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2020년 가장 큰 지름 - 집
2021년 첫달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시간 참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흐르는 요즘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작년 큰 지름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어쩌다 보니 30대 후반(이라기보다 마지막)에 패닉바잉에 동참한 것같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만,
상경한 지 20년만에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네요.
다만, 분위기에 동참했다기보다 그냥 저의 개인적인 타이밍이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가령, 불과 2년전의 4억보다 현재의 7억이 저에겐 더 현실성 있는 아파트 가격으로 다가오네요)
저의 상황
- 2001년 누님의 취직, 저의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올라옵니다. 부모님께서 노원구 끄트머리에 있는 오래된 9평짜리 아파트를 구매해 주셨습니다. -> 이것이 정말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아파트 구매가 쉽지는 않았지만 지방의 평범한 가정에서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4~5천만원 정도했던 것 같아요.
- 9평짜리 아파트에서 누님의 결혼과 함께 단지 내 조금 더 큰 평수(15평)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저는 기숙사 및 자취로 전환) -> 이후 몇년 전 제가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제가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명의는 부모님으로)
- 아기가 태어나면서(사실 그 전부터) 집사람은 집도 좁고 오래되었으니 이사를 가자고 합니다. 저는 불편한 점도 있지만, 대단지에 단지 내 자연환경도 좋고(나무들이 10층 높이 정도까지 울창하게 자랐습니다. 80년대에 조성된 단지라) 주변에 이마트에 지하철 교통도 편리한 이 곳에 만족하고 있었구요. 특히 아파트 가격이 비현실적이라... 현재 상황에 감사하며 살자는 생각이었구요.
- 제가 늦깍이 취직을 하면서 집사람의 이사 목소리가 더욱 높아집니다. 한창 아파트 값이 뛰고 있던 터라 저는 우리가 무슨 돈이 있냐 했습니다만, 여기서 반전?이... 자기가 모은 돈이 있답니다?!. 그동안 서로 재산을 공유하지 않고 각자 쓸돈은 각자가 벌어쓰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장보기 등에 더 많이 지출하는 형태로 생활해 왔는데, 집사람이 생각보다 돈을 많이 모았더군요. 대단!
그래서 진지하게 계산기를 두들겨 봅니다. 주택담보대출이 40%까지 되니까 60%를 우리가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부모님 명의의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전세 보증금을 빌려 받고, 아내가 모은 목돈과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어찌저찌 끌어모으면 6억 후반에서 (무리하면) 7억 정도의 아파트가 가시권에 들어옵니다.
분양은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고(청약통장이 예전엔 두 종류가 있었고 지금은 통합되었다네요. 이것도 모르고 옛날 통장 들고 갔다가 분양 신청조차 못했을 정도로 아파트 분양에 무지, 무관심했습니다) 강북권에서 가능한 아파트를 물색합니다.
어린이집-최소 초중학교까지 확보된 교통이 편리한 인서울에 방3개 (25평대) 아파트를 위 가격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최종 후보로 고려된 것이 90년대 후반에 지어진 강북의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살고 있던 아파트와 비교해 12, 3년 정도 이후에 지어진 것이지만 단지 내 놀이터도 잘 정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지하주차장이 있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주차 지옥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썩 내키지 않더군요. 30년 빚 내서 장만하는 아파트가 지금과 똑같은 복도식에 겨우 방하나 추가되는 것이라니.... 평생 빚을 지면서 얻는 소득치고는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만 뭐 조건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매물!이 있습니다. 메인 지하철 노선에서는 벗어난 우이신설선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지어졌고 30평대며 복도식이 아닌 계단식에 1층! 가격은 위에 봤던 아파트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싼 편이었습니다. 이정도면 빚내서 이사해도 만족스럽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열심히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한 아파트로 내심 정해둔 상태라 반신반의, 실제로 가서 매물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아내도 만족스러워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바로 가계약을 걸고(9월), 결국 12월 초에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후에도 여러 우여 곡절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한달 정도 지나니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 느낌입니다.
(이건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가 들어왔을 때 사진)
이사 한 지도 한달이 넘었네요.
이전주인 이사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것이라 리모델링을 못했습니다. 방 장판(거실은 이전과 그대로)과 거실, 방 벽 도배(천장은 이전과 그대로)만 새로할 여유가 있었어요. 올수리하면 좋았겠지만 크게 아쉬움은 없고 다만 한가지, 로망?이었던 열회수환기장치를 설치 못한 것이 계속 후회스럽습니다. (연식이 좀 되어서 환기 시설이 의무적으로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입니다)
그 이외에는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지하 주차장도 몇년 전에 led 조명과 도색을 새로 했다는데 정말 깔끔하고 주차도 여유롭습니다.
무엇보다 아기가 이제 두 돌이 다 되어 가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막 걸음마 하던 시기에는 이전 아파트처럼 거실이 좁아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는데... 마침 이제 막 걸음에 자신감을 갖고 뒤뚱뒤뚱 뛰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주방, 방들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 이사 잘했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확장 거실 30평은 3인 가족에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광활해 보이네요. 넓어서 나쁠 건 없습니다만 3인 가족에겐 25평 정도가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괜히 20평대 아파트가 인기가 많은게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사례가 평범한 사례는 아니겠지요. 부모님의 지원과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집을 구할 수 없었을 거에요. 이제 저에게는 30년간 갚을 빚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홀가분합니다. 악착같이 모아서 빨리 갚겠다, 라는 생각은 별로 안드네요. 매달 원리금 나가는 거 빼고 남는 돈은 펑펑? 쓰면서 앞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 갚을 날이 오거나, 그 전에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겠지요.
아무튼 요즘 시간 흐르는 거 보면 30년 금방 갈 것 같아요.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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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지금은 거실이 광활해 보여도 곧 아이물건 어른 물건 등등 살림으로 가득 채워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