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Tolstoy, Wittgenstein, Harriet Mill, John Muir
갑자기 읽을 책이 많아졌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겠습니까? 디피에 와서 이러고 있으니 그렇지요.
2주전 쯤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황홀한 석양 사진 먼저 보시겠습니다.
Read the best books first, or you may not have a chance to read them at all
-Thoreau,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어제 무비스타님 소개글 보고 하루에 딱 1일치만 보기로 한 톨스토이 책의 1월 1일에서 마음을 친 글귀입니다. Thoreau에게 미안했습니다. 저 책이 제 리스트에 언제부터 들어 있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조만간 콩코드에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아침 차 마시면서 포스팅은 주말에 한 번만 해야겠다. 댓글도 자제하자 마음 먹으면서 읽은 글귀입니다)
동시에 이걸 포스팅해야지 잇힝~~ (싸이코 아닙니까?)
괄호 안과 밖은 양립하는 제 마음 속의 갑론을박입니다.
~ 어떤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결정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성원의 필수 요건은 결의에 의결한다는 것이다. 즉 결의에 의결한다는 것이나 결정짓는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언급조차 하면 안 되며, 존재조차 가정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사물은 반드시 사태의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하고, 사태의 구성 요소가 되기 때문에 사물이다. 2.011 해제 말미에서 발췌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해제(조중걸)
조중걸님의 길고도 짧으면서 명료한 설명이 매력있는 점은 철저히 앞과 끝이 있고 울타리가 있고 논리가 흩어짐이 없다는 데 있어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톨스토이 1일 1문장 처럼 하루 한쪽 조중걸님의 사유를 따라갈까 합니다. 전혀 다른 쟝르의 책과 문장이 독자인 제 머리 속에서는 같은 과정을 거쳐 소화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나 조중걸이나 읽는 자가 소화하기 나름입니다. 위 조중걸님의 글귀에 대한 감상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과 확장이라 각자 음미하시면 좋겠습니다. 잡다한 정보와 판단을 흐리는 글들을 디피에서만 해도 많이 만나고 얽히고 낚이기도 합니다. 힌트입니다.
알릴레오북스 재미있게 봤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부인에게 쓴 자유론의 헌정사를 찾아읽어보았습니다.
존은 운 좋은 사내였습니다. ㅎ 해리엣 또한 운 좋은 여인이었네요.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것도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인용은 않겠습니다. 좋은 책이니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존 뮤어(John Muir)의 글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미국의 산책길, 등산로 이런데서요.
요세미티에서 루스벨트하고 캠핑도 하고 국립공원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이 사람.
평생을 자연 속에서 자연을 관조하며 그에 대한 글을 남긴 사람입니다.
알라스카 여행시 뮤어의 알라스카 글을 읽으며 감탄했습니다. (영어의 표현력이란 이런 것 ㅎㅎ 형용사와 그것을 사용하는 절륜한 노련미를 어케어케 따라가는 영어 짧은 이방인 ㅎㅎ) 미국인들의 마음에 닿는 자연주의 글들을 썼으니 이 분야의 최고의 글쟁이(글에만 국한하게엔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 큽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좋은 분은 번역판을, 영문의 구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원글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가 설립한 시에라 클럽에는 그의 글이 많이 있습니다.(아래 링크)
- Krishnamurti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해결해 준 글귀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선언 같은 문장으로 제 깜냥으론 이전에 댓글에 쓴 것처럼 '외공'에만 유용할 것 같았습니다. 조중걸님 해제로 현실에 대입하고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이 일천하여 느낌과 감상에만 의존해 말을 섞을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시죠, 제 레퍼런스는 제 생각만 있습니다. ㅎ 그런데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 그리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매일 겪는 것. 사고가 여기에 이르러 시정게에 짧은 글 올렸습니다. 경거망동이라고 이어서 읽고 있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이야기 하네요. Just Watch it. 하라고. rockid님 댓글 덕에 제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님을 알고 기쁩니다. 저 틀림없는 예언가 (an infallible predictor)를 조중걸이 말한 "바깥" 의 사람이라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좀더 제 생각에 대한 힌트를 드리자면, 이미 저 예언가는 신의 눈을 가지고 이 세계를 관측하지만, 이제는 떠나서 더이상 이 세계와 금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으로서 우리와 유리되어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이죠.
저는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저 예언가를 더 이상 상상하지도 고려하지도 말고 이웃과 생활하라는 것.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깊은 마음 속에서는 늘 그러한 존재에 대한 상상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라는 권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예언가에 대한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질 때면, 논증과 철학이 아니라 시와 예술, 그리고 은근한 미소와 차 한잔으로 나누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1
2020-11-13 06:25:02
비트겐슈타인은 대학(그리고 사회생활 초반기)까지 조금은 봤네요.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지만 논리-철학 논고(아마 서광사판)도 다른 책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독학했네요. 지금은 다 잊어먹었지만. 수학의 집합, 명제를 떠올렸고 후기철학이 더 마음에 끌렸었습니다. 수학과학 언어로 우리세계나 일상 등을 표현,해석하는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는것 자체가 우습지만요) (어른이 되어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이미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에 적용해서 읽으면 위 댓글 대화에 있는 것처럼 논리학 바깥의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리라는 느낌입니다. 이게 반칙이라 하더라도요. 그럴 수 없다면 저는 안 읽을겁니다. ㅎㅎ 그가 정해놓은 규칙은 정말 수학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이 수직 수평의 직선들이더군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읽었으면 하시는 것에 동의 및 절감합니다. 밀과 부인의 순애보, 부인의 지성과 당시 사회적 배경을 보면 100년 후의 세계에서 소환된 듯한 두 남녀의 SF적 순애보입니다. 아마도 현대 한국의 평균적 부부상 보다 민주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유시민의 자유론 소개는 정말 시의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미 대선 관련 정말 다양한 양태를 볼 수 있었는데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의견 개진과 성토가 의아했었거든요.
뮤어가 알라스카의 빙산, 빙벽, 오로라를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영어의 표현력이 한국어 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접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미국인들의 찬탄하고는 달랐어요. 쉽잖아요. 뷰우티풀, 원더푸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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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16:36:57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중걸 선생의 문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읽고 있는 논고 해제에서는 그 서늘하게 깔끔한 문체도 포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범인이 해제의 근처라도 가 볼 수 있는 거겠죠! 인용해주신 문장에서 전 석가모니의 독화살에 대한 비유를 떠올렸습니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939
라캉의 정신분석학도 종국(?)에는 윤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를 사유할 수는 있지만 결국 人間이기 때문이겠죠. 시간과 공간, 즉 宇宙를 사유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어떻게 천원이라도 싸게 사려고 노력하는 존재자이니까요.^^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저는 인간에게 型 의 '以上'을 사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한없이 '물질'로 떨어질 수 있는 게 인간일 거라서요. 물론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인은 굳이 그렇게 '별'을 보지 않아도 충분한 '윤리'를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만, 그런 철인들의 약점은 본인이 '철인'이라서 '범인'들이 왜 '여전히' 그렇게 사는지를 理解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의 '유토피아'는 영원히 이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신 것처럼 이런 이야기를 면대면으로 한다는 건 우습겠죠. 'without sense'를 아무리 서로 토론해봤자 解題가 나오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다만 칸트처럼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성찰(meditation)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노골적으로 'without sense'인 예술, 그리고 시(!)에 대해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밀은 역사 상의 천재였다고 하던데요, 저 역시도 이 세계에서는 '공리주의'가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리'를 위해서 '고급'이라는 문화를 포기해야겠죠. 예를 들어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는 세금이 'k-pop'을 위해 쓰이는 게 낫겠죠, 대중이 그걸 바라니까요. 어차피 '고급'이라는 것이 규정에 불과한 거니까요, 안쪽이 생겨나면 '바깥'은 타자가 되어버리겠죠^^ '반성'하는 분과 말을 섞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늘 정진하시다 보면 언젠가 '보이기' 시작하실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인상적으로 쓰인 고린도전서 앞 구절입니다만,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글쓰기 |
저도 조중걸의 저 글귀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말해볼까 했는데, 접는게 낫겠습니다.^^ 조중걸의 해제의 대상이 되는 문장은 제게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생각을 확증하게 해준 귀중한 문장 중 하나였습니다. 나중에 그랬군요님과 함께 저 문장과 "뉴컴의 파라독스"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또 이 해제의 문장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언명과 "사물과 사태의 관계"에 대한 소중한 설명이기도 하죠. 서구철학이 근거 없는 본질주의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생각과 말만 하겠다는 성인다운 선언이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