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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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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그 시대의 눈높이로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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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6:50:42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 볼 때 저는 종종 그 시대의 눈높이로 맞춘 다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선시대를 예로 들어볼까요?

조선은 성리학을 기치로 내 건 전근대적 왕국이었습니다.

 

국왕은 종신 독재를 했고 의회나 독립된 사법기관은 없었습니다.

온 나라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었고 모든 인민은 곧 왕의 신민이었습니다.

 

그때의 임금에게 왜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지 않고 헌법을 만들지 않았으며 지방자치를 지향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게 과연 이치적인 것일까요?

 

임진왜란때 제대로 된 대처도 못하고 허둥대던 선조의 실정을 빌미로 분개한 백성들이 봉기하였다면

이순신 장군은 '백성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하면서 반란군과 합류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옵니다.'라면서 충성을 맹세했던 선조의 편에 섰을까요?

 

당시의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사람은 사농공상 신분의 차등이 있으며 각자의 분수에 맞게 사는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믿었던

사회였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은 이러한 전근대 조선을 타파하고자 한 사람이 아니라 지켜내고 유지
하고자 했던 봉건 조선의 수호자였습니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 내에서 민생을 진작시키고, 문화를 창달했으며 군사력을 기르고, 경제와 산업을 

다잡아갔던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종의 치적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황이나 이순신 역시 이러한 조선사회를 문화와 학문 그리고 군사적으로 지원했던 분들입니다.

 

20살된 대학생이 1살된 아기한테 "너는 똥오줌도 못가리냐?"라면서 놀리는건 온당하지 못합니다.

 

1살된 아기로서는 밥 제때 먹고 똥 잘 싸면 참 잘하는 겁니다.

20살의 눈높이로 봐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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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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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5:49:12

시대의 눈높이라는게 쉬운듯 어렵지요.

지금도 대통령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임대아파트 살면 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부와 돈으로 사람을 계급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널렸지요.

이 시대의 눈높이라는게 자유와 평등과 인간존중이라고 본다면...

현실에서는 그 눈높이에서 벗어나는게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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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6:03:20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노비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라) 밑에서 언급된 이황의 경우, 이재의 축적을 천시하면서 뒤(?)로는 부의 축적에 힘썼던 그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해했습니다.

WR
Updated at 2021-05-16 16:09:42

말씀대로라면 비판할만한 사안일 수 있겠다 싶네요.

제가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나봅니다.

2021-05-16 20:06:06

아래의 퇴계에 대한 글들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눈높이로 보아야 한다'는 점은 저도 동감 합니다.

다만 그 시대의 눈높이로 보자는 훌륭한 취지에 맞게 우리는 그 시대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맥락을 무시하고 갑자기 끼어든 것은 아닌지, 그리고 역알못인 제가 역사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만한 수준은 못됩니다만... '국왕' '종신독재'라는 요즘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R
Updated at 2021-05-16 20:35:26

국왕은 조선시대에도 쓰이던 말입니다.

종신 독재는 권력자의 생전에는 교체되지 않는 체제, 입법이나 사법의 독립없이

일인의 결단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를 말합니다.

어떤 오해를 말씀하시는건지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1-05-16 21:18:39

중혼후님 글 중 어디가 틀렸다거나 해서 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국왕은 다시보니 딱히 문제없을거 같은데 제가 다른 단어라 생각했나봅니다
종신독재는 현대라면 '일인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그 시대에도 과연 그랬을까 해서 쓴 것입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나 보면 오로지 왕의 결심만으로 모든게 다 이루어지는것 처럼은 보입니다만..

WR
2021-05-16 21:26:37

당시에도 왕권을 견제하는 수단은 있었습니다.

대체로 조선은 왕이 독자적으로 모든 사안을 결재하는것 보다는 재상 회의를 통해서 조정의 공론을 취합하고 최종결단을 국왕이 내리도록 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언론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통해서 간쟁하도록 하여 국왕이 국사를 잘못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고 사관이 임금의 언행을 기록하도록 해서 왕이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도록 했습니다.

 

그 외에도 상소제도나 경연제도처럼 국왕의 전제정치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쨌든 왕조국가에서는 국왕이 마음먹은바대로 국정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민주주의 헌법을 근간으로 하여 3권분립에 기초한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는 현대 국가와 국왕이 신료들의 보필을 받아 국정을 홀로 결단하는 왕정체제는 크게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2021-05-16 21:32:52

"왕이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도록" 교과서에서도 보았을 표현이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 돌아가는것도 둘러보게 되다보니 저 문장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아주 조금은 알게되는거 같아요

WR
Updated at 2021-05-16 22:44:46

1. 국왕(國王)의 용례입니다.

태종 이방원이 재위 1년에 공신들과 삽혈동맹(동물을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입술에 묻힌 다음 동맹의 서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신 앞에서 맹세함)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조선국왕(朝鮮國王)이라는 글귀가 나옵니다.

 

上如馬巖壇下, 與佐命功臣, 歃血同盟, 用祭服其載書曰:

維建文三年歲次辛巳二月朔庚寅十二日辛丑, <朝鮮國王> 李諱, 謹率勳臣義安大君 和上黨君 李佇完山君 天祐門下左政丞李居易右政丞河崙判三軍府事李茂等, 敢昭告于皇天上帝宗廟社稷山川百神之靈

 

임금이 마암(馬巖)의 단() 아래에 가서 좌명 공신(佐命功臣)과 더불어 삽혈 동맹(歃血同盟) 하였는데, 제복(祭服)을 입었다. 그 서약한 글은 이러하였다.

 

() 건문(建文) 3(三年) 세차(歲次) 신사 2월 삭() 경인 12일 신축에 <조선 국왕> 이() 는 삼가 훈신(勳臣)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 상당군(上黨君) 이저(李佇), 완산군(完山君) 천우(天祐),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 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 등을 거느리고 황천 상제(皇天上帝종묘·사직·산천 백신(百神)의 영()에 감히 밝게 고합니다.”

 

<태종실록> 1212

 

 

2. 종신(終身)의 용례입니다.

 

在太宗時, 法令最嚴, 雖有父母之故, 未得辭避, 況妻子乎? 昔李之直久不見用, 人皆謂極諫所致, 其實辭免外寄也逮至今日, 法令陵夷, 故今兪孝通受慶州府尹, 托以本貫辭避, 其實爲妻子也予欲<終身>不敍, 政府僉曰: ‘可用之人也吏曹又以爲可授敎授之任, 予亦然之

 

태종 때에는 법령이 아주 엄격하여 비록 부모의 연고가 있더라도 사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처자였겠는가. 전에 이지직(李之直)이 오랫동안 서용되지 못하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극간(極諫)한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외임(外任)을 사면(辭免)하였던 때문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법령이 해이해진 까닭으로, 지금 유효통(兪孝通)이 경주 부윤을 제수 받고도 본관(本貫)이라고 칭탁하고 사피(辭避)하였는데, 사실은 처자 때문이었다. 내가 <종신(終身)>토록 서용하지 않으려 하였더니, 정부에서 모두 말하기를, ‘쓸 만한 사람입니다.’ 하고, 이조에서도 또한 말하기를, ‘교수의 직임을 줄 수 있습니다.’ 하기에, 나 역시 그렇게 여겼다.

 

<세종실록> 22111일 

 

 

3. 독재(獨裁)의 용례입니다.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끝내고 명종에게 권력을 돌려줄때 한 말입니다.

국왕이 모후의 간섭없이 독재(獨裁)할 능력이 되었으니 이제 친정을 시작하도록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慈殿答曰: “予至今居攝者, 以主上學問未就故也今則主上年盛學進, 凡事非不能<獨裁>勿爲辭避, 宜圖至治, 以福生民

 

자전께서 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섭정을 한 것은 주상의 학문이 아직 성취되지 못한 때문이었소. 지금은 주상의 나이가 장성하고 학문이 진보하여 <독재(獨裁)>할 수 있을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지치(至治)를 도모하여 생민들을 복되게 해야 할 것이오.”

 

<명종실록> 8712

2021-05-16 21:24:34

팩트 체크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요즘 조선말기에 관심이 조금 있다보니 허물어질대로 권문세가들 앞에 허물어진 왕권에 너무 몰입되어 있었나봅니다

2021-05-17 17:29:28

 공감합니다. ^^

WR
2021-05-17 17:59:38

천안대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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