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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시크릿 슈퍼스타 (Secret Superstar)(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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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5:2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스포일러 있음]

인도에 살고 있는 중학생 소녀 인시아 (자이라 와심) 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가수를 꿈꾼다. 재능도 충만하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아버지 파루크 (라지 아르준) 는 딸을 돕기는 커녕 억압하고 차별하기 바쁘다. 오죽하면 이름도 '여자' 라는 뜻을 가진 '인시아' 로 지었을까. 어머니 나즈마 (메헤르 베즈) 의 아이디어로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채 ‘시크릿 슈퍼스타’ 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에 노래 영상을 올린 인시아.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얻어 인기를 끌게 된다. 한 때 명 프로듀서였으나 요즘은 스캔들메이커로 악명 높아진 샥티 쿠마르 (아미르 칸) 가 공동작업 하자며 러브콜을 보내고, 인시아는 자신을 좋아하는 동급생 친탄 (트루스 샤르마) 의 도움으로 그와 연락하게 된다.

 


인도영화계의 3대 칸 중 한 명인 배우 아미르 칸이 제작하고 출연한 작품에는 흔히 '믿고 본다' 는 표현이 붙는다. 10여년간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이 비평과 흥행 면에서 높은 성과를 거둬온 덕이다. 전작을 다 챙겨보진 않았지만 아미르 칸이 출연한 작품들은 춤과 노래, 온갖 장르가 들어있는 오락물인 일명 마살라 장르의 흐름 속에 인도에 만연한 사회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엮는다는 점에서 분명 다른 매력이 있다. <시크릿 슈퍼스타> 역시 포스터에 나오는 정보가 다가 아니다. 얼굴 없는 가수 컨셉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소녀 인시아가 성차별을 딛고 성공하는 이야기는 맞지만 좀 더 깊은 지점까지 들어가고 있어서다. 작품은 아미르 칸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연기한 샥티 쿠마르의 출연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분량과는 별개로 너무 웃긴 캐릭터라서 기억에는 오래 남는데 실질적으로는 인시아와 어머니 나즈마, 모녀 투톱으로 진행되는 형태다.

 

 


도입부부터 인상적이다. 인시아는 학교 단체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어머니 나즈마 (메헤르 비즈) 가 눈 주변에 피멍이 들어있는 모습을 본다. 작품을 볼 때 나즈마의 첫 등장 장면에서 보여준 멍자국에 전율했다. 단순히 멍든 데서 끝내지 않고 눈에 실핏줄 터진 모습까지 묘사한 리얼한 분장을 선보이고 있어서다. 눈이나 뺨에 생긴 멍자국은 TV 드라마나 영화, 만화 등에서 익살스럽게 등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우스꽝스러움, 붓기를 가라앉히려고 계란으로 상처 주변을 빙글빙글 돌려주는 연출 등이 나오면 알 수 없는 희극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탓이다. 그래서 폭력 연출이 아니라 일종의 해프닝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시크릿 슈퍼스타> 는 첫 장면부터 폭력을 해프닝으로 묘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즈마의 멍든 상처, 폭행당한 그녀를 마주하는 딸 인시아의 반응을 통해 고통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연출했다.

 

* 보통 멍이 들었다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략 이런 것 *


눈에 난 멍자국은 많은 정보를 준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남편인 파루크 (라지 아르준) 가 단순히 엄한 것을 넘어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점. 동시에 인도 여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 중에서도 가정폭력을 주로 다룰 것임을 초장부터 강렬하게 전달해주는 예고와도 같다. 이후로도 작품은 파루크가 저지르는 폭력 장면을 직간접적으로 등장시킨다. 눈쌀 찌푸릴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만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아내를 폭행하고 아들만 편애하며, 가수를 꿈꾸는 딸을 강제로 조기결혼 시키려 든다. 여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인도의 가부장적인 가족이 지닌 폐해를 총정리해서 형상화시킨 존재라고 해야할까. 영화계에서 간만에 보는, 동정할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이 본업에 충실한 악역이다. 남자에 대한 편견으로 고안된 캐릭터인가 싶다가도 뒤떨어진 인도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그를 등장시켰다는 의도가 분명해서 존재이유가 적절해 보인다. 파루크라는 악역 덕분에 인도의 여성인권이 얼마나 열약한지 인지된다. 동시에 150분의 상영시간 동안 긴장감이 이어지며, 인시아와 나즈마 모녀가 극복해야 할 벽이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시크릿 슈퍼스타>는 파루크로 은유되는 차별적인 인도사회에 굴하지 않는 인시아를 통해 여성에게 잠재된 강한 힘을 드러내려 한다. 이 작품 속 여성묘사는 '처음엔 약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가 아니라 처음부터 강했음을 전제하는 형태라서 흥미롭다. 단지 이를 자각하는 계기가 부재했다고 말할 뿐이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노트북과 유튜브, SNS는 재능을 어떻게 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주며, 인시아는 이를 계기로 웬만한 금기를 뛰어넘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은근히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겨우 중학생인 인시아가 꿈을 이루기 위해 샥티 쿠마르를 만나려고 학교를 탈출해 홀로 뭄바이행 비행기를 타는 장면, 간 김에 어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유명 변호사에게 도움을 부탁해 이혼서류를 만드는 장면들이 그렇다. 분위기만 현실적일 뿐 결국 신들의 나라에서 치는 또다른 발리우드식 허풍일 뿐일까. 알고보니 또다른 주인공인 나즈마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장치로 활용한다.



인시아의 시선으로 볼 때 아버지에게 맞기만 했던 어머니 나즈마는 바보같다. 그래서 자신이 계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나즈마는 딸이 받아온 이혼 서류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이후 할머니 (파로크 자파) 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들은 인시아는 어머니의 모성 앞에 꿈을 일순간 포기한다. 이혼 서류를 놓고 인시아와 나즈마가 다투고, 인시아가 가수의 꿈을 꺾는 순간은 흐름 상으로 보면 씁쓸하고 부정적인 순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이 지닌 힘이 얼마나 가공할만한지를 증명하는 연출이 된다. 나즈마의 논리가 흥미로워서 인상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언급만 되긴 하지만, 인시아 가족의 이웃은 여자가 외출할 때 부르카를 쓰지 않아도 되고 파인 옷을 입어도 되는 일명 '신식 가족' 이다. 그러나 나즈마는 평소 인도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했고, 신식 가족은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그녀의 삶은 사실 혼자서 바꿀 수 없는 견고한 현실 앞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투쟁이다. 보통은 이런 인내가 나약함의 예시로 설명된다. 그러나 <시크릿 슈퍼스타>의 나즈마는 남편의 폭력에 굴종하는게 아니라 딸을 위해 어머니로서 견디는 삶을 산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인시아가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자유를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작품은 이런 그녀의 힘을 존중한다. 그래서 딸의 강요로 계몽되는 전개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만 딸을 위해 자기 힘을 좀 더 자각하고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써야할지를 확실하게 선택할 때까지 기다린다. 나즈마가 선택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다. 친탄이나 샥티 쿠마르 같은 캐릭터들이 조력자 위치에 있지만 이들은 오직 인시아만을 도우며 그 한도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나즈마가 인시아를 위해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클라이맥스는 큰 쾌감을 안겨준다.



<시크릿 슈퍼스타>의 감독인 애드바이트 찬단은 과거 아미르 칸의 매니저로도 활동했으며,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다. 상당히 주목할만한 연출력이다.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자각하기까지 기다리는 사려깊은 태도가 있고 그 때까지 어두운 인도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발랄한 유머를 섞는 솜씨가 있다. 이로서 관객을 능숙하게 웃기고 울리다가 통쾌하면서도 격이 있는 마지막 국면 전환을 선보이며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통상적으로 인도영화를 볼 때 기대하게 되는 화려한 군무 장면은 없지만 대중적인 작품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 꿈을 이루는 인시아의 이야기는 사실 현실화되기 힘든 판타지다. 하지만 경직된 사회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꿈을 꾸라고 말한다.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기본적인 행위라는 것을 아는 <시크릿 슈퍼스타>의 외침이자 인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향한 응원이다.

 


p.s.


1) 작품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으로 촌빨 날리는 구석이 있는데, 슬로우 모션을 참 못 쓴다.특히 인시아를 연기한 자이라 와심의 외모를 망가뜨리기로 작정했는지 슬로우 모션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눈이 뒤집히는 듯 흰자가 보인다. 왜 그렇게 찍었을까.


2) <당갈> 에 이어 이번에도 아미르 칸과 함께 출연한 자이라 와심은 올 해 <나의 하늘은 핑크빛> 을 끝으로 배우 은퇴 선언을 했다. 종교적인 이유란다. 종교와 영화 / 만화인은 참 안 좋은 관계같다. 매번 종교에 귀의해서 영화나 만화 안 만드는 불상사가 발생하니. 이거 원.


3) <세 얼간이> 때부터 아미르 칸은 중국 영화시장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시크릿 슈퍼스타>도 한국보다 먼저 개봉해서 높은 흥행수익을 올렸는데, 개봉 이후 중국 관객들에게 '가정 폭력이 일어났을 때 대충 넘기지 말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라는 의식을 심어주는데 큰 공헌을 했다. 실제로 이 작품 개봉 후 중국 경찰 측에 접수된 가정 폭력 신고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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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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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1 02:09:14

저도 여주가 눈감을때 흰자위가 희번떡거리는게 거슬렸는데 그런부분은 감독이 컨트롤안한게 아쉬웠어요.

WR
2019-11-01 02:11:27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군요. 데뷔작이라 세세하게 신경쓰지는 못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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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01 03:03:14

전 스튜디오 노래장면서 웬 팔꿈치을 그리도 흔들어대는지...
박명수가 노래부를때 그렇게 하는게 생각나서 집중이 안되더라구요ㅎㅎ
슈퍼스타 성공기인줄 알았지만 모녀의 인생개척기였던

WR
2019-11-01 10:52:09

안 그래도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길래 어찌 되려나 싶었는데 제목인 '시크릿 슈퍼스타' 란 표현을 어머니에게 부여해도 어색하지 않게끔 봉합을 잘 하더군요. 찡했습니다. 

 

말씀하신 아미르 칸의 그 댄스 장면은.. 그 희한한 안무도 안무였지만 보는 사람 힘빠지게 만드는 신음소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실실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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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1 08:05:10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인도영화에 대한 편견을 싸그리 없애준 세련된 영화였어요.

WR
2019-11-01 10:56:08

그러고 보니 이 작품 개봉한다는 소식을 작년부터 들었는데 너무 늦게 개봉한 것도 같네요. 리뷰 올리고 나서 문득 관이 얼마나 남았나 찾아봤는데 거의 없군요.  이거 진짜 좋은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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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1 09:23:14

이 영화하고 영국영화 "와일드 로즈"하고 같이 봤는 데요..

전혀 다른 영화이지만 비슷한 장르 비슷한 설정으로 재미가 색다르더군요...

WR
2019-11-01 10:59:58

아. <와일드 로즈>는 포스터만 봤기 때문에 몰랐습니다. 순간 갑자기 그 작품과 <시크릿 슈퍼스타>의 연관성을 의심해 봐야하나 생각도 드네요. 요즘에서야 저작권 사서 영화 만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기존에 존재하던 작품의 인도판을 만들던게 발리우드였던지라.

2019-11-01 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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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
2019-11-01 11:15:10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일드 로즈> 쪽 세계관도 만만찮게 팍팍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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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01 09:28:23

부천영화제때 보고 감독GV도 들었고 싸인도 받고 같이 사진도 찍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역시 '믿고보는' 아미르칸 영화구요 전작인 [세얼간이] [PK] [당갈] 등 사회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지혜로운 시각으로 잘 만드는 재주가 있는 영화인 인것 같습니다. 실제로 본인의 이름을 딴 프로덕션 까지 가지고 있을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의 인물이기도 하죠 최근작 이자 헐리우드 스타일의 오락물인 [힌두스탄의 불한당] 도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국내 정식수입 개봉이 되었으니 블루레이 출시를 기대해도 될듯하네요

WR
2019-11-01 11:10:21

냉정히 생각해보면 외적인 완성도까지 따지면 <당갈>이 더 좋았지만 아무래도 애드바이트 찬탄 감독은 이번이 데뷔작이라 생각해보면.. 영화인 중 누구 입김이 더 반영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나니 다음 작품이 많이 기대됐습니다.

 

<힌두스탄의 불한당>도 보셨군요. 저도 예고편 보니 재밌어 보이던데 망했다 그러길래 놀랐습니다. 이런 조합으로 망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뭐 어쩌다가 그리 된거지 싶었는데, 총알 님이 재밌게 보셨다길래 그래도 볼만한가보다 싶어 안심이 되는군요. 발리우드 영화들도 언젠가 아이맥스로 볼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요.

1
2019-11-01 14:03:10

 저도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훌륭한 후기 감사합니다

WR
2019-11-01 17:47:50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추천이나 살포시 한 번 눌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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