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사바하 OST - Lama Tashi, 김태성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를 극장에서 봤을 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딱히 무서워서 그렇지는 않았고, 촬영하면서 무서움을 느꼈을 감독 마음이 상상되어서 그랬다. <검은 사제들> 이야 감독이 예전에 잘 연출했던 단편 원작이 있고 청년과 중년의 브로맨스를 좋아하는 수요도 꽤 있다. <사바하>는 장르가 오컬트인 이상 사이비 단체와 등장인물의 고통착취 같은 논란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을 감수하고 만들어 졌는데 <검은 사제들>에서 누렸던 이점들을 배제한 측면이 있다. 이정재와 박정민, 혹은 이정재와 이다윗을 놓고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커플링을 최대한 자제한 채 더이상 반반한 얼굴들의 케미스트리에 의지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단편 <12번째 보조사제>의 참신함이 사라진 채 좋게 봐줘도 <엑소시스트> 파쿠리 같았던 <검은 사제들>보다 훨씬 연출자의 야망과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사바하> 다. 흥행요소들을 많이 자제한 탓인지 분위기라도 환기시키고자 강박적인 유머 장면들이 한 번씩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공포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단편영화 시절부터 오컬트 외길인생을 걸어왔고, 심지어 성공작도 있지만 여긴 충무로 아닌가. 한 번 엎어지면 다시는 이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수 없음에 '무서워하는' 감독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고나 할까. 절박함이 있다.
굳이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같잖은 유머가 아니라 평생 사이비 종교의 허상을 파헤치는데 주력했던 탁명환 교수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으면서, 정작 본편에 등장하는 사이비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능력을 목격, 혹은 소유한 존재로 나온다는 점? 내가 감독이 아니지만 지금도 <사바하>는 박정민과 숨겨진 빌런 유지태는 초자연과는 관련없는 캐릭터가 됐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사바하> OST는 김태성 음악가가 담당했다. CD 매체의 몰락과 불법 다운로드 활성화로 가뜩이나 수요층이 적은 한국의 영화음악계는 더 쪼그라 들었고, 개봉작은 수백편인데 OST 출반은 12편도 채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 몇 년째 유지되는 중이다. 굳이 앨범으로 낼 상황도 안 되고 낼 필요도 없어서일까. 언제부턴가 한국영화 속 음악들은 대충 작곡된다는 느낌마저 받을 때도 있었다. 이 씁쓸함과 아쉬움 속에서 <사바하> OST는 근래 들은 한국영화음악들 중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수준이었다. 때문에 앨범이 소리소문 없이 나온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앨범을 발매한 레이블인 사운드미러가 하이파이 오디오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업계 위주로 알려져 있어서 판매처조차 제한적인 탓도 큰데, 하필 여기서 김태성 음악가가 작업한 결과물들을 주로 담당하니 어쩔 수가 없다. 이 OST 같은 경우엔 디지털 음원은 애플뮤직, 디스크는 아마존에서 사야한다. 제작사 측에서도 개봉 당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음반의 존재도 발매된지 2년 가까이 지난 올 해에야 알았다.
김태성 음악가는 <사바하> OST를 전부 승려인 라마 타쉬에게 할애했다. 티벳 불교 (밀교라고도 한다.) 수백년 역사가 담긴 소리들을 그대로 남기고 싶어 순수음반 컨셉으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마 타쉬는 티벳 불교에서만 전승된 독특한 저음 창법의 대가다. 승려로서는 유일하게 그래미 어워드 솔로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패티 스미스, R.E.M., 필립 글래스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 / 작업한 경력이 있다. 작업 당시 그가 살고 있던 지역은 달라이 라마의 고향이자 티베트 문화권인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영토 분쟁이 일어날만한 위치라 인도정부 측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김태성 음악가는 인도에 도착해서도 4일을 더 가서 해발 3000m 까지 올라야 한다는 그 곳까지 찾아가 봄딜라 사원에서 라마 타쉬를 포함해 총 92명의 승려와 동자승의 목소리, 그리고 그들이 연주한 범패 음악을 녹음했다. 개봉 당시 관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자장가' 같은 곡들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순 있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한국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설정과 장르적 설정을 진지하게 납득시켰던 <사바하>의 이세계적 분위기 조성에 라마 타쉬의 목소리가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재밌는 점은 1시간 10분에 가까운 음반 러닝타임이 전부 승려들의 목소리에서 조성되는 음산한 분위기로 지속되는데, 정작 그들이 읊는 것은 불교 진언이라는 점이다. 뜻도 모른 채 듣고만 있으면 사악한 존재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 공덕을 쌓기 위해 읊는 진언이라는 점에서 <사바하> OST는 외적인 인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참고로 디스크로 발매된 <사바하> OST는 일반 CD와 블루레이 오디오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제대로 된 홈시어터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애플뮤직에서 디지털 음원을 구매했어도 될 일이다. 그러나 디스크로 사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도리가 없었다. 블루레이 오디오는 24비트 LPCM 스테레오와 오로3D 9.1채널 포맷을 제공한다. 트랙의 7~80%가 사람 목소리 뿐인 이 OST를 통해 인간의 악기로서의 측면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야심이 돋보인다. CD로만 들어도 음질이 탁월한데 돌비 애트모스, DTS-X의 라이벌 격인 오로3D 포맷으로 앨범을 들으면 녹음했던 사원 한 가운데 있는 수준이지 않을까. (물론 포맷이 도입된지 10년쯤 됐는데 지금도 있는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결국 승자는 돌비 애트모스인가 보다.) 내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집어넣을 수 있는 큰 집부터 사야할 판인데 과연 살아 생전에 그 일이 가능은 할까 싶고, 어디 좋은 음악감상실 가서 블루레이 오디오로 <사바하> OST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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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가 있었군요
음반은 없어 영화만 구입했는데
이렇게 음반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거기다 블루레이 오디오도 있다니
소장욕심 나네요
근데 아마존에서 판다니...
국내판매는 아니네요 T
아쉽습니다
음악의 느낌은 저도 티벳,
티벳불교음반을 몇몇 소장하고
있어 뭔지 알겠습니다
흐미처럼 독특하기도 해서
저는 좋은데 다른 분들은 기괴하다고
해서 혼자만 듣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