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와인] 올해 첫 호사를 부려봤네요.
주로 마시는 와인이 스페니시 리호아 그란리제르바이니 템프라니요 포도만 주야장천 맛보는 지라 좋아하는 포도임에도 가끔 감히 식상한 주말이 있습니다 - 이번 주말은 좀 특별하지 않은가 하는 이유를 막 찾죠.
카베르네 쇼비뇽(이하 카쇼)는 이 포도를 풀바디로 어디까지 이끌어냈나를 보여주는 와이너리 품격의 대명사격인 포도입니다. 대체로 카쇼 풀바디를 대표와인으로 꼽는 곳이 많습니다. 살짝 힌트성 블렌드로 맛을 꼬아서 상위 또는 차하위 레벨로 선보이는 곳도 있고요.
어쨌든 카쇼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좋은 와인은 비쌉니다. 아주 저렴한 카쇼는 이제 마시지 못합니다, 꽤 이름값하는 웬만한 카쇼 또한 못 마십니다. 포도를 따서 여러 과정을 거쳐 병입하여 내놓기까지 어떤 터치가 들어갔는지 마신 다음에 그 '효과'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카쇼 뿐 아니라 모든 와인이 그렇습니다.
이런 민감성을 가지지 않은 분들은 다양한 카쇼를 부작용 없이 드실 수 있으니 다양한 가격대의 많은 와이너리를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비단 카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와인 산업 전반에 걸쳐 '같은 와인'으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와인을 만드는 철학이 제각각입니다.
2년 전 여름 어느날 근처의 커다란 섬마을로 배타고 건너가 일주를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일요일에 보라빛 꽃물결 치는 라벤더 밭에 가서 라벤더 한묶음도 사고(그 한묶음을 직접 잘라 모으는 You pick 이벤트입니다) 그 섬의 로컬마켓에서 샌드위치와 곁들여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차를 보고 따라서 차를 세우고 이끌려 들어간 와이너리가 생각납니다.
그날이 마침 그 와이너리 파티하는 날이었습니다. 오크통에 수년간 두었던 와인을 병입해서 시장에 내놓는 런칭 파티를 열고 있었어요. 그런 날은 보통 시음상품과 달리 안주거리가 많이 제공됩니다.
와이너리 정원 그늘에서 흘러가는 구름과 멋진 연주가 곁들인 풍경 사이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거리는 데 천국같은 분위기였죠. 섬마을 커뮤니티는 독특한 게 은퇴하고 자리잡은 노인층이 대다수 주민이라는 점입니다.
자기들끼리 오케스트라도 하고 연극도 하고 와인도 마시고 어울리는 동네입니다. 우리 말고 모두 아는 사이로 보였는데 대화를 스스럼 없이 하게 되었고 와이너리 주인도 나와서 자기 와인 자랑을 한참 하더라구요. 와인도 맛있었고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시음 정도만 했지만 결국 집에 와서 사가지고 온 와인을 오픈해서 마셨습니다.
뭐 다음날 골 무지 아팠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와인에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경우입니다. 고급 카쇼와인의 풍미를 내기 위해 그 냄새, 맛의 힌트를 줄 수 있는 첨가물 이를테면 오크통 가루 같은 거요. 진한 오크향이 나는 포도주가 저장했던 통이 아니라 그 가루가 들어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사설이 길었는데요. 그래서 카쇼는 자주 마시지 않고 검증된 것 아니면 잘 시도조차도 안합니다. 와인의 왕이라고 생각함에도 어쩔 수 없는 학습의 결과입니다.
연초에 코스코에 갔다가 발견한 카쇼 두병을 모두 들고 왔습니다. 비비노 점수가 둘 다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4.1이상이면 위에 언급한 부작용 발생위험이 없었습니다. 와인 설명에 세상의 1%이내임을 확인하고(2%만 되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평균가격이 지금 사려는 가격과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사고싶은 욕망이 커집니다. 너무 비싸면 침만 삼키고 돌아오기 일쑤지만요.
오랜만에 정통 카베르네 쇼비뇽(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싶네요) 와인을 맛봤습니다. 그럼에도 몇년 두었다가 마시고 싶을 정도로 늦게 열리네요. 열리기까지의 여정도 여러과정의 변화를 보였지만 막 열렸다 싶은데 이미 끝나서 두번째 와인(사진 왼쪽 2016)도 오픈해야 했습니다. 반병만 마시고 다음 날 마셨는데 그때는 오히려 첫번째 병을 넘어서는 포텐을 터트리더군요.
와인을 마시는 정적인 행위도 그 과정에는 다이내믹한 와인과 시음자의 상호교류가 일어납니다. 내적인 와인과의 교류를 함께 마시는 사람과 다시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와인을 즐기는 최대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일단 와인에 대한 느낌을 공감하고 다른 화제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죠.
그러한 공감대의 영역을 디피에 글을 올려서 좀 넓혀가려는 시도로 와인글을 씁니다. 늘 건강한 음주하시기 바랍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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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ㅎㅎ 와인 애호가님이시다! 반가워요.
방금 와인 글 하나 쓸까 하다가 그냥 미루려는데 마침 이 글이 올라있네요.
며칠 전에 Tourraine 지방 소비뇽을 뜯었는데 뭐 싱거운 듯 하면서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슈퍼에 갔더니 마찬가지로 소비뇽인데 독일 Rheinhessen에서 나온 거라고 해서 그냥 사보고 비교하는데...
아니 독일꺼는 잔 아래 바로 설탕 같은 허연게 보이네요. 저번에 피노노아도 그러더니.
뭐라 해야 하나... 독일 것이 뭔가 더 '맛과 향이 강하'고 약간 탄산끼가 있다는 게 저번에 피노노아에서도 그랬는데 이번꺼도 그러니, 이건 제가 우연히 골라온 것들만 그러는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독일 와인들이 맛이 (약간 인위적으로) 더 강하고, 탄산끼가 있는건가 싶습니다.
여튼 저도 언젠가는 좀 더 가격대 높은 걸 비교해보면서 '비싼 이유'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