 제공
3. 고문관들. 국왕 측근에서 궁내부 일을 돌볼 고문 1명, 탁지부 고문 1명, 광산과 철도 고문관 1명 등 제공
4. 조선과 러시아 두 나라에 이익이 되는 전신선의 연결, 전신문제 전문가 1명 제공
5. 일본 빚을 청산하기 위한 300만 엔의 차관 제공

그런데 이는 민영환의 구두요구로, 서면요구가 아니었고, 당시 담당자 로바노프는 서면으로 다시 제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이는 핑계였고, 사실 이 요구를 받아들이건 러시아로서도 부담되는 것이기에 (특히 차관 부문) 완곡히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민영환은 로바노프에게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전해주었습니다. 

“조선은 몇 해 전 러시아와 함께 두 나라를 긴밀한 우호관계로 삼는 비밀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지원을 믿고 있기 때문에 1894년 이래 일본이 요구했던 모든 것에 대해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계획을 이행할 수 없음을 알고 격노했습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조선인 반역자들과 함께 10월 8일의 범죄를 자행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인들은 그 일이 잘못된 것을 깊이 느끼고 러시아에게 도움을 기대해 이렇게 5개 항의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는 단독으로 그 책임을 떠맡기를 조선이 기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러시아가 도와준다면 조선 정부는 더욱 확고한 토대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돌아가신 조선의 왕후는 러시아 쪽에 기울었기 때문에 친일파에 증오를 산 결과 죽음을 맞았습니다. 동양 신문들은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에 공동의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와 같은 협정은 갈등을 유발할 것입니다. 조선은 그런 협정에 의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국가적 재앙을 배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영환과 윤치호는 니콜라이 2세를 직접 알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 자리에서 민영환은 대담하게도 로바노프에게 건낸 메모의 내용을 직설적으로 반복했습니다. 

이하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

"민영환은 로바노프 공에게 제출했던 메모를 그대로 다시 반복했다. 황제는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어떤 조선인 반역자들”이라고 말하자 황제는 “대원군”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조선인이 바라는 것은 안정된 정부입니다. 조선인은 지난 3년 동안 생명과 재산의 안전감을 느껴 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지금 조선이 안정된 정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러시아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공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조선인 관리들 사이에 당파적 음모를 조장하게 될 것이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심각한 분규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협정에서는 전쟁이든 평화든 조선은 고통만 받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와 같은 협정에 결코 동의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머리를 흔들면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공동 영향력이 언급될 때마다 “아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니콜라이 2세가 조선사람이 반역자 어쩌고 하니까 바로 대원군이냐라고 하는 것도 신기하긴 합니다) 

그 다음날 민영환과 윤치호는 당시 동아시아 정책의 실질적 책임자였던 재무부대신 위테를 만나서 또 이어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위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하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 

“러시아는 일본이나 다른 어떤 나라가 조선을 공격하거나 문제를 야기하지 못하도록 대처해 조선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매우 단호합니다. 그러나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될 때까지는 러시아가 매우 서서히 이런 정책을 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외부가 극동문제를 조정하는데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조처도 잠정적일 것입니다. 현재 일본은 러시아보다 100배나 약하지만 조선에 가까이 있어서 조선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국에서는 틀림없이 러시아가 우세해 질 것입니다. 귀하께서 요청하신 문제에 관해 (1) 군사교관들은 제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2) 고문들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성주재 러시아 공사관에 장교들을 증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당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3) 차관은 조선의 재정상태가 조사될 때까지는 제공될 수 없습니다. 조선의 재정은 세관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러시아는 세관에 더 영향력을 행사해 믿을만한 담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4) 경비병 문제는 조선 국왕이 스스로를 보호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분을 보호해줄 수 있겠습니까?(들어보시라!) 내가 만일 그분의 자리에 있다면 대원군을 위시한 모든 내 적을 처벌할 것입니다.”

차관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못했지만 소정의 군사교관 파견은 성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몰랐던 것은 당시 러시아는 중국과도, 일본과도 계속 협상중이었다는 사실이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러시아에 직접 맞설 수 있는 힘을 아직 기르지 못했고, 또 러시아도 조선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독립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4
Comments
2020-08-14 11:17:45

말씀하신 고종의 입장...재미있는 소재죠^^.

저는 언제나 동학농민 잡자고 청나라 끌어들인 고종의 자업자득으로 귀결짓지만 그거 치곤 너무 잃은게 많습니다. 

2020-08-14 11:20:24 (122.*.*.69)

거대한 기관차들을 만들 수 있는 국가들과, 우마차나 끌고 다니던 국가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봅니다. ㅠㅠ

Updated at 2020-08-14 11:32:05

19C말~20C초반의 한국 근대사는 당시 고종이든, 대원군이든, 민비든 어떤 선택을 하였더라도 일본의 식민지는 이미 정해진 수순였습니다.
망해가는 청/러시아는 어짜피 제몸 추스리기도 어려웠고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던져주는데~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으면 아쉽기라도 할텐데, 그런 순간 조차 없었으니~

한국근대사는 참 쳐다보기도 싫네요.

2020-08-14 14:23:08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으면, 2차대전 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이 됐을지 의문입니다.
러시아도 2차대전의 승전국이니까요.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