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짧은 인생
몸은 어제부터 잠을 설쳐 정말 너무 피곤한데 쉬이 잠이 들지 않아 적어봅니다.
친척 한 분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떠올려보니 십 년이 넘어가더군요. 제가 오디오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밑도 끝도 없이 물었을 때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외에는 가족 행사에서 잠시 인사 나누고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요.
본인 직장에서는 업무능력이 뛰어나 인정받고 조직 내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는 건 어렴풋하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직장에서 온 수많은 조문객들이 능력도 너무 아까운 사람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이렇게 빨리 가버렸다고 애석해하더군요. 20년 넘게 같이 일하며 일을 배웠던 직원도 너무너무 존경하는 직장상사였다고.
제가 기억하는 그에 대한 단편은
고무줄 뛰던 시절, 저희 집에 잠시 함께 살았던 시기였는데 독학으로 일렉기타를 튕기며 연주하던 모습,
저희집 마당에서 혼자 나무판을 만지작거리고 대패질 하더니 어느날 완성한 것은 꽤 그럴듯한 스피커였지요.
또 제가 10대가 되었을 때 방문한 그의 시골집에선 쩌렁쩌렁 울리도록 진공관 앰프를 켜고 음악 듣고, 클래식LP판 올려 놓고 흐뭇하게 웃던 모습, 먹을 갈아 놓고 정성스레 붓글씨쓰고 있던 모습,
제가 한창 놀던 20대일 때 요즘 공부하러 다닌다며 오래된 고서를 뒤적이며 한자책을 보던 모습 등등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4개국어를 하고 해외출장 다니고 주말에도 직장에 불려 나가면서도, 정말 배우는 쪽에 있어서는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만난 그의 가족들은 그에게 그간 열심히 해 온 공부와 그 성과, 꾸준했던 노력, 재능, 봉사하며 나눈 삶과 그 개인에게 인색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된다고 합니다.
왜 좀 더 다정하게 그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에 인정해주고 대단하다, 멋지다, 괜찮다,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을까.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 했습니다. 항상 차갑게 말했다며 가족들의 눈물 섞인 한탄을 듣다 보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사실 그런 것도 아닌데....
그가 아프기 시작하고 돌이켜보니 너무 그에 대해 무심했다 느껴지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죠. 사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에게 미안합니다.
너무 급작스럽게 말기암을 선고받고 전 그 소식마저 늦게 들었는데 급격히 악화되서 부고 소식을 듣게 되니 전혀 실감이 나질 않네요.
영정사진 속 그가 살며시 미소 띤 모습은 명절 때 우리 가족이 친척들과 그의 집에 모여 식사하며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뒤쪽 소파에 앉아 이 모든 상황을 즐기는 듯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때의 표정입니다.
명절 때 찍은 사진들 속에 그는 없습니다.
항상 사진 찍던 카메라 뒤에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가는 길 그간 미처 못 전해준 따스한 손길과 말들만 덩그러니 남아 마음이 아프네요.
어쩌면 그를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취미가 비슷했던 이곳에
제가 기억하는 아주 사적인 그의 모습을 적어보며 추도해 봅니다. 조용했지만 늘 따스했던 사람. 영면에 드시길 바라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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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분이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