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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다크 워터스(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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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19 1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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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상업 영화 경쟁작들이 일제히 개봉을 연기하면서 [다크 워터스]같은 작은 영화들에겐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극장이 관객없이 썰렁해진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객이 없는건 또 아니다. 일일 박스오피스 1위작의 일일 관객수가 만명 밑으로 추락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극장에 관객은 남아 있다. 3월 11일 수요일 개봉한 [다크 워터스]가 8일간 누적시킨 관객수는 78,516명이다. 개봉 이후 빈집털이식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과연 [다크 워터스]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지금과 같이 전국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일반관보다 아트관이 익숙한 토드 헤인즈 신작이고 실제로 아트관에서도 걸리고 있다. 코로나로 상황이 꼬이지 않았다면 전국 100개 스크린도 보장 받지 못했을 것이고 작품의 성격상 아트관 중심으로나 배급됐을 것이다.

 

현재 배급 규모에 비하면 관객수는 초라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상영관을 이 정도로 배정 받아 나름의 잠재 관객층을 일깨운 것이니 [다크 워터스] 입장에선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아트관 중심으로 개봉했다면 배급 특성상 5만명 이상 동원하긴 힘들었을거다. 극장에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해서 차선으로 다른 작품을 굳이 선택해가며 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일단은 많은 상영관에 잔뜩 걸어두고 버티다 보면 배급의 힘으로 어느 정도는 유인할 수는 있다. 접근성의 편리함이 일부 안 볼 사람들을 호객하는 것이다.

 

신작보다 재개봉작이 더 많아진 요즘 극장가 현실에서 배급의 힘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타격에 민감해진 상업 영화들은 개봉을 기약없이 미루고 있지만 [다크 워터스]같은 작은 영화들은 변동없이 개봉하고 있다. 작은 영화 입장에선 오히려 상업 영화 신작이 없어진 자리의 배급을 꿰차고 들어서는 것이 더 이익이 될 수 있다. 많은 스크린의 관객 분산이 적은 스크린의 높은 좌석점유율을 능가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현실이다. 아트관 없는 동네 멀티플랙스에서 평상시라면 아트관 아니면 보기도 힘들었을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고 있어서 덕분에 발품 안 팔고 집 근처에서 편하게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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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의 신작 [다크 워터스]는 [스포트라이트]같은 구성 방식을 취한 지금 시기의 [에린 브로코비치]이다. 미국에서 천문학적 보상금을 받아낸 환경 오염 스캔들의 극적인 소송 실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에린 브로코비치]와 자매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지만 마크 러팔로가 자신이 주연한 [스포트라이트] 제작진과 토드 헤인즈를 영입하여 의욕적으로 제작한 작품이란 점에서 매끈하게 경쾌했던 [에린 브로코비치]의 인생역전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사회 고발에 무게를 두었다.

 

거대 화학 기업의 악랄한 이윤 추구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는 부당한 현실에 맞서 정의 구현에 힘쓰는 마크 러팔로의 배역만으로도 마크 러팔로의 세 번째 오스카 후보작이었던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애초에 기획 방향 자체가 [스포트라이트]의 연장선격으로 발전된 것이었다. 배우이자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마크 러팔로가 [다크 워터스]의 주인공인 변호사 롭 빌럿에 대한 뉴욕 타임스 기사를 접하고 영화화의 가능성을 발견, 자신이 주연한 [스포트라이트] 제작진과 함께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토드 헤인즈에게 각본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영화화가 착수됐다.  

 

마크 러팔로의 배역 선택이나 시종일간 건조하고 진지한 구성 방식에서 [스포트라이트]의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애초부터 [스포트라이트]같은 작품을 의도한 실화 각색물이니 어느 정도는 의도된 기시감인듯 싶다. 기시감을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한 것이지만 그만큼 아류작의 흔적도 발견하기 쉽다. 이걸 해소시키고자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토드 헤인즈 같은 작가 감독을 섭외한 것일텐데 [다크 워터스]에서 제일 의외의 인물인 토드 헤인즈는 [스포트라이트]같은 분위기를 요구하는 제작진의 주문을 충실하게 이행한 모범적인 고용 감독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감독의 이전작에서 보여지던 색깔은 전혀 느낄 수 없다.

 

토드 헤인즈를 감독으로 섭외했다는 것은 제작진이 어느 정도는 토드 헤인즈의 개성을 감수하겠다는 뜻인데 정작 토드 헤인즈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데 관심이 없었나 보다. 소재 자체가 토드 헤인즈의 개성을 드러낼만한 것도 아니고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고발에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철저하게 실화에 근거해서 기획된 구성이라 토드 헤인즈 본인도 제작진의 의도를 존중하다 보니 굳이 토드 헤인즈를 섭외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스포트라이트]의 아류작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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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실존 인물 롭 빌럿이 영화화를 허락한 것도 듀폰이 은폐하려 한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건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온갖 불이익과 압력에 맞서 20년 이상을 듀폰 고발에 투신한 변호사 롭 빌럿은 영화로 제작한다는 전제 하에 사건의 경로를 제공했고 영화 홍보에까지 동참했다. 제작진이 실존 인물의 뜻을 너무 지지하면서 몰개성적인 탐사 보도물로 개성은 발휘되지 못했다. 괜한 양념을 치지 않고 굵직하고 진지하게 몰고가는 건조한 구성 방식은 좋은데 이를 드러내기 위해 색 보정을 너무 많이 해서 흡사 캠버전을 보는 것 같이 화면이 시종 푸르스레하게 칙칙한 것도 답답하다.

 

[다크 워터스]는 좋은 작품이고 기획 의도는 더 좋으나 작품이 힘을 받는 것은 영화적 무게감보단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해결되지 못한 미국 최고 화학 기업인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건에 접근하는 용감한 폭로 정신에 있다. 영화가 그리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20년 가까이 진행된 PFOA(Perfluorooctanoic Acid 과불화화합물) 유출 사실과 피해자 3535명에 대한 8천억 상당의 배상금 소송을 돈과 인맥으로 무마시키려다 실패한 소송 사건과 환경 문제에 대한 집요한 고발 정신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대기로, 물로 무분별하게 유출된 독성 폐기물로 인류의 99프로가 피해를 입었다는 친절한 설명과 사건의 배경에서 환경 오염의 심각성과 일상에서 쓰이는 각종 도구들이 얼마나 건강에 위협적인지를 인식시켜줬다는 점에서도 시사성이 있다. 재판은 돈과 시간 싸움이라는 것을 긴 세월의 흔적으로 보여주면서 절반의 승소를 통해 사회의 양심과 도덕성을 회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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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워터스]는 1975년 웨스트 버지니아의 오염된 호수에 무단침입하여 수영을 하던 철없는 젊음이들의 모습을 공포물의 프롤로그처럼 비춘 다음 본격적인 서사는 1998년부터 시작해 2015년까지 끌고 간다. 각 시기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1998년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농장주 윌버 테넌트의 제보에서 시작해 극적인 승소로 판결된 2015년의 법정 판결까지 차분하게 따라간다.

 

전개 과정에서 이런 류의 소송 사건을 다룬 사회 고발성 드라마에서 보여질법한 요소가 전부 들어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한 집안의 가장인 주인공이 짋어지게 되는 정신적 고통과 생계 유지에 대한 불안감, 주변인과 아내와의 갈등, 너무 큰 대상을 건드린 것에 대한 보복에 대한 두려움, 지역 사회의 밥줄을 쥐고 있는 소송 대상의 고약한 훼방으로 오히려 지역 사회에서 외면을 받고 있는 고달픈 상황 등 실화가 아니었다면 상투적으로 여겨졌을 요소들이 장면마다 나온다. 대기업이 일으킨 환경 오염에 대한 사건의 경로를 요약하는 방식이나 주인공이 차량에 폭탄이 장착됐을거란 불암감에 시달리는 장면 등에서 [펠리칸 브리프]가 떠오르기도 했다.

 

롭 빌럿의 아내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는 신념에 찬 변호사 남편을 때론 응원하고 때론 원망도 하는 전형적인 아내 역을 맡았는데 영화의 주제에 대한 지지와 토드 헤인즈와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심으로 개성도 없고 극에서 별로 하는 것도 없는 정형화된 아내 역을 받아들인 것 같다.

 

영화가 의무적인 실화 각색의 제한된 범위를 뚫고 저력을 발휘하는 부분은 후반부에 있다. 아직도 넘어서야 할 고비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현실의 민낯을 요약한다. [다크 워터스]는 실화가 영화를 넘어서면서 힘을 받는 경우다.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실화극의 힘, 마냥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은 용감한 변호사의 투명한 정의 구현과 희생 정신, 돈과 인맥의 횡포를 이겨낸 절반의 승소 결과에서 사회적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천천히 묵직하게 주제 전달에 힘을 실었지만 실화와 사회 고발의 책임감만큼이나 극적 재미의 욕심도 조금은 부려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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