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고음은 속도가 빠르고 저음은 느리다?
오디오 애호가라면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겁니다.
"고음은 속도가 빠르고 저음은 느리다."
실제로 유튜브나 오디오 관련 사이트, 블로그 등을 보면 여러 오디오 평론가들이 고음과 저음의 속도가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피커와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청취자의 귀에는 고음이 먼저 도착하고 저음은 뒤늦게 도착한다고 말하죠.
그리고 그들은 요즘 스피커들의 상당수가 배플(Baffle. 스피커 전면)이 기울어진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는 이유가 고음과 저음의 속도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위 사진은 마르텐의 콜트레인 스피커와 포칼의 소프라 No.3인데 두 기종 모두 스피커를 측면에서 봤을 때 배플이 살짝 뒤로 기울어진 형태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배플이 기울어지게 디자인하면 고음을 재생하는 트위터 유닛보다 저음을 재생하는 우퍼 유닛이 앞으로 나오게 되죠.
여러 오디오 평론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우퍼 유닛을 앞으로 배치함으로써 속도가 느린 저음이 고음과 동일한 타이밍에 청취자의 귀에 도착하도록 한다는 얘깁니다.
100미터 달리기로 예를 들면 청취자의 위치를 결승선이라고 했을 때 고음과 저음의 출발선 위치를 다르게 해서 속도 차이를 극복한다는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 오디오 평론가들이 사실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고음은 속도가 빠르고 저음은 느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 같은 듣보잡 취미가가 전문 오디오 평론가들의 설명이 잘못됐다고 하니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고음과 저음에 속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실제 물리 현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니까요.
제가 지금껏 이곳 게시판에 쓴 글들은 지나치게 전문적인 설명은 최대한 배제한 채 기본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학창 시절에 배우고 잊으셨을 간단한(?) 물리 공식을 하나 설명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소리의 진동은 공기나 물 같은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데 이렇게 진동이 이동하는 것을 파동(波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파동의 속도는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주파수(Hz) X 파장(meter) = 파동의 속도(m/sec)
파장(波長)은 한 번 진동할 때 이동하는 거리입니다.
소리의 속도는 섭씨 0도, 1기압 조건에서 초속 331.5미터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0.6미터씩 증가하기 때문에 음속은 실온에서 대략 초속 340미터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1초에 한 번 진동하는 1Hz 소리의 파장은 340미터입니다.
1초 동안 한 번 진동하는 것이 1Hz인데 소리는 1초에 340미터를 이동하니까요.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 중 가장 낮은 저음인 20Hz의 경우 파장이 17미터(340 ÷ 20)인데 이 수치를 위에 적은 파동의 속도를 구하는 공식에 대입해 보죠.
20Hz X 17m = 340m/sec(초속 340미터)가 됩니다.
가청주파수 중 가장 높은 고음인 20kHz(=20,000Hz)는 파장이 0.017미터(340 ÷ 20,000)인데 이 파동의 속도를 구해볼까요?
20,000 X 0.017 = 340m/sec
......어떤가요?
저음이든 고음이든, 주파수(=진동수)가 바뀌어도 소리의 속도는 여전히 초속 340미터죠?
이렇듯 중고딩 시절에 배운 파동의 속력을 구하는 공식만 떠올려도 오디오 평론가들이 말하는 "고음은 속도가 빠르고 저음은 느리다."란 얘기는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죠.
오래 전에 배운 데다가 항상 답이 동일한 공식이라니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실 위 공식에서 항상 답이 동일한 건 아닙니다.
위의 공식에서 주파수, 그러니까 무엇인가 진동했을 떄의 진동수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면서 바뀌지 않습니다.
20Hz의 저음이 공기라는 매질을 통과하는 동안 더 낮은 소리인 15Hz로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파장은 진동이 어떤 매질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바뀝니다.
파장은 통과하는 매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지죠.
파장은 통과하는 매질이 기체→액체→고체일 때의 순서로 길어집니다.
파동의 속도를 구하는 공식에 따라, 파장이 길어지면 파동의 속도도 빨라집니다.
따라서 파동의 속도 역시 기체→액체→고체의 순서로 빨라지죠.
골치 아픈 물리 공식은 일단 여기까지만 설명드리도록 하죠.
다양한 변수에 의해 달라지는 소리의 속도를 구하는 공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내용은 지나치게 복잡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직접 다루진 않겠습니다.
소리는 주파수에 따라 속도의 차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의 더 자세한 근거는 본문 말미에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본문 마지막 내용까지 모두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왜 많은 스피커들이 배플이 뒤로 기울어진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 것일까요?
고음이든 저음이든 공기 중에서 소리의 속도가 동일하다면 트위터와 우퍼가 동일한 수직선상에 있어야 청취자의 귀에 고음과 저음이 동시에 도달할 것 아니냐고 의아해 할 수 있죠.
이 수수께끼의 답은 스피커 드라이버 유닛의 구조에 숨겨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포칼에서 만든 저음 재생용 우퍼 드라이버 유닛입니다.
이런 실물 사진으로는 유닛의 내부 구조까지 파악하긴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드라이버 유닛의 구조와 각 부품의 이름을 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죠.
스피커에서 드라이버 유닛은 직접적으로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재생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저음을 재생하는 우퍼 유닛은 대부분 깔때기처럼 안쪽으로 움푹 파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 공기를 효율적으로 모아서 밀어내기 위한 형태입니다.
위 그림에서 깔때기 모양의 진동판인 콘(Cone)이 움직여 공기를 진동시키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콘은 그 밑에 보이스 코일(Voice Coil)이 감겨져있는 얇은 원통 형태의 포머(Former)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앰프에서 스피커로 전달된 전기 신호는 자석(Magnet) 사이에 위치한 보이스 코일을 앞뒤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보이스 코일이 감긴 포머가 콘을 앞뒤로 진동시키는 거죠.
따라서, 우퍼 유닛에서 공기의 진동이 발생하는 시작 지점은 움푹 파인 콘의 중심부, 그러니까 더스트 캡(Dust Cap)으로 덮인 포머와 콘이 맞닿은 위치입니다.
제가 아래 그림에서 빨간선으로 표시한 위치죠.
우퍼 유닛에서 처음으로 공기의 진동이 시작되는 위치는 배플과 맞닿은 서라운드 근처의 콘 부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콘 안 쪽 깊은 곳에서 공기의 진동이 시작되는 겁니다.
아래 그림에서 제가 파란색으로 A, B라고 적어둔 깊이만큼 거리차가 있는 거죠.
반면 고음을 재생하는 트위터는 우퍼 유닛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에 진동판에서 가장 튀어나온 위치부터 보이스 코일 사이의 거리가 매우 짧습니다.
위 그림은 트위터의 구조인데 우퍼 유닛의 콘 역할을 하는 진동판(3번) 바로 밑에 보이스 코일(2번)이 위치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트위터는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배플과 거의 같은 선상에 위치하는 셈입니다.
그럼 평범하게 배플이 기울어지지 않고 수직으로 디자인된 스피커의 단면을 살펴볼까요?
위 사진은 다인오디오의 신형 북쉘프 스피커인 컨투어 20i의 정면과 단면입니다.
배플에 위아래로 위치한 트위터와 우퍼 유닛이 동일한 수직선상에 장착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죠.
이 스피커에서 트위터와 우퍼 유닛의 진동판과 보이스 코일이 맞닿은, 그러니까 소리가 처음 시작되는 위치가 어디인지 선을 그어보겠습니다.
파란색 선이 트위터의 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빨간색 선이 미드 우퍼 유닛의 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대략 2~3cm 정도의 차이가 있어보이는군요.
배플 디자인에 따라 트위터와 우퍼 유닛의 보이스 코일 위치에 따른 소리 시작점 거리 차이가 3.4cm인 스피커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소리의 속도는 초속 340미터니까 이 스피커를 통해 듣는 저음은 고음보다 만 분의 1초 늦게 청취자의 귀에 도달합니다.
만 분의 1초라면 굉장히 짧은 차이니까 별 문제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예민한 사람은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미묘하게 고음과 저음이 따로 노는 느낌을 받게 되죠.
실제로 사람은 고작 17cm 정도의 거리를 가진 두 개의 귀에 각각 시간차를 두고 도달하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방향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초속 340m의 소리가 17cm를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은 2천분의 1초인데 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있죠.
2개의 스테레오 스피커만으로도 콘서트 무대의 각 악기별 위치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인간이 양쪽 귀에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도달하는 소리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고요.
그나마 컨투어 20i 스피커는 트위터와 미드 우퍼로 구성된 북쉘프라서 그렇지 만약 8~10인치 이상의 대형 우퍼 유닛이 장착된 톨보이 스피커라면 고음과 저음이 청취자에게 도달하는 시간 차이가 더 커지게 됩니다.
우퍼 유닛이 커지면 그만큼 유닛이 장착된 배플과 공기의 진동이 시작되는 지점과의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스피커들은 배플이 뒤로 기울어진 형태로 디자인된 것입니다.
트위터와 우퍼의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리의 출발선 차이를 배플을 기울여 보정하는 것이죠.
이것은 유닛들의 시간축을 동일하게 정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서두에 소개해드렸던 마르텐의 콜트레인 스피커인데 측면에서 봤을 때 트위터의 보이스 코일 위치에서 수직으로 선을 그어내리면 트위터 밑에 장착된 미드 우퍼와 우퍼 유닛들의 보이스 코일 위치가 거의 비슷하게 정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 서두에 비유로 들었던 100미터 달리기 이야기를 정확하게 비유한다면 출발선을 다르게 해서 시간차를 보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발선을 동일하게 맞춰서 동시에 결승선(청취자 위치)에 도달하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제가 위에 서술한 내용을 듣고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퍼 유닛이 움푹 파여진 구조라서 더스트 캡 부근의 안쪽에서 공기의 진동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공기의 진동은 서라운드 근처의 바깥쪽에서도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죠.
맞습니다.
위 그림의 우퍼 유닛에서 공기의 진동이 시작되는 지점은 B이지만 당연히 A 지점에서도 공기의 진동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의 우퍼 유닛 안에서도 콘의 안쪽과 바깥쪽이 재생하는 소리에 시간차가 발생한다는 얘깁니다.
심지어 유닛의 크기가 커질수록 콘의 여러 위치에서 발생한 소리가 서로 부딪쳐서 음을 혼탁하게 만들기까지 하죠.
그렇기 때문에 트위터와 우퍼의 시간축을 동일하게 정렬시킬 때 단순하게 보이스 코일 위치만을 기준으로 유닛을 배치하진 않습니다.
유닛 특성에 따라 수많은 측정 과정을 거쳐 최적의 위치로 거리를 조정하게 되죠.
여담입니다만 요즘 스피커 브랜드들은 과거와 달리 거대한 싱글 우퍼를 채용하기보다 상대적으로 크기를 줄인 우퍼 유닛을 여러 개 장착해서 저음을 재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우퍼 유닛이 커질수록 콘이 진동에 뒤틀리기 쉽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콘의 여러 부위에서 발생한 소리가 부딪쳐서 음을 혼탁하게 만들 위험이 있으며 안쪽과 바깥쪽의 재생음에 시간차가 더 크게 발생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아래 사진은 과거 B&W의 실질적인 플래그쉽 스피커였던 Nautilus 801 스피커입니다.
거대한 15인치 우퍼가 장착되었음에도 주파수 응답특성을 보면 저음이 32Hz까지밖에 내려가지 않는 스피커였죠.
반면 아래는 같은 회사의 최신형 플래그쉽 모델인 800D3 모델입니다.
800D3 스피커는 노틸러스 801에서 사용된 우퍼 유닛보다 작은 10인치 우퍼 두 개를 장착했는데 저음 재생 능력은 더욱 좋아져서 15Hz까지 내려갑니다.
물론 우퍼 유닛의 크기만으로 저음 재생 능력이 결정되진 않으며 스피커 제조사들은 유닛의 재질과 인클로저 설계 등에서 많은 기술적 발전을 이뤄왔죠.
그럼에도 B&W는 아직까지 배플을 기울여서 유닛 간의 시간축을 일치시키는 설계를 도입하진 않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의 인클로저로 디자인된 스피커의 경우 배플을 기울여서 설계하는 게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고음은 저음과 다르게 지향성이 있기 때문에 배플을 기울여 설계하게 되면 트위터가 비스듬히 위쪽을 향하게 되고 청취 환경에 따라 고음이 청취자의 귀가 아닌 머리 위로 향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트위터와 미드 우퍼, 우퍼 유닛을 모듈식으로 각각 다른 인클로저에 담아 그 방향이 청취자를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스피커를 디자인하면 미(美)적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의 스피커를 제작하기 어렵죠.
위 사진과 같은 디자인은 비록 음향공학적으로 유닛들의 시간축 정렬이 잘 맞는다 해도 선뜻 거금을 들여 구입하기가 망설여질 겁니다.
실제로 고가의 스피커를 구입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기기가 보여주는 디자인의 완성도도 중요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드라이버 유닛들의 시간축을 일치시키는 데에 가장 공을 들이는 스피커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윌슨 오디오입니다.
고음과 중음, 저음을 담당한 유닛들의 시간축을 정확히 일치키시는 데에 어느 브랜드보다 철저하며 실제로 관련된 특허를 여럿 보유한 메이커가 윌슨 오디오죠.
위의 사진은 윌슨 오디오의 창립자 데이비드 윌슨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스피커인 WAMM 마스터 크로노소닉 스피커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가청주파수 영역의 소리를 여러 개의 유닛으로 나눠 재생하되 각각의 유닛을 모듈형으로 별도의 인클로저에 담아 앞뒤 거리와 청취자를 향한 각도까지로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된 스피커입니다.
이 스피커의 유닛 간 시간축 정렬의 정밀도는 오차 범위가 5백만 분의 1초에 이를 정도죠.
윌슨 오디오는 대부분의 하위 기종들에서도 이와 같은 설계를 적용해 청취자와 스피커 사이의 거리와 각도에 따라 정밀하게 각 유닛의 각도와 거리를 조절하는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AV를 즐기는 DP 회원분들은 센터 스피커에도 관심이 많으실 텐데 윌슨 오디오는 센터 스피커들조차도 유닛 간에 시간축 정렬을 철저히 맞추고 있을 정도죠.
위 사진은 윌슨 오디오의 센터 스피커들인데 자세히 보시면 트위터와 미드 우퍼, 우퍼 유닛이 동일한 시간축을 가지도록 장착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시간축 정렬에 관해 윌슨 오디오가 설명한 내용을 아래 링크의 PDF 문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wilsonaudio.com/pdf/brochures/wilson-audio-full-line.pdf
이 PDF 문서의 31페이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죠.
In the late seventies, Dave began experimenting with adjustable modular arrays.
Empirical listening combined with careful measurements revealed that the ability to adjust the loudspeaker’s drivers within the time domain—specifically as it related to aligning the leading edge transients of each of the individual drivers—was critically important.
He realized that even tiny errors in the alignment of the drivers in relationship to the listener caused obvious sound-quality degradation.
윌슨은 70년대 후반에 이미 정밀한 측정을 통해 드라이버 유닛들을 시간 영역(Time domain) 안에서 조절하는 것이 스피커 재생 음질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다고 적혀있죠.
주목할 점은, 스피커 유닛의 시간축 정렬에 관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브랜드인 윌슨 오디오가 '고음과 저음은 서로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드라이버 유닛의 시간축 정렬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윌슨 오디오는 스피커의 개별 유닛들을 모듈식으로 만들어 각각 시간 영역을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유가 '개별 드라이버 유닛이 앞쪽으로 과도하게 나와있는 것을 정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죠.
바로 트위터와 미드 우퍼, 우퍼 유닛의 진동이 시작되는 지점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고음이든 저음이든, 소리는 주파수가 달라진다고 해서 속도에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트위터와 우퍼 유닛의 구조 특성에 따라 우퍼가 재생하는 저음이 트위터보다 살짝 뒤쪽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만큼 약간 뒤늦게 청취자의 귀에 도달하는 것이죠.
이런 현상을 고음은 속도가 빠르고 저음은 속도가 느리다고 설명하는 오디오 평론가는 스피커 드라이버 유닛과 소리의 물리적 특성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주파수에 따른 소리의 속도에 대해 더 객관적인 근거 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링크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opentextbc.ca/universityphysicsv1openstax/chapter/17-2-speed-of-sound/
링크한 글의 중반부를 보시면 이런 내용이 나오죠.
One of the more important properties of sound is that its speed is nearly independent of the frequency. This independence is certainly true in open air for sounds in the audible range. If this independence were not true, you would certainly notice it for music played by a marching band in a football stadium, for example. Suppose that high-frequency sounds traveled faster—then the farther you were from the band, the more the sound from the low-pitch instruments would lag that from the high-pitch ones. But the music from all instruments arrives in cadence independent of distance, so all frequencies must travel at nearly the same speed.
윗글의 내용은 소리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음속과 주파수는 각각 '거의' 독립적이라는 겁니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적어도 가청주파수 영역내에선 그 차이가 없다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죠.
만약 주파수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면 넓은 축구 경기장에서 밴드가 연주를 했을 때 관중석에선 고음 악기와 저음 악기의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들려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고 말이죠.
이렇게 설명드려도 대학교 물리교재에 적혀있으니 틀렸다고 논박하는 건 불충분한 권위에 의한 논증이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까봐 제가 직접 생각해 본 사고실험(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가상의 시나리오)을 통한 논증도 곁들이겠습니다.
이해가 쉽도록 소리의 속도를 실제와 다르게 변형해 10kHz의 고음은 초속 1미터, 20Hz의 저음은 초속 0.5미터라고 가정해보죠.
그리고 이 속도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우퍼 유닛을 트위터보다 0.5미터 앞쪽에 배치한 스피커가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겁니다.
청취자가 이 스피커 앞쪽 1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면 고음과 저음은 청취자에게 동시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청취자가 스피커의 2미터 거리에 위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저음은 고음보다 0.5초 뒤에 청취자에게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주파수에 따라 소리의 속도가 달라진다면 배플을 기울여서 속도 차이를 보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위의 사고실험을 통해서 보았듯이 주파수에 따라 속도 차이가 있다면 스피커와 청취자 사이의 거리에 따라 소리가 도착하는 시간은 여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리는 고음과 저음, 이렇게 뭉뚱그려서 두 가지로 구분되지 않으며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는 20Hz~20kHz까지 정수 주파수의 갯수만 따져도 19,981개의 주파수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나 스피커에서 배플을 기울인 각도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저 많은 주파수 각각의 속도가 다르다면 청취자의 귀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주파수별로 여전히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주파수에 따라 속도 차이가 있다면 트위터와 우퍼 유닛의 위치를 앞뒤로 조정해서 시간차를 보정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실제로 소리는 주파수에 따라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죠.
P.S 더 낮은 저음을 재생하려고 할수록 우퍼 유닛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예전에 쓴 글에 자세히 적었습니다만 이 글에 다시 한 번 첨부합니다.
[......그럼 크기가 작은 북쉘프 스피커에서도 드라이버 유닛이 초당 20번 진동하면 20Hz의 저음을 재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실 수 있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듯이 파장은 길이가 짧을수록 에너지가 크고 길이가 길수록 에너지가 작습니다.
그래서 파장이 긴(=에너지가 작은) 저음을 파장이 짧은(=에너지가 큰) 고음과 동일한 볼륨(=에너지)으로 재생하려면 더 많은 공기를, 더 큰 진폭으로 진동시켜야 하죠.
이어폰의 경우 귀에 꽂아서 듣기 때문에 길이 3cm 정도에 불과한 귓구멍 안(외이도) 작은 부피의 공기만 진동시키면 됩니다.
귓구멍 안까지 삽입하는 형태인 커널형 이어폰의 경우엔 진동시켜야 할 공기의 부피가 더 줄어들게 되고요.
그렇게 작은 부피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은 이어폰에 사용되는 작은 드라이버 하나로도 충분하죠.
하지만 스피커는 이어폰과 사용 환경이 다릅니다.
작게는 2~3평 내외의 방부터 크게는 수천 평이 넘는 공연장을 채우고 있는 공기를 충분한 에너지로 진동시켜야 하죠.
저음의 경우 파장이 길기 때문에(=에너지가 적기 때문에) 중,고음과 동일한 볼륨으로 초저음을 재생하려면 더 많은 공기를 더 큰 진폭으로 진동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드라이버 유닛의 크기가 커져야 하죠.
그리고 드라이버 유닛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유닛 후면으로 방사되는 소리도 커지기 때문에 후면 방사음을 제어하기 위해서 스피커 통(인클로저.Enclosure)의 부피도 그만큼 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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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과 저음이 속도가 다르다고 해도 정말 아주 미세한 차이일텐데 그것 때문에 스피커의 디자인이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씀하신대로 공기 진동 때문에 유닛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이 달라진다는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