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와인] 와인사냥 이야기
와인을 정확히 언제부터 마셨을까 까마득합니다.
촌놈이 신세계백화점 계단 밑 좁게 자리잡은 와인 코너를 신기하게 둘러본 기억이 아마도 90년 언저리(그 이전)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만 보졸레 누보부터 해서 프렌치 와인이 정말 저렴하게 판매되었습니다.(쇼핑몰 검색할 때 가격 밑에서 부터 정렬하는 타입입니다.
- 말라서 부스러지는 코르크 후벼내고 / 샴페인 못지 않은(아마 핸들링 하면서 흔들었을 것) 기포의 힘으로 코르크와 와인이 집들이 간 집의 거실 천정을 붉게 장식했던 일 / 그 집의 화장실에 그림을 그리게 된 일 (지금 돌이켜 보니 백퍼 부쇼네(상한 와인)였음. )
- 소낙비 촤아촤악 쏟아붇는 길을 뚫고 와인 창고 세일 하는 곳에서 듣기만 했던 와인들을 업어와서 본시 두고두고 마시자던 생각과 달리 그 밤에 세병을 내리 마셨던 일(부부합산 엄지척 4개이므로 합의하에 가능한 일이고 10년이 넘은 일이나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종종 이야기 합니다) - 샹베르탱, 라뚜르, 리쉬부르 등 이었던가 하여튼 그 급이었는데 부부간의 아햡이야 많을 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십 몇년 사이에 3번 정도 새벽까지 3-4병을 둘이서 마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제는 그랬다간 큰일납니다. 조금씩 가느다랗게 오랫동안 즐기고 싶습니다.
- 나이 지긋한 초대손님이 있었는데 와인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모르고 테이블 와인을 마시게 했던 일(나이 먹고 비슷한 입장이 되다보니 당시 와인은 권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취향이 천차만별하고 소화할 수 있는 범위가 개인차가 심합니다. 하지만 소주문화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돌이켜보니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 밑에 내용에서 좋은 와인에 대한 본인의 정의 참조
추운 날씨와 산중에 폭설이 내려 익스트림 레벨이 아닌 우리 부부는 등산도 산책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에 처했습니다. 해서 금요일 저녁부터 와인을 오픈했었죠. 여러 병을 사두고 마시는 와인인데 병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습니다. 그래도 편차의 범위가 좋음과 아주 좋음 사이여서 믿고 쟁여 둔 와인입니다.
한달 정도 유튜브채널의 영향으로 소노마 나파 등지로 외도 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우리 취향으로 돌아와서 우리 부부는 의기투합합니다. 이 와인을 더 사놓자고.
10년 넘게 주말 마다 1병씩( 최근 들어 둘이서 주 1병, 예전에는 주 1인당 1병 ㅋㅋ) 꾸준히 와인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1병에 적어도 2시간 이상의 대화의 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거스리지 않는 수준의 와인만 있다면 대화를 이끌어 내고 다시 주말에는 그런 시간을 갖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대화중독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ㅎㅎ 좋은 와인메이트는 인생의 축복입니다. 배우자가 아니어도 됩니다만 배우자인 경우는 정말 ㅎㅎ 말을 아낍니다.
와인도 술이고 잦은 주기로 장기간 마시면 독이 되는 게 술입니다. 여기서 우리 부부는 경험으로 공감하게 되는 좋은 와인의 정의를 하게 됩니다.
- 포도 종류, 도메인, 명성(점수) - 마시다 보면 각도기가 생깁니다. 각자 좋은 게 좋은 거지 싸울 일 없습니다.
- 오픈했을 때 부터 입에 붙는다( 보통 고가일수록 가능합니다)면 좋겠지만 이는 핸들링하기 따라서 와인의 본색을 드러나게도 하고 영원히 오해하게도 만듭니다.
- 마지막 한방울까지 여운이 남는 맛을 보여준다(이것도 고가일수록 가능성 올라감) 마리아쥬라고 하는 음식궁합에 따라 진면목을 모르고 마시는 와인도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마실때도 맛있으면서 취하지 않고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나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숙면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아침에 잠이 깰 때 개운한 느낌을 주는 와인입니다. 지금은 이런 와인만을 소화할 수 있기에 와인 고르기에 최선을 다하거나 이런 경험을 준 와인을 쟁여놓고 마시거나 어느 정도의 점수와 가격대 이상에서 고르거나를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어차피 가지고 있는 돈으로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와인 병수를 최대한 늘리려면 좋은 와인을 값싸게 구해야 함은 누구나 동의하시겠죠? 세상에 좋은 와인은 많고 그 중에 아직 마셔보지 않은 와인도 많지만 우리는 우리의 대화중독을 길게 가져가려면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ㅎㅎ
먼저 제일 먼저 미국 와인을 빼버립니다. (품질 대비 고가/ 좋은 와인 고가격화/양극화된 품질로 예지력 무력화) 다음이 프렌치를 애니버서리/생일 등의 이벤트를 제외하곤 평소 와인에서 제외 시킵니다.(1년에 좋은 날엔 와인을 서로 선물하듯 챙깁니다, 다른 것은 필요없습니다). 다음은 이태리와인이 이 대열에 동참합니다.(몬탈치노나 키안티 좋아합니다만 수퍼투스칸을 비롯 거품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저렴한 예산으로 음주 후 좋은 아침을 보장하는 와인 찾기가 정착한 곳은 스페인입니다.(뉴욕타임즈 기사 참조, 키워드 spain wine gran reserva)
호주, 이태리 쪽을 거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스페인 와인 코너에서 적당한 가격과 Gran Reserva급을 쓸어담아 옵니다. 물론 출혈이 심한 가격대의 와인은 입맛을 다시며 제외합니다. 가격으로만 와인 고른다면 실패할 일이 적어지겠습니다만 그러다간 인생 실패하겠죠. 가늘게 길어야 하는 대원칙을 위배하게 됩니다.
주의: 요즘엔 스페인 그란리제르바라고 해도 2년 이상의 오크통 숙성 원칙을 안 지키고 변칙을 쓰기도 하는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남미 와인도 그란리제르바는 기준이 제각각임) 결국 선구안은 실패를 거듭하며 길러지는 것입니다. 제 탓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대로 지킨 것 조차도 별 감흥 없는 와인도 있었습니다. 다만 가격대 품질이 상대적으로 높을 확률이 높았다는 경험이란 이야기입니다.
이 와인들을 마시는 도중에 10년에 몇 번 안되는 원나잇쓰리바틀 8시간 이상의 열띤 대화와 음악감상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따봉
주말이되고 저녁에 뭐 먹지 하다가 음식이 정해지고 이 메뉴는 와인안주에 딱이지 않아?를 공감하게 되면 어느 새 코르크를 뽑고 있습니다. ㅎㅎ 와이프는 속이 아파 약을 먹고 있음에도 그 와인 마시면 괜찮겠다 하면서 지정을 했고 저도 동의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렇게 마셨고 토요일 아침에 개운했고 해서
우린 드라이브를 떠납니다. 등산을 ? 아뇨 로드트립을? 아뇨? 와인 사러! 예스!
이 와인은 은근히 소문히 퍼지는 지 도심부에서부터 재고가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차로 20분 거리 매장에서 재고로 남아있는 몇병을 들고 왔었고 10분 거리 매장의 진열장 뒷쪽에 숨어있었던 6병들이 1박스를 운좋게 사오기도 했는데 로컬에서 재고가 떨어지는 와인이 미리 매집했던 와인사이트 판매가격이 점점 오르거나 실소비자가 모두 사버려서 정말 구할 수 없게 되는 수순이 되겠습니다. 대단한 와인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부부의 "좋은 와인의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린 사러 가야합니다. 어디로?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5병 재고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매장의 스페인 와인 코너를 보니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래티튜드(나름 유명?) 종류가 많고 잘 팔리더군요. 임페리얼은고가격이라 패스하고요 ㅎㅎ. 뿌듯한 마음에 돌아오는길에 검색을 하던 와이프가 차로 40분 거리 매장에 6병이 있다고 해서 다음 주에는 그 곳으로 와인사냥겸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그 곳 와인만 사면 적어도 집 주위 1시간 이내에서는 이 와인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ㅎㅎ
가격은 상대적이라 비쌀 수도 안 비쌀 수도 있습니다. 특히 와인이란 게 그렇습니다.
이상 커피는 끊어도 와인은 못끊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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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이시네요. 요즘은 남아프리카와 그리스 산 와인들도 괜찮더군요. 맛도 가격도요. 그쪽도 한 번 둘러 보세요.
이번 주말도 좋은 시간 보내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