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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원순씨 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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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0 07:57:00

원순씨는 참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일 하는 것이 너무 즐거운 사람이었죠.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데, 그게 또 참신해서 보는 사람도 즐거운 겁니다. 또 특이하게도, 아무도 알아 주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을 좀 보태고 싶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원순씨 강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 이런저런 모임에서 몇 차례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나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고, 세상이 굴러가는 분기점에는 원순씨가 심어놓은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또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1984년의 망원동 물난리가 떠오릅니다. 20대 변호사 박원순은 줄담배로 유명한 조영래 변호사와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소송을 승리로 이끌었죠.  도쿄 위안부 법정. 칵테일 사랑 저작권 법정. 


참 관심있는 일도 많고, 일 벌려 놓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딘가 바지런히 다니면서, 좋은 걸 보면 꼭 그걸 들고와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노트에 가득 적고, 적을 시간 없으니 또 잔뜩 복사하고. 참 유능하게도 원순씨가 벌이는 사업은 술술 잘 풀렸습니다. 시민단체가 뭘 할 수 있나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각박한 도시 구석에서 뭔가 따뜻하고 희망적인 것을 봤다면, 한두 다리 건너 원순씨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말 많은 일을 벌려 놓았거든요. 원순씨는 어두운 곳곳에 참여와 희망과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을 붙여 갔습니다. 


원순씨가 준 명함에는 도요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원순씨라고 불러달라 하지만, 영 부담스러워 닉을 가지기로 했나 봅니다. 자기를 도요새라고 불러달라 했습니다. 작지만 멀리 나는 넓적부리도요. 

 

 

넓적부리 도요는 누가 봐도 부리가 넓적한 것까지는 알 겁니다. 원순씨는 왜 그걸 닉으로 삼고 싶었을까요.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확실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넓적부리도요 이 작은 새는, 시베리아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가, 또 뉴질랜드까지 날아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이 높이 멀리 멀리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꿈을 가지는 새.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오르는지?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높이 꿈꾸는 새.


 

원순씨. 멀리 멀리 날며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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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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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0 04:14:27

요새 좀 적조하신 느낌이네요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가: 박시장이 3선할 동안 뭐한게 있냐는 비판도 있는데 꼭 뭘 파헤치고 뭔가 으리으리한 

구조물을 만들어야 업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이 생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기저기

애써온 노력들을 잊지 않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새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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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04:25:50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의 글은 날카로움 따윈 없어서 더 읽기 좋았습니다.

1
2020-07-10 05:22:07

잘 읽었습니다...

1
2020-07-10 08:00:0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2020-07-10 08:16:21

애틋한 글에 조용히 추천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07-10 10:12:12

담백하게 쓰셨지만, 어제오늘 프차글 중 가장 절절하게 닿는 글입니다.
삼가 박시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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