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잡설] 내 친구 신시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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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1-12-17 01:14:38
원래 이 글은 제가 쓰고자 했던 '국민가수와의 4시간' 이라는 글의 서두로 쓰고 있던 글인데요, 너무 길어져서 두개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절대 기대치를 높여보겠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절단신공을 발휘한게 아닙니다. ^^;; 긴 글을 읽기를 좋아하는 저와는 달리 많은 분들이 스크롤 압박이 있는 글에 부담을 느끼셔서 본의 아니게 두개로 쪼개게 되었습니다. 1부라는 촌스러운 이름 대신에 따로 글제목을 부쳤기에 2부작인줄 모르고 들어오셨을 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독립적인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자위를 해봅니다. 시작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미국 생활이 어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와 같이 나이가 들어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국인들의 경우 사실 이곳에 와서도 매우 한국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삽니다. 먹는 것도 한국 음식에 가족끼리는 한국말로 얘기할 뿐 아니라 어쩌나 친목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한국사람들이며 미국 자국 뉴스보다도 한국의 뉴스에 훨씬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물론 '난 한국사람과 교류하지 않을거야' 라고 결심을 하고 한국분과의 관계를 단절하신 분들도 계시고 한국인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동네에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를 제외하면 이런 한국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미국 친구들과 폭넓은 관계와 정을 나누고 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친구 못지 않은 미국 친구를 사귈 기회가 드물지만 있으며 오늘은 저의 절친과 저의 동네에 살았던 국민가수로 불리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이 글이 검색에 의해서 알려지는 글보다는 DP 의 프차 식구들에게 편안히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인지라 이 유명인의 실명은 등장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물론 실명을 쓰지 않아도 어떤 분인지 금방 아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 두명중의 한명인 Cynthia (이하 신시아라고 하겠습니다) 를 만난 것은 저희 아이가 다니고 있던 학교 주차장에서였습니다. 어느날 차를 세우고 학교에 들어가는데 아주 정겨운 목소리로 누군가 헬로를 하길래 돌아보니 아주 교육을 잘 받고 자란 느낌이 물씬 나는 풍채좋은 흑인 아주머니께서 저희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다짜고짜 반갑다고 인사를 하면서 자기가 한국 친구들이 좀 있다고 하면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거는데 그 인상이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환한 웃음으로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는 우리아이와 같은 학년, 둘째 아이는 저의 딸아이와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두반 밖에 없는 학교라 거의 같은 반일 확률이 높지만 그때는 아마 첫째가 같은 반이고 둘째는 다른 반이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길래 초등학교나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에 어찌나 붙임성있게 행동을 하시던지 친한 미국 가정 없는 저희 가족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양쪽집 큰 아들끼리 절친이 되는 바람에 둘도 없이 친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분은 흑인으로서 받는 불평등을 겪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으로 미국에 산다는 것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 주었고 미국에 살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흑인들의 정서가 한국 사람들과 잘 맞는 덕분에 얘기를 할 때마다 참 말이 잘 통하는 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나서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 분이 뭐하는 사람인줄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하여서는 개인적으로 뭘하는지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를 자세히 물어보지 않는게 어느 정도 관행인지라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 정도 이외에 더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만 만난 것이지요.
조금 친해지고 집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것이 신시아가 초중고 음악선생이 아니라 제가 있는 도시의 주립대학교 음대 성악과 교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역시 음대 성악과 교수이고 이 대학교 전체 합창단 (Glee) 지휘자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것두요. 하지만 원체 대학교수들이 많은 도시인지라 '아 그렇구나' 라고 넘어가고 말았을 터인데 그녀가 매년 여름이면 유럽투어를 다니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베를린 필, 정명훈 등등과 함께 일을 했었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유명 성악가들에 얽힌 뒷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녀가 조수미를 칭찬하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우쭐했었습니다. 또 함께 컨서트를 했던 무대 뒤에서 밥 딜런을 몰라보고 그에게 이름과 직업을 물어보고 '노래한다니까 앞으로 잘해봐라' 라고 충고를 했던 것은 지금도 만날 때마다 낄낄대며 이야기하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유명 성악가들과의 뒷얘기는 나중에 DP 분들을 만날 때 술안주 이야기용으로 남겨놓겠습니다. ^^
[신시아의 두 아들들과 저의 아들녀석이 재미로 찍었던 오래된 농구 비디오]
이 분들을 알고 나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것 중 기억나는 것 하나는 저 혼자 관객이었던 어느 재즈 잼(즉홍연주)에 초대 받았을 때 였습니다. 어느날 신시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샴페인, 우리 집으로 지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빨리 와라' 라는 내용에 가족도 아닌 저 혼자를 부른 것을 의아해 하면서 그 집 지하에 도착했더니 그곳에는 소규모의 재즈 컨서트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편이 트럼펫 연주자와 드럼, 기타, 베이스 연주자들을 불러서 즉홍적으로 재즈 음악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신시아가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줄 아는지라 저를 급하게 불렀고 저는 난생처음 저 혼자 관객인, 저를 위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 컨서트에 참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족히 70은 되어보이는 영화에서 나올듯한 작은 체구에 머리가 하얗게 샌 흑인 트럼펫 연주자와 젊지만 천재적인 느낌의 드러머, 중년의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그리고 쥴리어드 출신의 교수가 연주하는 재즈 피아노가 어우러진 잼 세션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레퍼토리도 없이 누군가 하나 적당한 코드로 시작을 하면 곧 다른 연주자들이 치고나와 합주를 하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 넘게 펼쳐진 이 지하실의 컨서트를 저는 정말 지금도 잊을 수 없으며 제 생애 가장 감동적인 컨서트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 왜 캠코더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기에)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그런 엄청난 잼이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몇가지 혜택이 더 있었군요. 하룻밤에 노래 두곡 정도 부르는데 당시 개런티가 만불(천만원)이 넘었던 신시아를 뉴욕에 있는 에이전트 (유명 성악가들은 거의 다 에이전시에 소속이 되어 있습니다) 몰래 제가 다니던 교회의 소규모 무대에 세웠던 일입니다. 당시 손바닥만한 교회의 음악행사에 왔던 오십명이나 될까 했던 미국인 관객들은 세계적인 성악가의 노래에 완전히 압도되어 돌아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노개런티로 출연을 해줬습니다 (무대 의상도 따로 준비해서 입고 왔고 데리고 온 반주자는 본인이 따로 저몰래 사례를 했더군요).
그리고 신시아를 성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만들어 준 오페라가 바로 죠지 거쉰의 작품인 포기와 베스 (Porgy and Bess) 에서의 베스역인데요, 이 오페라 중 Summertime 같은 노래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도 한번 들어보았을만큼 유명한 곡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래가 조금 끈적인다 하는 여성 가수들은 거의 모두 이 노래를 한번씩 불렀었습니다. 심지어 재니스 조플린도요). 그녀가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유명한 Simon Rattle 경과 함께 한 포기와 베스 DVD 는 아직도 대표적인 포기와 베스 공연으로 팔리고 있는데요, 저는 제가 귀한 선물을 드려야할 분들 중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면 아마존에서 이 DVD 를 주문한 후 신시아의 집에 달려가서 선물 받을 분의 이름이 들어간 싸인을 받아서 주곤 했습니다.
이 DVD 에는 지금의 남편도 함께 공연을 해서 (그 때는 처녀/총각일 때이고 이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가물 가물.. ^^) 두 사람의 싸인을 받아다가 이름을 넣어서 선물을 하면 받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곤 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저에게 불평 한번 없이 싸인기계가 되어 준 신시아에게 감사를.. ^^;;
[포기와 베스 DVD. 사진속의 여인이 신시아 ^^ 클릭하면 아마존 DVD 페이지로]
어쨌든 두 집 자녀들간의 친분, 그리고 감히 평생을 음악을 해온 세계적인 성악가 부부들 앞에서 알량한 음악 이야기를 겁도 없이 해대는 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고 저의 아내가 만든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해 주던 신시아 덕에 두 가족의 친분은 더욱 깊어만 갔고 지금도 제가 가장 친한 가족으로 신시아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사온 집도 신시아가 자기가 거래하던 좋은 부동산 중계업자를 소개해 주는 바람에 얻게 되어 이들에게 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두 가족이 함께 이사를 해서 곧 맞 집들이를 할 계획입니다 ^^).
아, 섭섭한 일도 한번 있었습니다. ^^ 신시아의 남편 제자가 팻 메쓰니 밴드 (예, 그 기타리스트 팻 메쓰니 맞습니다 ^^) 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어서 이들이 저희 동네에서 매년 벌어지는 기타 축제에 게스트 연주자로 왔을 때 신시아의 남편이 저를 이 행사의 뒷풀이에 초대하기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뭐 항상 죄수복 스타일의 티셔츠를 즐겨입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요, 결과는 남편분이 정신이 없어 저를 부르는 것을 잊어먹는 바람에 지금도 두고 두고 제가 만날때마다 우려먹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너 나 때문에 미안하지? 한번 도와줘" 해서 남편분도 제 교회 음악 행사에 올렸습니다만.. ^^;;
평소 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항상 잘 들어주던 이 부부와 어느날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우연히 제가 사는 도시에 와서 살고 있던 소위 한국의 전설적인 가수 한명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조그만 동네에 한국에서 셀린 디온과 머라이어 캐리를 다 합쳐놓은 정도의 지명도와 실력을 가진 전설적인 가수가 와서 살고 있다고 침을 튀겨대니 이 부부가 관심을 가지더군요. 그렇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이 되고 자세한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2부를 미리 써놓고 쓰는 글이 아니라서 언제 2부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가급적 신속하게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게 하이라이트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니까요. ^^;;
** 2부가 완성되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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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ㅠㅠ 이제 자야 하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