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가난한 부모님이 주신 선물
가끔 지인들에게 재무상담 비스무리하게 조언을 줄 때가 있습니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세금이나 자산 운용 관련해서 저한테 종종 물어봅니다. 저의 지식도 일천합니다만,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성심성의껏 답변해줍니다.
최근 학교 후배가 전세집 문제로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얘기하다 말이 길어져 전반적인 재무상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배에게 순자산이 얼마냐 물었더니, 마이너스랍니다.
헉!어찌 그리 되냐고 물었더니 학자금대출이 남았다네요. 공부를 좀 오래 해서 정규직이 된 지 몇 년 안 됐습니다.
혼자 생활하기에 수입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보너스 없는 평달에 실수령액 3백 정도.
그런데도 돈을 못 모읍니다. 같이 일하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라 그런지, 아끼지 않고 막 씁니다.
본인도 본인 문제점을 아는데 쉽게 소비패턴을 바꾸지는 못 합니다.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일이,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이 됩니다.
저는 돈을 펑펑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돈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습관이 굳어져 돈 쓰는 게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어요.
1. 관광지에서 음식을 비싸게 팔면 밥 때가 지나도 안 사먹고 굶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가지 쓰는 게 기분 나빠서요.
2. 비를 흠뻑 맞더라도 우산은 절대 내 돈 주고 안 삽니다. 여기저기서 얻은 우산 집에 많은데 아까우니까요.
3. 어지간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습니다. 배가 터질 때까지 시킨 건 다 먹습니다.
4. 술 먹고 버스 지하철 끊기면 도보 1시간 이내 거리는 택시 안 타고 걸어갑니다.
5. 카드 사용 문자 알림 서비스 사용 안 합니다. 그 몇 백원이 아깝습니다.
6. 각종 공과금 납부기한 넘기는 거 용납 안 됩니다.
7. 등산이 취미인데, 10년 만에 등산화 바꾼 거 말고는 돈 들 일이 없습니다. 산을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하여간 돈 안 드는 취미라는 거 마음에 듭니다.
8. 편의점은 카드사에서 할인쿠폰 받았을 때 빼고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9. 물건 한 번 사면 잘 안 바꿉니다. 손목시계 15년 째, 자동차 14년째, 옷도 기본 10년, 핸드폰 5년째, 집안 가구도 신혼 때 산 거 그대로...
10. 집은 잠만 자면 되는지라 혼자 산다면 원룸이면 충분.
더 쓸 게 많은데, 읽기 지루하니 10개 정도만 썼습니다.
딱히 돈을 아끼려고, 돈을 모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데, 그냥 습관인 것 같아요.
저는 주거비 제외하고 백만원만 있으면 부족하지 않게 살 것 같은데, 그 후배는 이게 잘 안 되나 봅니다.
왜 그럴까....
성장환경이 달라 그런 것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저는 어릴 때 가난 때문에 엄마가 지지리 궁상 떠는 게 끔찍이도 싫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솜사탕 하나 붕어빵 하나 사주지 않으셨고, 외갓집인 서울까지 부산에서 비둘기호 타고 가고 그랬습니다.
(요즘은 좀 살 만 한데도, 어머니는 ktx 절대 안 타십니다. 무궁화호 타고 오셔요. ㅜㅜ)
과일은 항상 어디 한 군데 썩은 거 먹었고, 기름값 아깝다고 집에 보일러 튼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자식들이 와야 틀어요.ㅜㅜ)
후배랑 얘기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난한 성장환경에서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 그런 거 아닐까? 가난하게 살아도 절약하며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생활습관.
부모님을 싫어하면서도 닮아간다는 게 이런 부분 같기도 하구요.
저희 집 큰 딸도 이런 짠돌이 아빠를 닮아서, 관광지에서 가격이 비싸면 안 사먹더군요.
이런 것도 대물림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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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돈은 잘 못 버는데 별로 쓰고 싶은 곳이 없으니 가난을 잘 못 느끼고 사는듯 해요. 유럽 같은 해외에서도 주거비 제외 한 달 백만원이면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