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역사] 로마대법전으로 보는 기독교의 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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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11:29:12
로마대법전은 서기 6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기존에 있었던 법령을 취합하고, 자신이 새로 만든 법까지 추가하여 편찬한 법전입니다. 3개의 서문과 함께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로마대법전은 오늘날의 법개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각 관직의 기능을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있을뿐만 아니라 민사와 형사 관련 여러 원칙과 정의(definition)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로마대법전의 전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영어로 모두 번역한 사이트가 있더군요. 조금 읽어보니 사실 가장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대법전을 통해 구현된 기독교의 힘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헌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로마대법전에서 굳이 헌법에 해당하는 부분을 떼어낸다면 제1권일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제1권의 1조부터 13조까지는 종교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여기서 로마제국은 법으로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 제국의 모든 신민은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가져다준 신앙을 믿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같은 위엄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믿는다 (삼위일체). 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모든 이들은 이단이다.
- 이 신앙은 앞으로 "가톨릭(Katholikos)"이라고 부른다
- 이단과 배교자는 강력 처벌한다
**단, 이단과 배교자는 처벌하는데 아예 이교도(pagan)는 어떻게 하는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로마제국의 정체성은 기독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법조문으로 확인할 수 있고, 기독교신앙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법으로 처벌하는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의 일환으로 교회가 여러 의무와 세금을 면제받는다는 점도 명시하고 있어 확실히 교회를 특수하고 우월한 지위로 격상시켰습니다. 재미있는 건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자도 면세혜택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교"의 권능입니다.
주교(Episcopos)는 상인들이 초과이익을 얻지 않는지 감독하고, 또 도시의 식량공급 및 수로보수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독할 권한이 있었고, 또 민사에 대해서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었습니다 (형사에 대해서는 권한 없음).
정부에 속한 세속관료들의 업무와 일부 권한이 중복되거나 이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는 권한을 갇고 있었는데, 소련으로 치면 정치장교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해당 권한은 유스티니아누스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이 과거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부여한, 즉 서로마 지역에서도 유효한 법령들이었는데, 이를 보면 서유럽 지역에서 서로마 멸망 후 권력이 가톨릭 교회에 집중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는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제국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인가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도 기독교는 제국의 다수가 아니었고, 황제 율리아누스 같은 경우는 오히려 고대 종교를 다시 복원하려고 했는데 제국의 황제들은 줄곧 기독교를 제국에 강제하고자 노력했고, 법령으로도 문서화시켰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서로 혈연으로 이어진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많은 경우 쿠데타와 찬탈로 계승되었습니다. 서기 6세기까지 기독교에 비판적인 귀족가문 출신 역사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새로이 황제에 등극하는 사람들이 제국의 기독교화를 롤백시키고 유턴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는데 역대 황제들은 모두 강력한 기독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권좌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은 반드시 기독교도의 협조를 구해야만 했던 것인가? 그럼 왜 그랬던 것인가? 이 점도 흥미로운 논쟁거리일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기독교화된 로마제국은 "매춘"을 정말 죄악시했던 모양입니다. 여성 노예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즉시 자유민이 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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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궁금한게 박해받던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의 종교가 되었고 권력을 유지했는지입니다 여러 책들에서 설명을 읽어보았지만 확실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어요 어쩌다가 종교적인 답변이나 듣게 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