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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E]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OST - Ennio Morric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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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12:31:24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매혹됐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처음 봤을 때 이 작품 속 폭력적인 장면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초반부에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누들스, 제임스 우즈가 연기한 맥스의 아역배우들이 골목에서 벅시 패거리에게 처맞는 장면 보는데, 너클로 얼굴 묵사발 만들고 주먹으로 국부를 뭉개버리는 장면부터 느낌이 다른 것이다. 어린 시절 학원이나 학교에서 선생에게 맞는 것을 추억처럼 여기고 남자들의 주먹 교환을 뜨거운 우정을 주고 받는다는 등, 스스로 매저키스트가 되길 자처했던 가학적 사회의 일원으로 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라는 폭력 에센스를 마주했을 때 그 살 떨리는 느낌이 대단했다. 

 

 

생각해보면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 이런 폭력 장면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치졸한 개싸움으로서의 폭력이거나, 폭력의 주체들을 찐따인 양 우스꽝스럽게 둔갑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소프트하게 만드는 연출이 레오네 감독의 영화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레오네 필모 중 유독 자극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무기나 완력, 혹은 지위 등으로서 우위를 쥔 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잔인한지 가장 가감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살벌한 극영화나 다큐에 구슬프거나 아름다운 음악이 삽입되는 이탈리아 영화들의 정서가 미국에서 작업 중이던 찐 이탈리안 세르지오 레오네와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는 참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가슴 시린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는 동시에 작품이 폭력을 견지하는 또다른 태도다.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유쾌하고 순수한 성격을 지닌 채로 우정을 유지하며, 네 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 만큼 갱스터였던 그들이 몇십년에 걸쳐 미국사회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은 이들이 성공했던 원동력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죄책감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순수하고 인간적인 호감도 갖게 했던 주인공들이 끝내 구제불능 깡패새끼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누들스가 어렸을 적부터 사랑했던 데보라에게 거절당하자 그녀를 강간하고, 동료들을 밀고해 죽게 하고 살인교사와 뇌물 증여를 밥 먹듯 하던 맥스가 미국 장관 자리에 오른 것도 보여주지만, 이들의 입에서 무엇이 우정인지를 논하게 만들고 어린 시절의 애틋했던 기억도(마약 빨면서) 추억하게 만들도록 허용해 주는 것.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작품은 아름다운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결코 아름답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추악한 폭력. 얼마나 양가적이고 불가해한가. 작품의 여러 편집 상영본으로 인해 발생한 오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도였을 것이 분명한 몇몇 비논리적이고 미스테리한 시퀀스들처럼, 이 불가해한 감성은 곧 감독이 바라본 미국사회와 역사였을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는 <대부>, <스카페이스>, <좋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갱스터물 걸작이다. 그러나 영화사가 덜 울궈먹는다. 소멸되기 직전의 필름들을 찾아 얼기설기 이어붙인 새로운 복원판이 공개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가며, 최고의 판본이라 생각하는 3시간 49분 버전도 새롭게 복원되지 않았다. 개봉 40주년인 내년 쯤 되면 비로소 영화사 측에서 본편을 비롯해 관련 상품을 팔아먹을 거리가 생긴다고 전망하는 것일까? 덕분에 세르지오 레오네 생전에 '드림 프로젝트' 라고 언급했던 이 작품의 가치가 옅어지는 느낌이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한 OST 역시 90년대 말에 '스페셜 에디션' 이란 이름으로 보너스 트랙 몇 개 추가한 버전으로 리이슈 된 후 딱히 없다. 아마도 감독 이전작들에서 들려준 결과물에 비하면 다소 정석적인 느낌이라서 콜렉터들에게 덜 어필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는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을 기점으로 좀 더 미국영화계와 가까워지고자 클래식한 영역으로 들어선 모리코네 스타일이리라. 하지만 팬 플루트의 달인인 게오르그 잠피르를 초청해 과거 이탈리아 서부극 스코어에서 들어볼 수 있었던 실험적 정서는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과거처럼 구음을 비롯한 독특한 악기 사용 정도만 자제했을 뿐이다. 오케스트레이션 안에서 목관악기와 피아노, 아코디언을 다채롭게 사용하며 우정을 부르짖다 알아서들 노쇠하고 자멸하는 갱스터들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이 앨범은 몇 주 전에 카세트 테이프로 구입했다. 사실 오래 전에 갖고 있었던 앨범이었다. 그 때는 수입반을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는데 오래 들어서인지, 기기 이상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늘어지고 말았다. 잘 관리하면 몇십년이 지나도 문제없는 CD로 샀어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CD 구하기 힘들어진 시대라 또 테이프를 샀다. 흥미가 생긴 이유는 85년 초 한국 성음사가 발매한 라이센스 반이라서 였다. 이런 게 존재하는 줄 처음 알았다. 보관상태 역시 놀랍도록 깨끗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한국에 개봉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는 미국 개봉판보다 7분이 더 잘린 2시간 12분 판본이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칸느 영화제 상영을 위해 작업한 편집본이 3시간 49분이었던 것을. 개똥같은 미국 개봉판보다 더 잘린 상태로 본 당시 한국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거지 같은 영화인데 음악은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예전에 소장했던 수입반 테이프 속 라이너 노트 글 제목이 '피폐한 시대를 거치면서도 자신만의 진실을 굳건히 간직했던 한 사나이의 인생역정' 이었는데, 이런 거 보면 작품이 한국에서 제대로 이해되는데는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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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2023-04-16 13:21:16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
이 ost는 국내 라이센스로 세번이나 나왔죠. ^^

WR
Updated at 2023-04-17 21:23:25

아. 제가 예전에 갖고 있었던게 맨 끝의 저 스페셜 에디션 버전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저것도 라이센스 였겠군요. 가운데 것 역시 처음 봅니다. 그런데 어째서 스페셜 에디션이라 치더라도 그것을 포함해 같은 앨범을 세 개씩이나. 번갈아 들으시나요?

2023-04-17 23:08:40

네. 번갈아 들어요. ^^
이래저래 모으다 보니. ^^

1
2023-04-16 15:13:25

소녀 시절의 제니퍼 코넬리와 Amapola... 그 기억만 남았네요. 제니퍼 코넬리 역이 성인배우로 바뀌는 장면부터는 흥미를 확 잃었던 기억도 나고요..

WR
2023-04-17 21:27:02

엘리자베스 맥거번 캐스팅에 대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많았죠. 저도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됐습니다만 보다 보니 맥거번과 코넬리에게 비슷한 아우라가 있고, 이야기를 더해갈수록 당시의 어린 코넬리에게 드러나기에는 일렀던 냉소적인 느낌이랄까요. 그런게 있어서 좋았습니다. 

1
2023-04-16 21:22:57

그래도 되늦게 블루레이 라도나마 원작데로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악이죠.

WR
1
2023-04-17 21:43:31

그렇죠. 그 때 나온 블루레이 퀄리티로도 충분하긴 한데.. 당시에 부가영상도 좀 적은 편이었고, 작품에 관해 해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을텐데 너무 아낀다는 생각입니다. 엄청나게 안티가 많아진 제임스 우즈 안 부르고 뭔가 진행하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어영부영 하려다 못 울궈먹은 것인지.

1
2023-04-17 17:54:14

아련한 옛 기억의 카세트 테이프... 

WR
2023-04-17 21:44:49

사실 전 CD를 더 선호하고 좋아합니다만.. 어째 요즘은 MC, LP보다 더 가치떨어진게 CD가 됐네요. CD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암흑기가 따로 없습니다.

1
2023-04-18 18:42:15

저도 CD를 더 좋아합니다. LP의 뽀다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요. ^^

WR
2023-04-19 12:45:35

하하. 그렇죠. LP는 볼 때마다... 저걸 보관하기 위한 좋은 집을 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먼저..

1
2023-04-18 17:59:40

제가 보유중인 테이프가 3번째 버전인가 보네요
라이센스로 세번이나 발매되었군요 첨 알았습니다

WR
2023-04-19 13:06:30

그러게요. 이것도 라이센스였나 봅니다. 저도 예전에 이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는데 속지 뒷면에 한글 라이너 노트가 있었지요. 수입반에도 그런게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오직 라이센스 반에만 그런게 들어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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