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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Tolstoy, Wittgenstein, Harriet Mill, John Mu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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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2-15 04:40:58

갑자기 읽을 책이 많아졌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겠습니까? 디피에 와서 이러고 있으니 그렇지요.


2주전 쯤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황홀한 석양 사진 먼저 보시겠습니다.


 


Read the best books first, or you may not have a chance to read them at all

 -Thoreau,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어제  무비스타님 소개글 보고 하루에 딱 1일치만 보기로 한 톨스토이 책의 1월 1일에서 마음을 친 글귀입니다. Thoreau에게 미안했습니다. 저 책이 제 리스트에 언제부터 들어 있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조만간 콩코드에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아침 차 마시면서 포스팅은 주말에 한 번만 해야겠다. 댓글도 자제하자 마음 먹으면서 읽은 글귀입니다)

동시에 이걸 포스팅해야지 잇힝~~ (싸이코 아닙니까?) 

괄호 안과 밖은 양립하는 제 마음 속의 갑론을박입니다.

 

~ 어떤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결정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성원의 필수 요건은 결의에 의결한다는 것이다. 즉 결의에 의결한다는 것이나 결정짓는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언급조차 하면 안 되며, 존재조차 가정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사물은 반드시 사태의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하고, 사태의 구성 요소가 되기 때문에 사물이다. 2.011 해제 말미에서 발췌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해제(조중걸)

 

조중걸님의 길고도 짧으면서 명료한 설명이 매력있는 점은 철저히 앞과 끝이 있고 울타리가 있고 논리가 흩어짐이 없다는 데 있어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톨스토이 1일 1문장 처럼 하루 한쪽 조중걸님의 사유를 따라갈까 합니다. 전혀 다른 쟝르의 책과 문장이 독자인 제 머리 속에서는 같은 과정을 거쳐 소화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나 조중걸이나 읽는 자가 소화하기 나름입니다. 위 조중걸님의 글귀에 대한 감상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과 확장이라 각자 음미하시면 좋겠습니다. 잡다한 정보와 판단을 흐리는 글들을 디피에서만 해도 많이 만나고 얽히고 낚이기도 합니다. 힌트입니다.

 

알릴레오북스 재미있게 봤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부인에게 쓴 자유론의 헌정사를 찾아읽어보았습니다.

존은 운 좋은 사내였습니다. ㅎ 해리엣 또한 운 좋은 여인이었네요.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것도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인용은 않겠습니다. 좋은 책이니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존 뮤어(John Muir)의 글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미국의 산책길, 등산로 이런데서요. 

요세미티에서 루스벨트하고 캠핑도 하고 국립공원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이 사람. 

평생을 자연 속에서 자연을 관조하며 그에 대한 글을 남긴 사람입니다. 

 

알라스카 여행시 뮤어의 알라스카 글을 읽으며 감탄했습니다. (영어의 표현력이란 이런 것 ㅎㅎ 형용사와 그것을 사용하는 절륜한 노련미를 어케어케 따라가는 영어 짧은 이방인 ㅎㅎ)  미국인들의 마음에 닿는 자연주의 글들을 썼으니 이 분야의 최고의 글쟁이(글에만 국한하게엔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 큽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좋은 분은 번역판을, 영문의 구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원글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가 설립한 시에라 클럽에는 그의 글이 많이 있습니다.(아래 링크)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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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Updated at 2020-11-13 05:28:23

저도 조중걸의 저 글귀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말해볼까 했는데, 접는게 낫겠습니다.^^ 조중걸의 해제의 대상이 되는 문장은 제게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생각을 확증하게 해준 귀중한 문장 중 하나였습니다. 나중에 그랬군요님과 함께 저 문장과 "뉴컴의 파라독스"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또 이 해제의 문장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언명과 "사물과 사태의 관계"에 대한 소중한 설명이기도 하죠.  서구철학이 근거 없는 본질주의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생각과 말만 하겠다는 성인다운 선언이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WR
1
Updated at 2020-11-13 06:24:29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해결해 준 글귀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선언 같은 문장으로 제 깜냥으론 이전에 댓글에 쓴 것처럼 '외공'에만 유용할 것 같았습니다. 조중걸님 해제로 현실에 대입하고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이 일천하여 느낌과 감상에만 의존해 말을 섞을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시죠, 제 레퍼런스는 제 생각만 있습니다. ㅎ 그런데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 그리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매일 겪는 것.  사고가 여기에 이르러 시정게에 짧은 글 올렸습니다. 경거망동이라고 이어서 읽고 있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이야기 하네요. Just Watch it. 하라고. rockid님 댓글 덕에 제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님을 알고 기쁩니다.

2020-11-13 05:36:27

https://en.wikipedia.org/wiki/Newcomb%27s_paradox

WR
Updated at 2020-11-13 06:44:26

ㅎㅎ 소탐대실 또는 대인관계에서의 윤리학적인 관찰일까요? 재밌네요. 언제나 최악의 사태는 예견되어야 함이 맞다고 봅니다.

쉽게 한글 사이트 가져왔어요. https://namu.wiki/w/%EB%89%B4%EC%BB%B4%EC%9D%98%20%ED%8C%A8%EB%9F%AC%EB%8F%85%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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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1-13 05:56:13

저 틀림없는 예언가 (an infallible predictor)를 조중걸이 말한 "바깥" 의 사람이라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좀더 제 생각에 대한 힌트를 드리자면, 이미 저 예언가는 신의 눈을 가지고 이 세계를 관측하지만, 이제는 떠나서 더이상 이 세계와 금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으로서 우리와 유리되어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이죠.

 

저는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저 예언가를 더 이상 상상하지도 고려하지도 말고 이웃과 생활하라는 것.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깊은 마음 속에서는 늘 그러한 존재에 대한 상상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라는 권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예언가에 대한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질 때면, 논증과 철학이 아니라 시와 예술, 그리고 은근한 미소와 차 한잔으로 나누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WR
1
Updated at 2020-11-13 06:00:08

우리의 월드 '디피'에 그런 게 많아요. 저는 이곳에서 날마다 맞닥드리는 파라독스를 떠올리고 음미했었죠. 

 

양심의 문제는 곁다리군요. 

비트겐슈타인은 엄격한 기준을 세웠고요. 

WR
1
2020-11-13 05:59:09

그렇다 치자! 하는 마음으로 볼때 더 풍부한 상상이 됩니다. 마지막 문단 공감해요.

Updated at 2020-11-13 06:01:13

넵,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납득시키는 단단한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비트겐슈타인이 하나의 해답지를 주었다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 말에서 말할 수 없는 윤리적 태도도 무언으로 전했다고 생각해요. 

WR
1
2020-11-13 06:09:48

제가 조중걸님의 해제를 하루에 하나만 보자 마음 먹은 이유가 기계적으로 읽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형이상학을 넘나드는 행간의 사유들이 여운이 있기도 하고 폭발이 되기도 하고 해서 빨리 읽을수록 손해라는 생각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1.000을 읽었을 때 그가 그은 선 바깥 쪽을 더 많이 바라봤었고 좋아했어요. 뭐 선이야 확실하니까요. ㅎㅎ

1
Updated at 2020-11-13 06:13:33

좋은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선 안 쪽을 마스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하지 않았으나 눈짓으로 가리킨  바깥 쪽을 음미해야죠. 그러니 더딜 수 밖에요.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WR
1
2020-11-13 06:18:44

님의 말을 닮고 싶은지 닮아가고 있는지 모호하게, 내 속의 말을 끄집어내시네요. 테라포밍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가슴 열고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시간) 좋은 아침입니다. 

1
2020-11-13 06:25:02

비트겐슈타인은 대학(그리고 사회생활 초반기)까지 조금은 봤네요.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지만 논리-철학 논고(아마 서광사판)도 다른 책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독학했네요. 지금은 다 잊어먹었지만. 수학의 집합, 명제를 떠올렸고 후기철학이 더 마음에 끌렸었습니다. 수학과학 언어로 우리세계나 일상 등을 표현,해석하는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는것 자체가 우습지만요)

밀은 마르크스 배우면서 처음 접하게 되는데 고전파 경제학(정치경제학)학자 막내였던 밀을 마르크스가 비판하기도 하고 정치학에서는 19세기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표로서 자주 거명되었죠 (아마 투표권의 자격 제한, 다수파에 의한 소수파 탄압 등이 대표적) 이런 밀이 유시민에 의해 소개된다는 것도 흥미롭고요. 실은 저도 2000년 이후 관심을 조금씩 가지고 인용이나 해설이 아니라 그들(서양의 사상가들)을 읽어보니 우리 사회 특히 중고생들이 많이 읽어보았으면 하더라구요.

뮤어는 요세미티 갔을때 안내책자나 기념관에소 본적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분인가 보군요. 그러고보니 미국의 자연을 소개하는 다큐에서도 본적이 있네요.

WR
Updated at 2020-11-13 06:56:27

(어른이 되어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이미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에 적용해서 읽으면 위 댓글 대화에 있는 것처럼 논리학 바깥의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리라는 느낌입니다. 이게 반칙이라 하더라도요. 그럴 수 없다면 저는 안 읽을겁니다. ㅎㅎ 그가 정해놓은 규칙은 정말 수학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이 수직 수평의 직선들이더군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읽었으면 하시는 것에 동의 및 절감합니다. 밀과 부인의 순애보, 부인의 지성과 당시 사회적 배경을 보면 100년 후의 세계에서 소환된 듯한 두 남녀의 SF적 순애보입니다. 아마도 현대 한국의 평균적 부부상 보다 민주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유시민의 자유론 소개는 정말 시의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미 대선 관련 정말 다양한 양태를 볼 수 있었는데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의견 개진과 성토가 의아했었거든요. 

 

뮤어가 알라스카의 빙산, 빙벽, 오로라를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영어의 표현력이 한국어 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접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미국인들의 찬탄하고는 달랐어요. 쉽잖아요. 뷰우티풀, 원더푸울.

 

1
2020-11-13 08:58:38

본문글이나 댓글 덧글을 다 읽긴 읽었는데..

그래도 책 읽고 나누는 글은 언제나 추천입니다

WR
2020-11-13 09:00:43

날카로운 시선과 땀방울의 앙상블, 제 모습이군요

1
2020-11-13 16:36:57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중걸 선생의 문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읽고 있는 논고 해제에서는 그 서늘하게 깔끔한 문체도 포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범인이 해제의 근처라도 가 볼 수 있는 거겠죠! 인용해주신 문장에서 전 석가모니의 독화살에 대한 비유를 떠올렸습니다. 


"논의는 많고 대답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희론(戱論)이라 합니다. 쓸데없는 논의, 논의를 위한 논의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희론을 아무리 거듭 한다 해도 진정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939

 

라캉의 정신분석학도 종국(?)에는 윤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를 사유할 수는 있지만 결국 人間이기 때문이겠죠. 시간과 공간, 즉 宇宙를 사유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어떻게 천원이라도 싸게 사려고 노력하는 존재자이니까요.^^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저는 인간에게 型 의 '以上'을 사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한없이 '물질'로 떨어질 수 있는 게 인간일 거라서요. 물론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인은 굳이 그렇게 '별'을 보지 않아도 충분한 '윤리'를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만, 그런 철인들의 약점은 본인이 '철인'이라서 '범인'들이 왜 '여전히' 그렇게 사는지를 理解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의 '유토피아'는 영원히 이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신 것처럼 이런 이야기를 면대면으로 한다는 건 우습겠죠. 'without sense'를 아무리 서로 토론해봤자 解題가 나오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다만 칸트처럼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성찰(meditation)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노골적으로 'without sense'인 예술, 그리고 시(!)에 대해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밀은 역사 상의 천재였다고 하던데요, 저 역시도 이 세계에서는 '공리주의'가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리'를 위해서 '고급'이라는 문화를 포기해야겠죠. 예를 들어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는 세금이 'k-pop'을 위해 쓰이는 게 낫겠죠, 대중이 그걸 바라니까요. 어차피 '고급'이라는 것이 규정에 불과한 거니까요, 안쪽이 생겨나면 '바깥'은 타자가 되어버리겠죠^^  '반성'하는 분과 말을 섞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늘 정진하시다 보면 언젠가 '보이기' 시작하실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인상적으로 쓰인 고린도전서 앞 구절입니다만,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WR
2020-11-15 06:30:45

죄송, 추천하고 댓글 쓰다 잠들었어요. ㅎㅎ
휴일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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