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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상해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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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12-31 19:13:29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이지만, 근교도시 포함한 인구 기준으로는 상하이가 최대 도시이죠. 아시듯 중국의 최대 무역, 금융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거리도 가까워서 가장 많이 가시는 곳 중 한곳이 아닐까 합니다.

 

 

 

 

 

 

상해에 가신다면 당연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는 방문하셔야죠. 한국인이라면 필수코스입니다. 투어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항상 우리나라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대로변이 아니라 골목 안쪽에 입구가 있습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니까 굳이 사진 찍지 마시고 조용히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아쉽고 저의 기우였으면 좋겠다는 부분인데, 상해에 오시면 임시정부는 많이 가시지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그렇게까지 많이 가진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시내 관광지 중심부와 살짝 떨어져 있기도 하고, 조금 걸어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굳이 일부러 찾아 가시는 곳은 아닌듯 합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루쉰공원(예전 홍커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3, 8호선 홍커우 축구장(虹口足球场) 역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입니다.

 

 

 

 

홍커우 공원은 홍커우 스타디움 옆에 있습니다. 최강희 감독, 김신욱이 활약하고 있는 상하이 선화의 홈 경기장이 홍커우 경기장입니다.

 

오래 전에 여기 축구보러 왔다가 이곳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서, 흉상 앞에서 제발 축구 이기게 해달라고 철딱서니 없는 기원을 드렸던 일이 생각나네요. -_-;;

 

요즘 중국은 어딜 가나 저 '70'이란 숫자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기념하고 있죠.

 

 

 

 

홍커우공원은 우리나라 파고다 공원 생각하시면 됩니다. 굉장히 넓은 공원인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의자에 앉아 햇빛도 쬐고, 산책도 하고, 호수 낚시도 하고, 악기도 연습하고, 카드놀이도 하는 그런 곳입니다. 예전에는 마작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카드로 주종목이 바뀌어 있더군요.

 

 

 

 

 

공원 내 윤봉길 기념관은 매원(梅園), Plum Garden이란 이름으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루쉰공원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이곳 기념관은 15위안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플라스틱 카드를 주는데, 지하철 개찰구처럼 입구에 카드를 넣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입구 초입에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곧 기념관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저 한국식 가옥 하나가 기념관에 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윤봉길은 1908년 6월 충남 출생으로 공립학교 재학 중 3.1운동을 목격하고 학교를 자퇴합니다. 신학문을 통해 민족의식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그러면서 친구들과 야학을 열어 농민들에게 한글과 신학문을 가르치는 등의 다양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합니다.


 

 

 

부흥원을 세우고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를 풍자화한 학예회를 열기도 합니다.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고, 또 일제 경찰이 윤의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자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 망명의 길을 택합니다.

 

※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는 집을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가 한국애국단의 일원으로 홍커우 공원 의거를 자원합니다. 거사에 앞서 김구와 회중시계를 교환한 일화는 유명하죠.

 

 

 

 

 

  

1932년 4월 29일 오전 홍커우 공원에서 있었던 일왕 생일 축하식 2부 행사에서 일본 국가 제창이 끝나가던 무렵, 윤봉길은 수통형 폭탄을 단상으로 던집니다.

 
폭탄은 정확하게 단상 중앙에 떨어져 폭발했고, 일본의 시라카와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은 폭사하고 가와바타 상하이 거류민단장은 다음 날 죽습니다. 그외 노무라, 우에다 등의 일본 군부, 정계 핵심 인물들 다수가 중상을 입습니다.
 
 
  
 
실제로 거사에 쓰인 폭탄은 수통형 폭탄이고, 도시락 폭탄은 거사 후 자결용이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거사가 있었던 그해 12월 19일에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불과 스물 다섯 살의 꽃다운 나이.

 

 

 

 

  

 

 

만약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없었다면 임시정부 활동은 얼마 못가 끝났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윤의사의 거사가 있은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세력의 영향을 피해 중국 이곳저곳을 떠돌게 됩니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윤봉길 의사의 유언)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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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11-22 18:43:5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상해가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WR
2019-11-23 16:12:27

상해 가시면 한번 방문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기념관도 보시고 고즈넉하게 산책로 따라 천천히 걸어보시면 좋습니다.

1
2019-11-22 23:53:35

저도 없는 시간 쪼개서 다녀왔었는데 잘 정리해주신 글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WR
Updated at 2019-11-23 16:15:13

퍽퍽한 일정에 애써 방문하셨다면 진정 애국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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