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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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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2 02:39:15

몸은 어제부터 잠을 설쳐 정말 너무 피곤한데 쉬이 잠이 들지 않아 적어봅니다.
친척 한 분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떠올려보니 십 년이 넘어가더군요. 제가 오디오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밑도 끝도 없이 물었을 때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외에는 가족 행사에서 잠시 인사 나누고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요.
본인 직장에서는 업무능력이 뛰어나 인정받고 조직 내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는 건 어렴풋하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직장에서 온 수많은 조문객들이 능력도 너무 아까운 사람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이렇게 빨리 가버렸다고 애석해하더군요. 20년 넘게 같이 일하며 일을 배웠던 직원도 너무너무 존경하는 직장상사였다고.
제가 기억하는 그에 대한 단편은
고무줄 뛰던 시절, 저희 집에 잠시 함께 살았던 시기였는데 독학으로 일렉기타를 튕기며 연주하던 모습,
저희집 마당에서 혼자 나무판을 만지작거리고 대패질 하더니 어느날 완성한 것은 꽤 그럴듯한 스피커였지요.
또 제가 10대가 되었을 때 방문한 그의 시골집에선 쩌렁쩌렁 울리도록 진공관 앰프를 켜고 음악 듣고, 클래식LP판 올려 놓고 흐뭇하게 웃던 모습, 먹을 갈아 놓고 정성스레 붓글씨쓰고 있던 모습,
제가 한창 놀던 20대일 때 요즘 공부하러 다닌다며 오래된 고서를 뒤적이며 한자책을 보던 모습 등등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4개국어를 하고 해외출장 다니고 주말에도 직장에 불려 나가면서도, 정말 배우는 쪽에 있어서는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만난 그의 가족들은 그에게 그간 열심히 해 온 공부와 그 성과, 꾸준했던 노력, 재능, 봉사하며 나눈 삶과 그 개인에게 인색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된다고 합니다.
왜 좀 더 다정하게 그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에 인정해주고 대단하다, 멋지다, 괜찮다,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을까.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 했습니다. 항상 차갑게 말했다며 가족들의 눈물 섞인 한탄을 듣다 보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사실 그런 것도 아닌데....
그가 아프기 시작하고 돌이켜보니 너무 그에 대해 무심했다 느껴지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죠. 사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에게 미안합니다.
너무 급작스럽게 말기암을 선고받고 전 그 소식마저 늦게 들었는데 급격히 악화되서 부고 소식을 듣게 되니 전혀 실감이 나질 않네요.
영정사진 속 그가 살며시 미소 띤 모습은 명절 때 우리 가족이 친척들과 그의 집에 모여 식사하며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뒤쪽 소파에 앉아 이 모든 상황을 즐기는 듯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때의 표정입니다.
명절 때 찍은 사진들 속에 그는 없습니다.
항상 사진 찍던 카메라 뒤에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가는 길 그간 미처 못 전해준 따스한 손길과 말들만 덩그러니 남아 마음이 아프네요.
어쩌면 그를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취미가 비슷했던 이곳에
제가 기억하는 아주 사적인 그의 모습을 적어보며 추도해 봅니다. 조용했지만 늘 따스했던 사람. 영면에 드시길 바라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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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5-12 01:12:26

 멋진 분이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WR
8
2021-05-12 01:38:25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자리를 지켜주고 버텨주며 사는 우리가 다 멋진 게 아닐까요.
어린 아이는 걷기만 해도 웃기만 해도 똥만 잘 싸도 칭찬해 주는데
어른인 우리는 칭찬과 인정받을 기회가 너무 적어요.
셀프 칭찬도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따뜻한 격려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오늘도. 이미 늦은 밤이지만.
그랬군요님께 편안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3
2021-05-12 01:46:01

많이 공감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지 않던 칭찬을 티 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골몰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마음에 없는 사탕발림 처세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작 가족에게는 당연히 솔직(?)해야 하는 부당함과 그 폐해를 요즘 느끼고 있거든요. '내가 듣기 좋고 기분 좋으면 그래서 뭔가 생활이 달라진다면 내 조그만 신경 써줌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의 하루하루가 더 좋은 나날이 될 수 있지 않는가?' 라는 코로나 판데믹에 집에서 부대끼는 가족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제 아침이라(미 서부입니다).... 크세쥬님 , 잘 읽었습니다.

1
2021-05-12 01:50:26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잊고살다가도 불현듯이 떠나간 사람이 생각나는 날들이 있습니다.
가까웠던 친척 친구도 그렇고.
전 여행지에서 만나 며칠간 같이 다니다가 다음날 새벽에 공항가는차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미에서 만났던 막 갓군대제대한 어린친구가 종종 지금도 기억이나네요.
떠나간 누군가를 한번씩 기억해주고 추모할수 있다는것도 행복인가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게되면 누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줄까하면 좀 더 열심히 인정하면 삶을 살아야할듯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2:12:54

배움이 즐거우셨던거 만큼 아프시기전에는 뿌듯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2:44:1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언가 인생의 의미를 밝혀나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궁금합니다. 아마 지인 분의 삶과 많이 닮지 않았을까요.

세쥬님의 마음에 슬픔을 씻어내는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잠깐 브라우저를 닫고, 제 자신은 어떤 상황인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2021-05-12 05:43:35 (222.*.*.250)

살아 생전 열정을 아낌없이 쓰고 다니셔서 

일찍 가셨나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6:58:16

 그렇게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자기 자신을 남겨놓는 삶은 의미있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7:03:5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7:06:0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7:24:00

오빠분은 주위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추모할만큼 인생을 잘 사셨군요. 오디오동호회에서 동선이 겹쳤을 수도 있겠네요.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

2021-05-12 08:09:4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8:18:0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08:23:2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2021-05-12 08:26:31

아들내미에게 좀 더 다정하게 한마디 건네보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2021-05-12 08:34:22

고인의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요즘 종종 생각하는 바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10:46:2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2 11:09:22

재능과 인품을 겸비한 분이셨군요.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왠지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좋은 추억만 가지고 돌아가셨을 듯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05-13 00:13:27 (114.*.*.89)

 공감과 여운을 느끼게 되는 글이네요.

 고인이 평안한 곳에 가셨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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