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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무사 쥬베이 정발BD 자막 감수/ 검토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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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6-02 10:23:39

원래는 어제 발매될 예정이었던 [ 무사 쥬베이 ]의 국내 정식 발매 블루레이(이하 정발 BD)가, 발매사의 공지대로 그 발매일이 6월 4일로 다소 연기되었습니다. 


타이틀의 감수/ 검토 작업이 끝나면 여러분과 똑같은 물리 매체 애호가 입장으로 돌아가는 저를 포함하여 주말 동안 감질나실 모든 분들을 위해, 여러분들의 아쉬움도 달래드리고 겸사겸사 제 아쉬움도 달래보고자 이번 ‘무사 쥬베이’의 번역 감수/ 검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 토막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 본 게시글은 DP회원의 자격으로, '무사 쥬베이' 정발 BD 제작 중 관여했던 일화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1. 수병위인풍첩 - 무사 쥬베이 - 주베에 닌풍첩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으나, 이 애니메이션에 부여된 獣兵衛忍風帖 이라는 딱 하나뿐인 제목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선 크게 다음 3종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수병위인풍첩 : 일본 문화 개방 전, 유입된 제목. 

(* 한자의 우리말 독음 그대로 읽고 표기한 것입니다. 덕천가강徳川家康 막부장군幕府将軍 같은 식.)

 

2. 무사 쥬베이 : 일본 문화 개방 후, 정식 개봉 제목. 

(* 이른바 로컬 번안 제목. 국내 정식 발매 Blu-ray Disc의 타이틀명이기도 합니다.)


3. 주베에 닌풍첩 : (일본어)외래어 표기법을 지킨, 본래 의미에 가장 가까운 번역. 

(* 닌풍첩은 ‘닌자 활동의 기록’ 정도의 의미. ‘주베에(獣兵衛)’의 + ‘닌자 활동 기록(忍風帖)’이란 뜻.)


비단 제목뿐 아니라, 본작 자체가 일본 개봉 후 25년이나 지난 작품이기에 그동안 알음알음 알려진 번역 자막이 산재합니다. 때문에 그 번역의 방식이나 기조는 제목 표기의 종류보다 훨씬 다채로운 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리고 일본에서 제작된 원 HD 리마스터 데이터를 마스터로 하여 정식 발매된 이번 정발 BD에도, 그 수록 자막은 이에 걸맞게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번역, 작성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상술한 다채로운 자막들에 1종이 더 보태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정발 BD 수록 자막은 국내 정식 판매품이란 이름과 품위에 걸맞도록, 그 번역과 감수/ 검토에 성의를 기울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본 작품의 자막 번역에 있어 기준으로 삼은 기조는, 정리하면 크게 아래와 같습니다.


a. 사극(일본식으로 말하면 시대극) 배경의 이야기답게, 고풍스런 단어나 말투를 혼입

b. (1을 이유로)영어 등의 서구식 외래어 표현이나, 지나치게 경박스런 현대어 표현을 배제

c. 빠른 호흡의 이야기와 액션을 자막 이해로 방해받지 않도록,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번역


개중 a와 b는 작품을 이해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일종의 가/ 불가의 문제- 이므로,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번역/ 검토 자체가 성의 유무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태만하다 불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이들을 모두 엄중하게 지킨 것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바는 c, 에 따른 문장 구성이고, 검토 작업에서 주로 쟁점이 된 부분도 여기에 집중됩니다.

 

 

2. 직관적인 자막

 

이 작품에 바로 앞서 제가 검토했던 ‘시간탐험대’(원제: 타임 트러블 톤데케만) 정발 DVD 자막의 번역 기조는, 일전의 관련 게시물에도 언급했듯이 '되도록 일본어 원문의 뉘앙스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시간탐험대란 작품에서 빈번한 말장난식 대화를, 자막에서는 되도록 그 표현이 왜/ 어떻게 나온 것인지 최대한 이해를 돕는 각주를 붙이는 것에 대해, 검토자 입장에서도 역자분의 각주 사용을 지나치게 터치하거나 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긋한 분위기인 데다가 각 에피소드가 20분 남짓의 액자식 구성이라 아무 화나 꺼내보고 얼마든지 생각에 잠길 시간을 주는 TVA ‘시간탐험대’(더구나 우리말 음성이라는 별도의 즐기는 방법도 있는)와는 달리, 이 작품은 90분가량을 그야말로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와 현란하면서도 굵고 간결한 액션이 미덕인 ‘극장 애니메이션’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검토 작업에 임하는 시점부터 이미 개별 표현의 출처나 이해에 대한 설명을 굳이 세세하게 돕기보다, (최대한 많은 분들이)빠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자막의 전달에 중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역자분께서도 이에 동의하여 상호 대화로 수정해 나간 결과, 최종적으로 본 정발 BD의 자막에선 c도 어느 정도 구현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이 프롤로그 시퀀스, 개중에서도 가장 첫 대화의 자막은 초벌 시점엔 해당 대사(腹の虫がおさまらない)의 일본식 숙어 표현이 거의 그대로 옮겨지고 그게 왜 이 상황에서 나오는 말인지 설명하는 각주가 붙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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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陣: 네놈 탓에 300냥을 날렸다


이대로는 배 속의 벌레가 진정되질 않아

(※ 분을 삭일 수 없다는 뜻)


獣兵衛: 배 속의 벌레가 울고 있다면


이걸로 참아 줄 수 없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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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서 언급한 c. 의 기조를 만들려면 초입부인 여기부터 방향을 다르게 잡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역자분께 전달하여 이해와 동의를 얻은 결과, 최종적으로 실린 제품판의 자막은 아래처럼 변경되었습니다.

 

-------------------------------------------

道陣: 네놈 탓에 300냥을 날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참을 수가 없군


獣兵衛: 그렇게 속이 부대낀다면


이걸로 달래 볼 순 없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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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작중 간혹 한두 번 가량 나오는 옛날 방식의 시간 표현, 예를 들어 ‘반시(半時/はんとき = 현재의 1시간에 해당.)’나 ‘일시(一時 = 현재의 2시간에 해당.)’ 같은 것에 대해서도, 본래는 각주를 통해 현대 시간으로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흐름이나 그 스토리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있어 반드시 해당 대사에서 해당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 필요는 없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역시 (ㄱ의 케이스처럼)각주는 배제하고 다만 한자 병행 표기만을 택했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하지만 좀 다른 예인 ‘쇼군’이나 ‘번주’와 같은 일본의 옛 직책에 대해서는, 한자 병행 표기도 배제하여 순전히 시청자분들의 주변 지식이나 감상 후의 검색 등에 일임하였습니다. 직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이라도 작품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대충의 위계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순간적인 직책의 이해가 이 작품의 이해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단, ‘가로家老’라는 직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각주를 추가하였습니다. 작중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의 직책이기에 그 중요성도 강조할 겸.)

. 몇몇 한문식 표현에 대해서는, 일종의 대구 관계나 발언 인물의 분위기 등을 맞추어 풀어 쓰느냐 그대로 쓰느냐가 혼용되었습니다. 풀어 쓰는 건 글자 수 한도 내에선 일반적이므로, 그대로 쓴 경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상기 좌측 스크린 샷의 유리마루란 캐릭터는, 사극 배경 속의 작품 속에서 조직의 중간 관리직쯤 되는 인상과 말투를 가지고 있기에, 이 인물이 말하는 대사大事란 표현 역시 굳이 큰일이나 커다란 목적, 목표등으로 풀어 쓰이지 않고 (현대 국어에서는 사용 빈도가 줄어든)‘대사그대로 옮겨졌으며/ 이는 후에 나오는 (현대 국어에서도 여전히 꽤 쓰이는 표현인)‘중대사란 단어와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이 두 표현은 서로 다른 인물이 말하지만, 행위 자체는 같은 일을 지칭합니다.)

 

한편 비슷하지만 의도가 좀 다른 예로,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대치하는 적측 집단 鬼門八人衆같은 경우에도 (한자 독음 그대로)‘귀문팔인중으로 옮겨졌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보다 부드럽게 풀어 옮기면 귀문 8인조라든가 귀문 팔인방정도로 옮길 수도 있고 이쪽이 더 깔끔하다는 견해도 충분히 있겠으나, 이 단어가 일종의 집단의 공식명칭이란 점을 감안하여 굳이 제작자가 그런 한자로 표기한 의도를 살리고자 함입니다.

 

. 그 외에 소소하지만 발언 의도 전달을 중시하여 원문 직역에서 좀 벗어난 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반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서) 실제 대사는 스마나이’(미안하다)지만 - 이 상황이 태풍으로 파손된 집을 복구하는 자재를 가져와 준 이웃에 대한 인사임을 감안하여 - ‘고마우이로 옮겨진 경우처럼.(“미안하구먼, 고마우이.” 라는 뉘앙스이기에.) 

허나 이와 정반대로 위 대사 같은 경우는 원문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자막은 자막 길이도 다소 길어 보이거니와 굳이 저렇게 세세하게 적어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당초 역자분께 다른 요약 표현을 제시한 적도 있는 대사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자막이 최종적으로 이와 같은 형태를 띈 이유는 1. (위 대사를 말하는)다쿠안이란 캐릭터는 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역할(소위 ‘설명역’)도 맡고 있다.(이는 코멘터리에서도 언급됩니다.), 2. 이 대사 자체가 일종의 ‘상반되는 대상을 모두 제시하여 그 뜻을 강하게 전달하는 경구’이기 때문에 요약을 통해 이 구조를 무너뜨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라는 의견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위 스샷처럼)제품판에도 그대로 수록되었고.

 

 

3. 닌자 쥬베이의 이야기

이런 식으로 역자분이나 검토 역을 맡은 저나 이런저런 성의를 기울인 건 사실이오나, 그것이 반드시 모든 구매/ 시청하시는 분들께 완벽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란 점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시다 보면 더 좋은 번역을 생각해내시고 아쉬워하실 분도 계실 수 있을 터라, 당연히도 현 정발 BD의 자막이 무조건 최고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대화 사항을 최대한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100점에 가까워지는 코멘터리 자막을 검토하는 쪽이, 비록 말도 더 많고 그만큼 검토도 더 오래 걸리지만 더 마음이 편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무사 쥬베이 정발 BD의 코멘터리 자막 역시, 이에 충실하게 번역/ 검토 되었습니다.) 본편 자막의 번역이란 한 번에 표시할 수 있는 문장 길이에 상당한 제약이 있고 여기에 일종의 ‘문학적 느낌’이나 ‘예술적인 센스’도 가미되어야 정말 좋은 번역이 될 수 있기에, 쉽지도 않거니와 그만큼 모든 분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보니.


허나 비록 진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본편 자막의 한 글자 한 글자 모두에 역자분과 검토에 임한 이들의 의도가 100% 담겨 있고, 그것이 되도록 주의 깊고 다각적인 확인을 거쳤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평가는 오로지 구매하여 시청하시는 분들께 전적으로 맡깁니다.

 

자, 이제 쥬베이를 다시 만나볼 날이 목전입니다.

 

님의 서명
無錢生苦 有錢生樂
10
Comments
2018-06-02 08:02:57

 수고하셨습니다 잘 마무리되어 전달 되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2018-06-02 08:12:48

고생하셨어요.

며칠 연기되었으나 이 글로 달래 볼 순 있겠어요^^

2018-06-02 08:19:40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막 검수가 단지 문법이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것임을 다시한번 느끼며, 연기된 것이 달래지기보다 하루빨리 더 만나보고 싶습니다.

2018-06-02 11:02:09

1999년인지 언젠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동네 대학생 누나가 본인 컴퓨터로 보여줘서 같이 본 기억이 있네요!자막까지 완벽하다니 구입해야겠습니다! ㅎㅎ

2018-06-02 11:43:57

몇일 연기가 아쉽긴 해도 설레임의 시간이 길어져 나름 행복?합니다ㅎ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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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6-02 12:30:19

우선 고생하셨고 감사드린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개인적으론 문화의 차이상 의미 전달이 다소 쉽지 않다 하더라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직역을 하는게 창작자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보는지라 위 예시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살짝 아쉽군요. 저런 경우 일반 유저들이 만든 자막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경우처럼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고 아래에 이해를 돕는 주석을 다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만.. 쓰신 그대로 표기하는 식으로요.

'이대로는 배 속의 벌레가 진정되질 않아'
(※ 분을 삭일 수 없다는 의미)

물론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 특성상 읽을 시간이 부족한 점을 감안해야 하니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고 커멘터리 등 다른 수단으로도 추가 설명은 가능하니
의미 전달 위주의 의역도 이해는 갑니다. 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니
그냥 의견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8-06-02 12:23:32

새삼 박아무개 번역가가 생각나는군요.

2018-06-02 14:02:39

완벽이라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완벽에 가까워 지도록 노력하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거 아니겠습니까?

본문 수준의 번역이라면 만족하네요 대단히 수고하셨어요 johjima님

2018-06-02 18:29:17

johjima님 고생많으셨습니다.
이 글을 보고나니 주말동안의 헛헛함이 달래지기는 커녕 더 설레이고 두근두근 거려서 오히려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2018-06-04 17:43:51

 정말..고생하셨네요...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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