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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뉴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제작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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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1 23:57:21

 

올 2월 열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후보 발표부터 시상식 직후까지 인종차별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룬바 있다. 여느 때보다도 인종차별 문제로 논란이 거세지자 급기야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사규정까지 바꿔가며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백인우월주의자임을 뻔뻔하게 밝히는 독일계 이민자 후손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가뜩이나 백인잔치라 비판 받고 있던 아카데미 시상식 측이 올 초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급조해서 내놓은 새로운 시상식 공략이 과연 어느 정도로나 현실화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미 대선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가 장기화 계획으로 기획중이었던 인종차별 극복 문제는 서서히 해결될 가능성이 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미 영화계가 원래 정치쪽에 민감한 곳이라 정권의 흐름에 따라 제작되는 영화의 방향이 많이 좌우된다. 일례로 클린턴 재직 시절의 헐리우드 작품들을 보면 클린턴을 연상시키는 훤칠한 외모의 백인 대통령 배역이 많이 만들어졌다. [에어 포스 원]이나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영화가 대표적으로 클린턴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오바마 시절에는 영화 속에서 흑인 대통령을 보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바마 재직 시절엔 흑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노예 12년][버틀러]같은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룬 드라마 기획물도 선호됐다. 보통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는 현직 대통령이 비슷한 느낌의 배역으로 만들어져 동시대 영화 속에서 긍정적인 인물상으로 묘사됐고 부시같이 극단적인 전쟁광이 재직하면 굳이 현직 대통령을 의식하고 영화 속 배역을 만들지는 않는것같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정치적인 흐름에 쉽게 휘둘리는 상업 시상식이라 트럼프 정권 눈치 보느라고 시상식의 흐름이 전보다 퇴보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구색맞추기 용도로 흑인, 유색인종 후보도 만들고 시상도 종종 해주는 수준의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다. 트럼프가 재직하는 한 인종차별 논란과 무관한 중립적인 시상식이 되기 위해 내걸은 올 초의 개혁안이 한동안 실속없이 정체될 수도 있는것이다. 원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중심주의적이었고 회원의 과반 이상이 나이 든 백인 남성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투표권을 가진 회원 중 94프로가 백인이었다.

 

근데 솔직히 예나 지금이나 아카데미가 백인잔치로 시상식의 색깔을 편협하게 유지하는게 유색인종으로 분류되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별로 고까울것도 없다. 수십년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백인잔치 논란은 주로 흑인들이 주도하는것 아닌가. 흑인들이 매년 유난을 떨어가며 인종차별 문제로 봉기를 일으키는것이고 그 과정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적시로 또 하나의 인종차별 흐름을 조성하곤 한다. 그래서 난 아카데미 시상식이 인종차별 한다며 매년 잡음을 일으킬 때마다 그래도 흑인들이 미국 내 주류문화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나마라도 생떼에 가까운 비난의 강도를 대외적으로 높일 수 있는것이라고 본다.   

 

 

백인잔치란 그늘에 갇힌 올 초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논란을 보면서 자동으로 30년 전 5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떠올랐다. 시드니 폴락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휩쓴 5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수상자 전원이 백인들로 구성돼 국제적으로 맹비난을 받았던 회였다. 온갖 기록을 다 가지고 있는 88년 아카데미 역사상 이런 경우도 흔치 않다. 58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는 백인잔치 시상식이라고 자주 욕먹고 있는 아카데미측에서 불거진 웃지못할 기록이었다. 지금도 백인중심주의적인 시상식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이렇게 수상자 전원을 백인에게 수여하는것은 일부러 만들라 해도 만들기 힘든 결과다.

 

이 해 시상식이 아카데미의 백인잔치라 비난 받은 배경에는 수상자 전원이 백인인 이유도 컸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0년대 역작이었던 [컬러 퍼플]이 작품상 포함하여 11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르고도 무관에 그친 충격적인 시상결과와 비교됐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척박한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컬러 퍼플]은 평단의 찬사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보다도 더 우세했던 높은 흥행에도 불구하고 무관에 그쳤고 20세기 초의 영국령 동아프리카 케냐 지역에서 흑인 노예들을 거느리며 부를 축적했던 유럽 백인 귀족들의 사랑과 인생을 조명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주요 부문을 휩쓸었기 때문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아카데미 수상결과에 대해서 아카데미가 인종차별을 한다며 까기도 쉬웠다. 지금도 11개 부문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무관에 그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라서 [컬러 퍼플]이 당시 받은 수모는 유명하다. 최근의 경우는 2014년에 10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르고도 한 개의 상도 못 받은 [아메리칸 허슬]이 있다.

 

그래도 이 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쓸어갔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선전은 합당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란 작품이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시대적인 제약으로 화자의 백인중심주의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 기준으로 카렌 블릭센 정도의 중립을 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 시절이란 20세기 초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고 이해한다면 그렇게 쉽게 이 작품을 백인중심주의로 점칠된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일 뿐이라고 재단할 수는 없을것이다. 아니, 그럼 덴마크계 귀족 출신의 부유한 백인 여성이 20세기 초에 영국령 동아프리카 지역이었던 케냐에서 18년 동안 커피 농사 하다 망하고 고향으로 귀국한 과정을 그리는 작품에서 어떤 류의 중립적인 시선을 기대한것인가.

 

영화는 실제 카렌 블릭센이 그랬던것처럼 그 시절 기준에선 상당히 진일보한 관점으로 식민지 지배하에 놓여 있던 케냐와 그 지역 흑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똑똑한 백인의 교화로 독립을 꿈꾸는 순박한 흑인들의 인격적 성숙 과정을 보여주는 [파워 오브 원]같은 작품처럼 편협한 시선으로 흑인들의 삶을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백인중심주의적인 작품이란것엔 반대한다. 백인이 주인공인 작품이고 백인사회를 그린 이야기인에 그걸 가지고도 백인중심주의적이라고 하는건 억지다. 카렌 블릭센이 젊은 시절을 몸바친 커피농장이 화재로 손실되고 파산했음에도 식민지 시절에 지역 주민들의 거주지를 마련해주려고 백방으로 힘쓰던 후반부의 노력만 봐도 영화가 얼마나 이 방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을 휘저으며 백인 남녀의 사랑행각에만 눈을 돌린다는 시선도 수긍하기 힘든 비판 중 하나다. 데니스와 카렌은 아프리카 자연과 하나가 됐던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아프리카 자연과의 흡수에 거부감이 없었던 그들의 겸손한 자세와 대자연에 대한 존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시각적인 공을 들이는건 당연한것이다. 거기다 케냐 현지 촬영 작품이다. 케냐까지 가서 실내촬영만 해오란것인가?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단순히 제품홍보용 배경으로 전락한 수준의 광고같은 영상미도 아니다. 존 베리의 종교적 색체가 짙은 장중한 선율을 타고 흐르는 대자연의 경관은 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그리고 아프리카를 사랑했던 데니스와 카렌의 순수와 열망이 수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영화는 두편의 원작을 합쳐서 각색했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 원작은 '열린책들'에서 'Mr. Know 세계문학' 시리즈의 61권으로 선정돼 2008년 9월에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영화의 명성에 비해 원작 번역은 늦게 시도됐는데 영화가 카렌 블릭센의 동명원작과 함께 각색한 주디스 서먼의 카렌 블릭센 전기집은 아직도 국내에서 미출간 상태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원작이 궁금했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카렌 블릭센의 수필집도 바로 사서 읽어봤는데 영화의 낭만성과도 거리가 멀고 특별한 사건이나 묘사로 전개되는 드라마 구성의 작품이 아니라서 굉장히 지루했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원작은 무척이나 차분한 성격의 수필집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영화의 두번째 원작이 된 주디스 서먼의 카렌 블릭센 전기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빨리 주디서 서먼의 카렌 블릭센 전기집도 번역됐으면 좋겠다.   

 

 

영화는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각색됐다. 카렌 블릭센이 아이작 디네센이란 필명으로 18년간 직접 겪은 케냐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37년 미국에서 발표됐다. 카렌 블릭센이 커피 농장도 불타고 재산도 바닥나면서 생활고로 케냐를 떠나 모국인 덴마크로 돌아온지 6년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 원작은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 수필집에 가까운 회고록이다. 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작품이다. 영화는 카렌 블릭센의 동명 원작과 전기작가로 유명한 주디스 서먼(Judith Thurman)의 카렌 블릭센 전기집인 [아이작 디네센 : 이야기꾼의 삶](Isak Dinesen : The Life of a Storyteller) 을 각색한것이다.

 

1982년 발표된 주디스 서먼의 카렌 블릭센 전기집인 [아이작 디네센 : 이야기꾼의 삶]은 영화로 각색되기 전까진 그리 알려진 작품이 아니었지만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원작의 후광을 입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주디스 서먼이 카렌 블릭센의 전기물을 집필하기 전에도 이미 카렌 블릭센의 동명 회고록은 여러차례 영화화가 진행됐었다. 그만큼 카렌 블릭센이 발표한 동명 수필집의 명성이 컸다. 그래서 영화도 주디스 서먼의 전기집 제목을 빌리지 않고 카렌 블릭센의 동명 수필집의 제목을 영화 제목으로 활용한것이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일화는 주디스 서먼의 전기집엔 있겠지만 카렌 블릭센의 동명 수필집엔 없다. 카렌 블릭센의 원작에서 데니스에 대한 언급은 몇 번 있지만 수필집의 내용만으로는 데니스와 카렌이 연인관계였는지도 전혀 추측할 수 없다. 카렌 블릭센의 수필집은 아프리카 풍경과 케냐 지역민들의 삶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짚어보는 회고록 구성이라 영화의 극적인 멜로드라마 구성이나 드라마 구성으로써의 일화와는 거리가 멀다.   

 

1937년 발표된 원작이 꾸준하게 명성을 타면서 카렌 블릭센은 두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첫번째 후보에 올랐던 1954년엔 헤밍웨이에 밀렸는데 당시 헤밍웨이가 본인 대신 카렌 블릭센이 상을 탔어야 했다는 수상소감은 유명하다. 당시 서구 문학계에서 동료 문인들에게 카렌 블릭센이 어느 정도로 존경 받는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이 예이다. 두번째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1957년엔 알베르 카뮈에게 돌아갔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 수필집은 1962년 수술합병증으로 카렌 블릭센이 사망하고 난 뒤 최종적으로 시드니 폴락이 영화화하기까지 수차례 헐리우드를 떠돌던 영화 기획안이었다. 1980년대 초, 시드니 폴락에게 기획안이 넘어 왔을 때엔 그동안 각색된 각본이 최소 5개는 있는 상황이었다. 각본도 다양했고 여러 감독이 욕심을 냈던 원작이었다. 시드니 폴락은 자신이 관여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그때까지 각색된 다른 각본들과 다른 점은 주디스 서먼의 전기집을 참고했다는데 있었다고 밝혔다. 시드니 폴락은 주디스 서먼의 [아이작 디네센 : 이야기꾼의 삶]이 발표된 1982년 이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각본을 쓴 커트 루드키가 시드니 폴락에게 초고를 보여준건 1982년 12월이었다. 그때부터 마지막 촬영을 끝낸 1985년 6월 6일까지 대본은 계속 수정됐다. 초고는 커트 루드키가 다 썼지만 그 뒤 시드니 폴락과 두번의 수정 작업을 거치며 1983년 대부분을 보냈고 그러다 1984년에 시드니 폴락의 친구인 데이비드 에리피엘을 합류시켜 몇 차례 각본을 더 수정하였다. 그러나 최종 각색자 명단엔 초고를 완성한 커트 루드키만 올라갔다. 영화는 크게 6막 구성으로 전개되며 각각의 막 사이에 도합 일곱개의 카렌의 해설이 나온다. 막 사이에 흐르는 카렌의 해설을 만들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독특한 분위기의 시적인 원작 회고록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각각의 해설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극 중반에 송년파티 장면에서 배우들의 발이 거의 안 보이는데 이는 촬영 당일에 비가 와서 배우들의 발이 흙에 젖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아카데미에서 7개 부문을 수상했던 1986년 연말에 개봉하였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후광을 입은 대작이었음에도 국내 개봉 당시 대작 외화 치곤 저렴한 45만달러에 수입됐다. 상대적으로 싸게 입수할 수 있었던데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주요 부문을 석권하기 전인 1985년 12월부터 한 수입사가 지속적으로 흥정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6년 43만달러 선으로 흥정이 거의 매듭지어졌고 최종적으로 45만달러에 가져올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986년 성탄 연휴 주간에 명보극장에서 개봉하여 누적 서울관객수는 348,967명을 모으며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였다. 1986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의 종합흥행 3위를 기록했다. 영화의 흥행은 극 중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모습을 따라한 샴푸광고로도 이어졌다.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덕분에 이국적인 배경 속에 펼쳐지는 서양남녀의 고전적인 멜로 대작을 뽑을 때 늘 거론되는 대표작품이 되었다.

 

북미에선 국내 개봉에서 딱 1년 전인 1985년 12월 20일에 개봉하였다. 개봉 첫 주부터 확대개봉됐고 개봉 4주차인 1986년 1월 10일에서 1월 12일 주간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북미 개봉 당시 거둔 자국 내 수익은 87,071,205달러, 월드 박스오피스는 227,514,205달러를 올렸다. 1985년 북미 종합흥행 5위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북미 202,871,900달러로 메릴 스트립 출연작 중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7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탈락한 부문은 연기부문이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메릴 스트립이,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가 올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수상 항목은 작품상,감독상,각색상,미술상,음악상,음향상,촬영상이다. 모두 받을만했다. 메릴 스트립의 여우주연상 수상 불발은 다른 많은 메릴 스트립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이력처럼 아쉽다. 이 작품에서의 열연 역시 아카데미의 형평성을 이유로 수상으로 연결되지 못한것같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1986년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는데 메릴 스트립은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두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연기부문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1913년 영국령 동아프리카로 지배됐던 식민지 시절의 케냐를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제작진은 케냐에 문명화된 거주자가 전혀 없는 자연의 곳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영화가 외화 수입 규제가 적용됐었던 1980년대에 국내개봉됐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7개 부문을 석권하며 흥행에서 두각을 나타낸지 한참 지난 1986년 연말에 이르러서야 국내 극장가에도 걸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원제의 단순한 직역으로 국내 개봉전까지는 [아프리카 탈출]이란 오역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86년 3월 말에 아카데미 시상식의 외신이 작성됐을때까지만 해도 이 작품은 [아프리카 탈출]이란 직역으로 더 알려졌었다. 원제의 OUT이 그 '탈출'의 의미가 아니라 아프리카로 '떠나다' 혹은 '가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정식 개봉일이 잡히고 난 뒤엔 제목이 정정돼 원제로 친숙해졌다. 

 

예전에 1990년대 초반에 발간된 영화 전문서들을 보다가 이 작품을 [아프리카 탈출]로 직역한걸 보고 황당했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 당시엔 원작이 국내 출간됐던것도 아니고 해외 소식이 지금처럼 발빠르게 전달됐던 시절도 아니니 [아프리카 탈출]로 직역한게 이해된다. 외화 제목을 자기들 감성으로 바꾸는걸 즐기는 일본에선 [사랑과 슬픔의 끝]으로 개칭했다. 영화의 감상주의적 정서로 봤을 땐 뻔하긴 해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처음엔 캐스팅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실존인물인 데니스 핀치 해튼은 영국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미국인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였다. 로버트 레드포드야말로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계층 골든보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데니스 핀치 해튼을 맡기엔 무리란 시각이 있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타고난 미국식 영어 억양도 걸리는 요소였다. 그러나 시드니 폴락과의 깊은 인연으로 시드니 폴락이 로버트 레드포드를 적극적으로 밀면서 캐스팅이 성사됐다.

 

시드니 폴락은 데니스 핀치 해튼을 설명할 때의 핵심은 소유불가성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면에서 영국배우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연출직으로 합류하면서 처음부터 데니스 핀치 해튼 역에 로버트 레드포드를 염두해 두고 있었던 시드니 폴락은 로버트 레드포드야말로 데니스 핀치 해튼의 자유로운 면모, 낭만성, 지성미에 부합할거라고 봤다. 실제로 촬영을 진행하면서 시드니 폴락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숙련된 영화적 경험, 지성미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데니스 핀치 해튼이 영국 귀족 출신이었다는것을 의식하고 제작진이 요구하면 영국식 억양으로 대사를 소화하겠다고 했지만 영국식 억양으로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초기 촬영본을 본 시드니 폴락은 원래 발음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초반부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는 영국식 영어로 연기한것을 지우고 미국식 영어연기로 후시녹음한것을 덧입힌 결과다. 어차피 데니스 핀치 해튼은 사망할 때까지 젊은 시절 대부분을 아프리카에서 보낸 인물이라 굳이 모국어 억양을 고수할 필요도 없었고 시드니 폴락이 보기에 미국의 우상으로 영화계의 상징적인 존재인 로버트 레드포에게 갑자기 영국식 영어 연기를 시키면 미국관객들이 어색해 할거란 판단에 영화 속 데니스 핀치 해튼의 영국 혈통은 캐스팅 문제로 흐릿하게 넘어갔다.

 

 

데니스 핀치 해튼은 1887년 태어나 1931년 비행기 사고로 추락사했다. 카렌 블릭센이 평생 사랑했고 생전에 카렌 블릭센 외의 연인들도 많았던 그는 카렌 블릭센보다 두살 아래이다. 영국 백작의 아들이었고 이튼 학교 졸업생이었다. 인문학자이자 현대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아프리카 자연을 경배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구속을 끔찍히 싫어하였다. 실제로도 미남이었고 자유로운 이미지, 혈통에 따른 매력, 호감가는 성품으로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카렌 블릭센과 연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베릴 마크햄과도 동시에 관계를 가졌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옮긴 다수의 수필집으로 알려진 영국출신의 베릴 마크햄은 영화 속에서 필리시티란 이름으로 소개되며 카렌 블릭센과도 친구였다. 카렌 블릭센도 데니스 핀치 해튼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것을 알았다.

 

이 당시 아프리카를 침략한 유럽인들의 성관념이나 결혼에 대한 인식이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난잡했다. 영화에선 최대한 건전하게 처리됐고 상세하게 묘사하지도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소개된 인물관계도만 봐도 막장이다. 카렌이 브로와 홧김에 정략결혼을 하고 결혼상태에서 데니스와 외도를 즐기고 브로도 아무 여자하고나 관계를 맺으며 부부가 암묵적인 동의하에 맞바람을 피운다. 데니스도 필리시티와 카렌 등을 오가며 성욕을 해결한다. 데니스가 필리시티와도 관계를 맺고 카렌과도 우정이란 명목 하에 10년 넘게 육체관계를 나누는것을 필리시티와 카렌도 알고 있다. 영화나 수필집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카렌은 데니스의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그리고 필리시티와 카렌은 절친한 사이다! 데니스가 복엽기 추락사로 이 세상을 하직한 날에 그의 비행 목적지는 필리시티가 있는 장소였다. 그걸 카렌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브로 못지 않은 데니스의 불건전한 양다리 애정 행위나 필리시티와 카렌이 데니스를 공유하면서도 그녀들의 우정 관계에 금이 가지 않는 등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 유럽인들의 풍습으론 자연스러운 연애 풍속도였다. 카렌의 모국인 덴마크만 해도 그 당시엔 단기간에 여러차례 정략결혼하는게 성행하였다. 그래서 카렌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노처녀로 인식되는게 거북하여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의 결혼이 무산되자 홧김에 그 남자의 동생과 결혼하고 그 남자를 따라 케냐로 떠난것이다.

 

당시 증기기관차의 간이식당 같은 곳에선 사교계의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받던 질문이 "결혼은 했냐?""케냐(어느 지역의 유럽 식민지에 사냐?)에 사냐"같은 것이었다. 영화 초반에 카렌이 노처녀로 남는것에 불안감을 느끼는것은 이 당시 풍습에선 당연한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 퍼진 20세기 초의 유럽 귀족남녀들의 불건전한 결혼과 지저분한 연애풍속도가 저속하고 난잡하다는것을 파악하고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은것이다.

 

 

 

 

 

 

 

 

 

 

난 정말이지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야말로 헐리우드 영화 속 최고의 연인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 둘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호흡을 맞추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으면서 남자주인공인 로버트 킨케이드 역에 로버트 레드포드를 대입하며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 각색된 영화를 봤을 때 너무 늙고 움직임도 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에 실망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속 모습은 지금도 적응이 안 된다. 프란체스카가 킨케이드를 놓치고 싶지 않아 절망하는 심정이 로버트 레드포드라면 이해가 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면 아리송한것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영화화 과정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캐스팅이 쉽게 거론되기도 했고 영화화 기획 초기엔 로버트 레드포드의 캐스팅이 거의 확정된것처럼 외신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 역에 로버트 레드포드 외의 대안은 떠오르지도 않았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잘 어울리기도 해서 이 둘의 멜로 연기를 한번쯤 더 보고 싶었던 바람이 컸다. 근데 만약 로버트 레드포드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판단에 의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캐스팅 선상에서 미끌어지지 않고 대중의 바람대로 로버트 킨케이드 역을 맡았다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데니스 핀치 해튼 역과의 기시감이 일어났을것이다. 두 배역 다 구속받기 싫어하는 호남형에 여자한테 인기 많고 여자가 더 매달리는 방랑객 같은 느낌이니 말이다. 하긴, 미국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영화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남녀주인공으로 어떤 배우가 참여했으면 좋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당시 남자배우 1위가 로버트 레드포드였고 여자배우 1위는 메릴 스트립이 아닌 소설 속 외모와 비슷한 풍모를 갖춘 데보라 윙거였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뒤 22년 뒤 로버트 레드포드의 맹한 연출작인 [로스트 라이언즈](2007)에서 감독과 배우로 조우했다.

 

참고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을 맡게 된 배경은 이렇다. 원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원작 판권을 구입하고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는 대중의 바람과 달리 로버트 레드포드는 너무 잘 생겨서 로버트 킨케이드 역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로버트 레드포드보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과 더 잘 맞는다고 판단하여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캐스팅하기 위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남을 갖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한 해석에 반해 아예 연출과 출연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맡겨 버리고 자신은 기획으로 물러났다.      

 

여주인공 캐스팅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하던 시드니 폴락은 평소 메릴 스트립과 친분이 전혀 없었지만 카렌 역으로 메릴 스트립이 적합하다고 판단, 호텔에서 만남을 가진 뒤 메릴 스트립이 적역임을 확신하고 섭외했다.  

 

 

이 작품의 성공적인 배역 섭외라고 평가 받으며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린 브로 블릭센 남작 역은 시드니 폴락이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가 한 악당 연기를 보고 캐스팅했다.

 

카렌은 빈털터리 남작이었던 브로를 따라 케냐로 떠나기 전 원래는 브로의 쌍둥이 형인 한스 블릭센을 무척 사랑하였다. 그러나 한스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시 사회풍습이 20대 후반의 여자가 미혼인건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난봉꾼 기질을 타고난 한스의 동생인 브로와 정략결혼하게 된것이다.

 

브로 블릭센은 대단히 매력적인 난봉꾼이자 뛰어난 사냥꾼으로 그 당시 유럽 사교계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인물이다. 브로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문제도 많이 일으켜서 결국 카렌도 그에 지쳐 브로를 떠났다. 브로 블릭센은 헤밍웨이의 [프란시스 마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에도 나오며 베릴 마크햄의 책에도 등장한다.

 

소유욕이 강했던 카렌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스 브로를 놓치자 그 대타로 한스의 쌍둥이 동생인 브로를 돈으로 매수하면서까지 한스의 품을 느끼려 한건데 이런 역에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라, 내가 보기엔 글쎄다. 연기야 잘 하긴 했는데 외모적인 매력이 너무 떨어져서 브로 블릭센의 거칠고 저돌적인 남성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단신에 탈모에 잘 생긴 외모도 아니고 비율 좋은 몸매와도 거리가 멀어서 연기력으로 넘어서기엔 한계가 있었다. 배역과 그리 적랍한 조합은 아니었다. 극중 카렌이 브로의 장악력에 눌리거나 브로의 무책임한 커피농장 사업추진으로 상속 받은 재산을 날리면서도 브로에게 얽매이는 모습 등이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의 모습을 놓고 보자면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카렌은 브로와 1925년에 이혼하고 이후 브로가 재혼하고 나서도 브로의 부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 결혼관에 있어서 카렌의 사고방식은 보수적이었다. 죽을 때까지도 그녀는 첫 결혼 상대자였던 블릭센 부인 이름을 가지고 갔다. 사후에도 카렌 블릭센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약점은 소유욕이었는데 이 때문에 촬영하면서 시드니 폴락과 메릴 스트립은 딱 한번 배역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말다툼을 했다. 극 후반에 데니스와 카렌이 같이 사는 문제로 다투는 장면에서 데니스의 행동을 저지하려 할 때 카렌의 "내가 허락 못해요"란 공격적인 대사 때문이다. 메릴 스트립은 카렌의 소유욕이 집착으로 비춰질까봐 우려를 했던것같다. 카렌의 약점이 소유욕이었다면 데니스는 개인의 사상을 추구하고 자유를 보장 받기 위해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다는데 있다. 극 중 버클리 콜의 입으로 전해지는 데니스의 일화 중 하나가 데니스의 이기적인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데니스에게 빌려간 책을 데니스의 지인이 돌려주지 않자 그 지인과의 인연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싹둑 끊으면서 데니스는 그 지인이 데니스라는 인맥 하나를 잃은것이라고 했다.   

 

 

 

카렌을 사랑하기도 했던 데니스의 친구인 버클리 콜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흑인 하녀 역의 배우는 모델출신으로 대사가 없다.  

 

 

이 장면이 어찌나 로맨틱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국내에선 샴푸 광고 뿐만이 아니라 [미스코리아]같은 mbc미니시리즈에서도 패러디됐다. 이 장면을 찍을 때 주변 강가에 야생 하마가 살고 있어서 메릴 스트립이 무서워 했다고 한다.

 

약 18년간 카렌이 머문 케냐 생활의 시간적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은 메릴 스트립의 머리모양 변화에 공을 들였다. 극 중 메릴 스트립은 다양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나오는것만큼이나 머리모양도 자주 바뀐다.

 

 

메릴 스트립 영화에서 [실크우드]와 더불어 드물게 메릴 스트립의 상반신 노출을 볼 수 있는 작품.  

 

 

영화 속 카렌의 케냐 집은 실제 카렌이 살던 집의 교외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영화 개봉 후에는 집 이름이 '카렌'이 되었다. 이 집의 원래 집 주인은 케냐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영부인인 마마 느기나의 집이었다. 마마 느기나의 집을 카렌이 살았던 집과 흡사하게 개조하여 촬영했다. 개조 당시엔 케냐의 오랜 가뭄으로 고쳐야 할 곳이 많았다.    

 

 

포스터에도 쓰인 이 장소는 카렌과 데니스가 교감하는 특별한 장소로 탄자니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영화 촬영 후 지금까지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데니스가 죽을 때까지 그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공유했던 두 여인, 카렌과 필리시티. 

 

 

도입부 덴마크 장면은 실제론 영국 북부에서 촬영한것이다. 이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야외 장면은 전부 아프리카에서 촬영했다.

 

시드니 폴락은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극의 시작을 눈에 덮여 있는 덴마크로 떠올렸지만 이내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연구 끝에 미스테리한 느낌의 아프리카 장면으로 도입부의 분위기를 잡았다. 노년의 여자가 꿈꾸는 구조로써 데니스 핀치 해튼이란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서서히 열어가는 형식을 취하고자 했다. 이 작품의 몽환적이면서도 느닷없이 시작하는듯한 구성은 이런 결정 끝에 완성된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극의 시작은 무조건 덴마크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한 시드니 폴락은 영국 북부에서 찍은 덴마크 장면으로 카렌이 어떤 이유에서 브로와 정략결혼을 하게됐는지 보여주고 있다.

 

"전 항상 도입부에 덴마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자가 아프리카로 가게 된 기묘한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강렬한 대조를 원했어요. 눈에 덮힌 하얀 작은 나라와 여자가 가게 될 굉장한 대륙을 대비시키고 싶었습니다. 핀치 해튼이란 미스테리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도입부에 대한 열쇠가 됐어요. 그래서 여자의 기억의 단편을 보여주면서 마치 그게 여자가 꾸는 꿈인 양 설정한 다음 의식세계로 돌아온 여자가 책상 앞에 앉아서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것. 그게 바로 덴마크로 가는 열쇠였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dvd의 감독 코멘터리 발췌   

 

 

데니스와 데니스의 오랜 친구인 버클리 콜과 자주 어울렸던 카렌. 카렌은 아프리카에 살았을 때만 해도 전문 작가는 전혀 아니었다. 그녀가 작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평생 사랑했던 남자인 데니스가 죽고 커피농장이 망하면서 파산하고 난 뒤 덴마크로 귀국하고 난 뒤부터이다. 카렌이 아프리카에 살던 시절엔 매체가 부족했고 집과 집 사이의 거리도 멀었기 때문에 입담 좋은 대화가 칭송 받았다. 이야기꾼으로서 카렌의 장점은 대화를 주도하는 능력에 있었고 이게 훗날 작가로서 카렌을 발전시켜 준 원동력이 되었다.  

 

버클리 콜은 실제로 카렌을 좋아했었다. 그는 흑수열병으로 사망했는데 이 병은 오줌이 까맣게 나오는 고통스러운 질병이다. 이 작품을 촬영했던 1984년에도 제작진은 아프리카 촬영지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상한 병에 걸렸다. 스크립터도 주형흡충이 몸에 침입하여 치료를 받기 위해 제작도중에 본국으로 귀국해야 했다. 카렌이 케냐에 살던 시절엔 괴상한 이국적인 질병이 만연했고 당시엔 페니실린이나 항생제 같은 약도 없어서 발빠르게 대처할 수도 없었다.    

 

 

카렌은 남자 한명 잘 못 만나 평생을 고생한 여자다. 그 남자 때문에 동시대 문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작가로 전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긴 했지만 그 댓가가 너무 혹독했다. 여성편력이 심했던 난봉꾼 남편 브로 때문에 매독에 옮은 카렌은 그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하고 소화불량에 걸려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생전에 카렌이 거식증이란 소문이 많았는데 실은 매독 치료 후유증으로 소화기관이 망가져서 아무 음식이나 섭취할 수가 없었다. 생굴과 샴페인 위주로만 먹었던 카렌의 특이한 식단도 그나마 소화가 가능한 음식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독은 비소로 치료했는데 비소는 신체에 유해한 아주 위험한 치료방식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것처럼 카렌은 매독에 걸린 뒤 1년 동안 모국인 덴마크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는데 이때의 치료 후유증으로 말년까지 고생했다. 척추 일부가 망가져서 위에 연결된 신경이 손상된것이다.

 

 

카렌이 다리를 치료해줘서 다리 불구를 면했던 실제 카멘타는 영화 촬영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카멘타는 카렌의 도움으로 요리사가 되었다.  

 

 

데니스 핀치 해튼은 모차르트 광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어딜 가든지 축음기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산업화된 현대문명을 거부하면서 한편으론 그 태생물 중 하나인 축음기를 통해 자신의 취미를 고양시키는 핀치 해튼의 태도는 모순적인데가 있었다.  

 

 

mbc'주말의 명화' 세대들에겐 가장 친숙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이미지. '주말의 명화' 타이틀 영상 편집용으로 이 장면도 쓰였다.  

 

 

극 중 표현된 나이로비 도시 전체는 야외에 지어진 오픈세트이다. 짓는데 거의 1년이 소요됐다. 촬영은 7개월이 걸렸다. 비용문제로 일이 서툰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우체국, 철도, 시장, 역사 등 실물 크기의 그 당시 건물들을 맨 땅에 설립했다. 제작진 대부분이 영국인이었고 제작비는 2,800만달러로 그 당시 기준에서 대작규모에 속했다.

 

시드니 폴락은 카렌 블릭센 전기집으로 이 작품의 두번째 원작을 제공해 준 주디스 서먼을 데리고 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 주디스 서먼은 카렌 블릭센의 전기물을 준비하느라 7년을 투자하였는데 그 덕분에 그녀의 카렌 블릭센에 대한 지식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수준이었다. 시드니 폴락은 촬영 중간중간에 주디스 서먼에게 조언을 구하며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카렌이 18년간 케냐에 거주하면서 카렌 집의 집사로 있었던 파라와 카렌이 나누는 우정도 감동적이다. 영화 개봉 후 메릴 스트립의 10살 난 아들은 파라와 카렌이 헤어지는 후반부 장면을 보다가 감격해 울었다.

 

영화는 주로 카렌의 인격적 발전과정과 데니스와의 사랑에 집중해 있긴 하지만 아프리카의 부족 문화에 대한 연구도 꼼꼼히 했다는것을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주디스 서먼의 전기물이 안 알려졌지만 영화 구성은 전기물에 빚지고 있다. 이야기는 사실 미화 없이 실화에 거의 근접한 형태로 각색됐다. 실제로 카렌은 케냐에 거주한 18년간 그곳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짓고 의료봉사에도 헌신적으로 임했다. 그녀가 치료해준 방식은 상처난 부분에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를 감싸주는 수준이었지만 의료시설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선 그 정도만으르도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카렌은 커피농장 화재 후 파산하고 난 뒤에도 뭄바사 지역주민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떠나기 위해 백방으로 힘썼다. 아프리카 식민지 시절에 흑인 노예를 거느린 백인 귀족의 행동에서 봤을 때 굉장히 앞서갔던 행동들이었고 그녀가 사후에도 존경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수필집을 읽어 보면 식민지 사상이 뿌리 박혀 있는 1930년대의 귀족 출신의 유럽 백인 여성이 쓴것이라곤 믿을 수 없게 타 지역과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으며 문장도 굉장히 절제돼 있다.   

 

 

오늘 날로 대입해 봤을 때 카렌의 아프리카 생활은 전형적인 도시인의 귀농실패 사례로 꼽을만하다. 카렌과 브로는 커피농사를 짓기 위한 사전조사가 너무 부족했고 안일했다. 그저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침략으로 얻어낸 토지와 노동력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그림같은 낭만을 키우며 충동적으로 이주를 결심했다가 실패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개봉 후 메릴 스트립이 입은 사파리 의상이 유행하였다.

 

 

케냐 지역의 야외 촬영과 동물의 비중이 많았던 작품이라 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자와 얽힌 촬영 일화를 여러개 남겼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는 전부 영국과 미국에서 데려간것이다. 시드니 폴락은 야생동물 천지인 아프리카에서 촬영하면서 정작 극에 등장하는 동물은 영국과 미국에서 데리고 가야 한다는것이 황당했지만 내막을 알아보면 그게 그렇지도 않다. 동물보호협회의 엄격한 감시 때문에 아무리 아프리카에 가서 촬영을 한다 하더라도 야생동물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 필요한 장면을 얻으려면 전문 조련사의 도움으로 동물의 움직임을 유도해야 했기 때문에 조련된 동물이 필요했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을 촬영에 이용하는것은 법에도 어긋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암사자와 숫사자 여섯마리를 아프리카로 데리고 가서 촬영을 진행했다.  

 

동물 촬영 때는 동물보호협회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안전하게 촬영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시드니 폴락은 사자가 과연 조련될 수 있는 동물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갖고 있다. 제작과정 일화를 들어보면 사자의 발톱을 빼고 열심히 조련시켜 촬영을 하는 사이사이에도 맹수적인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는 사자의 모습이 여러번 목격됐다고 한다. 그래서 시드니 폴락은 조련된 사자의 모습은 그저 운좋게 얻어걸린 경우라고 판단하는것같다.

 

극 중 메릴 스트립이 사자에게 공격 받을 뻔한 첫 장면은 망원렌즈로 촬영하여 눈속임으로 편집한 결과다. 실제론 영화 속에서 나오는것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사자가 있었다. 이 장면에선 다른 많은 동물촬영물과 같은 방식을 썼다. 실제론 조련사가 들고 있는 먹잇감의 방향을 보고 사자가 움직인것이다. 이 장면 외에 카렌이 군인으로 입대한 브로에게 구호물품을 전달해주려고 떠나는 여정 속에 사자가 소를 헤치는 장면이 있는데 발톱을 제거한 사자를 데리고 촬영을 하다가 사자에게 성이 난 소들이 되려 사자를 공격해서 사자가 풀이 죽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장면에선 사자의 공격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자를 이틀간 굶겨서 촬영했다.

 

메릴 스트립이 사자에게 채찍질 하는 장면에선 사자를 묶어 놓고 일정거리를 두고 때리는 시늉만 했는데 묶여 있는 상태에서도 사자는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겁먹은 사자의 모습을 얻지 못하자 제작진은 사자를 풀어 놓고 다음 날 재촬영을 했다. 동물보호협회의 조언과 감시를 받으며 촬영에 임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인간들의 영화 촬영 때문에 동물들이 개고생이다.

 

 

메릴 스트립표 화려한 드라마 연기가 전매특허로 발휘된 장례식 장면. 과장되고 뻔한 감상적인 연기라고 폄하할 수도 있고 실제로 노골적으로 감정을 호소하는 연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카렌과 데니스의 비행 장면 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훌륭한 감정 연기다. 이 장면은 재촬영 없이 한번에 완성했다. 다시 찍기엔 배우가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겠다고 판단하여 성의있게 장면을 준비한 뒤 집중해서 완성한 장면이다.  

 

영화는 대부분 동명 수필 원작과 주디스 서먼이 7년간 준비하여 집필한 카렌 블릭센의 전기집에 기초하여 실화를 충실히 옮겨낸 편이지만 후반부 카렌이 데니스의 죽음을 알게 되는 부분은 실화와 많이 다르다. 실제론 데니스의 죽음을 영화에서처럼 브로가 알려주지 않았다. 실제로는 카렌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것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서 데니스의 사망소식을 알게 됐다.  

 

브로가 카렌의 집으로 찾아와 데니스의 추락사를 전하는 장면은 시드니 폴락이나 각색자를 대표하는 커트 루드키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 장면은 이전에 만들어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각본에서 빼온것이다. 니콜라스 로그가 1970년대 초에 감독도 겸하려고 만들어 놓은 각본이 있었는데 시드니 폴락이 그 각본에 들어있는 데니스의 사망소식 장면이 마음에 들어 가로챈 결과다. 니콜라스 로그가 완성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각본 판권은 콜럼비아 영화사가 소유하고 있다.

 

카렌의 송덕문에 활용된 시는 케네디의 애용시로 잘 알려진 A.E. 하우스맨이 쓴 시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끝에서 두번째로 나오는 카렌의 해설이 유일하게 카렌 블릭센의 동명원작에서 발췌한것이다.

 

 

 

어마어마한 홍학떼를 가로지르는 데니스의 복엽기. 영화관 스크린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를 명백히 제시해주는 압도적인 장면이다. 대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겼던 데니스는 복엽기를 보자마자 비행에 대한 욕망에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명장면. 존 베리가 작곡한 종교적인 분위기의 3분 29초짜리 곡인 Flying Over Africa가 통째로 쓰였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재개봉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맥스관 아니어도 좋으니 스크린 큰 비스타 관에서 재개봉했으면 좋겠다. 이 작품에서 장대하게 뽑아낸 복엽기 비행 장면은 이후 [잉글리쉬 페이션트]나 한국영화 [청연]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아프리카 대자연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비행장면은 황홀함의 극치다. 이 장면을 찍을 때는 아직 사운드트랙이 완성되기 전이어서 존 베리가 작곡한 1971년작 [마지막 계곡]의 사운드트랙을 임시로 활용했다. 시드니 폴락이 [마지막 계곡]의 사운드트랙 느낌으로 존 베리에게 곡을 의뢰했고 그에 기준하여 종교적인 정서로 만들어진 곡이 Flying Over Africa이다.  

 

결국 데니스는 복엽기 추락으로 사망했는데 그는 재능은 많았지만 뛰어난 조종사는 아니었던것같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항공기도 초반엔 면허를 따기가 손쉬웠다. 이 당시엔 항공로도 수월했고 지상교신 말고는 비행을 관제해 줄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 구조만 적당히 알면 면허는 간단하게 발급 받을 수 있었다. 데니스가 하루만에 조종사 면허 따고 카렌과 비행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항공운항에 대한 체계가 자리 잡혀 있지 않았던 초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비행에 대한 미숙함 때문에 운명을 재촉하게 됐지만 말이다.

 

베릴 마크햄의 회고록에 따르면 핀치 해튼은 복엽기 추락으로 죽던 날 베릴을 만나기 위해 뭄바사로 오기로 했다고 한다. 카렌이 재혼하자며 데니스와 다툴 때에도 베릴 문제가 끼어들었으니 베릴 마크햄의 회고가 맞을것이다. 데니스는 생전에 개인주의를 위장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카렌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 했다. 그는 카렌과 관계를 나누면서도 베릴과 만났고 카렌 역시 브로 부인인 상태에서 데니스와 외도했고 브로도 카렌과 결혼한 상태에서 온갖 여자와 다 만났다.

 

 

존 베리가 담당한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은 현대 클래식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존 베리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도 유명하지만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도 효과적으로 쓰이면서 이 곡을 재조명시켰다. 이 작품에 삽입되기 전까진 그렇게까지 알려진 곡은 아니었다. 데니스가 모차르트 광이다 보니 모차르트 음악 중 덜 알려진 곡을 활용한것같다.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됐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운드트랙은 총 수록시간이 4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존 베리의 장엄하고도 아름답고 근사한 선율이 정화시켜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장가치가 높다. 리마스터링 재발매가 필요한 시점이다.

 

카렌이 매독 치료를 받으러 갔던 1년의 시간차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에선 어린이 합창단의 목소리를 입혔고 어린이 합창단 노래는 케냐에서 직접 녹음했다. 시드니 폴락의 작업방식은 촬영현장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촬영을 하는것이 특징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 당시엔 존 베리의 사운드트랙이 완성되기 전이어서 일단은 존 베리가 다른 작품을 위해 만든 곡을 촬영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활용했고 그 상태로 영화를 가편집한 뒤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존 베리에게 부탁했다. 시드니 폴락은 존 베리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 작업 때에도 이런 식의 작업방식을 통해 영화음악 작곡가에게 사운드트랙 구성을 요구한다.  

 

 

 

실제 카렌 블릭센과 데니스 핀치 해튼의 생전 모습.

 

카렌 블릭센 (1885~1962)

브로 블릭센 (1886~1946)

데니스 핀치 해튼 (1887~1931)

 

국내에선 1986년 12월 20일 개봉 후 1988년 10월에 상,하편으로 나뉘어진 비디오가 CIC에서 출시됐다. 비디오 시절인만큼 이 작품도 관람등급 수난을 겪어야 했다. 비디오는 엉뚱하게도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 내려졌다. 극장개봉 당시의 관람등급은 중학생 이상 관람가. 이후 dvd,블루레이 등급도 12세 이상 관람가였고 미국 개봉등급은 PG등급을 받았다.   

 

나는 2000년대 초반에 중고비디오 매장에서 2만원씩이나 주고 CIC비디오를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가 1장짜리 dvd가 1만원대 할인가로 인하됐을 때 dvd로 갈아타고 소장하고 있던 비디오는 처분했다. 1장짜리 dvd는 컬렉터스 에디션으로 출시됐는데 2005년에 2디스크 스페셜 에디션으로 보완되어 출시된 타이틀과 구성의 차이점이 없어서 대체 왜 디스크를 두장으로 나눴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1장짜리 타이틀보다 2장으로 나뉜 타이틀의 정보량이 더 적다. 영화 본편과 부가자료를 나눈 2장짜리 타이틀엔 영화 본편과 부가자료를 합친 1장짜리 타이틀에 있는 영문 텍스트 자료가 누락돼 있다. 2005년에 두장으로 나눈 스페셜 에디션이 20주년 명목으로 나왔는데 디스크 자체의 구성이 전혀 20주년 기념판답지가 않았다. 음향 정도가 보정이 됐지만 가정집에서 보기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블루레이의 구성을 보니 리마스터링에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의 시간도 dvd보다 긴것을 보니 부가자료는 조금 더 볼게 많은듯 싶다. 블루레이로는 아직 못 봤다. 블루레이 부가자료에 한글자막 지원이 되면 블루레이로 옮겼을테지만 한글자막 지원이 안 돼서 블루레이로까지 추가구입하진 않았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2디스크 스페셜 에디션 보정판은 아주 황당하게 제작된 타이틀이다. 그래도 1장짜리 컬렉터스 에디션을 처분하고 2장짜리 스페셜 에디션을 또 샀던 이유는 50분이 채 안 되는 영화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와 감독 코멘터리에 한글자막이 지원됐기 때문이다. 49분짜리 다큐멘터리 하나 담으려고 디스크 한장을 추가한것이다. 디스크 낭비다. 맨 처음 나왔던 컬렉터스 에디션엔 부가자료에 한글자막 지원이 되지 않았다. 디스크가 두장으로 나뉘었다고 해서 부가자료 분량이 추가된건 전혀 아니다. 한글자막이 지원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나 2디스크 스페셜 에디션의 구매가치가 형성된다.   

 

 

카렌 블릭센의 삶을 보면 "예술은 잔인한것이다"라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그녀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데는 18년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겪었던 곡절많은 삶이 토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브로와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브로와 케냐에서 평범한 부부로 평탄하게 살며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커피농사나 하며 살았더라면, 아니면 데니스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덴마크로 귀국할 일도 없었을것이고 설사 덴마크로 귀국했다 하여도 작가로서의 삶을 살지도 않았을것이다. 작가로 성공하게 된 계기가 평생 사랑했던 데니스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었고 기인으로 알려지며 평생 병마와 싸우다 결국 수술합병증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죽게 된 이유도 브로한테 옮은 매독을 치료받으면서 생긴 후유증 탓이었다. 그렇게 젊은 시절에 치이고 아픈 결과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번이나 오르며 그녀를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성장하게 해준것이다. 카렌은 1931년 데니스의 죽음 뒤 슬픔에 빠져 은둔해 있다가 아이작 디네센이란 필명으로 1934년부터 전문작가로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1937년 공개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 단편 [바베트의 만찬]과 함께 가장 유명한 카펜 블릭센의 작품으로 남았다.     

 

시드니 폴락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영화화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이 작품의 큰 틀을 '자유와 소유'로 정했다. 카렌과 데니스는 아프리카 케냐와 함께하며 끊임없이 자유와 소유의 문제로 화합하고 갈등한다. 자유를 상징하는 데니스와 소유를 상징하는 카렌의 모습에서 1차 세계대전이 싹을 키운 유럽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릇된 이념추구와 사랑의 모순이 탐미적인 영상미 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수많은 짐보따리를 기차에 싣고 브로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케냐로 가는 초반부의 카렌은 영화 종반까지도 자기가 만든 학교, 자기의 하인들, 자기의 커피농장, 자기의 집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제의 데니스를 자기것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끝없이 갈망한다. 그녀는 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실물에 대한 소유에 집착한다.

 

그러나 소유와 정반대 지점에 놓인 데니스와 20년 가까이 지내고 20년 가까이 키워낸 커피농장이 그녀의 소유권에서 소멸됐을 때 비로서 소유하지 않았을 때 진정한 소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소유의 집착을 버렸을 때 평온함을 얻고 자유의 해방감이 뭔지 조금씩 알아차린다. 마찬가지로 이기적으로 자유를 얻기 위해 힘겨루기를 했던 데니스도 카렌의 소유욕을 통해 소유할 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치를 파악한다. 데니스의 무덤에 잠시 휴식을 취하다 떠나곤 하는 두마리의 사자가 잠시의 소유를 통해 자유를 누리는것처럼 카렌과 데니스가 꿈꾸던 자유와 소유의 삶도 부질없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잠시 빌려쓰고 돌려줄 때의 여유를 알아가려던 긴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보는 이를 숭고하게 하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위대함, 종교적으로 겸손한 삶의 자세, 작품의 주체적인 여성관, 자유와 소유에서 갈등하는 두 남녀의 그랜드 로맨스 정서에 넋이 나가 오래 전부터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나를 매료시킨 작품이었다. 그래서 비디오, 원작, dvd, 사운드트랙cd 등의 지속적인 소장욕을 자극하며 나를 소유의 의무감에 빠지게 했다. 이 작품은 내가 한창 영화를 알아가던 어린시절에 '내 인생의 베스트 영화 탑10' 따위 같은 영화 순위정하기 목록을 뽑을 때마다 항상 순위권 상단에 올렸던 작품이다. 이런 목록 만든지도 까마득한데 만약 지금 내 인생의 베스트 탑10같은 영화목록을 다시 만든다면 과연 이 작품이 순위권에 들어갈지, 순위권에 집어 넣는다면 몇 위 정도나 할지 살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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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11-22 00:12:19 (180.*.*.192)

 왜 이런 영화들은 요즘 다시 개봉이 안 되는지 너무 아쉽습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볼 당시 비행기 횡단 장면에서 그야말로 벅찬 감동을 느껴

오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

 제 기억으론 이 영화 화면 비율이 2.35 : 1 이 아니고 1.78 :1 일 겁니다

동시에 개봉하였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내츄럴도 1.78 :1 스크린 비율이었는데

당시 로버트 레드포드 출연작 두편이 겨울 극장가를 뒤집어 놓았죠

2016-11-22 01:59:58

 옛날 생각도 나고 ... 정성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Updated at 2016-11-22 09:31:32

 초딩 때 극장에서 보다가 잠들었는데 저 비행 장면에서 웅장한 음악에 놀라 깨고 나서는

끝까지 넋을 놓고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정말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입니다. 

메디슨 카운티 로버트 레드포드 캐스팅 불발은 두고두고 아쉽죠. 동림옹 연기가 나빴다는 건 아니지만 

10년만 더 젊었더라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넘 과욕을 부리신 느낌이에요. 

Updated at 2016-11-22 09:51:28

이 영화는 정말 존 배리의 음악이 절반은 먹고들어가는 작품...

지금도 출퇴근길에 종종 듣는답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2016-11-22 09:54:33


'브레드 피트'의 노년 얼굴이 궁금하면 지금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면 되겠네요~

저때 당시의 얼굴이 근래의 '브레드 피트'랑 상당히 많이 닮았네요~

 

 

2016-11-22 10:06:01

 컬러퍼플은 피카디리에서 아웃오브아프리카는 명보에서 각각 관람했었죵....어릴때라 저런영화들을 재미나게 볼수는 없었지만 특히 아웃오브아프리카는 초반부터 최면수류탄이 정말 장난 아니였죠...ㅎㅎ..그당시에도 재미면에서는 컬러퍼플은 어린영화광에게도 스필버그라는 후광!!!! 충분히 재미가 있었으며 오프라윈프리(충격!!  AFKN 토크쇼진행자가 ㅎ) 와 대니글로버의 쓰레기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요...우피골드버그라는 못생긴 배우도 워낙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어서...감동그자체와 드라마적 제미도 정말 뛰었낫었던...문제는 그다음해에 개봉된 흑인쓰레기 대니글로버가 리썰위폰에서 너무나도 보수적이며 젠틀하고 가정적인 흑인형사로 나와서 정말 충격 !!!....

아웃오브아프리카는 존배리의 음악만 , 광활한 아프리카의 풍광, 못생긴 아줌마의 머리감기장면만...남았던 ㅎ...나중에 DVD로 보니 영화가 이토록 재미가 있었는지 ㅎㅎ...시드니폴락의 안정된연출력과 수려한화면 웅장한 음악이 몸을 감싸는 하지만 여전히 침략자백인중 조금 깨어있는 진보적인 백인 이 주인공인 한계점이 여전합니다....그시대가 그런것을 어떻겠어요,,,ㅠ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유색인종에 대한 하얀족속들의 시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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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12:51:21

중학생때 서울 친적집에 놀러갔다가 사촌누나랑 보러갔는데.... 그냥 잤습니다.

아프리카 탈출하는 엑숀 영화인줄 알았는데.... 감수성 별로 없는 남자 중학생이 보기에는 힘겨웠죠.

2016-11-22 14:02:11

선추천 댓글에 후 감상 입니다. 구입해 놓고 못 본 타이틀인데 타으틀 먼저 보고 꼭 글 다시 읽으러 오겠습니다!! 강추 입니다!!^^

2016-11-22 15:34:13

와~ 진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글이군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머드님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정보량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신 글들 읽어봉션 저랑 정서가 많이 비슷하단 생각도 들어요. 저도 이작품 좋아합니다. 말씀하신 주말의 명화 영상에 쓰인 저 장면도 기억에 나고요. 몰랐던 사실인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의 남주가 레드포드가 될뻔 했군요. 레드포드의 팬으로서 정말 두고 두고 아쉬운데요.. 아무튼 정성되고 애정넘치는 글 감사드립니다^^

2016-11-22 22:57:21

명보극장 3층 좌석에서 학교단체관람으로 봤던 영화였는데 다들 팝콘 먹기 바쁘거나 수업안하고 노는게 신났던 영화감상시간 이였죠.
두 주인공의 표정과 배경 그리고 음악이
제겐 스토리의 애잔함이 무성영화처럼 해석되었던 음악회같았던 기억입니다.
글 너무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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